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5 (일)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Zoom in 제주] 임형묵 자연다큐멘터리스트 ... "생태의 시작은 가장자리부터"
"생물다양성 밀집된 제주바다 ... 경험.질문 통해 고유가치 인식해야"

 

조수웅덩이. 적어도 제주에 사는 사람이라면 낯설지 않은 단어다.

 

바다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있는 조간대이지만 화산섬인 제주의 조간대에는 유난히 웅덩이가 많다. 흘깃 보면 보통 물웅덩이와 다를바가 없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은 이곳을 지나쳐버린다.

 

하지만 지나치는 사람들 속 다이빙수트를 입은 남자가 얕은 웅덩이에 가만히 엎드려 있다. 앞으로 뻗어있는 두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다. 뷰파인더를 통해 그의 눈에 들어온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해양생물 다큐멘터리 프로덕션 ‘깅이와 바당’ 대표 임형묵(55) 감독.

 

임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 ‘조수웅덩이 : 바다의 시작’ 연출·제작자다. 2017년부터 2년간 제주바다 조간대의 다양한 생태를 담은 이 작품은 제17회 샌프란시스코 국제해양영화제에 한국작품으로는 처음으로 초청됐다.

 

이 밖에도 KBS파노라마 ‘대양을 담은 바다 조수웅덩이’, KBS와일드맵 ‘풍덩, 달의 정원으로’, MBC 느림의 미학 제주 올레 12부작, EBS 하나뿐인 지구 ‘자연의 길 올레’ 외 10여편, KBS환경스페셜 '섬으로 간 물고기' 등.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이 카메라를 통한 그의 시선으로부터 나왔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영화과를 졸업했다. 30여년 동안 카메라를 들어온 그에게 ‘감독’이란 호칭은 익숙하다. 한국독립PD협회 지난해 ‘이달의 독립PD상’을 받을 만큼 업계에서 인정하는 베테랑 감독이기도 하다.

 

그는 왜 제주에서 자연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걸까?

 

 

◆ 네살부터 꿈꾸던 다큐멘터리스트 … 어린시절 추억 속에 빠짐없던 물고기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무거운 장비를 메고 바닷속을 촬영하는 스쿠버다이버. 뒷면이 튀어나온 흑백티비를 넋놓고 봤던 네 살이었다. 티비에 나오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였지만 그 당시 다짐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아버지가 강가에서 낚시를 하는 동안 송사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찰하던 유치원생,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마당에 있었던 조그만 연못을 몇시간씩 들여다보던 초등생, 조금씩 틀어둔 수돗물의 소독약 때문에 죽어있던 물고기를 보고 식음전폐했던 중학생, 나만의 동물원을 그리면서 언젠가 동물원을 가질 거라는 꿈꿨던 고등학생까지.

 

네 살의 꿈은 희미해졌지만 그의 10대 시절 기억 속엔 모두 물고기가 있었다.

 

그리고 대학생. 동물학자를 꿈꿨지만 대입공부는 적성이 아니었던 그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려면 어차피 영상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영화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인생의 흐름이 자신과 원하는 길목에 닿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 항상 기업과 의뢰인의 입장을 대변해야 했다. 광고업계, 방송국, 영상 프로덕션 등을 거치면서 경험치는 계속 쌓였지만 그럴수록 직업에 대한 회의감도 몸집을 불렸다.

 

그러던 중 1998년 외환위기(IMF) 사태가 터졌다. 설상가상 건강상 문제도 생기면서 2년간 공백기를 겪었다. 겨우 회복해 다니던 회사는 부도가 나면서 프리랜서 촬영감독으로 전향했다. 하지만 프리랜서 특성상 일이 들쭉날쭉해 마음까지 지쳐갔다. 촬영감독으로서 사실상 은퇴까지 생각하게 됐다.

 

 

 

◆ 물고기 덕후를 사로잡은 조수웅덩이 ... 홀로서기 결심한 계기

 

2008년,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EBS 자연다큐멘터리 ‘하나뿐인 지구’ 촬영을 맡게 된 것이다. 

 

보수는 넉넉지 않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촬영감독 생애 드디어 하고싶던 것과 가장 가까운 일을 맡은 상황에서 신경쓸 바가 아니었다.

 

수많은 물고기를 키우고, 동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쌓인 관련 상식과 그간 촬영경험은 빛을 봤다. 촬영여건이 녹록지 않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수조에 실제 습지를 구현, 물거미 등 작은 생물을 직접 키워가면서 기어코 영상에 담아냈다.

