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도가 ‘나태(sloth)’의 죄를 물어 살해한 잡범은 도시에서 아동포르노와 마약을 퍼뜨리며 먹고살던 이였다. 무척이나 부지런하게 아동포르노와 마약을 팔고, 역시나 부지런히 악덕 변호사를 찾아다니며 도움을 받아 가석방되곤 했다. 그리고 가석방이 되자마자 또다시 부지런히 아동포르노와 마약을 사고 팔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변을 당했다. ▲ 게으름은 안분자족(安分自足)의 미덕일 수도 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존 도가 ‘나태’의 죄로 정죄한 잡범을 살해한 방식은 대단히 독특하다. 서머셋과 밀스 형사가 살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 잡범은 침대에 결박된 채 거의 미라와 같은 끔찍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당연히 시체인 줄 알았던 미라가 좀비처럼 괴성을 지르고 눈을 떠 모두를 기겁하게 만든다. 존 도는 왜 이 잡범에게 나태의 죄를 물어 처형했을까. 나태의 죄를 물으면서 그를 침대에서 꼼짝하지 못하도록 ‘강제 나태’하게 만들어 죽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태란 ‘게으름(laziness)’과는 다르다. 게으름이란 단지 할 일을 안 하고 자기
‘세븐’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마 존 도는 7가지 죄악의 정죄 대상을 ‘무작위 추출’ 방식으로 선택한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혹은 전국 단위로 죄악마다 1명씩 추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변에서 죄목마다 비슷한 대상을 1명씩 찍는 방식이다. 찍힌 사람들은 참으로 억울할 일이다. ‘이상한 놈’ 옆에 살다가 벼락 맞는 꼴이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은 문제가 없고 남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아마도 극단적인 기독교 광신자인 듯한 존 도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 명기된 인간이 범해서는 안 될 ‘7가지 죄악(seven deadly sins)’을 저지른 자를 신을 대신해 응징한다. 그러나 존 도의 정죄 방식은 석연치 않다. 식탐, 탐욕, 교만, 나태, 욕정, 분노의 죄악을 범한 자들 중에서 아무나 하나씩 걸리는 대로 처형한다. 7가지 죄악이란 어찌 보면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7가지 죄악을 저지른 자들을 응징한다는 것은 어쩌면 노아의 홍수처럼 인류를 아예 멸종시켜야 될 일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경
신의 대리인을 자임하며 인간의 7가지 죄악을 대신 정죄하는 연쇄살인마 존 도가 ‘Pride(자부심)’의 죄목으로 선택한 대상은 젊은 여자 모델이다. 이 모델은 평소 자기 외모에 대한 자부심으로 못생긴 여자들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행적으로 존 도의 레이더망에 걸린다. ‘자신의 가치, 지위, 성취’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자부심이다. ▲ 잘못된 자부심은 타인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존 도가 여자 모델을 처단하는 방식은 대단히 독특하다. 우선 이 모델의 생명이라고 할 만한 ‘반반한’ 얼굴을 난도질해 버린다. 그리고 그녀의 한 손에는 수면제 한 통을, 또 다른 한 손에는 전화기를 강력접착제로 붙여놓는다. 얼굴을 난도질당한 이 모델에게는 2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전화로 구조요청을 해 생명을 부지할 수도 있고, 아니면 수면제 한 통을 털어먹고 죽어버릴 수도 있다. 이 모델은 구조요청이 아니라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는 길을 택한다. 자부심이란 양면성을 지닌다. 자부심은 긍정적으로 보자면 자신의 선택에 대한 만족감일 수도 있고, 부정적으
대개의 영화감독들은 작품의 마지막에 극적인 ‘반전’ 장치를 마련해두곤 한다. 영화에서 반전은 이제 일반적인 형식처럼 여겨진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이야기가 마지막을 향해 갈수록 반전이 일어나길 내심 기대한다. 이렇게 반전 영화가 많아지니 이젠 웬만한 반전의 구도로는 관객의 반전 욕구에 부응하기 어렵다. ▲ 누군가에게 '부러움'의 감정을 느끼면 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세븐’에서 선보이는 반전은 역시 명장답게 극적이고 관객의 허를 찌른다. 연쇄살인마 존 도는 식탐, 나태, 교만, 욕정, 탐욕의 죄악을 저지른 자들은 차례로 살해한다. 이제 기독교 교부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학대전」에서 경고한 ‘7가지 죄악’에서 남은 것은 ‘부러움(Envy)’과 ‘분노(Wrath)’ 2가지다. 참 딱한 일이다. 인간들 거의 대부분이 무엇인가를 부러워하고, 무엇인가에 분노하면서 살아가니 경찰로서도 예방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저 초조하게
