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서 살아 돌아와 로마의 심장 콜로세움에 노예검투사로 등장한 막시무스는 한순간에 코모두스 황제를 정치적 곤경에 빠트린다. 코모두스는 황제의 권능으로 노예검투사 하나쯤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겠지만 그것이 간단치 않다. 권력이란 민심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조각배와 같은 것이다. 뒤집어지는 바다에서는 항공모함도 견딜 수 없다. 죽은 줄만 알았던 막시무스가 등장하자 잔잔하던 바다가 일렁이기 시작한다. 권력을 받치고 있는 원로원에도 거친 파도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코모두스가 못마땅했던 로마시민들과 원로원 의원들, 그리고 루실라 공주의 마음에 불을 지른다. 노예 검투사 하나를 처형해버리는 것은 간단하지만, 그것이 시민들이 열광하는 노예검투사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아마도 민심의 바다가 뒤집힐 것이다. 헌법 위에 있는 것이 ‘국민정서법’이다. ‘절대적’으로 보였던 역사상 수많은 권력들이 그렇게 무너졌다. ‘절대권력’이란 없다. 교도소장도 수감자들이 뭔가 빈정 상해서 모두 들고 일어나면 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 ‘국민정서법’에 걸리지 않고 막시무스를 제거해야 한다. 코모두스가 찾아낸 방법은 ‘결투’다. 무릎을 탁 칠 만한 아이디어이다. 아직 로마에 ‘결투’라는 제도가 도
막시무스의 등장으로 촉발된 코모두스 황제의 정치적 위기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머리 좋은 책사 팔코 의원의 계략에 따라 로마 북부군과 원로원, 누이 루실라까지 가담한 쿠데타 음모를 겨우 막아내지만, 바람이 멈추지 않는 한 파도는 계속 밀려올 수밖에 없다. 아버지를 죽이고 황제 자리를 찬탈한 코모두스. 이제 어느 파도에 그의 배가 뒤집힐지 알 수 없다. 파도를 만드는 것은 바람이고, 바람은 곧 민심이다. 콜로세움에 모인 군중들의 목소리가 민심을 대변한다면 민심이라는 바람은 이미 그에게서 돌아선 것이 분명하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명쾌하게 정리한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한시외전(韓詩外傳)」은 권력과 민심의 단순명쾌한 관계를 이렇게 규정한다. “임금은 백성이 함께하면 편안하고, 백성이 도와주면 강해진다. 그러나 백성이 얼굴을 돌리면 위태로워지고, 백성이 등을 돌리면 끝이다(百姓與之卽安 輔之則强 非之則危 背之則亡).” 민심을 얻으면 모든 걸 얻을 수 있고 민심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는 뜻이다. 지금 코모두스를 향한 로마의 민심은 얼굴을 돌리고 있는 듯하다. 지금이야 얼굴 정도지만, 언젠가는 완전히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 이럴 땐 무슨 수를 써야만 한다.
아버지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죽이고 ‘셀프 황제’ 자리에 올라 돌아온 코모두스를 맞은 로마의 ‘민심民心’은 변덕이 죽 끓듯 한다. 민심은 천심(天心)이라는데, 민심이 그리도 변덕스러운 것이라면 천심도 그렇게 변덕스러운 것인가 보다. 로마로 입성하는 코모두스를 시민들은 침묵 속에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못마땅한 얼굴로 맞는다. 찬바람이 싸하다. 그랬던 로마 시민들은 코모두스 황제가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폐지해버렸던 콜로세움 검투경기를 부활시켜 신나는 ‘즐길거리’를 제공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얼굴을 펴고 환호한다. 손을 흔들며 콜로세움 경기장에 입장하는 코모두스를 향해 야유 대신 환호를 보낸다. 능라도 경기장에 입장하는 김정은을 향해 열광하는 평양시민들의 모습이다. 찬바람은 그렇게 봄바람으로 바뀐다. 눈 녹듯 녹은 민심 덕분에 자리를 잡을 것 같았던 코모두스의 치세는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검투 노예’ 막시무스 한명의 등장으로 한순간에 뒤집힌다. 그러자 봄바람으로 변했던 민심이 찬바람을 넘어 광풍으로 돌변한다. 황제에게 열광했던 시민들이 한순간에 변해서 황제를 죽이러 돌아온 막시무스에게 열광한다. 그러나 코모두스의 몰락을 갈망하던 ‘민심’도 잠시뿐이다. 정작 코모두
