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 눈 내리는 뉴욕의 도시 외곽길을 가족을 태우고 운전하던 애나 폭스(에이미 아담스)는 잠시 한눈을 팔다가 차가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를 겪는다. 자신은 겨우 살아났지만 남편과 아들은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만다. 이후 애나는 죄책감에 광장공포증과 우울증이 생겼고, 집밖을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채, 거실도 늘 어둡게 하고 산다. 소아정신과 의사이면서 애나 자신도 가끔씩 찾아오는 정신과 의사로부터 상담을 받는다. ‘우먼 인 윈도(The Woman In The Window, 2020)’ 이야기이다. 애나는 10개월 넘게 집에 틀어박혀 있다 보니 나쁜 버릇이 생겼다. 주변 집들을 훔쳐보는 것이다. 길 건너 집으로 러셀 가족이 이사를 오고, 그 집의 부인 제인 러셀(줄리안 무어)과 그의 아들 이든이 차례로 자신을 방문하면서 친해지게 되지만, 남편인 엘리스테어 러셀(게리 올드만)은 왠지 마음에 안 든다. 일어나지 않은 살인사건을 목격한 여인 그러던 어느 날 찾아왔던 제인이 배에 칼을 맞고 죽는 장면을 창문 너머로 보게 되어 신고하지만, 형사와 함께 찾아왔을 때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살인범은 남편 엘리스테어일까, 아니면 지하에 세 들어 사는 데이
대규모 장례식이 진행되는 광장에서 군중들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매드 위민스 볼(The mad women's ball [Le Ball des Folles], 2021)’ 영화는 시작한다. 빅토르 위고의 장례식이었고, 나라에서 국장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으니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귀족 집안의 큰 딸인 외제니 클레리(루 드 라주)는 영혼들과 대화를 하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죽은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40년 전 잃어버린 할머니의 약혼 선물인 목걸이를 찾게 해주질 않나..... 외제니의 자유로움을 억압하려는 아버지 몰래 하층민들이 다니는 몽마르뜨르(거기가 하층민들이 다니는 곳?) 어느 찻집에 가서 책을 읽다가 에르네스트라는 시인을 만나서 ‘영혼의 서’라는 시집 한 권을 얻는다. “내 육체를 본 게 아니라면 당신은 내 영혼을 본 거예요” 에르네스트의 이 한 마디에 체한 가슴이 뚫린 듯, 한 대 맞은 듯한 외제니. 그렇지만 외제니는 미쳤다는 판단 아래 파리의 ‘살페트리에르’ 병원으로 강제로 끌려가게 된다. 거기에서 루이즈라는 환자의 옆 침대에 있게 되며 둘은 친해진다. 루이즈는 히스테리라는 병을 앓으며 자주 발작을 일으켜서 병원으로 오게 된 여인이다. 이 병원에
영화 초반에 케네디 대통령의 사진이 벽에 걸려있는 것으로 봐서 영화는 베트남 전쟁과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저격당하던 시점인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것 같다. 이 영화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비슷한 시기와 비슷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이야기가 정신병원 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수용되어져 있는 사람들에 대한 몰이해와 반인권..... 여기에서는 ‘하이드로테라피 치료(수치료)’라는 요법도 시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을 발가벗기고, 6~8시간 동안 얼음 욕조에 가두는 무자비한 시술로, 쉽게 말하면 정신 차리게 하는 방법이다. ‘처음 만나는 자유(Girl, Interrupted, 1999)’ 영화의 이야기이다. 붙들려오게 된 정신병원 작가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던 18살 수잔나 케이슨(위노나 라이더)은 학교에서나, 밖에서나 이해 못할 행동들을 해서 어른들을 힘들게 한다. 보드카 한 병에 아스피린 한 통을 탈탈 털어먹고 나서 잠들었는데, 자살을 하려 했다고 클레이무어라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우울증과 자살 시도로 들어왔지만, 의사와 상담하면서는 ‘경계성 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라는 진단을 받는다. 일
