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는 잔인한 린치와 함정에 밀어 넣으려는 계획된 공작이 계속되었는데도 말려들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고 버티고 있던 정신마저도 무너질 위험에 놓여 있었다. 이제는 한계치를 넘어 그 경계선에 서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미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거나 일생이 파멸되어 버렸을 것이다. 포기하여 모두 놓아 버린다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고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위해서?' 조배죽들의 목적은 김철수의 인격을 파괴시키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가까운 이웃은 김철수가 중요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혹은 바닷가를 배회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였다고 기억한다. 말도 횡설수설하는 일이 잦아 졌다고 한다. 그러나 하늘의 보살핌으로 순간을 버티고 있다. 경계선을 넘어가지 않은 것은 가까운 이웃의 조언 덕분이다. 독서량을 늘리고 책 한권을 읽으면 다시 반복하여 읽고, 다시 읽고 메모하면서 책을 외워 버리라고 권한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책방에서 읽을거리를 찾던 중 책방 주인이 “반품할 책이 한권 있는데 그냥 가지고 가세요.”하고 권하자 고맙게 받아왔
호접란 농장에 파견되었던 직원 집에 찾아갔지만 살았던 흔적만 확인하고 다시 만나질 못하였다. 급히 떠난 듯 주변이 어지러웠다. 이웃들로부터 안타까운 사연만 전해 들었다. 지구 반대편 이역만리 타국에서 떠돌면서 고향이 그리워 눈물 흘리기도 하겠지만 다시 돌아오지 못할 형편이 된 것 같다. 선거가 다가오고 있었다. 프로빈스가 그동안 추진하였던 사업들은 모두 좌초되거나 꼬여서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조배죽들이 누리던 권세가 하루아침에 추락할 것 같아서 불안하다. 가시방석이라서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종일 불안했다. 그렇다고 미래를 대비하는 원대한 사업은 아예 꿈도 꾸질 못한다. 그래서 유일한 방법은 선심성 예산을 쓰면서 생색을 내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선심성 예산을 집행하는 경우가 있어왔다. 이를 '돼지 여물통(pork barrel)'이라 한다. 옛날에 농부가 돼지 여물통에 먹이를 넣어주면 헐벗고 굶주린 노예들이 앞을 다투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비유한 표현이다. 또는 '귀표(earmark)' 예산이라 하기도 한다. 농부가 가축을 자기의 소유로 선점하기 위하여 가축의 귀에다가 찍은 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말하는 '승자독식(The winner takes all)' 혹은 아바(ABBA)의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요(The winner takes it all)‼'라는 노래와 같이 승리한 자가 모두 가진다. 이 노래 가사에는 '패자는 몰락하죠. 간단하고 명백해요. 내가 어떻게 불평을 하겠어요.'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김철수는 조배죽들과 경쟁하였던 적이 없기 때문에 승자나 패자가 될 수도 없다. 몰락할 이유도 없고 불평할 이유도 없다. 간단하고 명백하다. 그런데도 김철수는 버티면 버틸수록 조배죽들에게는 호구(虎口)가 되어가고 있었다. 호구는 어수룩하여 이용 당하기 좋은 사람을 말한다. 영어로는 푸쉬오버(pushover)라 하여 살짝 밀어도 넘어지는 사람을 말하기도 한다. 조배죽들은 “이번 주말에 미깡 타도라(감귤 따달라)” “아이 논문 지도 해도라(해달라)”며 농담인 듯 아닌 듯 사생활에 도움을 요구했다. 전성시대가 되었으니 승자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김철수는 세상이 모두 이 모양인데 당연한 것으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처럼 김철수는 맡은 일을 하고 주어진 봉급이나 받으며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조배죽의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서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한직에 있는 것이 오히려 잘 맞을 수도 있다. 그다지 능력이 있는 편이 아니라서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벼슬을 해먹을 위인도 되질 못한다. 능력과 관계없이 특별한 은혜를 입어 영전하는 모습들이 자주 보여 주변에서 구시렁거리지만 그에 별 관심이 없다. 하루라도 빨리 건강을 회복해서 정상인으로 살아가는게 유일한 희망사항이다. 어느날 앞니 하나가 갑자기 툭 떨어져 나갔다. 치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으니 이 뿌리가 여러 조각으로 부서져 있었다. “혹시 전에 폭행을 당한 적이 있나요?”라는 간호사의 질문에 김철수는 대답할 수 없었다. 2차를 사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이 어린 사람에게 멱살을 잡혀 끌려간 적이 있는데 '그때 얻어터진 때문인가?' 기억이 떠올랐다. 사선(死線)을 넘어 처참한 몰골로 귀국했었다. 독한 양주를 억지로 받아 마셔 피를 토하고 두달 넘게 잠 안재우기 고문을 당했지만 또다시 사선을 넘어 섰다. 이어진 무고로 천길 벼랑 끝에까지 밀려났지만 다시 돌
