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수산대학교 조감도. 2월 한 달 동안 범도민적 기대와 관심을 모았던 세계수산대학(World Fisheries University: WFU) 유치전에서 제주가 부산에 승리를 내주고 말았다. 탐라대 부지가 마치 이 일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여겨졌던 상황이라 제주사회의 안타까움이 몹시도 컸다. 제주도가 제시한 약속들, 예컨대 태평양을 바라보는 10만평의 부지와 건물, 100억원의 대학발전기금, 그리고 온 도민의 열렬한 환영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지원정책이다. 그런데 WFU가 부산으로 가게 된 이유가 입지환경면에서 제주․충남보다 훨씬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게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후문이다. 부산시가 세계수산대학의 입지로 제시한 부경대학교는 과거 국립부산수산대학교의 부지다. 이 학교는 1941년에 설립된 부산시 최초의 대학교로, 70여 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켜 왔다. 그러므로 거리상은 부산의 해안순환도로망인 북항대교와 광안대교가 인접한 해안가지만, 실상은 사방이 도시화 되어 있어 도심의 일부라 해도 무방한 위치다. 비교적 평지인 게 장점이긴 하지만, 부경대학의 캠퍼스 내에 WFU가 들어선다면, 시원한 바다를 조망하면서 수산자원과 해양산업의
앞선 글에서 현대사회 대학의 역할론을 풀었다. 이 쯤에서 우리 제주도의 대학으로 눈을 돌린다. 때마침 최근에 이뤄진 제주도의회의 도정질문에서 ‘제주국제대에 의해 매각추진 중인 탐라대 부지가 중국자본에 넘어갈 위기이므로 제주도가 매입해서 비축토지로 전환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이에 대해 원희룡 지사는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백방으로 노력하겠다’는 답변과 함께 "제주도가 공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면 적극 탐라대 부지 매입을 검토할 용의가 있다"는 언급을 하였다. 사실 탐라대 캠퍼스 10만평에 대해서는 2014년 지방선거에서 신구범 후보가 공적 대안을 이미 제시한 바 있다. 그는 "제주도가 옛 탐라대학교 부지 및 교사를 매입해서 가칭 도립농업고등전문대학으로 전용, 제주농업을 이끌어 나갈 엘리트 농업인을 양성토록 하겠다"고 공표하였다. 이는 그의 18개 핵심 정책공약 중 하나로써 ‘반드시 이행해 나갈 것’을 약속하고 다짐한 서귀포의 중요 현안이다. 이 점은 대학의 존재 이유와 사회적 책임을 두고 볼 때도 타당하고 바람직한 대안으로
1970년대 방글라데시의 한 대학에서 벌어진 일이다. 경제학을 가르치던 유누스(M. Yunus) 교수는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하는 다양한 경제학설이 가난과 사투하는 여성들에게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하였다. 문제의 절박함에도 불구하고 ‘상아탑(象牙塔)’이라 불리는 대학은 코끼리의 무덤이 현실과 유리된 것처럼 진리탐구에 매몰되어 사회로부터 격리된 제 3의 장소와 같았다. ▲ 노벨평화상 수상자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 그는 현실문제에 도전키로 작정하고 우선 미래가 보장된 자신의 교수직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연구실 대신 빈곤한 삶의 현장으로 달려가 "대학이 자신의 지식에 도취되어 주민들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사회에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는가?"라고 외쳤다. 동시에 "대학의 사명이 교육과 연구를 통해 세상을 바꾸어 놓는 거라면서 정작 캠퍼스 근처의 노는 땅을 지역주민들이 활용할 수 없게 한다면 과연 그러한 대학이 계속하여 존재해 나갈 이유가 있는가?"를 물었다. 그야말로 대학이 생산하는 큰 학문이 '실험실 속의 진리'가 아니라 '사회 속의 진리'여야 함을 천명하는 용기였다. 또 주민으로부터
