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종시 추모의 집에 임시 안치된 유해 약 4000구를 화장해 합사하려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4·3희생자유족회는 정부의 계획이 유족들의 마지막 희망을 앗아간다며 강력히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제주 4·3희생자유족회는 21일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안전부의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 유해의 집단 화장 및 합사 계획’을 규탄했다.
유족회에 따르면 세종시 추모의 집에 안치된 유해들은 대전 골령골, 경산 코발트 광산 등지에서 발굴된 것으로 이들 지역은 4·3희생자 다수가 집단 학살돼 암매장된 곳이다. 지난 2022년부터 유해에 대한 유전자 감식이 진행됐다. 아직 대다수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4·3희생자 중 다수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대전형무소, 대구형무소, 김천형무소 등에 수감되었다가 이승만 정권의 명령으로 집단 총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2023년 대전 골령골에서 발굴된 일부 유해는 실제로 4·3희생자로 확인된 바 있다.
유족회는 "정부의 화장 및 합사 계획은 유족들이 오랜 세월 흘려온 피눈물을 외면하는 처사"라며 "4·3희생자의 신원이 확인되더라도 고향 제주로 돌아오는 길이 영원히 가로막히게 된다"고 비판했다.
유족들은 정부가 일괄 화장 및 합사를 강행할 경우, 희생자 신원이 확인된 유해조차 개별적으로 고향으로 돌려보내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는 유족들이 오랜 시간 간직해 온 마지막 희망마저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4·3희생자 유해와 관련해서는 4·3특별법에 따라 제주4·3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통해 매장 및 처리 절차가 이루어져야 한다. 유족회는 행안부의 이번 계획이 특별법의 취지를 훼손하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유족회는 "국가폭력 희생자의 유해를 단순히 일괄 처리하려는 것은 역사적 비극을 기억하고 치유할 기회를 외면하는 것"이라며 "정부는 희생자들의 유해를 존엄히 다루고 유족들의 목소리를 수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족회는 이번 계획 철회를 촉구하며 정부가 아우슈비츠 수용소나 캄보디아 킬링필드처럼 희생자 유해를 보존하고 후세대에 역사를 교육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제라도 행정안전부는 지금의 계획을 즉각 철회하고 4‧3희생자유족회를 비롯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관련 유족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수렴할 것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