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은 이틀 앞둔 13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에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5) 할머니가 찾았다. 대구시에서 내려 온 이 할머니는 경기도 나주시 소재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강일출, 김옥선 할머니와 함께 4.3평화공원을 찾았지만, 강 할머니와 김 할머니가 약 때문에 병원을 다녀와야 해서 혼자 위령제단에 올라 참배를 했다.
이 할머니는 4.3평화 기념관에서 직접 위령제단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그는 위령제단 앞에서 분향을 한 뒤 두 손을 모아 큰절로 4.3영령들의 명복을 빌었다. 명복을 빌면서 “오빠도 6·25 한국전쟁 당시 양민학살로 죽었다”며 “이분들(4·3희생자들)에게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제단 앞에 잠시 서 있으면서 자신이 아픔을 풀었다. 또한 일본에 대한 원망도 빼놓지 않았다.
이 할머니는 “15세 때 끌려가서 대만 신주 가미가제 부대로 갔다. 왜 끌려갔는지 몰랐다. 300명이 탄 배에 저 같은 소녀 5명이 탔다. 배에서 그들은 갖은 학대와 행동을 저질렀다. 일본군이 노래를 가르쳐 줬기 때문에 대만 신주인줄 알았다”며 아픈 과거를 기억했다.
이어 그는 “대구에서 서울 일본 대사관까지 20년을 넘게 오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앉아 있으면 어린 학생들도 온다. 일본놈들이 왜 그랬는지 몰랐다. 일본군이 위안부라고 했다. 저는 위안부가 아닌 부모가 지어준 ‘이용수’다. 그런데 저들은 나를 끌고 가서 위안부로 만들었다. 위안소. 일본이 자백을 했다. 그렇고도 아직까지는 망언을 하고 있다”고 일본을 성토했다.
더욱이 이 할머니는 “저는 결코 (일본을)그냥두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사죄 받고 법적인 배상을 받을 것이다. 끝까지 싸우겠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굳은 다짐을 했다.
특히 이 할머니는 최근 일본 극우인사가 일본 대사관 앞에 세워진 위안부 동상 앞 말뚝사건에 대해 분노를 표시했다.
아울러 이 할머니는 “결코 역사의 산 증인으로 오늘도 제주에 와서 저는 일본을 고발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할머니는 이어 위패 봉안소에 들어가 방명록에 “사랑하는 제주시민 일제강점화 피해자들 살아 있을 때 해결하도록 힘 모아 주십시오.”라고 글을 남겨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관심을 호소했다.
그는 위패 봉안소 내 안내판을 쓰다듬고 입을 맞추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한편 13일 아침 5시30분부터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일출봉 일원에서 자원봉사단체 ‘참밍’의 주관으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무관심을 반성하는 ‘평화기원 참회의 20만 배(拝)’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어 14일에는 성산일출봉 일대에서 평화기원 성산일출봉 걷기대회와 전쟁과 평화 사진 전시회, 평화기원 문화공연 등도 진행된다. 이날 오후 4시에는 참가자들이 모여 평화기원 선언문도 낭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