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어요'(My S.O. has got depression [ツレがうつになりまして], 2011) 영화는 제목처럼 우울하기 보다는 반대로 밝고 사랑스러운 내용들로 차 있다. 바로 그것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내용인 듯 하다. ‘우울증이라고 반드시 우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계 컴퓨터 회사에 다니는 타카자키 미키오(사카이 마사토)는 신혼 5년차의 건실한 남자이다.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매일 아침 식사도 준비하고, 자기가 먹을 도시락은 요일마다 늘 다른 반찬을 싼다. 그렇게 꼼꼼해도 아침마다 삐진 머리카락은 어쩔 수 없어서 부인이 출근하는 그의 얼굴을 보며 머리카락을 눌러준다. 매일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전철을 타고 스트레스 받는 회사를 다니더라도 부부는 알콩달콩 정답게 살고 있다. 부인 타카자키 하루코(미야자키 아오이)는 만화를 그린다. 남편이 만화가로 성공할 거라는 희망과는 다르게 인기가 없는 만화는 연재하다가 일찍 종결됐다. 집에서 반려동물로 키우는 이구아나(이름도 ‘이구’이다)와 놀던지 머리를 쥐어짜면서 만화를 그리는 게 하루 일과이다. 하루코는 남편을 부를 때 ‘츠레’라고 한다. 정겨움의 표시인데, 우리 정서로 보면 ‘자기’나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잉글리시 페이션트(The English Patientㆍ1996)’는 6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서 9개 부문을 휩쓴 작품이다. 전 세계적으로 3000억원가량의 수익을 올렸다니 작품성과 흥행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확실히 잡은 영화임에 틀림없다. 1997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이었던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한국에선 신통치 않은 성적표를 남겼다. 할리우드 영화문법에 익숙한 우리나라 관객들이 영국식 영화문법을 다소 낯설 게 느꼈을지 모른다. 같은 영어라도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가 조금 다르듯 미국 영화와 영국 영화는 같은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르다. 조금은 정적이다. ‘다이내믹 코리아’의 한국관객들은 정적인 영국풍보다는 할리우드의 ‘역동적’ 전개와 장면들에 더 끌리는 듯하다. 영화는 라즐로 알마시(Laszlo Almasy)라는 실존인물의 행적을 바탕으로 한다. 영화에서도 라즐로 알마시라는 실명으로 등장한다. 연기파 배우 랠프 파인즈(Ralph Finnes) 특유의 우울하고 권태로우면서도 짜증스러운 연기가 썩 잘 어울린다. 헝가리에서 태어난 라즐로 알마시는 1900년대 전반기를 살았던
고금리로 고객들이 고통을 받는 판에 손쉬운 이자 장사로 수익을 올리고 성과급 잔치를 벌인 은행들이 개혁 수술대에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의 과점 폐해를 줄이는 경쟁 시스템을 강화하라고 지시하자 금융당국이 상반기 중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은행들이 막대한 이익을 내는 것은 경영을 잘해서가 아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편승해 예금금리는 조금 올리고 대출금리는 많이 올리는 식으로 예금·대출 마진을 확대해 이자 수입을 거둔 덕분이다. 신한·KB국민·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은행은 지난해 14조원에 육박하는 이익을 남겼다. 그 수익의 90% 이상은 높은 대출금리와 낮은 예금금리의 차이를 이용한 이자 장사로 벌어들였다. 이자수익 비중이 60%대인 선진국 은행들보다 월등히 높다. 이렇게 번 돈으로 평균 연봉이 1억원대인 임직원들에게 기본급의 300~400%씩 상여금을 주고, 희망퇴직자에게 6억~7억원씩 안겼다. 은행들의 폭리가 가능한 것은 정부가 쳐놓은 진입 장벽의 울타리 안에서 5대 은행이 시장을 나눠 먹는 과점 구조이기 때문이다. 5대 은행의 예금·대출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말 기준 각각 74.2%, 63.4%에 이른다. 상황이 이러니 은행
