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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동굴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동굴에 해를 끼치겠다는 제주세계자연유산본부

 

제주도 세계유산본부가 11월 12일 토요일부터 한 달 동안 만장굴에서 미디어맵핑(Media Mapping) 쇼를 선보일 것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이번 행사는 만장굴 내 공개구간에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을 소재로 미디어맵핑 공연을 열고 시민들이 표를 구매해서 관람하는 프로그램인 것으로 보도되었다.

 

미디어맵핑은 프로젝터를 이용해 건물 외벽 등을 스크린으로 사용하는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의 일종으로 지형 오브제 등에 세밀한 가상현실성을 구현하기 위해 다수의 프로젝션과 조명, 고출력 음향이 설치되어야 한다. 발생하는 열과 소음, 진동때문에 미디어맵핑 대부분은 야외에서 실행된다.

 

그런데 이런 미디어쇼를 세계자연유산 용암동굴 내부에서 굳이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계자연유산으로 보존되고 관리되어야 할 용암동굴을 그저 스펙터클을 소비하기 좋은 관람대상이나 상품으로만 이용하는 것에 유산본부의 고민은 없었나?

 

유산본부 측과 통화가 끝난 뒤, 천연동굴 보존·관리 지침을 찾아보았다. 관리지침 제15조(조명시설 설치 시 고려사항)는 동굴 내 조명시설 설치와 관련해 조명의 조도를 최대한 낮추고 열의 발생이 적은 조명을 사용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조명에 색을 넣는 것도 지양해야 하며, 조명의 조도를 최대한 낮추고 열의 발생이 적은 조명을 사용해야 하고, 구체적으로 조명에 갓을 설치하여 조명이 비추는 방향에만 빛이 도달할 수 있도록 하도로 정하고 있다. 심지어 공개구간이더라도 관람객이 없을 때는 항상 소등상태를 유지하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런 내용들은 사실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럼에도 이를 철저히 준수해야하고 관리의 책임이 있는 제주세계자연유산본부가 앞장 서 동굴에 위해를 가하고 있다.

 

위험에 처한 세계자연유산 용암동굴들

 

지난 8월 말에 만장굴에 갔었다. 동행했던 지역의 지질 전문가가 작은 손전등으로 동굴 천정과 벽 등을 비춰보곤 하였다. 이미 (화려한) 조명이 설치된 동굴 안에서 렌턴을 사용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곧바로 어떤 지점을 보여주었다. 동굴 벽에 금이 가 있다. 용암류의 자연스러운 절리가 아니라 균열이었다. 내·외부의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충격에 의해 동굴 벽이 갈라지는 정황으로 보였다. 제주지질연구소 강순석 소장은 ‘동굴 내부 벽에 금이 간 것은 동굴 상부(지상부)에 공사가 있거나 도로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뜻 한다’고 현장에서 우려를 표했다.

 

 

제주 용암동굴 붕괴는 이미 2016년부터 제기되어온 문제다. 물론 문제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당시 제주동굴연구소(소장 손인석) 조사에 따르면, 천연기념물인 만장굴과 수산굴을 포함해 10개 동굴이 천장의 붕괴 또는 함몰단계에 놓여 있었다. 탐사권역에 포함된 천연기념물 동굴 6개 가운데 55개 구간이 위험 구간으로 확인됐는데, 용암동굴의 훼손과 붕괴 이유는 도로공사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월정리 만장굴 용천동굴 일대에도 도로가 많고, 용천동굴 위로 일주도로가 지나가는 실정이다. 지난봄에 한 매체가 용천동굴 상류가 지나가는 지상부 일주도로 차량 속도 문제를 지적했고, 시민들의 잔소리 끝에 최근에서야 제주도는 용천동굴 일대 도로에서 차량 속도를 줄이려고 단속하는 것으로 안다. 만장굴 입구 근처 용천동굴이 발견된 지점 도로 건너편 길가엔 함몰이 진행 중인 곳이 있다.

 

만장굴 공개구간 끝 용암석주 위치의 천정은 이중으로 되어있고, 일부 붕괴된 곳을 시멘트로 고정해놓았다. 거기다가 입구에서부터 오색찬란한 조명으로 노래방 분위기를 만들어놨다. 급기야 동굴 내부에 미디어 랩핑 쇼를 한다면서 많은 양의 전력가동과 조명작업을 예고하고 있다.

