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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의 프리즘] 尹 국가위기 언급하며 계엄 발령 ... 난데없는 계엄에 국회 지켜낸 시민
계엄에서 출발한 후폭풍 한국 덮쳐 ... S&P, 한국 대외신인도 기반 부담
한국경제 순항하기 어려운 상황서 ... 계엄이란 비상식적 결단 내린 尹
또다시 탄핵정국으로 돌입할 수도 ... 이럴 때일수록 공직자 제몫 해야

 

사람들이 ‘카메라가 장착된 작은 컴퓨터’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요즘은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는 시대다. 대한민국에서 45년 만에 난데없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3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도 수많은 시민기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계엄령이 선포된 뒤 국회로 진입하려던 군 버스를 막아섰다. 국회의 계엄 해제요구 결의안이 가결된 뒤 군인들이 철수할 때는 “도와주자”며 길을 터줬다. 정부는 무장 군경이 출동하는 상황에서도 긴급재난문자 한통 보내지 않았다. 대신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긴급 담화 내용을 SNS와 전화로 알렸다. 

‘인간 바리케이드’로 국회 봉쇄를 막은 시민들은 계엄군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해 실시간으로 전파했다. 대한민국 국민과 세계인들이 이를 지켜보는 상황에서 군이 무력 대응을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비상사태가 큰 희생 없이 마무리된 배경에는 명분 없는 계엄령을 몸으로 거부한 시민들이 있었다. 

윤 대통령이 주장한 ‘국가위기 상황’에 국민은 동의하지 않았다. 무장한 특수부대원들이 국회에 난입하는 상황이 생중계되면서 실시간으로 여론이 형성됐다. 이처럼 깨어 있는 시민이 사회 이슈와 관련된 현장에서 전파하는 스트리트 저널리즘은 공공 이익을 증진하고 참여 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사회자본’이다. 

12·3 비상계엄 선포는 총리 등 국무위원 다수가 반대했음에도 윤 대통령이 강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민생토론회를 주재하고 전통시장을 찾아 상인들에게 “저 믿으시죠?” 하고선 이튿날 계엄을 선포하고 군대를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보냈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환율이 치솟고 코인 가격이 급락했다. 주가도 속락했다. 국제사회의 한국 사태에 대한 평가도 냉혹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5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비상계엄이 몇 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한국 정부의 신용도 기반에 대한 부담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경제호(號)는 순항하기 어려운 여건이었다. 내수가 부진한 데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과 중국의 밀어내기 저가 수출 공세, 미·중 갈등 격화 등 대외 파고가 높고 불확실성이 컸다. 한국은행이 지난 11월 28일 시장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내년 경제성장률을 1.9%로 하향 조정한 배경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 8곳이 제시한 내년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1.8%로 더 낮다. 미국계 IB 씨티의 경우 1.6%로 예상할 정도다. 이런 판에 비상계엄 선포 소동과 대통령 탄핵 논란 등 메가톤급 정치 리스크가 발발했으니 정부 정책 집행이 차질을 빚고 경제심리는 더욱 얼어붙을 상황에 처했다.

12·3 계엄 소동 이후 한국의 외교력과 국가 이미지, 국민의 자존감도 적잖게 손상됐다. 5~7일 한국을 공식 방문할 예정이던 스웨덴 총리가 방한을 무기한 연기했다. 뉴질랜드는 한국을 여행주의국으로 분류했다. 중국·필리핀·말레이시아 정부도 한국에 거주하는 자국 국민에게 외출 자제 등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동맹국 미국의 반응도 뜨악했다.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은 “윤 대통령이 심한 오판을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몇달간 한국은 도전적인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한국 민주주의에 입힌 상처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특검 요구와 탄핵 추진, 예산 삭감 등을 ‘헌정 질서를 짓밟고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서 내란을 획책하는 반국가행위’라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러나 특검법에 대해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탄핵 받았던 행정안전부장관은 살아 돌아왔고,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은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중이다.

예산 삭감도 다수 야당의 횡포라고 비판받을 소지는 있어도 불법은 아니다. 예산 삭감폭이 예년보다 크긴 하지만 국회의장이 예산안 본회의 상정을 10일까지 보류한 만큼 정부 여당과 야당이 머리를 맞대고 협상할 시간과 여지는 있었다.
 


대통령실 및 정부 여당이 야당과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야 할 일을 계엄령이나 군의 힘으로 해결하려 들지 않았는지 자문할 일이다. 게다가 계엄 소동으로 내각과 대통령실 참모들이 일괄 사의를 표명하면서 그 자리를 채울 사람을 찾기도 힘들어졌다.

어려운 때일수록 공직사회와 정당, 정치인들은 법과 제도를 지키고, 각자 위치에서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럴싸하게 꾸민, 듣고 싶은 말만 추종하지 말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대화해야 한다.

12·3 계엄 소동 이튿날 증시가 ‘피의 수요일’로 불릴 정도로 폭락하지 않은 것은 한은이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밝히는 등 시장 신뢰를 충전하는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어렵게 쌓아올린 한국 경제가 정치적 갈등 장기화로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향후 한국 경제와 민생은 정치 리스크를 줄이는 데에 달렸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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