맥 머피(잭 니콜슨)는 도박, 폭행, 미성년자 성추행으로 교도소로 가게 되어 있으나 그보다는 정신병원에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정신질환이 있는 것처럼 꾸민다. 정신 감정이 끝날 때까지 임시로 있는 것으로 하고 들어온 병원은 무료하기 짝이 없다. 말을 걸어도 대꾸 도 안 하고, 재미있게 지내려고 해도 도저히 상대할만한 사람을 못 찾겠다. 모두들 시키는 대로만 하고, 정해진 일과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고 있는 이곳. 앞으로 긴 시간을 이렇게 지내긴 싫은데, 어떻게 하지? 우리에게는 ‘아마데우스(Amadeus, 1984)’, ‘래리 플린트(The People vs. Larry Flynt, 1996)’, ‘고야의 유령(Goya's Ghosts, 2006)’으로 알려진 밀로스 포만 감독이 1975년에 연출한 작품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정신병동이라는 공간에서 그곳의 사람들과 맥 머피, 그리고 책임간호사 간에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정신병원의 변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 시기의 정신병동 모습은 어떨까, 관심 가지면서 볼만 하다. 그 외 통제 안 되는 환자
지난 이야기에 이어서 이번에도 청각장애를 그린 영화를 소개한다. 런던에 사는 포르투갈 이민자 가족인 벨라(루치아 모니즈)네는 가난하고 먹을 게 없어서 편의점에서 빵을 훔쳐 먹어야 하는 날도 있지만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 오늘은 사회복지국에서 아이들이 잘 있는지 살피러 방문하는 날이다. 남편은 실직한 상태라 둘째딸 루(메이지 슬라이)의 보청기가 고장 났어도 고칠 돈도 없다. 학교에 보내고 데리고 올 때 선생님이 루의 등에 멍이 있다고 얘기를 한다. 아동 학대가 아닌가, 의심을 하는 선생님의 표정. 결국 벨라네 집에 경찰과 함께 들이닥친 사회복지국 사람들은 아이들 학대 정황이 있다며 긴급보호명령을 앞세워 아이들 셋을 데려가 버린다. '리슨'(Listen, 2020)이라는 영화의 시작 부분이다. 이민자들은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얻지 않으면 취업이나 활동에 제약을 받지만, 임시 거주는 가능하고 소아들은 학교나 병원의 혜택을 받게 된다.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관리는 사회복지국에서 담당한다. 영화에서는 학대 정황 때문에 아이들을 키울 자격이 없다고 데려간 후 입양 절차를 밟게 되지만, 둘째 루는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데려가는 집이 없다. 벨라와 남편은 겨우 아이
상영 시간 전부를 통틀어 대사도 얼마 없고 아주 조용한 영화가 있다. 몇 분 동안 눈을 감고 있으면 영상이 켜져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말없이 흐르는 영화..... 바로 ‘나는 보리(Bori, 2018)’이다. 11살 보리(김아송)는 강원도 주문진의 어촌 마을에 산다. 남들처럼 웃기도 잘하고 친구들과도 즐겁게 지내는 평범한 아이지만 한 가지 고민이 있다. 집에서 다른 가족들과 격 없이 소통하고 어울리고 싶은 것. 그렇다고 보리가 가족들로부터 외면 받거나 관심을 못 받는 건 아니다. 자기 빼고 엄마, 아빠, 남동생 모두 청력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자기만 말하고 들을 수 있고, 그들이 수어로 대화를 하며 즐거워할 때면 자기는 소외 받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학교 가는 길이면 중간에 있는 사당 앞에서 매일 소원을 빈다. ‘나도 귀를 멀게 해서 엄마, 아빠, 동생과 같이 어울리게 해주세요.’ 청각장애인 가족 아빠와 남동생 정우는 선천성 농아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엄마는 어릴 때 심하게 열병을 앓은 후 다음 날부터 청력을 잃었다고 한다. 아마 홍역을 앓았던 것이 아닌가 짐작할 수 있다. 아빠는 동네 사람들이 말 못하고, 소리도 못듣는 자기를 보고 손가락질해서 조용히