이름 때문일까? 해군기지로 인해 여전히 아픔을 겪고 있는 강정을 바라보면 가슴이 시리다. 강정(江汀)은 그 이름처럼, 마을을 감싸 도는 강정천의 물이 사시사철 용출되어 바다로 흐른다. 대부분 제주의 내(川)들이 비가 오면 흐르다가 얼마 없어 말라버리는 건천이기에, 강정천의 흐름은 신비한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정천을 ‘큰 내’라 불렀다. 강정은 물(江: 물 강)과 물(汀: 물 정)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오늘도 서귀포시민들은 식수의 70%를 강정 취수원과 정수장을 통해 공급받고 있다. ▲ 제주도 강정천 특히 강정천의 물은 제주도의 척박한 타 지역 토양과 달리 강정으로 하여금 그 귀한 '곤쌀'(백미)을 생산할 수 있게 하였다. 얼마나 논물이 깨끗하기로 소문났으면, 강정미의 품질이 궁궐에까지 알려져서 수라상에 올랐을까? 그 자랑스러움을 담아서 제주사람들은 강정 앞에다 일등을 붙여 ‘일강정((一江汀)'이라 불렀다. 게다가 향긋한 수박향기를 풍기면서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은어들이 바다에서 강정천으로 거슬러 올라오니, 마을의 기운은 상서롭게까지 비쳤으리라. 어쩌면 이 은빛 나는 ‘올림은어’들과 마을
▲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영화 국제시장이 2월 들어 누적 관객 수 1300만명을 넘어섰다. 영화진흥위원회의 박스오피스 통계에 의하면 이는 역대 휴먼드라마 장르 중 흥행 1위의 기록이란다. 영화평론가들이 10점 만점에 5점을 부여한 ‘보통’ 영화가 요새 말로 대박을 친 셈이다. 그 덕택에 영화 속에서 영자 역을 한 여주인공이 어린이재단에 기부금을 낸단다. 영화 관람객 수에 비례해서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이. 참 가슴 따뜻한 이야기다. 이처럼 국제시장이 관객들로부터 ‘극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관람객들의 반응에 관한 자료를 짚어보면, 전문가들이 ‘신파적 스토리’라고 비평하는 영화의 흐름이 ‘우리들의 이야기’로 소통되기 때문이란다. 6.25의 흥남철수작전으로 비쳐지는 국가의 무능함, 전쟁과 폐허에서 전개되는 가난의 뼈저림, 생존을 위해 독일의 탄광과 베트남 전선에서 사투하는 개인의 몸부림, 이산가족을 찾아서 분단의 비극을 부둥켜안는 범국민적 눈물 등이, 여전히 진행 중인 우리사회의 아픔으로 공감되어서다. 사실, 오늘도 변함없이 국가는 무력하고, 가난한 이들의 삶은
▲ 일터인 바다작업장으로 가는 해녀행렬. [제이누리DB] 아버지는 동네에서 힘이 세기로 소문난 장정이었다. 사람들이 일을 하다가 힘에 부치면 아버지를 찾아서 ‘힘을 보태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단다. 게다가 만능 일꾼이라서 집을 짓는 건축이나 밭담을 다는 석수일, 밭을 가는 쟁기질은 물론 갈치나 자리를 잡는 어부 일도 능숙하였다. 우리가 사는 집도 아버지가 지으셨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던 아버지는 동트는 새벽에 밭갈이를 시작하면 해가 기우는 어스름까지 ‘이랴 이럇’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일이 끝나면 소를 어루만지면서 친구에게 하듯이 ‘속았다(수고했다)’며 다독였다. 남이 이틀 걸려 하는 일을 아버지는 하루 만에 해치웠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을 할 때 별로 말이 없었다. 그저 일이 돌아가는 상황에 눈을 맞추면 손발이 척척 돌아가는 커플이었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서도 산남에서 1등 가는 보리, 유채, 고구마를 거둬냈다. 그처럼 아버지가 차별적으로 농사일의 경쟁력이 높았던 데는 남다른 비결이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밥에만 식구들 몰래 참기름을 듬뿍 뿌려놓는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고래(古來