기독교의 ‘7가지 죄(seven deadly sins)’를 범한 자들을 정죄하는 연쇄살인마 존 도의 행각은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그 와중에 ‘분노(wrath)의 죄’를 지은 자에 대한 정죄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분노의 죄악을 범한 죄인으로 선발된 인물은 다름 아닌 존 도를 추적하는 밀스 형사다. 밀스에게 가해지는 형벌의 정도는 실로 가혹하다. ▲ 우리는 분노하지 않는 것을 불의한 것으로 여기는 전통이 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일벌백계식의 처벌에 걸린 자들은 참으로 운수가 사납다. 세상에 화 한번 안 내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화를 한번 냈다고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이 집행된다면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나쁜 놈 옆에 있으면 벼락 맞는 법이다. 존 도(케빈 스페이시)가 선발한 ‘7가지 죄악을 저지른 죄인’들은 각각 죄악별 최악의 죄인이 아니라, 단순히 그의 주변에서 그의 눈에 띈 사람들일 뿐이다. 밀스(브래드 피트) 형사는 서머셋(모건 프리먼) 형사와 함께 존 도의 빈 아파트를 급습한다. 존 도는 그 현장에 신문기자로 위장하고 나타나 허
동양에 아내를 집에서 내칠 수 있는 ‘칠거지악(七去之惡)’이 있었다면, 서양엔 사람을 세상에서 내칠 수 있는 ‘칠거지악’이 있다. 바로 기독교의 ‘7가지 죽을 죄(seven deadly sin): 식탐·교만·욕망·분노·욕정·나태·시기다. 둘 다 ‘일곱’이라는 수는 같지만, 동양의 칠거지악과 서양의 7가지 죽을 죄의 공통점은 ‘시기’와 ‘욕정’뿐이다. ▲ 소크라테스는 "살기 위해 먹을 것이지, 먹기 위해 살지 말라"고 말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존 도의 연쇄살인 행각 첫 희생자는 집에 틀어박혀 ‘먹기’로 일관하는 비만환자다. 존 도는 이 딱한 비만환자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스파게티를 ‘죽도록’ 먹이고, 마침내 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배가 찼을 때 배에 발길질을 해 그야말로 ‘배 터져 죽게’ 한다. 기독교가 지목한 ‘7가지 죄
‘세븐’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마 존 도(John Doe)는 여느 연쇄살인마와는 분명 다르다. 연쇄살인마들은 야구선수가 ‘연속 안타’의 기록에 도전하듯 10명, 20명, 아니 그 이상의 사람들을 살해하는 살인행각을 이어가지만, 존 도는 미리 7명의 살인을 예고하고 정확히 매일 1명씩 일주일간 처치한다. 참으로 절제되고 강렬한 연쇄살인이다. ▲ 현실에서 법과 정의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은 듯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연쇄살인마들이 대개 ‘만만한 상대’를 골라 이유 없이, 혹은 충동적 본능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반면, 존 도에게는 살인에 대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 ‘개인적인 욕망’이 아니라 대단히 ‘사회적인 대의’를 위한 것이다. 연쇄살인마를 ‘나쁜 연쇄살인마’와 ‘좋은 연쇄살인마’로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 도적에도 홍길동이나 로빈 후드(Robin Hood)가 있듯 ‘의적’으로 부를 만한 도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존 도에게는 최소한 &l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 ‘세븐’은 관객들에게 ‘죄악(sin)’와 ‘범죄(crime)’의 의미를 묻는다. 존 도(John Doe)는 기독교가 가르치는 ‘7가지 죄악(탐식·나태·시기·교만·욕정·탐욕, 분노)’을 범한 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연쇄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른다. “이 세상에서 ‘죄악’을 몰아내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 존도에게 범죄는 이런 거였다. ▲ '법망회회소이불실法網恢恢疏而不失(법이 엉성해 보여도 놓치는 것이 없다)'의 사회를 소망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7가지 ‘죄악’은 분명 ‘7가지 죽을 죄(seven deadly sin)’로 명기돼 있다. 말 그대로 ‘죽어야’ 한다. 알아서 죽어주지 않으면 누군가 나서서 죽여야 할 자들이다. 반면에 국가공권력인 형사 서머셋과 밀스에게 7