코모두스는 아버지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목졸라 죽이는 ‘궁중 정변’을 저질러 새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최악의 쿠데타다. 역사적으로 권력을 둘러싼 부자관계는 항상 아슬아슬하다. 부자지간에도 공유할 수 없는 것이 권력이다. 그만큼 권력은 살벌하고 무서운 거다. 아무리 부자지간에 벌어진 일이라 해도 삼엄한 경비가 이뤄지는 황제의 막사에서 황태자가 황제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인다는 건 불가능할 듯하다. 권력자의 주변 인물들은 사건의 전말을 눈치채고 있었겠지만 모두 침묵한다. 황태자인 코모두스가 결국 새 황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침묵하기도 하고, 무력감에 침묵하기도 하고, 괜히 입을 놀렸다가 곤욕을 치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눈을 감기도 하고, 새 황제의 시대에 새로운 기회를 기대하고 침묵하기도 한다. 모두 그렇게 침묵하는 가운데 코모두스의 ‘어쩌다 쿠데타’는 정말 성공한다. 불의(不義)한 권력 탄생의 전형적인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야 겨우 말에 오를 정도로 연로하며, 전쟁을 부도덕한 것으로 여기면서 진저리를 치는 데다 철학이 본업인 듯한 황제는 전쟁이 자주 일어나야 부와 권력이 커지는 군부에서 환영받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막시무
영화 ‘글래디에이터’ 최고의 빌런은 분명 코모두스인데, 다른 영화들의 ‘빌런’들과는 달리 괜히 짠한 느낌이 든다. 코모두스를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라는 배우의 느낌 자체가 왠지 쓸쓸하고 슬퍼보여서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코모두스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대강 헤아려 보아도 다섯번의 ‘배신’에 놀라고 슬퍼하고 당황하고 좌절하고 분노한다. 세상의 이치라는 게 원인이 결과가 되고, 결과가 또 다른 원인이 되는 것이라면 코모두스는 ‘빌런’이기 때문에 배신당하고, 배신당해서 더욱 ‘빌런’이 되는 듯하다. 굳이 분류하자면 코모두스는 ‘안습형 빌런’이다. ■배신❶ = 게르만과의 처절한 전투가 다 끝나서야 전선에 도착한 코모두스는 막시무스 장군에게 ‘내가 다음 황제가 됐을 때도 지금 아우렐리우스 황제에게처럼 충성하고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막시무스는 코모두스의 진정 어린 부탁에 ‘이번 전투가 마지막이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농사나 지으며 살겠다’고 코모두스 황태자의 청을 거절한다. 막시무스를 형제처럼 아끼고 가깝다고 믿어왔던 코모두스에게는 더 이상 당황스러울 수 없는 ‘배신’으로 받아들여진다. ■배신❷ = 코모두스는 막시무스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아우렐리우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막시무스와 함께 음산하기 짝이 없는 지금의 오스트리아 어디쯤에서 게르만과의 전투를 지휘해 대승을 거둔다. 하지만 황태자 코모두스는 전투가 끝난 뒤에야 전선에 도착해 설친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코모두스에게 “황제 자리를 막시무스에게 물려준다”고 통보한다. 분노한 코모두스는 아버지를 목 졸라 죽인다. 아버지와 막시무스가 이뤄낸 승리의 영광을 모두 가로챈 코모두스는 황제의 자리에 올라 꽃을 뿌리며 로마로 개선한다. 그러나 길에 늘어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표정은 무표정하거나 냉랭하다. 몇몇은 난생처음 보는 불쾌하고 불길한 짐승을 대하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코모두스의 로마 입성 장면을 잿빛으로 처리한다. 분명 화창한 날씨인데 화면은 음산하다. 잿빛 화면 속에 흩날리는 붉은 꽃잎들이 방사능 낙진처럼 음산하기 짝이 없다. 코모두스는 원로원 앞에서 마차에서 내린다. 새 황제를 맞이하는 원로원 의원들의 표정은 시민들만큼이나 떨떠름하다. 코모두스는 족히 50여개는 돼 보이는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원로원 의원들은 까마득한 계단 위 입구에서 새 황제 코모두스를 기다린다. 아무도 계단을 내려가 황제를 맞이하거나 에스코트하지
