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당시 광주형무소로 끌려간 그들! 그 수형인들의 유해가 70여년만에 고향 땅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8일 제주도에 따르면 옛 광주형무소(현 광주교도소)에서 발견된 무연고 유해 262구의 유전자 정보가 5·18기념재단 등으로부터 제공돼 현재 서울대 법의학연구소가 제주4·3 유가족의 DNA와 대조하여 신원 확인 절차를 진행 중이다.
해당 유해는 2019년 12월 광주시 북구 옛 광주형무소 부지 정비 과정에서 대규모로 발굴됐다. 발굴 당시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행방불명자로 추정돼 감식이 이뤄졌다. 그러나 5·18 유족과의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제주4·3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에 따르면 당시 제주에서 수형인들이 광주형무소 등 전국의 형무소로 이감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제주4·3 수형인의 유해는 아직 발굴된 바가 없다.
도는 지난해 10월 대전형무소 수감자들의 집단 총살지인 대전 골령골에서 제주4·3 희생자인 고(故) 김한홍(1923년생)씨의 유골을 확인한 바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이르면 연말이나 내년 4월 제주4·3 희생자 추념식 이전에 신원 확인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며 "광주형무소에 제주4·3 희생자가 수감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다른 형무소에서 제주4·3 유해가 발굴된 사례도 있어 이번에도 신원 확인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제주시 화북동 화북천(2006년), 제주공항,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2021년), 안덕면 동광리(2023년) 등지에서 유해를 발굴해 전체 413구를 수습했다. 지난 2월 기준 대전 골령골에서 신원이 확인된 1명을 포함해 모두 144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제주4·3특별법에 따르면 제주4·3은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서 발생한 경찰 발포로 인한 민간인 사망을 계기로 저항과 탄압이 이어지면서 1948년 4월 3일 봉기에서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령 해제까지의 무력 충돌과 공권력에 의한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이 집단 희생된 사건'을 의미한다.
제주4·3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에는 2530명의 이름이 기록돼 있다. 이 중 약 70명이 광주형무소로 이감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