1923년 3월 22일. 우리 어머니 김성춘 여사님의 생일이다. 오는 3월이면 만 나이로 100세가 되신다. 이웃들이 묻는다. 어머니의 장수비결이 무엇이냐고. 혹시 집안이 장수하는 가문이냐고..... 유전은, 아니다. 어머니는 4남2녀의 막내인데, 형제분들 중 가장 오래 사신 경우가 80대 중반이다. 요컨대, 장수혈통은 아니란 얘기다. 그럼, 무엇이 장수의 비결일까? 어머니와 함께 산 지 20년, 같은 방을 쓴 지가 10년 째다. 내가 경험하고, 관찰하고, 생각하는 어머니의 장수비결을, 10가지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열거하자면, 1) 일, 2) 식사, 3) 병원, 4) 자녀, 5) 기도, 6) 마음 둘 곳(바다), 7) 잠, 8) 딸, 9) 긍지, 10) 감사 등이다. 참고로, 이하의 내용은 제주장수복지연구원과 서귀포시 노인회가 업무협약을 체결한 이후, 서귀포시 노인회 산하 노인대학과 대학원에 특강을 다니면서 다루는 주제들이다. 1) 일 일은 우리집의 가훈에 다름아닌, 어머니 생애의 핵심 가치다. 어머니의 삶을 이끌어 온, 얼·혼·정신이라고나 할까. 말하자면 삶의 전부다. 100세가 되신 오늘날도, 입에 달고 하시는 말씀이, “노는 것도 혼이 싯주.
세계 최고수 킬러들이 이런저런 사연으로 탄환열차에 동승한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발군의 킬러들은 ‘탠저린’과 ‘레몬’이라는 환상의 2인조 킬러다. 그들은 볼리비아에서는 ‘하얀 사신’의 야쿠자 조직을 박살내고, 홍콩에서는 중국의 삼합회를 초토화한다. 그들이 펼치는 사람 죽이는 환상적인 호흡은 거의 예술의 경지다. 영화 속에서 살벌한 영국 출신 킬러로 나오는 ‘탠저린’과 ‘레몬’의 코드네임은 조금 ‘깬다.’ 탄환열차에 모여든 다른 킬러들의 코드네임은 킬러답게 살벌하다. ‘하얀 사신(死神)’도 있고, ‘늑대’와 ‘말벌’도 있다. 그럴듯하다. 그런데 이 환상의 2인조 킬러들의 코드네임은 도저히 ‘킬러’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 탠저린과 레몬이다. 이 살벌한 영국 출신 2인조 킬러들의 코드네임이 귀여운 과일들이라니 가당치 않다. 테스토스테론을 뿜어대며 쿵따리샤바라를 열창하는 남성듀오 ‘클론’이 ‘소녀시대’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오르는 꼴이다. 이들이 현장에서 자신들의 코드네임을 대면 상대들은 모두 당황하거나 비웃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오렌지과에 속하는 자신들의 코드네임이 썩 만족스러운 듯하다. 백인 탠저린은 스타일리시한 정장 차림의 말쑥한 신사형이라면 흑
무의식의 세계를 깨운 프로이트가 나타나기 전까지 최면요법이 정신의학의 세계에서 최강자였다. 많은 정신질환들을 치료하려고 사용했다. 하지만 너무 강력해서 대상자에게 잘못된 기억을 심어줄 수도 있는 등 부작용이 있어서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얼마나 강력했는지 보여주는 영화를 소개한다. 홀연히 마을에 나타난 사나이 한 남자가 무거운 가방을 들고 숲 속에서 내려오고 있다. 시내로 들어서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더니 육교와 지하 터널을 지나간다. 멀쩡했던 전등들은 갑자기 깜빡거리는데, 뭔가 이상한 사람인 듯한 느낌을 준다. 장면이 바뀌면서 폴란드 바르샤바의 어느 사무실, 입국 심사를 하는 공무원이 그의 출생지가 우크라이나의 프리피야티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체르노빌을 언급한다. 체르노빌은 1986년 4월 26일 원자로 폭발사고가 났던 곳이고, 프리피야티는 그 근처로서 원자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집단 거주하던 곳이었다. 폭발이 일어나기 7년 전, 같은 날짜에 이 남자가 태어났다. 둘의 잠시 눈이 마주치더니 이 남자는 그 공무원의 뒤로 가서 머리를 감싸 쥐더니 나직이 읊조린다. “검은 시냇물이 발밑에서 흐르다가 내 손을 타고 들어옵니다.” 사무실을