 

 

세계자연유산 훼손 우려와 비판에도 끈질긴 도전 끝에 미디어 공연을 성사시킨 제주세계자연유산본부

 

제주세계자연유산본부에 문의한 결과, 이번 미디어맵핑 공연은 두 차례 이상 지역주민 및 시민의 거센 비판과 반대를 받아 무산된 사업이었다. 지난 여름에 거문오름에서 하려다 못한 그 사업이 맞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 사업은 지난여름에 제주세계유산본부가 거문오름에서 ‘세계자연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다가 선흘2리 주민들의 비판을 받고 포기한 사업이다.

 

철저하게 예약제로 통제해 오던 거문오름을 야간에도 탐방하게 하고 버스킹 공연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산본부가 계획한 이 사업의 기간인 8~10월은 세계자연보존연맹(IUCN)이 지정한 국제보호종 멸종위기 조류로서 인근에 서식하는 팔색조와 긴꼬리딱새 등이 거문오름에서 산란하고 번식하는 시기였다. 국제보호종 동·식물을 보호해야 할 세계자연유산본부가 세계자연유산 홍보를 이유로 서식지에 빔을 쏘고 고출력입체음향으로 이들을 괴롭히려는 것에 선흘2리 마을회가 강력하게 사업의 취소를 요구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전에 이 사업은 지난해 성산일출봉에서 추진됐다가 세계자연유산 파괴 및 멸종위기 조류인 매의 서식처 파괴, 주민 피해 등을 우려한 언론, 환경단체, 지역주민의 거센 반대를 받고 물러난 그 사업이기도 하다.

 

그간 세계자연유산본부는 지역주민과의 소통을 위해 7개 세계자연유산마을 이장들로 구성된 협의회와 회의를 열고 본부가 추진하는 사업을 소개하고 의견을 청취하게 되어 있다. 선흘2리 이상영 이장에게 알아보니 지난해에는 협의회가 수시로 열려 세계자연유산축전 추진상황과 평가, 유산마을과 협력 방안 등을 지속적으로 논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는 4월까지 협의회가 열리지 않아서 유산본부에 요청해서 11월 현재 두 번의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이번 만장굴 미디어맵핑 공연의 경우도 세계유산본부는 김녕리와는 협의했다고 밝혔으나, 만장굴의 주소지는 월정리에 속해 있고(월정리 산41-5) 월정리를 포함해 세계유산마을협의회와 당연히 논의했어야 할 사안이었다. 이런 사업들이 과정에서 드러났다면 사전에 이런 무리한 사업에 제동이 걸렸을 것이다. 온라인 예매 사이트에 올라온 내용을 보면 만장굴이 어떤 상품처럼 느껴져서, 모멸감이 들 정도다.

 

 

세계자연유산관리 비전을 질문해야

 

변덕승 현 세계유산본부장은 이번 행사에 대해 “세계자연유산 만장굴에서 지리학적, 환경적 가치를 계승하고 자연 친화적 기술을 융합한 최초의 행사로 자연적 가치를 지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전했다는데, 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일단 이해할 수가 없다. 누가 해석을 좀 해주면 좋겠다. 자연적 가치는 이미 시민들이 충분히 알고 있으니. 좀 그만 훼손하고 보존과 관리에 힘써 주시면 좋겠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제주의 세계자연유산본부장은 길게는 1년, 짧게는 6개월 간격으로 자리를 옮긴다. 공무원들에게 그럴듯한 자리만 만들어주느라 정작 장기적인 비전도 없이 그때그때 이벤트에만 몰두하는 건 세계유산본부만의 현실은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세계유산지구 내 돌이키기 어려운 훼손, 거문오름계 용암동굴 핵심 구역인 월정리에 위치한 대형하수처리장 증설에도 한마디 의견도 못 내고 있지 않은가 싶다. 세계자연유산의 보존관리와 발굴엔 태만하고, 관광지 활용에나 진심 쏟는 제주세계자연유산본부의 무책임한 행보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스스로에게 세계자연유산관리 비전을 질문하기를 권한다. /엄문희 제주진실탐사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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