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국 개벽신화의 본산 삼성혈을 유지·관리해온 재단이 존폐의 기로에 섰다.
제주 정체성의 상징인 삼성혈을 관리해온 고·양·부 삼성사재단이 막대한 세금 부담으로 백척간두에 선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비영리사업자로 분류된 재단이 막대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내야 할 처지에 몰렸다.
17일 고·양·부 삼성사재단에 따르면 올해 재단에 부과될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는 46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36억원이었던 세금이 올해 46억원으로 증가했고, 내년에는 6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재단 측은 "조선시대 국가가 내려준 위토(位土)로 유지해 온 삼성혈의 보존과 운영이 위기에 처했다"며 우려를 표했다.
삼성혈은 탐라개벽 신화를 간직한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34호다. 고씨·양씨·부씨 시조의 탄강지를 보존하며 춘·추대제와 같은 제례를 봉행하는 등 제주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곳이다.
재단은 입장료 수익(약 2억원)과 토지 임대료(약 10억원)로 운영비를 충당해왔다. 그러나 세금 부담이 수익을 훨씬 초과, 사실상 재단 운영은 붕괴 상황에 놓였다.
재단은 1981년부터 매해 대학 신입생과 재학생을 대상으로 주던 재단 장학금마저 축소하는 등 위기 타개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무런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2013년 재단이 종중(宗中)이 아닌 비영리사업자로 분류되면서 시작됐다. 종중 소유 토지는 지방세법상 분리과세 대상(세율 0.07%)으로 분류되지만 재단은 일반 비영리사업자로 분류돼 0.2%에서 0.5%의 세율이 적용되는 종합합산과세 대상으로 변경됐다.
재단은 종중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2019년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대법원은 "재단이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종중이 아니다"며 재산도 고씨·양씨·부씨 개별 소유가 아닌 재단 소유로 등록돼 있다는 점을 들어 종중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2020년 개정된 지방세법 시행령은 교육사업에 직접 사용되지 않는 비영리사업자 토지를 분리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재단 소유 토지가 단계적으로 종합합산과세 대상으로 편입됐다. 분리과세가 완전히 사라지는 내년에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합쳐 연간 약 6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재단은 세금을 감당하기 위해 지난해 일부 토지를 매각했으나 "삼성혈의 보존을 위해 위토를 지속적으로 처분할 수는 없다"며 한계를 토로했다.
재단은 제주특별법에 과세 특례 조항을 추가해줄 것을 정부와 국회에 요청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삼성혈은 제주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상징하는 유산"이라며 "과도한 세금 부담으로 재단이 존립 위기에 처하면 제주 정체성에도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송재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재임시절인 2023년 11월 "삼성혈과 같은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비영리단체에 지나친 과세 부담을 지우는 것은 문제"라며 재단이 분리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주특별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이런 내용의 특별법 개정은 오리무중인 상태다.
고태민 국민의힘 의원(애월읍갑)은 "삼성혈은 제주의 정체성과 뿌리를 지키는 중요한 유산"이라며 "정부가 지방세법 개정을 통해 재단이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석근 고·양·부삼성사재단 이사장은 "당면한 재단 현안 문제 해결 및 제주 개벽신화와 탐라 문화 선양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 고·양·부 삼성사재단 = 제주의 시조신이 땅에서 솟아났다는 신화의 무대인 삼성혈(사적 134호)의 유지·관리를 목적으로 설립됐다.
한국기록원의 삼성혈 인증서에는 ‘제주시 이도1동 1313번지의 삼성혈(三姓穴)은 BC2373년에 양(梁)·고(高)·부(夫)의 삼을나 삼신인(三神人)이 탄생(誕生)한 삼개(三個)의 구멍(穴)’으로 명시돼 있다.
삼성사재단의 원래 명칭은 '삼성시조(始祖)제사재단'이었다. 1921년 고·양·부 3성의 대표가 '삼성시조제사재단'이라는 법인체를 만들어, 그해 인가를 받았다. 1927년 특별 연고삼림(산림을 옛날부터 이용한 주민에게 넘겨주기 위해 1926년 제정공포)으로 삼성시조제사재단에서 제주도의 삼성사를 관리하게 됐다. 1962년 12월 10일 삼성시조제사재단에서 현재의 '고·양·부 삼성사재단'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매년 3차에 걸쳐 진행되는 제사로는 4월 10일 춘기대제, 10월 10일 추기대제, 12월 10일 건시대제가 있다. 재단은 삼성혈을 관리하고 삼성혈 인근에 삼성회관을 건립, 회의실과 삼성의 도종친회 사무실로 이용하고 있다. 1981년부터 삼성(고·양·부) 후손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