우민태(宇脗駘)는 조배죽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성골(聖骨) 조배죽이 되어 더 큰 벼슬을 하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중국 무협소설을 열심히 공부 중이다. 사무실에서도 즐겨 읽는 듯 책상 위에 가득히 쌓여 있다. 열심히 공부한다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 같기도 하다. 어디론가 “어‼ 난데‼ 그거 가정오라(가져와)‼”라고 위압적인 목소리로 전화를 하였다. 한 시간 후에는 시골에 있는 도서관 직원이 부리나케 달려와서 가방에서 책을 풀었다. 도서관 직원이 가져온 책은 중국 무협소설 '측천무후(測天武后)'다. 아마도 도서관에 지시하여 이 책을 구입하여 가져오라 한 것 같다. 우민태가 김철수를 불러 “이 책 익엉(읽고) 요약해 도라(달라)‼”고 지시한다. 총독이 공부할 시간이 없으니 책을 요약해서 만들어 오면 총독에게 보고할 것이라 한다. 김철수는 “그거 참‼” 기가 막히고 말문이 막혔다. 총독이 중국 무협소설이나 즐기면서 위안을 삼게 하려는 십상시 본성이다. 측천무후는 온갖 남성 편력과 악행으로
섬축제가 끝난 후 김철수는 시간을 되돌려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졌는지 확인해 보았다. 시간대별로 벌어진 사건의 퍼즐 조각들을 맞추어 보았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벌어지지 말아야 되는 사건들이 자주 벌어졌었다. 그때마다 우상오와 프로빈스 간부 들은 기획사를 비호하였다. 축제 시작 일주일을 앞둔 시점에 공연무대가 공연이 불가능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경악하였다. 설계도면을 대조하니 사람이 올라설 수 없는 정도로 무대 면적이 반으로 줄었다. 기획사에 따졌으나 “우상오에게 허락받았다.”며 시큰둥했었다. 김철수는 우상오를 급히 찾아 이 사실을 따져 물었다. “공연무대 면적을 반으로 줄이도록 허락했나요?” “경 했저게(그랬다)‼” “공연을 못하도록 만들어 버린 이유가 뭡니까?” “기획사가 하자고 해서‼ 하자는 데로 허라게(해라)‼” 우상오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축제를 시작하지도 못할 비상상황이란 것을 모릅니까?”며 손이 부들부들 거렸다. 기획사에 공연일정표를 요구한지가 한 달이
중국의 후한(後漢) 시대에 십상시(十常侍)라 불리는 10여명이 환관들은 우매(愚昧)한 왕을 허수아비로 내세워 전횡을 일삼다가 반란이 일어나 모두 주살을 당했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누리는 것 말고는 다른 정사를 관리할 능력이 애초부터 없었다. 반면에 남들을 모함하여 함정에 밀어 넣는 계략은 탁월하다. 다른 사람은 흉내 낼 수 없을 동물적인 감각이다. 행사본부의 누군가가 사기꾼에게 농락을 당해 초청장을 발급해 버렸다. 김철수는 공항에서 이들을 면담한 결과 축제를 빌미로 불법입국한 자들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격리시켜 놓았다. 불법 입국자들을 즉시 관계기관에 인계하겠다는 서류를 결재 올렸으나 우상오(禹鷞烏)는 “난 모른다”며 거부하였다. “결재해 달라.” 여러 차례 요청을 하였으나 “모른다‼”며 버럭 겁을 먹고 허둥지둥 도망가버렸다. 그러던 사이에 불법으로 입국한 자들은 사라져 버렸다. 초청장을 발급해 준 자가 누구인지 파악을 하려 하였으나 아무런 근거서류도 찾을 수 없었다. 모두 몰라라 자빠졌다. 우상오는 모든 사태의 책임을 김철수에게 거꾸로 뒤집어 씌우려
남미의 아마존 강에 서식하는 피라니아(piranha)는 떼로 몰려다니며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날카로운 이빨과 기형적으로 튀어나온 아래 턱은 다른 고기를 쉽게 물어 뜯을 수 있도록 발달해 있다. 순식간에 다른 물고기의 살점을 뼈만 남을 때까지 물어뜯는다. 그러나 움직이지 못하는 고기를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물어뜯는 비겁한 속성을 가졌다. 김철수는 죽을 때까지 물어뜯을 것처럼 덤벼들던 조배죽들의 손아귀에서 잠시 벗어난 듯했다. 그러나 그동안의 후유증으로 온 몸에 치명적인 장애가 나타나고 트라우마와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우선 급하게 몸을 추슬러 잠시 머물다가 떠나서 새로운 삶을 찾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사무실 구석 한편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섬마을 축제(?) 조배죽들은 전임자가 만들어 놓은 섬축제가 이유 없이 기분이 나빠 불만이다. 컨벤션센터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시민회관 수준으로 축소해 버렸다. "이 행사를 치러봐야 도움이 안된다." 그런 이유인지 행사 본부는 대충 꾸려지고 일부는 곧 은퇴할 직원들과 임시 심부름하는 직원들로 채워져 있다. 반대파로 낙인이 찍혔다는 또 다른 직원이 있었으나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