시각장애를 가지면서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한 영화가 있다.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 1992)’가 그런 영화다. 뉴잉글랜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찰리 심스(크리스 오도넬)는 집이 가난해서 학교 도서관 사서 일을 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에 고향에 가기 위해 긴 부활절 연휴 동안 돈을 모을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다. 마침 적절한 보수를 주는 임시 일자리를 찾기는 했는데, 완고한데다가 입이 거친 퇴역 중령 프랭크 슬레이드(알 파치노)를 맡아주는 것이다. 술에 취해서 수류탄 핀을 뽑았는데 터지면서 실명했다고 한다. 그는 자기를 돌보는 조카의 가족 여행을 거부하고 혼자 집에 있겠다고 해서 조카가 며칠 돌봄을 부탁했다. 찰리에게는 첫 만남부터 영 마음에 안 든다. “좀 더 가까이 다가와. 너를 자세히 보고 싶으니까.” 보이지도 않으면서 슬슬 떠보질 않나, 선생님(Sir)이란 말 싫어하니 중령님이라고 부르라고 겁을 준다. 프랭크는 조카 가족이 떠나자마자 부리나케 짐을 싸서는 가기 싫어하는 찰리를 억지로 데리고 뉴욕행 비행기를 탄다. 미리 준비라도 했다는 듯 전광석화로 떠난다. “여성의 머리칼은 모든 것을 말해주지. 또 입술 닿는 기분은 사막을
2022년 늦가을, 인플루엔자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2020년, 2021년은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할 때 공포에 떠는 전세계 보건의료 책임자들은 '트윈데믹(Twindemic)'이 우려된다며 사람들에게 주의를 강조했다. 즉 쌍둥이라는 Twin에 어려운 의학 용어인 팬데믹(Pandemic)을 합쳐서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가 동시에 유행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두 해 가을과 겨울에 인플루엔자는 유행하지 않았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들이었을까? 인플루엔자 이야기 인플루엔자는 우리 말로 독감(毒感)이라고 부른다. 한자말로 보면 독한 감기라고 보여질 텐데 사실은 전혀 다른 놈들이다. 바이러스들이지만 전혀 다른 집안이다. 감기는 인두염, 후두염 등 상기도 부근에 감염을 일으키면서 증상을 일으키는 여러 종류의 바이러스들이 원인이다. 지금 유행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감기를 일으키고, 전문가에 따라서는 200여종의 바이러스가 감기를 일으킨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인플루엔자는 같은 증상을 나타내지만 그 바이러스들과 급을 달리 한다. 걸리면 감기라고 하지 않고 인플루엔자, 즉 독감이라고 따로 부르는 이유는 감기가 고양이라면 인플루엔자는 호랑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공포와 불안감을 나타내는 게 전부가 아니라 사랑의 시작이라고 말해주는 영화가 있다. 31분짜리 짧은 상영 시간이지만 완성도와 감동이 100% 충전된, 허진호 감독이 만든 독립영화 ‘두 개의 빛: 릴루미노(Two Lights: Relúmĭno, 2017)’다. 제목에서 말하는 두 개의 빛은 감독이 의도한 것도 있겠지만, 관람자 각자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어차피 예술 작품의 주제와 감동은 감상하는 자의 것이니까.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잘 쳤으나 점점 시력을 잃어 ‘저시력장애’를 가지게 된 서인수(박형식)는 현재 피아노 조율사로 일하는 청년이다. 그와 달리 장난기 넘치고 밝은 성격의 안수영(한지민)은 냄새로 일하는 조향사(아로마 테라피스트)다. 7살 때부터 안 보이기 시작해서 현재 한쪽 눈은 아예 안 보이고, 다른 쪽은 안개 낀 것처럼 뿌옇게 보일 뿐이다. 수영이 사진동호회에서 함께 출사(사진 찍으러 나가는 일)를 다니면서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해도 인수가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점점 잃어 가는 시력 때문에 걱정과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수는 동호회에서 만난 시각장애인들이 한결같이 밝은 척하는 것도 못마땅하다. 안 보이는
