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골목상권은 경기 침체와 관광 의존 구조, 낮은 창업 생존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 소비자들은 '가치소비'와 '경험'을 중시하며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제주도는 민간 전문기업과 손잡고 메뉴 개발, 공간 디자인, 위생·시설 개선, 온라인 홍보까지 지원하는 '로컬브랜드 활성화 지원사업'을 본격화했다. 그러나 기존 사업과의 중복성, 예산 투입 대비 지속 가능성, 관광산업과의 연계 효과 등은 여전히 검증이 필요하다. <제이누리>는 로컬브랜딩이 제주의 상권·관광·문화 전반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앞으로 어떤 과제를 안고 있는지 5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 지난해 제주청년센터 청년 재능나눔프로젝트 청년교생 강의 '청년들의 달콤한실험, 수제청 워크숍'에서 도내 청년들이 수제청을 만들고 있다. [출처=제주청년센터]](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938/art_17578957176206_61f795.jpg?iqs=0.9113873388882117)
제주 로컬브랜딩의 또 다른 축은 청년 창업가들이다. 단순히 가게 문을 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역 특산품과 문화자원을 상품과 서비스에 녹여내는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청년들은 감귤·청귤·차·해녀 문화 등 제주만의 자원을 메뉴와 공간에 담아낸다. '제주다움'을 소비자 경험으로 전환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히 한 끼 음식을 파는 차원을 넘어선다. 관광객에게는 제주의 스토리를 체험하는 색다른 콘텐츠가 되고, 도민에게는 익숙한 자원을 새롭게 즐기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동시에 청년 창업가들은 전통시장이나 원도심 등 침체된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외식업계를 넘어 지역 경제와 문화 전반에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
관광·체험형 콘텐츠와의 결합이 활발해지면서 청년 창업은 이제 단순한 자영업의 범주를 벗어나 제주의 정체성을 재해석하는 실험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는 기존 상권의 체질을 바꾸고, 장기적으로 제주 외식업계의 흐름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제9기 청년참여기구 일자리2분과 분과원들이 로컬브랜드에 대한 주제로 회의 중이다. [일자리2분과 분과원 이태근 제공]](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938/art_17578939219284_bd583a.jpg?qs=9074?iqs=0.24178249028480914)
청년 창업가들이 요구하는 지원 방향은 단순한 자금 지원이 아니다. 창업 자금은 출발점일 뿐이고, 점포를 지속 가능하게 운영하려면 브랜드 정체성과 소비자에게 각인되는 힘이 필요하다.
제9기 청년참여기구 일자리2분과는 현재 창업 정책이 지나치게 분산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자리 2분과원 홍주아·이태근·김민아는 "특산물 중심으로만 접근하면 업종과 메뉴가 제한되고, 일시적 성과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동문시장 청년몰에 입점했던 한 과일가게 사례처럼 초기에 주목을 받다가도 1~2년 만에 문을 닫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각 부처와 기관이 따로 운영하는 대학 LINC·라이즈 사업, 도정 로컬브랜딩 지원 사업 등이 중구난방식으로 흩어져 있다"며 "청년 창업을 총괄하는 플랫폼을 마련해 사업 간 중복과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성과만 강조되지만, 실패 사례를 기록해 교훈으로 삼는 '창업백서' 같은 체계도 필요하다"며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창업에 도전하고 이후에도 지속 가능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정책 설계가 달라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주시 삼도2동의 도토리키친이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938/art_17578939174907_c6fb52.jpg?iqs=0.5289681656148386)
제주 청년 창업가들은 자신들만의 색깔을 찾기 위해 지역 자원을 적극 활용한다. 감귤을 활용한 디저트 카페, 해녀 문화를 테마로 한 해산물 바, 원도심의 역사를 담은 다이닝 바까지, 이들의 시도는 단순한 음식 판매를 넘어 제주다움을 담아낸 공간 실험으로 확장된다.
대표 사례로 꼽히는 제주시 삼도2동의 도토리키친은 시그니처 메뉴인 청귤소바로 제주 로컬브랜딩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이동일 도토리키친 대표는 "처음에는 이름부터 생소해 손님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지만 그 독창성이 오히려 브랜드를 알리는 힘이 됐다"며 "지역 자원을 활용한 메뉴 개발은 시간이 걸려도 결국 진정성을 알아봐 주는 소비자가 있다는 확신을 줬다"고 말했다.
그는 청귤을 1년 내내 사용할 수 있도록 대형 냉동창고를 마련하고, 소스·잼 등 가공품을 직접 개발하며 브랜드 체질을 강화해왔다.