한국 경제를 지켜보는 나라밖 시선이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내로라하는 국제금융기구나 투자은행이나 마찬가지다. ‘위드 코로나’ 전환에 따른 소비 증가와 에너지난 완화 등을 근거로 세계경제와 대다수 국가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면서도 유독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그전 전망치보다 낮췄다. 1월말 국제통화기금(IMF)이 그렇게 했다. 세계경제는 물론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의 성장률이 모두 반등할 것이라면서도 한국은 지난해 10월 전망치보다 하향 조정했다. 그 바람에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1.7%)가 1998년 외환위기 때 이후 25년 만에 일본(1.8%)보다 낮아질 상황에 처했다(표 참조). 국제금융센터가 집계한 9개 해외 투자은행의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1.1%로 IMF 전망보다 낮다. 이들 투자은행도 아시아 국가 대부분의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중국(4.8→5.2%), 베트남(6.0→6.1%), 필리핀(5.1→5.3%), 태국(3.7→3.8%) 등.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과 원자재 가격 안정, 통화긴축 완화 기대 등을 반영했다. 하지만 한국은 예외였다. 간신히 1%에 턱걸이하는 성장 전망을 유지했다. 아시아
"정옥아, 나가 죽어도, 니가 '어머니' 허멍 불르민, 얼른 일어낭 가마. 아고, 경헌디, 나가 기신이 어성 빨리는 못갈거 닮다. 경허난, 홑썰 기다리라 이!!!" 이제 3월 22일이면 만 나이로 100세가 되시는 우리 어머니, 김성춘 여사님의 신신당부다. 아무렴요, 어머니! 어머니가 눈을 감아버리면, “어머니 눈 틉서, 제발 눈 한 번만 터봅서!”라고 어머니를 부르고 또 부를 터다. 우선은, 올 봄에 어머니의 100세 생신을 잘 맞이해야 하리라. 장수노인의 반열에 올라서시기를 두 손 모아 빌어본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2년 1월말 기준, 제주 인구는 66만3526명이다. 이중에서 90세는 1만6019명, 92세 9969명, 94세 5117명, 96세 2602명, 98세 1071명, 99세 648명이다. 연령별 생존확률은 70세 86%, 80세 30%, 90세 5%로, 90세가 되면 100명 중 5명만이 생존한다. 이 조사를 함께 한 국민연금공단과 건강보험공단이 제시한 바, 우리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평균 나이는 76~78세다. 사실 제주도는 ‘장수의 섬’으로 익히 알려진 곳이다. 2022년 12월 말 현재 전국적으로 100세 이상 인구는 6472명
영화 속 ‘레몬’은 그 직업상 분명 빌런이어야 하는데 왠지 빌런스럽지 않은 독특한 해결사다. 영화 속에서 잠깐씩 보여주는 그의 킬러 경력은 화려하기 짝이 없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볼리비아, 홍콩 등에서 미션 임파서블을 수행한다. 그런데 레몬의 내면은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킬러’ 레몬이 지금까지 몇명이나 죽였을지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직업’은 불문에 부치고 ‘인간 레몬’만을 떼놓고 보면 썩 괜찮은 인물이다. 문득 응원하고 싶어진다. 화면 속에 잠깐 스쳐가는 그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면 그다지 교육을 많이 받지는 않은 듯하다. 어쩌면 유치원이 최종학력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레몬의 바이블은 다양한 기차를 의인화한 「토마스와 친구들(Thomas & Friends)」이란 영국 어린이 교육용 그림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는 유치원 원아들 필수교재에 해당한다. 레몬 스스로 자신은 세상의 모든 것을 ‘토마스’에게서 배웠으며 ‘토마스’의 가르침은 한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고 확신한다. 레몬은 야쿠자 보스인 아버지의 위력을 믿고 버르장머리 없이 구는 ‘하얀 사신’의 아들을 보고 「토마스와 친구들」 스티커 북을 꺼내어 ‘퍼시