 

이 프로그램의 마지막 편 ‘바람의 길, 올레’를 위해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성산일출봉 조간대 주변 생태를 담던 중 곳곳에 바닷물이 괸 웅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조수웅덩이. 무심코 들여다본 그 안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조수웅덩이를 처음 봤을 때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민물고기에 대해서는 웬만큼 알고 있다고 자신했지만 사실 바다생물에 대해선 잘 몰랐거든요. 강가 주변에 있는 웅덩이와는 차원이 달랐어요. 생물다양성이 높은데다가 바닷물이 나갔다 들어오는 곳이니 매번 새로운 자연수조가 만들어지는거죠. ‘여기 별게 다 있구나’하면서 감탄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언젠간 제주의 조수웅덩이에 대해서 다큐로 만들어야지.’ 조수웅덩이를 본 이후의 결심. 어린시절의 꿈이 또렷한 청사진으로 세워진 순간이었다.

 

 

 

◆ 직접 관찰하는 생태의 보고 ... 비로소 자연과 연결되다

 

프로그램 촬영을 끝내고 뭍지방으로 돌아왔지만 조수웅덩이 속 모습은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침 제주에서 일자리 제안이 왔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새로운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그때 겪은 충격의 여파가 오래 갔어요. 계속 웅덩이 속을 들여다보고 싶었죠. 틈나면 조간대로 가서 어떤 바다생물들이 있는지 관찰했어요. 당시 수중카메라도 없었는데 어떻게든지 카메라에 담고자 비닐백이나 어항을 총동원해서 찍어냈죠. 그만큼 욕심이 있었어요.”

 

그러나 조수웅덩이를 촬영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퇴적물이 많은 특성 때문이다. 물이 고여있기 때문에 부유물이 계속 쌓이는 것. 이 때문에 그 안에서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금새 탁해진다. 물속을 유유히 거닐던 물고기들도 겁을 먹고 숨는다. 수심이 얕아 움직이는 생물을 따라갈 수도 없다. 이럴 때 방법은 하나다.

 

“촬영할 땐 한 자리에 죽은듯이 가만히 있어요. 결국 숨어있던 물고기들은 못견디고 나와서 자연스러운 모습을 눈 앞에서 연출하거든요. 하지만 촬영장비의 한계와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몸이 의외의 복병이라서 NG가 많아요. 그래서 촬영양도 정말 많고요. 어떤 날은 엎드려서 물속에서 7시간이나 몸을 담그고 있었던적도 있죠."

 

 

 

고생한 대신 자연에 대한 정보도 자연스럽게 쌓인다. 어느정도 예상된 행동이 가능할 정도다.

 

“물고기도 성향이나 지능이 다 다르지만 유독  나비고기나 비늘베도라치같은 특이한 친구들이 있어요. 앞에 거울을 비춰주면 입을 크게 벌리면서 하루종일 싸워요. 자기 자신이 경쟁자인 줄 아는거죠. 그물베도라치나 황점베도라치는 식탐이 많아요. 어떻게 찍을까 고민하다 낚시로 잘 잡히는 종인 것을 떠올려 먹이로 유인해보면 예상적중이죠. 먹이로 놀리다가 귀엽다는 생각도 들어서 쓰다듬기도 해요. 마치 강아지처럼요.”

 

생물다양성이 보존돼 있는 조수웅덩이 안을 처음보면 감탄이 먼저다. 이를 자세히 알게되면 생태 전반을 이해하게 된다. 더 나아가면 자연의 원리를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원리를 명확히 하기 위해 공부하려하면 공식적으로 연구되지 않은 경우도 다반사다.

 

“자연원리에 알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오히려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죠. 과학이론을 잘 아는 사람도 아니고, 학문에 소질도 없지만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선 ‘헛소리’를 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생물에 대해 공부하는 게 기본바탕이 되어야 하죠.”

 

취재진이 학자같다고 말하자 그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금새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자연에 대해 알면 알수록 어떤 현상에 대해 섣불리 가치판단을 하는게 조심스러워져요.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가장 경계하는 부분은 제 감정이나 주장을 강요하는 것, 사실을 잘못 전달하는겁니다.”

 

 

◆ 관찰과 질문에서 나오는 통찰 ...  "가치판단 경계"

 

‘이렇게 흔한데 70여년만에 발견된 희귀종이라고?’ 임 감독은 생각했다.