이 대표는 "단순히 가게에서 한 그릇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집에서도 같은 맛을 재현할 수 있도록 상품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이런 노력이 브랜드의 지속성과 확장성을 담보한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동일 도토리 키친 대표가 직접 개발해 말린 청귤이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938/art_17578939072212_3d5c43.jpg?iqs=0.75827359656068)
도토리키친의 청귤소바를 맛본 소비자들은 "제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메뉴"라며 "상큼한 청귤과 깊은 소바 육수의 조화가 여행의 한 장면처럼 기억에 남는다"고 평가했다.
사이드 메뉴인 톳유부초밥과 닭껍질 교자에 대해서는 "익숙한 음식 같으면서도 제주다운 개성이 살아있다"며 '제주 식재료의 재발견'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 대표는 "많은 청년 창업가들이 화려한 인테리어나 SNS 홍보에 치중하다 본질인 맛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결국 다시 찾게 만드는 건 꾸준히 지켜온 맛과 합리적인 가격"이라며 "청년 창업이 제주에 뿌리내리려면 보여주기식보다 본질에 충실한 브랜드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동문공설시장 청년몰을 직접 찾아가 봤다. 공간은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지만 현장은 여전히 활기를 찾지 못한 모습이었다.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길목은 한산했고, 입구에는 청년몰임을 알릴 만한 뚜렷한 표식조차 없어 "여기에 청년몰이 있느냐"는 질문이 나올 법했다.
현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청년몰이 문을 연 지 벌써 수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모르는 사람이 많다", "들어오는 입구에 눈에 띄는 간판이나 안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부족하다 보니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는 불만이 이어졌다.
일부 점포는 여전히 빈칸으로 남아 있었고, 공모를 해도 입점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 상인은 "시설은 잘 갖춰졌지만 결국 중요한 건 손님이다.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행정에서 홍보와 마케팅 지원을 더 적극적으로 해주길 바란다"고 토로했다.
직접 현장을 둘러보며 '공간은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공간'이라는 상인들의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제주 동문시장 내 위치한 청년몰 입구의 전경이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938/art_17578953614474_303df0.jpg?iqs=0.2889706858195842)
지난해까지 제주시에서 카페를 운영했던 청년 창업가 강모씨(33)는 실패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는 "막연히 카페만 성공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세무, 예산, 홍보 등 현실적 장벽이 너무 많았다"며 "3년여 준비 끝에 창업했지만 결국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원금만으로는 부족하다. 창업 이후 이어질 운영과 마케팅 지원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이 경험은 성공 사례뿐 아니라 실패 사례를 제도적으로 기록하고, 이후 창업자들에게 교훈이 될 수 있도록 공유해야 한다는 과제를 다시금 보여준다.
![제주시 삼도2동에 위치한 도토리키친의 청귤소바 맛있게 먹는 법 홍보 사진이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938/art_17578954674669_b90e85.jpg?iqs=0.6896471429584158)
청년 창업의 또 다른 흐름은 관광·체험형 콘텐츠와의 결합이다. 감귤청 만들기, 메밀 요리 쿠킹클래스, 해녀 도구 체험 등은 단순 식당 운영을 넘어 관광객의 참여와 경험을 확장한다.
도내 관광업계 관계자는 "청년 창업 매장은 기존 관광 동선과 차별화되는 작은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며 "SNS 확산력이 강해 도민뿐 아니라 외부 관광객 유입에도 효과적"이라고 평가했다.
청년 창업은 '제주다움'을 상품과 서비스에 녹여내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브랜딩 역량 부족, 단기적 지원 구조, 홍보 마케팅 공백은 여전히 장벽이다. 전문가들은 창업 단계별 맞춤형 컨설팅, 공동 마케팅 플랫폼, 청년 창업 네트워크 강화, 지역 자원 이해를 높일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지역의 청년 로컬브랜딩 성공 모델과 비교한 SWOT 분석을 통해 제주만의 강점과 취약점을 진단하고 개선책을 찾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결국 청년 창업과 로컬 콘텐츠의 결합은 제주의 미래를 여는 중요한 실험이다. 메뉴와 공간 속에 녹아든 지역의 이야기는 소비자 경험을 확장시키고, 지역경제와 관광산업을 동시에 견인한다. 중요한 것은 이 실험이 단순히 몇몇 가게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고, 실패 사례까지 흡수해 지속 가능한 창업 생태계로 이어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다.
다음 편에서는 로컬브랜딩이 원도심 재생과 관광 콘텐츠 활성화에 어떤 파급 효과를 가져오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성과와 한계를 짚어본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이 기획은 제주특별자치도의 취재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