올해로 93세인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지금이야 내가 ‘모신다’고 할 수 있지만, 아흔이 되기 전까진 사실상 어머니가 우리를 돌보셨다. 어머닌 여느 제주도 할머니들처럼 과수원의 김을 매고, 마당을 가꾸고, 길가의 잡초도 뽑으셨다. 집안의 모든 식물들은 어머니 손길로 사철 꽃을 피워냈고, 물때가 되면 바다에 가서 보말까지 잡아오셨다. 가끔은 시장에선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자연산 오분작을 잡으실 때도 있었다. "어떵 이 귀헌 것들이 나 눈에 들려신고 이(어떻게 이 귀한 것들이 내 눈에 보였을까)? 어떵사 지꺼진지, 니 주잰 솔째기 곱정 놔뒀져(얼마나 기쁘던지, 너 주려고 살짝 숨겨 두었다). 아이덜 생각허지 말앙 싱싱헐 때 어서 먹어불라(아이들 생각하지 말고 싱싱할 때 빨리 먹어버려라). 닌 두린 때부터 안질이 안 조아부난 눈을 애껴사 헌다(넌 어려서부터 눈이 안 좋았으니 눈을 아껴야 한다)" 어머니는 50년간 대포 바다에서 물질을 하신 상군 잠수다. ‘숨비질 배왕 놈 주지 아녀’라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제주해녀 생애사 조사보고서’에도 소개가 되었으니, 동네의 대표 해녀인
▲ 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한라산에 눈이 쌓이면 백두산의 얼음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이들이 있다. 바로 동토(凍土)의 땅을 탈출해서 따뜻한 남쪽 나라, 제주에 정착한 190여명의 북한이탈 주민들이다. 북한의 겨울은 만물이 얼어붙는 시기라 초근목피는커녕 찬물도 구하기가 어렵다. 수도관이 꽁꽁 얼고 강조차 얼어붙어 얼음을 녹이려 해도 땔감이 없다. 평양을 제외하곤 전기도 연탄도 끊긴다. 물과 불이 없는 집에 쌀이 있을 리 만무다. 겨울 추위에 배조차 곯으니 삶의 서러움과 쓰라림이 뼛속에 사무친다. 생명이 죽음보다 더 가혹한 저주로 느껴지는 곳, 저 북녘 땅처럼 냉혹한 삶터가 지상에 또 어디 있으랴.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면 먹고 사는 것뿐만 아니라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가 주어진다. 바로 인간으로서 당연하게 누려야 할 인류 보편적 가치, 즉 인권(Human Rights)이다. 인권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권리이므로 국가나 국제사회가 합의하고 승인함으로써 보장되고 발현되어진다. 이 때문에 지난 18일 유엔총회는 북한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토록 권고한 ‘북한인권 결의안’을 흔쾌히 통과시켰다. 이
▲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전경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사장(CEO)은 어떤 자리인가? 3년간의 컨벤션 생활을 통해 고백컨대 ‘주주의 눈물을 가슴으로 담는 자리’가 아닌가 싶다. 통상적으로 CEO는 대외적으로 기업을 대표하고 대내적으로는 경영 전반에 관한 결정과 실행을 담당하는 최고책임자다. 이 점에서 보면 ICC JEJU의 CEO는 유달리 주주에 집중하는 특성이 있다. 물론 주주에 대한 책임이 주식회사의 본래적 기능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제주국제컨벤션센터는 외부적으론 주식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제주도가 지분의 과반수를 소유하고 있어 내부적으론 공기업이다. 게다가 개인 주주의 대부분이 제주도민들이니 실상은 도민기업인 셈이다. 정서적으로는 제주도정뿐만 아니라 도민 전체가 ICC JEJU를 출생시킨 부모와 같다. 이 독특한 태생적 정체성(identity)이 ICC JEJU의 임직원들을 항상 애끓게 만든다. 부모로서의 애정과 기대가 많은 만큼 범도민적인 질책과 실망도 크기 때문이다. 참고로 ICC JEJU의 자본금 1666억100만원에 대한 지분구성은 제주도가 57.02%(950억원), 한국관광공사(KTO)가 17
