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역에서 전신주 전선을 훔친 원정절도단이 다른 지역에서도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경찰 수사결과 드러났다. 이들은 서로가 돈을 더 갖기 위해 몰래 훔친 전선을 처분하다 조직이 분열됐다. 범행의 시작과 끝은 마치 영화 ‘도둑들’을 연상케 했다.
전기회사 시설공으로 일했던 이모(44·부산시)씨 형제와 신모(42)씨 등 3명은 경북 영덕에서 전신주 접지케이블(동선(銅線))을 훔치다 붙잡혀 1년 5개월을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올해 5월에 출소했다.
이들은 생활이 어렵게 되자 또 다시 같은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공범들을 끌어들여 부산시 금정구에 있는 모 마사지숍에서 만나 절도단을 구성하고 각 역할을 배분했다.
이씨는 직접 전선을 훔치는 역할을, 배모(32)씨와 신씨, 이씨의 동생 이모(42)씨는 범행 장소 물색과 망을 보다가 절단전선 수거를, 장물아비 권모(38·부산시)씨는 차량과 자금지원·장물운반·처분 등의 역할을 분담했다. 범행 목표량까지 정했다. 그 목표는 30톤.
이들의 첫 범행 장소는 경남 거제시와 사천시, 진해구 등이었다. 범행은 10월 초부터 11월 19일까지 모두 8차례나 이뤄졌다. 모두 2213kg, 시가 4213만원 상당을 훔쳤다. 그러나 동선 수량이 많지 않고 범행지역이 대부분 주택가 인근 지역이어서 다른 곳을 물색해야 했다.
이들은 인터넷 모 포털사이트 로드뷰 등을 통해 제주지역에 동선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이들은 냉동탑차 등 범행도구를 챙기고 지난달 21일 전라남도 삼천포에서 배를 타고 성산항을 통해 들어왔다.
우선 이들은 낮에 돌아다니면서 인적이 드물고 CCTV가 없는 곳을 범행 타깃으로 잡았다. 해안동에 보관창고도 마련했다.
'작전'은 26일부터 시작됐다. 이날 해안동에서 2001kg을 절단기를 이용해 훔친 뒤 냉동탑차에 실었다. 시가 2347만원 상당이다. 이후 이달 8일까지 해안동과 금악리, 봉개동, 교래리 등 모두 6개소에서 8255kg, 시가 9685만원 상당을 훔쳤다.
이들이 경남과 제주에서 훔친 동선은 모두 10.5톤, 시가 1억3900만원 상당이었다.
주로 이씨가 직접 사다리를 타고 전신주에 올라 절단기로 전선을 자르고 다른 일행들은 잘려진 동선을 감아 놓은 뒤 절단작업이 끝나면 차량으로 수거해 운반 보관했다. 범행에 걸린 시간은 전신주 1개당 약 3~4분.
이들은 범행 중간에 동선을 처분하기도 했다. 경남지역에서 훔친 동선은 권씨를 통해 고물상을 운영하는 문모(52)씨에게 팔렸다.
그러나 이들은 자금을 더 확보하기로 서로를 속이며 훔친 동선을 처분했다. 범행 중 체류비가 부족해진 이씨 등 4명은 제주에서 훔쳐 보관하던 동선 1.9톤을 권씨 몰래 지난달 28일과 이달 1일 2차례에 걸쳐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박모(50)씨가 운영하는 모 철강에 팔고 돈을 나눠가졌다.
권씨도 자신이 운영하는 고물상 직원 신모(32)씨와 같이 이달 6일 다른 일당 몰래 동선 4.6톤을 자동화물편으로 빼돌려 문씨에게 팔아버린 뒤 그 돈은 혼자 챙겼다.
특히 권씨는 직접 동선을 고철로 재활용 할 수 있는 중·대형 고철처리 업체에 매도하기 보다는 장물을 세탁하기 위해 다른 영세 고물상을 운영하는 문씨에게 처분해 전액 현금으로 받았다. 어떠한 거래내역도 기재되지 않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씨와 배씨는 육지부에서 동선을 판매하고 돌아온 뒤 보관 창고에 동선이 없는 것을 알고 돌아갈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8일 마지막 범행에 나섰다. 이날 밤 9시쯤 이들은 교래리에서 동선을 훔치고 있었다. 마침 순찰을 돌고 있던 한국전력 직원이 잘려진 채 나무에 매달린 접지케이블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전 형사를 동원해 현장 주변을 4시간 동안 샅샅이 수색한 끝에 배수로에 버려진 범행도구를 발견했다. 또 범행도구 발견 현장 300m 지점에서 숨겨진 차량을 찾아내 숙박업소를 확인했다.
경찰은 숙소에 숨어있던 이씨 등 2명을 체포했다. 이후 이들 뒤인 10일과 14일, 22일 권씨, 문씨, 달아난 이씨의 동생과 신씨를 차례로 붙잡았다. 경찰은 박씨와 권씨의 종업원 신씨가 각각 14일과 26일에 자진출석하면서 가담자 전원을 일망타진했다.
제주서부경찰서는 이씨 등 5명을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했다. 또 훔친 동선을 구입한 문씨도 구속했다. 그러나 훔친 동선을 구매한 박씨와 운반한 권씨의 종업원 신씨에 대해서는 불구속 수사하고 있다.
※접지케이블(동선)=접지케이블은 전신주에 설치돼 있지만 평상시에는 전류가 흐르지 않는다. 낙뢰, 누전 등으로 급격한 이상전압이 발생했을 때 전류를 땅으로 흘려보내는 역할을 한다. 절단, 파손될 경우 이상전압 영향으로 전기기기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