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선 지표면에 뻥 뚫린 구멍을 ‘숨골’이라 부른다. 숨골이란 머리 정수리 숨 쉬는 구멍이란 뜻이다. 그런데 ‘숨골’을 제주어 사전에서 찾아보니, 없었다. 숨골은 표준어였다. 숨 쉬는 구멍을 뜻하는 숨골은 오히려 경상도 지방의 방언에서 유래한 말이고, 제주에서는 ‘숨굴’이거나 ‘숭굴’이라고 불렀다. 이 이름들 속에서 ‘굴’이라는 글자에 주목하게 되었다. ‘숨 쉬는 굴’이라면 동굴 밖에는 없지 않은가. 숨굴은 지하의 용암동굴과 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 삼성혈에 있는 세 개의 구멍도 실은 지하의 용암동굴과 연결되어 있는 일종의 ‘숨굴’이다. 눈이 오더라도 쌓이지 않는다. 지상부 구멍이 지하의 동굴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겨울엔 따뜻한 공기가 올라오기 떄문이다. 제주의 탄생설화가 깃든 고양부 삼성신화는 제주 선사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안전한 주거지였던 동굴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숨굴’은 지하수와 관련된 이름이다. 비가 많이 왔을 때 지표수가 지하로 스며드는 ‘싱크홀(sink hole)’의 기능을 갖는다. 지표수가 지하로 함양되는 물길이자 구멍인 것이다. 제주에선 비가 많이 오더라도 순식간에 지하로 빠져 버리는데, 지하에 공간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지하에 있을 동굴을 거론하지 않고는 이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화산지질학적으로 ‘숨굴’은 용암동굴의 ‘천장창(skylight)’으로 정의한다. 화산 분출 당시 오름 분화구에서 흘러나온 용암류는 마치 강물과 같이 수로를 만들며 하류로 흘러간다. 섭씨 1000도에 가까운 뜨거운 용암류는 용암이 흘러가는 길을 따라 동굴을 만든다. 바닥의 암석을 녹이기도 하고 동굴 속에서 천장에 달라붙기도 한다. 용암의 공급이 끝나면 용암이 흘렀던 지하 유로는 텅 빈 공간으로 남게된다. 용암동굴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제주의 많은 용암동굴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용암이 식어 동굴이 형성된 직후에 동굴의 천장과 벽은 깨지기 쉽다. 이는 지표에 노출된 용암의 표면이 먼저 식어서 암석화되는 과정에서 아직 지하의 동굴에서는 뜨거운 용암류가 온도를 유지하며 계속 흐르기 때문이다. 아직 덜 굳어진 용암류가 움직여서 지표면의 암석에 균열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동굴을 탐방하다보면 내부에 암석이 떨어져 쌓여 있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 후에도 동굴 천장과 지표가 얇은 곳에서는 암반이 붕괴되어 창이 생기게 된다. 깜깜한 동굴 내부를 걸어가다 보면 마치 서치라이트를 비추는 것처럼 천장에서 엄청난 빛이 들어오는 곳이 있다. 이것을 천장창이라 부른다.
그러나 지표수 함양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숨굴에 대해선 위치를 비롯하여 데이터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족히 수 천 개로 예상되는 숨굴은 오랜시간 방치되었고, 오히려 축산폐수를 지하로 배출하는 곳으로, 폐수를 지하로 감춰버리는 구멍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제주 지하수의 특성상 암반에 버려진 폐수는 수십 년 후에 대수층을 투과하여 지하수나 용천수로 나오게 된다. 제주는 물의 순환 경로상 모든 섬 주민이 한 그릇의 물을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오래전 몰래 버려진 폐수는 이러한 경로로 고스란히 우리 입속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최근엔 중산간 개발로 토지이용이 다양화됨에 따라 그간 아무 오염원이 없는 곳에서 지표수를 함양해온 숨굴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당 토지주들은 사유지 토지이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숨굴을 메워버리거나 은폐하기도 한다. 숨굴은 생명의 근원이되는 물과 직접 관련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은폐와 방기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최근에야 숨골에 대한 조사를 할 수 있는 근거가 특별법에 마련되었다. 이미 많이 유실되었지만 남아있는 숨굴이라도 체계적인 조사를 통해 유용하게 이용되어야 할 것이다.
