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체제 폭력에 침묵당한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해온 벨라루스 출신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제6회 제주4·3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제주4·3평화재단 제공]](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314/art_17434118205886_3bc8bd.jpg)
전쟁과 체제 폭력에 침묵당한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해온 벨라루스 출신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xievich)가 제6회 제주4·3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제주4·3평화재단 산하 제주4·3평화상위원회는 31일 "알렉시예비치 작가를 올해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고 본인의 수락을 받아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알렉시예비치는 제2차 세계대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체르노빌 원전 사고, 소련 붕괴 등 20세기 동유럽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고통받는 개인의 삶을 문학적으로 기록해온 작가다. 그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인 '목소리 소설(novel of voices)'을 통해 주변화된 여성과 아동, 민간인의 증언을 채록해 전쟁과 폭력의 실상을 고발해왔다.
대표작인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남성 중심의 전쟁 서사에서 배제돼온 여성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전쟁 경험에 대한 기존 인식을 뒤집고, 여성 고유의 시선과 언어를 통해 명예 회복과 서사 전환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이러한 작업으로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스웨덴 한림원은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보여주는 다성적(多聲的) 작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수상의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알렉시예비치의 문학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전쟁과 국가폭력이 개인의 삶에 남긴 상흔을 드러냄으로써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환기시키는 데 집중돼 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다룬 '체르노빌의 목소리',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폭력을 고발한 '아연 소년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자살을 시도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죽음에 매혹되다' 등은 모두 체제 이면의 비극을 조명한 대표작이다.
특히 '세컨드핸드 타임'에서는 소련 붕괴 이후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균열되는 인간 존엄성과 개인의 혼란을 심도 있게 다뤘다. 이러한 글쓰기 방식은 제주4·3의 구술 채록 작업과도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이번 수상이 갖는 상징성은 크다.
![왼쪽부터 ‘아연 소년들(1991)’,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1985)’, ‘마지막 목격자들(1985)’ [제주4·3평화재단 제공]](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414/art_17434658112109_7ac0a9.jpg)
실제로 제주4·3평화상위원회는 "알렉시예비치의 작업은 침묵당한 이들의 기억을 복원하고, 구술사와 기록문학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지켜온 활동으로 평가받는다"며 "그의 활동은 제주4·3이 추구해온 평화·인권·민주주의 정신과 깊이 연결돼 있다"고 밝혔다.
알렉시예비치는 문학 활동뿐 아니라 사회 참여에도 적극적이다. 2020년 벨라루스 민주화 시위 당시에는 야권의 ‘조정위원회’ 임원으로 참여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정권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제주4·3평화재단은 다음 달 29일 오후 5시 매종글래드 제주 컨벤션홀에서 시상식을 열 예정이다. 시상식에 앞서 오후 4시에는 수상자와의 합동 기자회견도 열린다.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함께 미화 5만 달러(한화 약 73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재단은 "이번 수상을 계기로 제주4·3의 가치와 제주4·3평화상의 의미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길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이 상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평화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