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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중의 숲길 산책 (5)] 마을을 지켜주는 보호수, 팽나무 ... '폭낭'

 

숲길은 한적하고 아직 억새들은 바싹 말라 황량하지만 새 풀이 돋아나면서 봄이 더 가까워 졌다. 두꺼운 등산화를 신었지만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촉감이 상쾌하다. 곶자왈이나 올레길, 오름을 걸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다.

 

아스팔트나 보도블럭, 주차된 차량들 사이를 비집어 걸어야 하는 도시 사람에게 부드러운 흙을 밟고 풀잎 냄새를 맡으며 부드럽게 걸을 수 있는 기회를 만난 것은 특별한 축복이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숲길을 걸어가다가 붉게 물들며 시들어 가는 소나무들이 다가왔다. 몇 년 전부터 제주의 산야를 휩쓸어 버린 소나무 재선충 전염병이 아직도 진압이 다되질 않은 모양이다.

 

가까운 밭에서 콜라비 수확 작업 중인 젊은 농민에게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을 붙여보았다.

 

농민은 “신 군수님이 셔시믄 이런 일 어서실 꺼우다!”라며 언성이 높아졌다. 돌아가신 신철주 군수님이 계셨으면 이런 자연재난은 미리 막았을 거라고 확신한단다. 뛰어난 지도자가 없어서 자연재난을 막지 못한 아쉬운 결과로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단다.

 

“책상에 아장 인터넷이나 두닥두닥 허당....밥 먹어지믄 몇 글자 찍어 보당....인사철 되민 자리 다툼이나 허멍...국제자유도시여 특별자치도여 뭐여 허는 짓거리들 보면 화가 나 마씸!”이라며 성토가 이어졌다.

 

농민들은 몇 년 전에 재선충 전염병이 빠른 속도로 전염되어 갈 때부터 지금까지 모두 지켜보았다 한다. 산야가 온통 붉게 물들어 갈 때 숱하게 많이 신고를 하였건만 “문제없다!”며 칠대경관 전화질에 온 정신을 팔아 재난을 확산시킨 당시의 무능하고 부패한 관료들을 똑똑히 기억 한단다.

 

 

다시 방향을 바꾸어 더 걸으니 눈에 익숙한 나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제주말로 '폭낭'이라는 정겨운 '팽나무'다. 마을 사람들이 심어 놓은 이 나무는 머지않아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뜨거운 여름철에는 시원한 그늘이 되고 편안한 휴식처가 된다. 이 나무는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같은 편안함이고 정겨움이다. 마을을 지켜주는 보호수이기도 하다.

 

열매는 아이들에게 공기 총알을 만드는 장난감이 되기도 했었고, 익으면 달작지근하여 별미로 먹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이제 앙상한 가지에서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하여 봄이 되면 꽃을 피워 가을이 되면 검붉은 열매를 맺어 갈 것이다.

 

옛날에 마을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마을 어귀나 공터에 이 나무를 옮겨 심어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였었다. 그때부터 좋은 일이나 슬픈 일이나 모두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던 나무다. 마을 밖에 당(堂)에서도 이 나무에 소원을 빌었었다.

 

다른 지방에서는 수백년 혹은 천년이 되어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도 있다한다. 그래서 이 나무는 마을이 생기던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역사를 기억하는 살아있는 증거이다.

 

조선시대 말 오랫동안 이어진 세도정치 기간에는 악독한 관리들이 마을 사람들 등골을 빼어먹듯이 착취하는 현장을 지켜보았고, 가혹한 세금을 견디다 못해 야반도주하여야 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아야 했었다.

 

간신들이 부정과 부패로 나라가 망해가고 지배세력의 착취로 겪어야 했던 헐벗은 농민들의 고단한 삶을 지켜보았다. 일제 시대에는 완장을 차고 거들먹거리면서 기고만장한 친일파들과 집안에 쓸만한 물건이라면 남김없이 공출해가고 떡고물로 배를 불리던 앞잡이들을 눈꼴이 시도록 노려보았었다.

 

해방 이후에 이 땅에서 벌어졌던 지옥을 지켜보았다. 평화로운 마을에 날벼락같이 요란한 총소리와 아이들과 아녀자들이 울부짓던 목소리를 생생히 기억한다. 불타는 집들과 주인을 잃은 가축들,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허겁지겁 도망다녀야 했던 사람들의 고통스런 삶을 모두 빠짐없이 기억한다.

 

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등짐을 잠시 내려놓고 쉬어가던 농부들, 수다를 떨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아낙네들, 삶의 지혜를 전해주던 할아버지들, 나무에 오르며 뛰어 놀던 아이들, 고귀한 생명들을 하루에 잃어 버렸다. 팽나무가 품고 보듬어 주었던 모두 착하고 순박하던 농민들이었다.

 

이 숲길에서 공포에 떨며 숨어 지내던 조상들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지만 팽나무는 증언한다. “나는 역사의 증거다. 감히 내 앞에서 거짓말 하지 마라! 누구한테 폭도라 했느냐?” 오랫동안 무고한 원혼들이 구천에서 떠돌 때도 그들은 거짓으로 입을 막았었다.

 

수십년이 지나서야 생색내듯이 특별법이랍시고 툭 던져지고 나서야 겨우 얻어진 명예 회복을 팽나무는 지켜보고 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시중은? = 제주특별자치도의 사무관으로 장기간 근무하다가 은퇴하였다. 근무 기간 중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주 웨스턴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제이누리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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