‘SE7EN’ 에 등장하는 베테랑 형사 서머셋(모건 프리먼)은 정년을 일주일 앞두고 방전 상태에 빠진다. 평생을 극악무도한 사건 현장에서 뛰어다녔지만 세상은 전혀 나아지지 않으니 허무할 따름이다. 제대 날짜만을 손꼽는 말년 병장과 같은 모습이다. 서머셋 형사는 퇴임하면 시골에 가서 농장 일이나 하며 평화롭게 말년을 보낼 꿈을 꾼다. ▲ 도시 아닌 곳에선 아이 낳아 교육시킬 수 없고, 도시에선 아이 낳아 교육시키고 싶지 않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런 서머셋 형사 곁에 새파랗게 젊은 밀스(브래드 피트) 형사가 ‘시골’에서 후임자로 온다. 밀스는 서머셋과는 정반대로 시골의 따분함이 지겨워 ‘액션’이 넘치는 대도시로 기를 쓰고 찾아온 형사다. 서머셋이 보기엔 참으로 철딱서니 없거나 ‘미친 놈’이다. 그런 그들 앞에 연쇄살인의 조짐이 보이는 사건이 터진다. 밀스는 시골 구석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사건다운 사건을 마주하고 아연 생기가 돈다. 대도시로 애써 전근 온 보람이 있다. 그러나 서장은 밀스를 내치고 사건을 서머셋에게 반강제로 배당한다
‘명장’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SE7EN(1995년)’은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범죄스릴러 영화의 전형이다. 그러나 ‘인간의 7가지 죄악’을 모티브로 삼아 다른 범죄스릴러물과는 차별화된 ‘무거움’을 전달한다. 단테의 「신곡」과 제프리 초서(Geoffery Chaucer)의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가 다루는 인간 군상의 모습과 죄악이 사건 실마리를 푸는 열쇠로 등장한다. ▲ 서머셋 형사는 정년퇴임을 7일 앞두고 끔찍한 현장의 목격자이자 증인이 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영화는 온통 7이라는 숫자로 구성된다. 연쇄살인마 존 도(케빈 스페이시)는 7일 동안 단테의 「신곡」에서 경고한 7가지 죄악인 ‘탐식(Gluttony), 탐욕(Greed), 나태(Sloth), 욕정(Lust), 교만(Pride), 시기(Envy), 분노(Wrath)’를 단죄하는 살인을 감행한다. 이 엽기적인 연쇄살인 사건이 정년퇴직을 정확히 7일 앞둔 노형사 서머셋(모건 프리먼) 앞에 떨어진다. 영화의 배경을
남북전쟁 직후 거의 새로운 통일국가 시대를 맞은 미국 사회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본래 계절의 전환기인 해빙기가 가장 위험하다. 구질서는 사라지고 신질서는 아직 정립되지 못했다. 이 혼란기를 헤쳐나가는 흑인 워렌 소령의 지혜는 가짜 신분증을 위조하는 일이다. 워렌 소령은 링컨 대통령의 편지라는 가짜 신분증을 위조한다. ▲ 눈앞에 전개되는 '사실'도 믿고 싶은 사람은 믿고, 믿기 싫은 사람은 믿지 않는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무려’ 대통령과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라는 ‘아우라’는 워렌 소령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갑옷 역할을 해준다. 물론 그가 종사하는 현상금 사냥꾼이라는 직업에도 도움이 된다. 아무리 링컨 대통령이 흑인 노예 해방의 역군이었다 해도 일국의 대통령과 일개 흑인 소령의 ‘펜팔’ 관계란 상식적이지는 않다. 흔한 말로 ‘상식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 될 만한 일이다. 워렌 소령은 자신이 링컨 대통령과 펜팔임을 주장하고, 미심쩍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링컨 대통령으로
영화 ‘헤이트풀 8’에는 흑인 현상금 사냥꾼 워렌 소령이 부적처럼 품속에 지니고 다니는 편지가 등장한다. 링컨 대통령이 그에게 보냈다는 편지다. 대통령이 육군 소령에게 보내는 공적인 편지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흑인 소령에게 ‘친구’로서 사사로운 가정사를 들려주는 사신(私信)이라니 그야말로 파격적이고 특별하다. ▲ 링컨은 미국 '연방'을 지켜낸 신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족이지만, 흑인노예 해방의 아버지쯤으로 알려진 링컨 대통령은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흑인들에게 그리 우호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편견을 연설을 통해 가감 없이 드러냈던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참혹한 남북전쟁 와중에 전쟁이 잠시라도 소강 국면에 접어들면 그 ‘짬’을 이용해 잠깐 소홀했던 미국 인디언 소탕 작전을 열성적으로 수행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결코 ‘유색인종’들의 친구는 아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현상금 사냥꾼인 흑인 워렌 소령은 자신이 링컨 대통령과 사사로운 집안 얘기까지 나눌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