2월이 열리면서 따사로운 봄소식이 들릴 줄 알았는데, 경제에는 한겨울 한파가 몰아쳤다. 1월 무역적자가 126억9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1월 물가상승률도 5.2%로 뛰며 5%대 고공행진을 9개월째 이어갔다. 반도체 쇼크로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97% 급감했고, SK하이닉스는 10년 만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를 간파했는지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경제와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의 성장률이 모두 반등할 것이라면서도 유독 한국의 성장률만 지난해 10월 전망보다 낮춰 잡았다. 그 바람에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1.7%)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1.8%)보다 낮아질 상황에 처했다. 경기가 침체할 때 가장 걱정되는 국면이 저성장 속 고물가, 스태그플레이션인데 한국 경제가 그 늪에 빠져드는 형국이다. 나라 밖에선 한국 경제의 성장세가 정점을 찍고 끝나는 것 아니냐는 ‘피크 코리아(Peak Korea)’ 우려까지 나온다. 월간 무역적자가 1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연간 무역적자(475억 달러)의 27%를 불과 한달 만에 쌓은 셈이다.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무역
해리성 장애란 정신 질환은 전혀 다른 인격을 갖는 경우를 말한다. 과거에는 그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단순히 조현병의 하나로만 여겼다. 크게 해리성 기억상실, 해리성 정체성 장애, 이인증 등으로 구분한다. 이 중에서 앞 두 가지를 다룬 영화를 살펴보자. 1957년 제작한 ‘이브의 세 얼굴(The Three Faces of Eve)’은 관련 영화로 아직까지 여기에 견줄 작품이 없을 정도로 내용을 잘 살렸고, 1인 다역을 해낸 주인공의 연기 또한 훌륭했다. 영화는 미국 남동부 조지아주에 사는 한 가정주부 이야기를 각색했다고 한다. 1951년 어느 날, 정신의학과 외래 진료실에 한 부부가 찾아온다. 남편 말에 의하면 부인이 요즘 부쩍 사치가 늘고, 비싼 구두나 의상을 사지만 정작 본인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뗀다는 것이다. 이브 화이트(조앤 우드워드)라는 이름의 부인은 차분하고 순종적인 전업주부이다. 의사가 몇 가지 질문을 할 때 화이트 부인은 평소에는 괜찮다가 두통이 심하면서 갑자기 발작(기억상실을 발작이라고 말함)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억이 돌아왔을 때는 변한 상황을 전혀 기억할 수가 없다고 한다. 진료를 담당한 커티스 루터 박사(리 J. 콥)는 처음에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의 보스로 등장하는 ‘하얀 사신’이 적을 제거하는 방식은 조금은 독특하다. 항상 상대의 무기로 상대를 처단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병법 36계에 나오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이다. 남의 칼을 빌려서 죽인다는 뜻이다. 차도살인은 최고의 병법 중 하나다. 우선 비용이 덜 든다. 상대를 제거하지만 상대는 그가 누구의 칼에 죽었는지 헛갈려서 누구에게 복수해야 할지도 헛갈린다. 관전자들도 누가 범인인지 알쏭달쏭하다. 살인의 후폭풍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하얀 사신’은 마음에 안 드는 아들도 남의 손을 빌려 처단하고, 아내를 죽인 원수도 남의 손으로 죽인다. 하얀 사신은 자식을 죽인 ‘비정한 애비’란 비난에서 벗어나고, 교통사고로 죽었을 뿐인 아내의 죽음까지 피로 응징했다는 비난에서도 비켜선다. 하얀 사신은 자신을 겨눈 상대의 총이나 칼을 빼앗아 상대를 죽이는 것을 ‘종특’으로 한다. 자신을 겨눈 31번의 암살기도가 있었는데 31번 모두 자객의 무기를 빼앗아 자객을 죽였다는 야쿠자계의 살아있는 전설인 그는 ‘차도살인’의 달인이다. ‘장로’와의 마지막 결투에서도 하얀 사신은 벽에 박힌 장로의 칼날에 장로의 목을 밀어 32번째 차도살인의 전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