숨굴이란 이름에서 ‘굴’에 해당하는 제주도 용암동굴은 200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말 그대로 드러나서 알려진 수치에 불과하다. 지하에 얼마나 많은 동굴이 얼마만큼의 길이로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최근 구좌읍 월정리에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지질트레일 경로에 '진빌레'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 제주 동부하수종말처리장 상류에 위치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들으니, 과거에 까만 현무암 빌레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감저 빼대기’라고 하는 전분을 만드는 원료인 고구마 절간을 너럭바위 위에서 말리던 곳이었다고 한다.
또 지난 여름 호우에 밭의 토양이 지하로 유실되어버린 일도 있었다. 마치 숨골과 같이 농토가 지하로 빠져버린 것이다. 밭 주인에 의하면 이 밭은 빌레 위에 부직포를 깔고 그 위에 모래가 섞인 주변의 흙을 30 센티미터 정도 덮은 후에 마늘을 심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하로 흙이 유실되어 버린 것이다. 현무암 암반 밑에 어떤 공간이 있길래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월정리 주민은 ‘이곳 주변은 지하가 그냥 다 동굴’이라고 해야 맞는 표현이라고 했다. 그만큼 동굴이 많다는 것이다. 용천동굴 하류인 이곳에서 지하를 상상해보았다. 텅 빈 지하 환경에도 불구하고 지상부에서는 그것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우리는 보이는 지상부 세계에서 모든 토대를 동일한 조건으로 상정하며 개발하고 사업을 벌인다. 이렇게 계속해도 되는걸까?
12월 11일까지 만장굴에서는 미디어맵핑 행사가 열렸다. 그 기간에 동료시민들과 만장굴을 찾았다. 제주의 공동인 용암동굴의 환경을 염려하는 시민들의 질문에 힘입어 미디어맵핑 행사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인근 용천동굴은 세계적인 자연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자랑한다. 그러나 일주도로 건너 해안가 하수종말처리장에서는 월정리 해녀들의 농성이 몇 년 째 이어지고 있다.
제주 제2공항 부지에 ‘온평리’라는 마을이 있다. 온평리에 위치한 ‘혼인지’는 제주의 또 다른 탄생설화다. 삼성(三姓)씨가 바다 건너 온 세 공주와 혼인을 맺고 신방을 차렸다고 전해지는 ‘신방굴’이 있는 유적지다. 온평리를 ‘열운이’라고 부른다. ‘열운이’는 남녀 사이를 맺어준다는 의미의 ‘열우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빌레 용암으로 되어 있어 온평리는 매우 넓고 평평한 지역으로 일대의 지질학적 조건을 무시한 채로 본다면 공항 활주로 건설이 쉬워보이는 땅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이 있다. 일대는 비가 많이 오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홍수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우수의 배출 통로가 될 하천도 없다. 그렇다면 그렇게 많은 강우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가서 보니 밭마다 작은 구멍인 숨굴을 통하여 지하로 배수되고 있었다. 지하에 도대체 어떤 공간이 있길래 이렇게 많은 빗물이 들어가버리는 것일까. 동굴 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2019년, 동료시민들이 온평리를 비롯하여 인근 난산리와 수산리를 걸어서 조사했다. 순식간에 130여 곳의 숨굴을 발견해 도면에 표시했다.
그런데 제2공항 환경영향평가서는 서울의 전문기관에서 조사했는데 8곳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해당 장소를 가보니 모두 밭 사이의 덤불 숲이었다. 제주의 숨골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조사한 것이다. 어떻게 조사했는지 물어보니 농로를 따라 차를 타고 가면서 덤불을 숨골로 표시했다고 하였다. 이런 거짓말 평가서를 가지고 국책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와 육지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특히 자연환경은 물론 땅 자체가 다르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법을 가지고 제주에 적용하면 안 되는 이유다. 더이상 거론할 가치도 없이 제2공항 평가서는 거짓이다.
숨굴은 지하의 용암동굴과 관련되어 있고, 지하수와 관계되어 있다. 화산섬 제주의 표면은 흙이 거의 없는 현무암 빌레다.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화산암 지대에는 지하자원이 없다. 그야말로 불에 타버린 화산의 땅이다. 대신 암반을 통과한 깨끗한 지하수가 만들어진다. 제주의 물은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 경로의 첫 단계에서 숨굴이 지상의 물을 지하로 이동시키는 통로가 된다. 숨굴을 통과한 물은 지하 대수층을 거쳐 해안에서 용천수로 솟아나온다. 해안가를 따라 사람들이 살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숨굴 없이 제주의 생명생태계는 가능할 수 없었다.
숨골처럼 그야말로 생명의 통로인 이것의 이름을 제주만의 화산지질학적 구조에 근거해 호명된 제주어 이름 ‘숨굴’로 부르는 것을 제안한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