콜로세움에 모인 로마 시민은 ‘찝찝한’ 새 황제 코모두스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기획한 ‘자마 전투’의 재연에서 ‘한니발의 야만군대’를 이끌고 스키피오의 로마군단을 쳐부순 우두머리가 다름 아닌 로마의 위대한 장군이었던 막시무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로마 시민은 막시무스에게 열광한다. 스키피오 로마군단의 전멸이라는 ‘라이브 콘서트’의 ‘공연 참사’에도 아랑곳 않는다. 그날로부터 로마에 ‘막시무스 열풍’이 몰아친다. 노예검투사 막시무스가 검투경기에서 그들의 황제 코모두스를 조롱하고 무참하게 죽여버리는 꼭두각시 놀음까지 거리에서 벌어진다. 당황한 코모두스는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진다. 막시무스에게 열광하는 시민들에 섭섭하다 못해 분노하고, 막시무스의 등장으로 뭔가 변화를 기대하고 술렁이는 원로원도 괘씸하다. 더욱이 한때 막시무스의 연인이었던 사랑하는 누이 루실라도 코모두스를 미치게 한다. 실망, 분노, 증오, 질투가 뒤범벅이 돼 코모두스를 짓누른다. 황제의 공연기획 자문위원 카시우스가 또 한번 묘책을 올린다. 막시무스를 역사상 유일무이한 무패의 기록으로 은퇴한 최강의 검투사 티그리스와 대결시켜 로마 시민 앞에서 정당하게 제거하자는 게 묘책의 골자다. 만약의 경우
로마의 전쟁 영웅 막시무스는 코모두스의 계략에 빠져 처형당하기 직전 극적으로 탈출한다. 어깨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가족이 있는 스페인 고향집까지 말을 몰아 달려간다. 지금으로 치면 오스트리아 어디쯤에서 스페인까지 말 타고 달려간 셈이니 대단하기는 하다. 하지만 고향집은 막시무스를 절망에 빠뜨린다. 불행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아내와 어린 아들은 이미 코모두스가 보낸 군인들에게 살해됐다. 아무리 미워도 가족은 건드리는 게 아니다. 코모두스는 선을 넘었다. 이제는 갈 데까지 갈 수밖에 없게 됐다. 아내와 아들을 묻고 정처 없이 길을 떠난 막시무스는 얼마 못 가 황야에서 탈진해 쓰러지고 만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노예사냥꾼 무리가 막시무스를 발견해 ‘주워’간다. 거의 숨만 붙어있는 상태였지만 노예사냥꾼들은 놀라운 ‘선구안’으로 치료만 잘하면 쓸 만한 ‘검투노예’가 될 재목임을 알아챈다. 노예사냥꾼에게 사냥당해 끌려가던 주바(Juba)는 썩어가는 막시무스의 상처에 ‘구더기 치료’를 해준다. 구더기는 모양새가 고약하긴 하지만 고름만 빨아먹고 항생물질을 분비해주는 신통한 벌레라고 한다. ‘구더기 치료’는 19세기 유럽에서 개발돼 미국 남북전쟁 당시 수많은 생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글래디에이터’는 재미와 흥미를 위해 역사적 사실에서 상당 부분 일탈해 있다. 하지만 ‘미장센(mise-en-scene)’ 역시 의도적으로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왜곡이라기보다는 보정(補正)에 가깝다. ‘글래디에이터’를 제작할 때 자문역으로 참여했던 로마사를 전공한 다수의 역사학자는 ‘미장센’ 문제 때문에 중간에 자문역을 내던지거나, ‘엔딩 크레딧’에 본인 이름이 오르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 이유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게 아니었다는 건 흥미롭다. 로마사 전공 역사학자들은 코모두스 황제가 아버지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목을 졸라 죽였다는 역사 왜곡은 눈감아줄 순 있어도 장면 구성의 왜곡은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스콧 감독과 역사학자들이 부닥쳤던 ‘미장센’의 문제는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는 검투사 시합의 ‘사실성’이었다고 한다. 검투사들의 무기나 복장은 철저히 고증을 따랐지만 문제가 된 지점은 검투사들이 경기장에 광고판을 들고 입장했다는 역사적 사실의 채택 여부였다. 로마시대 검투시합에서 검투사들이 경기가 시작되기에 앞서 요즘의 ‘샌드위치맨’처럼 몸에 광고판을 메거나 들고 관중석을 돌았던 건 로마시대 기록과 프레스코