적개심으로 가득하던 그들의 얼굴은 목적을 달성하였다는 만족감으로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비웃음을 뒤로하고 옮겨 간 곳은 말석(末席) 과(課) 말석(末席) 계(係)다. 이 자리에서 1년을 머무르면 2년 퇴보되고 2년을 머무르면 4년 퇴보된다. 근무평정에서 제일 아래 순위로 매겨지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역전을 당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올라가고 있는데 김철수는 끝을 모르게 추락하는 중이다. 이 자리는 퇴직을 앞둔 사람들이 잠시 대기를 하거나 임시 직원들이 정규직 전환을 위하여 이용되기도 한다. 전임자가 떠나는 이유를 물어 보지도 못하였다. 축 늘어진 어깨와 푹 숙인 고개, 어두운 표정으로 책상을 주섬주섬 정리하더니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도 없이 정든 직장을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서무 직원이 “떠나는 사람에게 회식이라도 대접해야 될 거 아닌가 마씸?(아닌가요?)”하고 과장에게 조심스럽게 여쭈었더니 반대파라는 이유로 “필요 없어‼”라고 야박하게 거절해버렸다. 과장은 실세라는 우유부(嚘狃蚥)가 승진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단지 반대파라는 이유
프로빈셜 홀에는 음습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조배죽들의 통치 방법은 제국주의 시대의 '분리하여 통치하는(divide and rule)' 수법과 같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를 강압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소수의 세력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은혜를 베풀고 다수의 상대편을 탄압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렇게 되면 식민지 국민은 양편으로 나뉘어져 대립하는 통치구조가 만들어 지고 지배세력과 피지배 세력을 구분하는 선이 그어진다. 피지배 세력을 고립시켜 탄압하면 저항이 일어나고 저항은 지배세력이 다시 제압하게 된다. 이른바 '편 가르기' 수법이다. 우동춘(愚獞鶞)은 보도자료를 모아 기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을 매일 반복하다 보니 짜증이 났다. 그러다가 심심해서 언론을 모두 장악했다는 착각에 빠지고 ‘언론은 비판적 기능은 하면 아니 되고 단지 홍보지 역할만 해야 한다. 총독을 불편하게 하는 보도는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는 조배죽의 시대가 되었으니 충성심을 보여줘야 할 텐데 뭔가 반짝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없다. 가깝게 지내던 직원이 귀띔을 해 주
김철수는 망가진 몸을 회복하고자 강하게 처방을 받은 일주일치 약 봉지 중에서 마지막 한 봉지를 입에다 털어 넣었다. 조배죽들의 눈치를 보아가며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약을 먹어야 하는 성가신 일이었다. 약을 먹는 일을 멈추어 버렸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기 시작하고 왼쪽 눈의 시력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프로빈스에는 조배죽과 조배죽이 되고자 하는 자들, 조배죽의 똘마니들로 득실대고 있었다. 돌아서면 함정, 다시 돌아서면 지뢰밭이다. 피할 길이 없다. 조배죽들은 독특한 방법으로 반대파들을 괴롭히면서 충성심을 과시하려 들었다. 총독이 헤아려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충성 경쟁은 천태만상이다. 변태 사무관 우변태(禹變態)는 저녁에 술을 한잔 걸치고 한량같이 어슬렁거리면서 여기저기 사무실을 배회했다. 야근하는 직원 중에 만만하다 싶으면 뒤로 돌아가서 검지 손가락으로 직원의 귓구멍에 질러 넣어 돌리는 버릇이 있다. 짜증내며 돌아다보면 우변태는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개기름을 질질 흘리고 있다. 악수 할 때는 손가락으로 상대편의 손바닥을 긁어 대기도 하고 남자 직원의 엉덩이를 주무르기도 하면서 쾌감을 느끼곤 했었다. 손버릇을 보아하니 성도착 증세가 심한 것
이 소설은 지방자치가 부활하면서 어두운 세력들이 전국의 지방정치를 장악해 온갖 이권개입과 탐욕으로 얼룩지는 가운데 제왕적 권력을 장악한 프로빈스의 총독(Governor)과 그 추종 세력들의 행태를 담고 있다. 그들은 조배죽 혹은 십상시(十常侍) 무리들이다. 주인공 김철수는 가상인물이다. 프로빈스에 장기간 근무하면서 그들의 집중공격으로 무려 20여년간 수천길 벼랑 끝, 한 순간을 버티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고 추락할 위치에 서 있었다. 주인공의 육체는 이미 완전히 부서져 버려 하루살이처럼 연명하면서도 희미하게 남은 정신에 의지하며 떼거지로 무지막지하게 덤벼드는 조배죽과 십상시들을 상대로 그냥 그렇게 버티는 수밖에 없던 신세였다. 1대 100, 승산 없는 싸움, 김철수는 최후의 결사항전을 준비한다. 주인공과 프로빈스의 운명이 걸려 있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사건들은 실제와 같이 묘사되어 있으나 모두 픽션이다. [편집자 주] 우영철은 여전히 거나하게 술과 고기를 먹고 소화시키고 싸는 일을 반복하며 “안 고라 줬네(말해주지 않았네)”하다가 심심하면 “술 안 사네” 징징대고 있었다. 뺨에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