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라산 남벽 정상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한라산 정상에 무덤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이목을 끌고 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1982년 묻혀 36년째 외로이 한라산 정상을 지키는 무덤이다. 신혼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을 담은 대한민국 최고지 묘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 10일 제주도청 출입기자들과 함께 한라산 남벽 등산로를 통해 백록담 정상에 올랐다.
한라산 남벽 정상은 1994년 탐방로의 낙석 위험과 훼손 등을 이유로 24년째 통제가 이뤄지고 있던 곳이다. 24년 만에 이곳에 오른 취재진은 정상에서 무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화산석과 현무암으로 쌓아올린 돌무덤이었다. 비석도 세워져 있었다. 비석에는 ‘김○○(마가렛) 김○○(요셉)의 묘, 1982년 4월 26일 신혼의 아름다움 속에 하느님 곁으로 가다’라고 적혀 있었다.
해발 1900m 부근에 위치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무덤인 것이다.
당시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들은 대학생 신혼부부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제주도내 도서관에 보관 중인 당시 신문 중 1982년 4월29일자 옛 濟州新聞(제주신문)에 이들의 사연이 남아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남편인 김요셉(당시 26세)씨는 당시 홍익대 4학년에 재학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라산국립공원에서 41년간 일했던 신용만(67)씨에 따르면 부인인 김마가렛(당시 22세, 서울 마포)씨는 간호사로 일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1982년 4월5일 결혼, 같은달 24일 제주에 신혼여행을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제주에 입도한 다음날인 25일 오전 성판악 등산로를 따라 등산, 사라대피소에서 1박을 한 후 정상을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씨에 따르면 당시에는 정상에 등산로가 정비돼 있지 않은 상태였다. 때문에 신씨는 안개가 낀 상태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내려가는 길을 찾지 못해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동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濟州新聞> 보도에서는 이들의 시신을 최초로 발견한 이의 증언을 토대로 “이들이 우의를 입은 채 서로를 마주보며 쓰러져 있었고 이들 옆에는 먹던 과일 등이 있었다”고 전했다.
또 “얼굴 등 온몸이 까맣게 타 있었다”며 동사 혹은 낙뢰에 맞았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한라산의 경우는 1994년 어리목에서의 관측부터 공식적으로 기상관측이 시작돼 당시 한라산의 날씨는 확인할 수 없는 상태다.
신씨 역시 "당시 날씨를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다"면서도 "백록담의 경우 해발고도가 높아 4월 말이라도 충분히 눈이 쌓이거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헬기 등도 없어 시신 수습이 어려운 상황이라 유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한라산 정상에 돌무덤을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신혼의 꿈을 안고 제주에 왔다가 대한민국의 가장 높은 곳을 안식처로 삼은 한 부부의 사연이 담긴 돌무덤인 것이다.
한라산에는 이밖에도 해발 1800m와 해발 1700m 지점 등 고지대에도 무덤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외 정상엔 4.3사건의 말기인 1954년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되면서 경찰 당국이 설치한 '한라산 개방 평화기념비'가 있으나 훗날 산악인들에 의해 정상 밑으로 내던져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조 시절엔 제주목사 등이 산신제를 위해 백록담 등을 찾은 등정기가 전해지고 있으나 '민족의 영산'이란 점을 고려, 분묘 등 일체의 인공시설물은 한라산 정상 분화구지대에 들어서지 못하도록 했다. [제이누리=고원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