코모두스는 게르만족과 대치 중인 전선의 군막(軍幕)에서 아버지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교살하고 황제 자리에 올라 로마에 입성한다. 아버지를 죽인 코모두스의 로마 입성 행진은 화려하고 장엄하기 그지없다. 유럽정복에 나선 히틀러가 베를린 개선행진 행사의 모델로 사용했다는 그 유명한 장면을 천재 감독 리들리 스콧이 재현해준다. 아버지를 죽이고 황제 자리를 찬탈한 코모두스는 로마에 장엄하게 들어온다. 그 장엄함은 아버지를 죽이고 돌아온 코모두스가 지구 끝까지 정복하고 돌아온 개선행진인 줄 착각할 정도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다. 로마 시민들이나 원로원 모두 뭔가 석연치 않고 찝찝해한다. 로마 시민들과 원로원 의원들의 냉랭함에 코모두스는 뻘쭘하고 불안하다. 정통성을 의심받는 독재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카드가 3S 정책(Sportsㆍ ScreenㆍSex)이다. 시민들에게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정치보다 더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3S를 제공해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게 ‘우민화(愚民化) 정책’의 골자다. 가령, 전두환 정권도 기획했던 3S의 원형은 포르투갈 독재자 안토니우 살라자르(Antonio Salazar)의 1930~1960년대 독재정치를 떠받쳐
황제이자 아버지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살해한 코모두스에 의해 처형되기 직전 극적으로 탈출한 막시무스는 황야에서 정신을 잃는다. 노예상인이 막시무스를 ‘주워’ 북아프리카 검투사 에이전시에 넘긴다. 로마 최고의 장군이었던 막시무스에게 시골 검투경기 정도는 ‘껌’이다. 훈련이나 연습경기도 건너뛰고 곧바로 프로 데뷔한다. 막시무스는 지금의 모로코나 알제리 어디쯤으로 보이는 사막의 장터에 흙으로 지어진 조악한 원형경기장에서 데뷔한다. 노예상인들이 주워오거나 사오거나 사냥해온 노예 검투사들이 서로를 아무 이유 없이 죽고 죽이는 살육극을 기대하는 관중들의 눈빛이 폭력을 갈망하는 ‘욕정’으로 이글거린다. 경기장에는 이미 살육자들이 기괴한 가면과 복장을 하고 어마무시한 무기를 휘두르며 희생양들을 기다리고 있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통로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줄지어 선 검투사들의 모습은 사형 순서를 기다리는 죄수들 같다. 이제 곧 지옥문이 열릴 것이다. 한 선수는 덜덜 떨며 흙바닥에 오줌을 질질 싸고 있다. 인간이 즐거움을 위해서 다른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다. 오줌 싸던 선수는 문이 열리자마자 철퇴에 맞아 죽는다. 차례차례 배가 갈라지고, 목이 잘리고, 머리
명장(名匠) 리들리 스콧이 만든 ‘글래디에이터(Gladidatorㆍ2000)’는 명장의 작품다운 명품이다. 그해 아카데미 영화상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남우주연상, 작품상을 포함한 5개 부문을 휩쓸어버린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오로지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다. 뛰어난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는 항상 조심스럽다. 뛰어난 이야기꾼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허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그럴듯하게 버무리는 재주를 지녔다. 사기꾼의 자질이기도 하다. 분명히 이어붙였는데 그 자국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실로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참고: 선녀(仙女)의 옷에는 바느질한 자리가 없다는 것으로, 성격이나 언동 등이 매우 자연스럽다는 의미.] 영화의 ‘스토리’는 이렇다. AD 180년께, ‘망조’가 깃들기 시작하는 로마제국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게르만 원정에 나서 막시무스 장군을 앞세워 승리를 거둔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아들(코모두스)이 아닌 충직한 장군 막시무스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려 한다. 분노한 코모두스는 아버지를 목 졸라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당연히 막시무스 일가족을 몰살시키려 한다. 아내와 아들은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