 

2016년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된 두이빨사각게. 2018년에 이 게가 서귀포에서 70여년만에 발견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 소식은 당시 해양자원관과 협업을 하고 있던 그의 귀에도 들어왔다. 하지만 이상했다. 용천수가 나오는 조간대만 가면 그 보기 어렵다는 두이빨사각게가 너무 많이 있었던 것이다. 보도와 다른 실체에 의문이 들었다.

 

이후 도내 바다 곳곳을 직접 둘러봐도 두이빨사각게들이 파래를 열심히 먹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게가 많은 곳은 구멍갈파래도 많았다. ‘아, 먹이가 풍족해서 많아질 수밖에 없겠구나’

 

기후위기, 파괴되는 환경. 세계적으로 떠오르는 현안이다. 이에 대해 녹아내리는 빙하에서 카메라를 바라보는 북극곰, 플라스틱 빨대가 코에 박힌 바다거북 등을 쉽게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임 감독은 그러한 생태의 시작은 가장자리라고 말한다. 직접 가까운 산과 바다로 가서 눈으로 직접 보고 질문한다. 그리고 소외된 생명을 발견한다.

 

“우리는 어떤 현상에 대해 평가 위주로만 배워요. 경험과 질문을 하지 않죠. 예컨대 각각 다른 특징을 갖고 있는 게 종류를 모두 ‘꽃게’라고 통칭하는 것처럼요. 이걸 육상동물로 치면 사자와 코끼리만큼 거리가 있는 생물들을 똑같이 보는 것과 같거든요. 직접 관찰하고 ‘얘는 왜 이렇게 생긴걸까’ 부터 질문의 꼬리를 잇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 난개발로 희미해지는 제주 본연의 가치 ... 직접 행동으로

 

제주에도 민물고기가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아무도 그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생태·환경적으로도 중요한 존재다. 그는 이를 계기로 지난해 KBS 환경스페셜 ‘섬으로 간 물고기’를 제작하기도 했다.

 

“물 관리가 되지 않으면 환경이 빠르게 망가져요. 화산섬인 제주는 비가 땅속으로 스며들어서 깨끗히 간직돼 있다가 조금씩 뿜어져 나오면서 생태에 영향을 주거든요. 하지만 비닐하우스나 아스팔트, 건물이 땅 위를 지키고 있으면 비가 스며들지 못해요. 그럼 비가 하천을 통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바다로 흘러가는거죠. 그럼 바다생태는 충격이 커요.”

 

자연의 원리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동서양의 많은 철학자·사상가들이 아닌 농사꾼과 낚시꾼이다. 임 감독의 작품은 단지 바다생태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담겨 있다.

 

우리와 가까이 있는 자연 속 이름모를 것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알기도 전에 난개발로 사라지는 일은 부지기수다. 제주 본연의 가치는 희미해진다. 그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된 이유다.

 

그는 사실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공동대표다. 그전엔 제주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자연환경과 생태를 지켜야 한다는 취지의 목소리는 여러 곳에서 꾸준히 터져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치·행정 측에서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주장을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 그는 제주생태를 지켜야 한다는 외침에서 끝내고 싶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요구의 실현이다.

 

임 감독의 요즘 관심사는 제주도내 습지다. 세계 각국에서 부러워할 만한 생태자원인 암반 조간대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 가치를 모르고 망가트리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제주바다의 모든 조간대 전체가 다 람사르습지 조건에 맞아요. 특히 하도리철새도래지같은 염습지 같은 곳은 조건에 안맞을 수가 없을 정도로 명백한 곳이죠. 하지만 습지하면 보통 육상에 있는 습지만 떠올려요. 제주바다 조간대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마지막 장소라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하고, 행정은 생태지질적으로 중요한 곳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사업을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산책하는 길을 남들은 비행기 타고와서 보잖아." 아내와 아들, 딸에게 농담삼아 하는 말이다.

 

살아온 날 중 5분의 1 이상 머무른 제주. 자연은 곁다리로 있었지만 성장기의 추억이 서린 서울이 가끔 그리울때도 있다. 하지만 잃은 만큼 얻은 것도 크다. 거대한 자연 속 나라는 존재가 일부라는 느낌. 그 자체가 위안이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것에 대해 두루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이죠. 이 업계에서 부자가 될 수 없다면 제가 평생 하고 싶은일 하면서 살고 싶어요. 소외된 자연에서 얻은 이야기들을 영상에 녹여내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 제 한계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제이누리=박지희 기자]

 

다음은 임형묵 감독이 2016년 제작한 KBS 제주 ‘한국의 야생-바다생명을 담다, 조수웅덩이’.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