제주4.3에 대한 미국의 사과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이 미국 대사관에 전달됐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는 9일 주한 미국 대사관에 제주4.3에 대한 미국 정부의 사과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전달했다.
이들은 당초 지난 7일 오후 4시30분 서울 광화문광장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개서한을 미 대사관 측에 전달하려 했다. 그러나 미 대사관측에서 서한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며 한 시간 가량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서한을 통해 “4.3은 미군정이 통치하던 시기에 생긴 민간인 대량학살 사건”이라며 “4.3에 대한 실질적인 책임은 미국에 있다. 미군정은 해방 직후 한반도 38도선 이남에 존재한 실질적 통치기구였다. 미군정은 제주도를 ‘사상이 불순한 빨갱이 섬’으로 매도해 제주 사람들을 탄압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어 “미국 정부는 이제 4.3이 진실을 말해야 한다”며 “4.3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사과해야 한다. 또 당시에 대한 진상조사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 회장 역시 9일 공개서한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대한민국 국민 3만명이 죽어간 책임이 미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무런 답이 없다”며 “미국은 당장 4.3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4.3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묻는 서명 운동을 지속해 나갈 뜻을 밝혔다. [제이누리=고원상 기자]
다음은 공개서한 전문
미국 정부에 보내는 공개서한
당신들은 정녕 모르는가?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평화롭던 제주섬을 온통 핏빛으로 물들였던 그 때를.
당신들은 정녕 잊었는가? 70년 전 어느 날, 아무런 죄도 없는 수많은 제주 양민들을 끌고 가 무참히 학살했던 그 사건을.
당신들은 정녕 들리지 않는가? 붉은 동백꽃처럼 통꽃이 되어 툭, 툭, 비명에 스러져간 4·3의 영혼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당신들은 정녕 보이지 않는가? 학살의 광풍 속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자들과 억울하게 희생된 유족들의 마르지 않는 눈물이.
제주 섬을 핏빛으로 물들였던 그 참혹했던 시간이 어느새 70년이 흘렀다. 4·3은 미군정이 통치하던 시기에 발생한 민간인 대량학살 사건이다. 미군정과 미국 군사고문단이 실질적인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던 시기에 3만명이 넘는 제주도민들이 억울하게 숨졌다. 당시 제주도민 10명 중 1명꼴로 희생됐다. 전쟁을 제외하고 세계 어느 지역에서 이렇게 대학살극이 벌어진 적이 있었는가?
‘4·3 대학살’에 대한 실질적 책임은 미국에 있다. 미군정은 해방 직후 한반도 38도선 이남에 존재한 실질적 통치기구였다. 미군정은 제주도를 ‘사상이 불순한 빨갱이 섬’으로 매도해 제주 사람들을 탄압했다.
1948년 4·3 직후 미군정은 브라운 대령을 제주지구 미군사령관으로 파견해 제주 현지의 모든 진압작전을 지휘, 통솔했다. 브라운 대령은 4·3 당시 “원인에는 흥미가 없다. 나의 사명은 진압뿐”이라며 강경 진압책을 지휘했다. 이는 미군정이 4·3 학살에 직, 간접적으로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어디 이뿐인가. 미군 보고서에는 1948년 11월부터 제주섬에 대한 초토화 작전을 통해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국방경비대 제9연대의 강경진압작전을 ‘성공적인 작전’으로 평가했다. 미군정은 초토화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정찰기를 동원했을 뿐만 아니라 토벌대의 무기와 장비도 적극 지원했다. 미군정이 4·3 학살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분명히 말하지만 제주 민중을 대량 학살한 책임은 이승만 정부와 미국에게 있다.
하지만 정작 책임을 져야 할 미국 정부는 7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방관자적 태도로 아무런 말이 없다. 그러는 사이 4·3을 온몸으로 겪으며 고통 속에 한 생을 살아야 했던 생존자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남은 80~90대의 생존자들도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4·3의 아픈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다시 미국에게 묻는다. 미국이 진정 평화와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국가라면, 진정 미래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4·3 학살의 책임에 대해 성실히 응답해야 한다.
미국 정부는 이제 4·3의 진실을 말해야 한다. 4·3 학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해야 한다. 또한 4·3 당시 미군정과 미국 군사 고문단의 역할에 대한 진상조사에 적극 나서야 한다.
지난 2005년 UN(국제연합) 총회에서 채택한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행위와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 행위의 피해자의 구제와 배상에 대한 권리에 관한 기본 원칙과 가이드라인”에 근거해 민간인 학살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다시 한 번, 우리는 70년 전 쓰러져간 3만 제주 민중의 이름으로 미국 정부의 책임있는 행동을 강력히 촉구한다.
2018년 4월 7일
제주4·3 희생자유족회 / 제주4·3 70주년기념사업위원회 /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