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읍에 소재한 구엄초등학교가 6월 1일 자로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1930년대에 일제는 공립학교 설립 계획을 추진하여 1923년 4월1일 개교한 사립 일신학교 학생과 모든 문건 및 자금을 수탈하여 구엄리에 학교 부지와 교실을 마련하여 1939년 5월 24일 전라남도 도지사로부터 인가를 받아 같은 해 6월 1일 6년제 구엄공립심상소학교로 통합 개교했다.
초등학교령에 의하여 1941년 4월 1일에 구엄공립국민학교로 개칭되었고, 그 후 6·25와 제주 4·3 등 격동기 제주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100년의 연륜을 꿋꿋하게 이어오며 5,000여명의 동문을 배출해 냈다.
필자는 구엄초등학교 졸업생으로서 평소에 애월읍 지역 다른 초등학교보다 구엄초등학교 개교가 먼저인 것에 대해 항상 의아함을 가져 왔다. 지금에야 돌이켜 보면 아마도 교육과 인재 양성만이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길이라고 여겼던 엄장마을 지도자들이 학구열과 반일정신이 다른 지역에 우선하여 학교를 개교할 수 있었던 요인이 아니었을까 사료 된다.
구엄초등학교 개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선각자 백창유(白昌由) 선생이 일찍부터 인재 육성이 향리 발전의 근본이라는 신념을 갖고 신엄리에 일신학숙(日新學塾)을 1917년 3월 15일에 개설하여 운영하면서 보통학교 설립의 꿈을 꾸준히 키워 나가고 있었던 것이 시초가 된다.
3·1운동 이후 사립보통학교 설립을 결심하고, 신·중·구엄 및 용흥 4개리 향민들에게 학교 설립 동참을 독려하는 한편, 스스로 5000원이 거액을 학교 설립 기금으로 쾌척하였다. 이에 호응한 독지가 성여흥(成呂興) 훈장이 학교 부지용으로 3300여 평의 토지를 기증하게 되자, 향민들도 자발적으로 성금 기탁과 노력 봉사 등을 통하여 중엄리에 학교 시설을 갖추고 유림의 김익수(金翊洙)를 교장으로 초빙하여 1922년 6월 30일 사립 일신학교의 설립 인가를 받고 이듬해 4월 1일 개교하게 되었다. 이로써 애월읍 최초의 보통학교이며, 제주도 내에서도 최초로 인가받은 사립보통학교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 이후 일제는 황국신민화 교육 추진을 위해 통제 감독을 강화하였다. 일신학교에도 일본인 교장 임용을 요구해오자 당시 학교의 설립자이었던 백창유 선생은 끝까지 이를 거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일신학교는 일제의 탄압과 억압에 못 이겨 1939년에 설립될 공립소학교에 통합이 길을 택하였다. 그 후 구엄공립심상소학교와 구엄공립초등학교를 거쳐 1950년에는 구엄국민학교로, 1996년에는 구엄초등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00년의 역사 속에 2번에 걸친 큰 화재로 교실과 학사자료가 전소되는 아픔도 있었지만 ‘구엄(舊嚴)’이 배출해 낸 수많은 동문은 지역과 국내·외의 여러 곳에서 맡은 바를 묵묵히 수행하며 ‘구엄인’이라는 자긍심으로 자신과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으로 가득한 교육이야말로 동문과 지역사회의 큰 힘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며, 그 힘이 앞으로 지역과 대한민국, 더 나아가 세계의 참다운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구엄초등학교의 100주년을 거듭 축하하며, 개교 100주년을 계기로 동문 모두가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 화합하여 후진 양성에 더욱 앞장 서주기를 기대한다. /고태민 제주도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