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동생의 보험금으로 아파트를 구입한 성년후견인인 친형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성년후견인 제도 도입 이후 친족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재산을 함부로 사용한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은 첫 사례다.
제주지방법원 형사3단독 신재환 부장판사는 27일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현모(53)씨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현씨는 2014년 7월8일 교통사고로 뇌병변 1급 장애 및 사지마비 상태인 친동생의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됐다. 이후 동생의 교통사고 보험금 1억4454만원을 자신 명의의 계좌에 보관하다 2015년 2월10일 1억2000만원을 출금, 빌라 매매대금 명목으로 사용한 혐의다.
현씨는 해당빌라를 동생과 공동 소유가 아닌 자신의 단독 명의로 소유권 이전등기를 했다. 지난해 8월 법원은 후견감독 과정에서 이를 확인했다.
법원은 현씨에게 현금을 계좌로 돌려놓거나 보험금 1억2000만원 상당의 지분을 동생 명의로 이전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친형은 오히려 자신이 간병비 2억400만원을 받아야 한다며 후견인 보수청구 소송을 냈다. 검찰은 현씨를 지난 2월 횡령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현씨는 횡령 사실에 대해 친족상도례 적용을 주장했다. 형과 동생 사이로 동거친족에 해당하기 때문에 형을 면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친족상도례는 친족 사이에 절도·횡령 등 재산 범죄가 일어났을 때 형을 면제해주는 규정이다. 국가권력이 가족 내부의 일까지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항이다.
신 판사는 “성년후견인의 후견인 업무는 친족인지 여부를 불문하고 공적인 성격을 가진다고 봐야 한다”며 “가족이라는 사적 관계를 보호하기 위한 친족상도례 규정은 성년후견인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신 판사는 또 “법원의 계속된 설득에도 아직까지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은 점, 피해액이 크다는 점, 성년후견제도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후견인의 피후견인에 대한 신뢰위반 행위에 대해 엄하게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들어 실형을 선고한다”고 선고 사유를 밝혔다.
신 판사는 “현씨가 지금까지 동생을 성의껏 간병해온 점, 빌라 매매 목적에 동생의 간병 환경을 더 좋게 하기 위한 점, 동종 범죄전력이 없는 점 등을 참작했다”며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제이누리=고원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