하늘에서나 바다에서나 혹은 땅에서나, 중문관광단지를 바라보면 가장 시선을 끄는 건물이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다. 그래서 사람들은 ICC JEJU를 일컬어 중문관광단지의 랜드마크라 부른다. 파리의 에펠탑,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이탈리아의 콜로세움처럼 말이다. ICC JEJU에 아침 해가 떠오르면 건물은 온통 은빛으로 눈부시고, 저녁 빛이 스며들면 금빛으로 찬란해진다. 특히 이곳은 제주에서도 석양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화가들의 스케치 장소다. 저녁 해가 송악산으로 기울면서 황혼이 오션뷰(드라마 '올인'의 이병헌 사무실로 유명해 결혼식장으로도 사랑받는 명소)에 스며들면 이곳의 모든 것들은 한꺼번에 황홀해진다. 마치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광경처럼 석양으로 오렌지 빛을 띤 구름이 모든 것을 향수의 매력으로 빛나게 하는 것이다. ▲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야경 하지만 이 시간에 ICC JEJU의 빛을 등지고 있는 주상절리 주차장에 가보면 하루 장사를 마친 사람들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서려있다. 팔다 남은 물건들 위로 스산함이 얼룩지고 구부러진 등 위에 삶의 무게가 고단하다. ‘늙기도
모처럼 서귀포 중문을 둘러싼 현안들에서 희망 섞인 얘기들이 새어 나온다. 우선, 주기적으로 ‘매각설’이 흘러나와 주민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던 중문관광단지가 이번에는 해결의 전조를 보이는 듯하다. 사실 중문은 그 요란한 태몽만큼이나 진통이 커서 태어날 때부터 온전치가 않았다. 1973년 ‘제주도관광종합개발계획(1972~1981)에 따라 1977년 ‘제주 중문지구 종합개발기본계획’이 수립되고 1978년 토지매입에 들어간 후 1982년에야 단지개발이 시작되었다. 10년 동안 잉태의 꿈만을 꿔 온 셈이다. 그로부터 20여년이 더 흘러 2014년이 저물어가는 지금 강산은 두 번이나 변해 가는데 이곳의 모습은 별반 달라 보이지가 않는다. 1975년 나는 중문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어느 사회 시간, ‘부모님들이 땀 흘려 농사하는 일터가 사라지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되나?’ 라는 질문이 촉발되었다. 변화의 물결, 개발의 이익, 새로운 일자리보다는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본능적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우선은 부모님들께 ‘땅을 팔지 마시라’ 하자고 우
제주도의 대규모 중국인 투자사업들이 한결같이 카지노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고 있다. 카지노 사업자들의 악덕이 한꺼번에 불거져 나오는 이때 제주도정이 시의적절한 조치에 들어갔다. 싱가포르처럼 카지노관리법(CCA)과 카지노관리청(CRA)을 설치해 카지노의 허가, 양도·양수, 갱신, 행정처분 등의 기준을 마련하고, 종사원과 조세 관리 등 지역경제 기여방안을 확립코자 함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싱가포르가 어떻게 카지노를 리조트월드 센토사와 마리나베이 샌즈와 같은 복합리조트(IR)에 구조화시켜서 세계 표준(Global Standard)의 모델로 만들어 냈는가’ 하는 개발과정의 이해와 적용이다. 싱가포르는 2010년 2개의 IR을 오픈하기까지 2004년부터 6년여에 걸쳐서 1)카지노 허용안 검토, 2)IR 개발 관련 사회적 안전장치 발표, 3)IR 개발 구상 결정, 4)CCA 제정, 5)IR 사업자 선정, 6)CRA 설립 등을 투명한 정보 공개와 엄격한 절차 준수를 통해 국민과 함께 결정해 나갔다. 참고로 카지노관리법(CCA)은 카지노관리청(CRA)의 설립, 카지노 사업자와 관련 업무 수행자에 대한 규제 제도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