지난 회차에 이어 시각 관련 영화 세 편을 준비했다. 모두 독특한 구성으로 만들어졌으며, 시사하는 바가 있는 영화, 스릴러, 액션 각각 골라보았다. 장애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사는 곳 2008년 제작되고 산드라 블럭이 주연한 ‘버드 박스(Bird box)’는 시력을 잃는 것으로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무언가를 보게 되면 자살충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일부러 눈을 가려서 살아야 하는 상황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이 또한 엄청난 전염력을 지녀서 전 세계가 심각할 지경에 이르고, 말로리(산드라 블록)는 두 아이의 눈을 가린 채 보트를 타고 강물을 따라 도망을 친다. 이틀을 꼬박 극한의 공포와 위험을 겪으며 도착한 곳은 시각장애인 학교. 눈이 안 보이는 장애인들이 대부분이고, 그들은 무엇을 볼 염려가 없기 때문에 안전하다. 두 아이와 말로리는 평온을 찾고 시각장애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게 된다. 재미있는 설정이다. 장애인이 대부분인 사회에서는 주류가 그들이고, 비장애인들은 이방인이 되거나 비주류로 살게 되지만, 반대의 상황에서 비장애인이 안전하고 도움을 받으며 산다는 것..... 버드 박스는 새장을 뜻하는데, 제목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면 좋다. 어둠 속에서 보게 되
한 일본인이 미국의 도로 한복판에서 파란 신호등이 켜져도 차를 운전하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차문을 열게 하고 들여다보니 그 사람은 갑자기 눈앞이 하얘지면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부르짖는다. 겨우 안과를 찾아가서 진료를 받는다. 의사(마크 러팔로)는 혈액검사나 눈 검사를 모두 해봐도 원인을 모르겠다고 한다. 다만 신경 이상으로 인한 실인증(Agnosia)이라고 추측할 뿐. 그 사람을 진료한 안과 의사도, 처음 일본인과 접촉한 사람들도 하나둘씩 같은 증상으로 시야가 '우윳빛'으로 하얘지면서 눈이 멀어져간다. 전염병처럼 번지는 ‘백색 질병(White diseases)’은 삽시간에 도시 전체를 뒤덮어버리고, 정부는 무기력하게 대응하다 강제 수용을 결정한다. 환자들을 잡아다가 과거 병동으로 쓰던 건물을 수용소로 쓰면서 가두고는 방치해버린다.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딱히 어떤 조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무장 군인들로 하여금 봉쇄를 하고 통제권을 벗어나면 사살하라는 명령까지 내린다. 수용된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혼자 다닐 수 없어서 앞 사람 어깨에 손을 얹고 다녀야만 한다. 이런 모습은 1, 2차 세계대전 당시 포탄 파편이나 화학전 때문에 눈을
‘타투(tattoo)’는 인류의 아주 오래된 문화이다. 과거에는 싸움에서 상대방을 겁주려고 새겨놓은 것부터 죄를 지은 사람에게 징표로 하는 등 다소 제한해서 이용했다. 조직폭력배나 질이 안 좋은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많이 인식하기 때문에 ‘문신(文身)’이라는 말 보다는 ‘타투'로 쓰자는 주장도 있다. 요즘은 개성의 표현으로 누구나 할 정도로 대중화되어서 연인끼리 짝으로 하기도 하고, 팔뚝이나 배, 등에 귀엽게 표현하기도 한다. 타투라는 말은 태평양의 섬나라 사모아에서 쓰던 언어를 그대로 차용해서 영어권에서 사용하고 있다. 의학에서 문제시 되는 것은 타투를 할 때 오염이나 감염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과 지울 때 몸에 상처를 낼 수 있고, 그것 또한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여러 나라에서 의료법 등으로 제약을 가했고, 사람들은 몰래 타투를 새기기도 하였다. 타투는 과연 의료 행위일까? 한국에서 타투 관련 활동은 의사 면허 소지자만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의사들 중 과연 몇 명이 ‘타투잉(tattooing)’을 하고 있을까? 위생이나 감염의 문제는 의료법이 아닌 관련법으로도 얼마든지 주의할 수 있는데..... 얼마 전 일본에서 타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