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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시평] 다음 선거를 걱정하는 이와 다음 세대를 걱정하는 이

 

정치인을 가리키는 politician은 셰익스피어 시대에 처음 쓰였다. ‘신중한’이란 의미의 형용사 politic에서 유래됐다. 그러나 그 단어는 점차 부정적 의미로 변모했다. ‘교활하다’거나 ‘철저히 자기 잇속만을 차린다’는 뜻으로 굳어져갔다. 그래서 politician은 모사꾼의 의미로 뒤바뀌었다. 정치인(statesman)이 아니라 정상배(政商輩)라는 의미다.

 

셰익스피어는 어떤 사람을 모욕적으로 묘사할 때 politician이라고 했다. 리어왕은 politician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지칭했다. 햄릿은 무덤 파는 광대가 해골을 던지며 장난치는 것을 보면서 "그 해골이 politician의 것이면 얼마나 좋겠냐"고 말했다. 그런 정치꾼은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눈다. 도구가 아니면 적이다(A politician divides mankind into two classes: tools and enemies).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말이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침침해지는 눈 탓을 할 생각도 했다. 그런데 떡하니 인터뷰 기사까지 나온 걸 보고 기가 막혔다. 비정상이 판치는 사회가 제주라지만 이 정도로 막 나갈 줄은 몰랐다. 그래도 사회적 위신과 명예, 체통이라는 게 있는 법인데 그저 모두가 각자도생하는 것 같아 적잖이 안쓰럽다.

 

국민의힘 제주도당이 자중지란에 빠졌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파국열차를 타고 곧 닥쳐올 절벽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모양새다. 사실 지난해부터 그리 될 거라 예상치 못한 건 아니지만 최근의 상황은 한마디로 돌발이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다. 사태는 그 한복판에 돌연 등장한 한 인물 때문이다. 국립 제주대 교수이자 두 번에 걸쳐 그 대학 총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중앙당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는 그의 주장에 맞받아치는 국민의힘 제주도당내 반발세력의 ‘송재호 후원회장 출신’·‘원희룡 지사 배후’ 등의 반격은 사실 정파적 해석에 기초한 논리이기에 여기선 거론치 않겠다. 다만 말 그대로 학식과 경륜을 갖춘 대학 총장 출신의 행보여서 파문이다. 왜 그가 정치판에 발을 담그는 것도 아닌 한 복판에 서려 하는지가 의문이다.

 

허향진 전 총장은 사실 민선 지방정치 시대 정치판에서 줄곧 주목을 받아온 인물이다. 민선 3기 재선거 당선에 이어 4기 재임에 성공한 김태환 전 지사가 제주시장과 제주지사 재임시절 그의 튼실한 정치적 조언을 따랐다는 건 제주에선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물론 충분히 권력을 발휘했고, 제주관가의 핵심인물(Key Person) 역할을 했다. 그가 김태환 지사 시절 현 제주연구원의 전신인 제주발전연구원장을 지냈고, 이를 발판으로 제주대 총장까지 올라섰다는 것 역시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이젠 정치판보다 더 오염될 만큼 오염됐다는 소문이 파다한 제주대 총장 선거판에서 두 번이나 당선의 영예를 안은 인물이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다. 그는 총장직에서 내려왔다. 이제 현직 교수도 아니다. 사실상 현업에서 은퇴한 나이인 노년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그런 그가 국민의힘 중앙당의 제안을 받아 ‘국민의힘 제주도당 위원장 직무대행’의 역할을 맡을 것이란 관측에 사실 의아해질 노릇이다. 누구라도 예측이 가능하다. ‘위원장 직무대행’이 그가 바라는 종착지가 아닐 것이란 점은 쉽게 넘겨짚을 수 있다.

 

제주대는 그래도 ‘제주지성의 요람’을 자처해왔다. 국립대학교 답게 교수직 신분은 어느 조직사회에 비해 철저히 보장받는 곳이다. 학술·연구·표현의 자유는 물론 어느 공무원 사회와 달리 정치적 운신의 폭도 자유롭게 보장받는 곳이다. 그러나 대학사회 구성원, 즉 교수직 신분에 있는 이들에게 자유로운 정치적 운신이 가능하게 한 헌법정신은 대학사회가 쌓아올린 이성의 가치를 현실사회에 투영할 수 있도록 한 장치다. 어느 사회가 하나의 폭압적 가치에 휘둘리지 않고 반박·비판을 통해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대학의 지성이 우리 사회의 향도(向導)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글 서두에 정치꾼 얘기를 꺼냈다. 정치낭인들은 본질적으로 이 정치꾼의 길을 걸어가게 돼 있다. ‘완장’을 좋아한다. 선거에서 당선되기만 하면 태도가 돌변하는게 그들의 습성이다. 유권자, 곧 국민·도민 위에 군림한다. 그런 정치꾼, 즉 정상배들은 언제나 선거가 끝나고 나면 다음 선거를 걱정한다. 당장의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다음 선거 준비에 나선다. 그러나 그런 ‘꾼’들과 달리 진정한 정치인(statesman)들은 다음 선거를 걱정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주목하는 지점은 다른데 있다. ‘정치인’은 다음 선거가 아닌 다음 세대를 걱정한다.

 

허 전 총장에게 질문을 드린다. 다음 세대를 위한 역할을 준비하고 있는가, 아니면 다음 선거를 위한 역할을 준비하고 있는가? 지금 이 시기에 제주정치판의 한 복판에 나서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제주가 과연 ‘관광경영’이란 전공으로 해법을 찾을 수 있는 곳인가? 그동안 제주대란 상아탑의 대표자였던 총장으로서 이렇게 등장하는 것이 과연 옳은 길인가? 제주사회는 그의 돌발 등장에 지금 많은 의문부호를 던지고 있다.

 

사족 하나를 단다. 오해가 없길 바란다. 이런 의문이 선거 때만 되면 유권자 앞에서 큰절을 올리는 ‘정치꾼’을 변호할 논리는 되지 않는다. 정치꾼들의 눈에 보이는 건 오직 도구가 아니면 적, 즉 정파적 이해관계 뿐이다. [제이누리=양성철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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