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4 (수)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제주연구원 김종민 책임연구원, 4.3피해자 회복탄력성 연구 ... 일본밀항의 이유

 

1987년 6월 항쟁과 2000년 4.3특별법 제정이 이뤄지면서 평생 한의 세월을 보냈던 4.3 피해자들이 그나마 사회.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사례조사보고서가 나왔다.

 

4.3과 관련된 연구가 그동안  정치사회적 맥락과 진상규명 및 피해사실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것과 달리 피해자들이 어떻게 4.3을 극복해 왔는지에 주목한 연구 보고서다.

 

제주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는 2019 제주학 연구비 기획주제 공모지원사업으로 선정된 “4.3피해자 회복탄력성 연구’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전 4.3중앙위원회 소속 전문위원인 김종민 책임연구원은 “지금까지 4.3에 대한 연구는 역사학과 사회학, 정치학 등의 학문분야에서 진상규명과 피해 사실에 초점을 맞춰 진행돼 왔다”며 “그러나 4.3피해자들이 4.3과 그 이후 어떻게 그들의 삶을 유지해 갔는지, 어떤 요인이 그들의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주었는지에 관한 연구는 전무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회복탄력성은 역경에 노출된 개인이 가족과 사회공동체, 사회시스템과 같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역경으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줄이고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말한다.

 

이번 연구는 4.3 이후 정치・사회 변화와 개인의 삶이 어떤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의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피해자 구술조사 및 문헌조사 등을 통해 파악했다.

 

연구는 이외에 피해자들의 회복탄력성을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이전과 이후로 나눠 파악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이전이나 또는 2000년 제주4.3특별법 제정 이전 제주사회 환경은 4.3피해자들의 사회적응에 많은 장애물이 놓여 있는 등 다양한 사회제도적 장치가 닫혀 있었다”며 “따라서 사회환경은 4.3피해자들의 회복탄력성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들의 피해회복은 일본 밀항과 철저한 절약을 통한 경제성 회복, 본적이동을 통한 연좌제 탈피 등의 방식으로 이뤄졌다.

 

4.3 당시 제주읍 이호2구 김모(83)씨는 1948년 12월7일 토벌대가 마을에 불을 지른 후 가족 8명 중 모친과 자신, 여동생만 살아남았다.

 

김씨는 이후 한국전쟁 시절 제주중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제주상업고교로 진학을 하는 등 학문에 대한 열의를 불태웠지만 집안이 어려워 고교 중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김씨는 “이후 딱히 직업을 구할 수 없어서 조농사와 보리농사를 지으며 살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런 상황에서 일본 밀항을 선택했다. 30대 초반에 일본으로 건너가 25년간을 일본에서 살다 1992년에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김씨는 이에 대해 “일본에서 번 돈을 부인이 알뜰하게 모아 오늘날 안정적인 삶을 구축하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김씨는 당시로서는 고학력을 지녔지만 마땅히 취업할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하자 일본 밀항을 감행했다”며 “이를 통해 경제를 회복하는 능동적 회복탄력 정도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외에 4.3당시 조부와 부친이 행방불명된 또다른 김씨(74)는 어머니와 힘겹게 살던 중 농사를 통해 돈을 벌고 절약을 통해 경제성을 회복했다. 경제성 회복 이후 사회참여 및 봉사활동을 등을 통해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상태에서 회복한 것으로 파악됐다.

 

4.3당시 중학생이었던 부모(91)씨는 형이 군인들에 의해 총살당하고 본인은 불법 군사재판으로 목포형무소를 거쳐 인천형무소에 수감됐다 1949년 10월 제주로 돌아왔다. 이후 전과와 연좌제로 취직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부씨는 결국 본적을 바꾼 후 공무원으로 취직, 일을 하다 40대에 공무원 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이외에 결혼 등을 통한 심리적 안정으로 4.3으로 인한 피해를 극복한 이들도 있었다.

 

민주화운동 이후에는 공동체의 변화와 사회제도의 변화, 정치 변화 등이 4.3피해자의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사회제도의 변화 부분에서는 4.3평화공원의 건립과 4.3추모제 등이 4.3피해자들의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4.3평화공원과 추모제 덕분에 피해자들이 “희생자에 대해 국가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서 심리적 안정과 위로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정치 변화와 관련해서는 4.3특별법의 재정과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의 사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의 4.3수형인명부 발견 등이 4.3 피해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피해회복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책임연구원은 또 4.3피해자들의 회복탄력성 촉진을 위해 정치・사회 민주화의 담보와 4.3이해의 세대전승을 위한 장기적인 교육체계 및 시민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외에 4.3특별법 개정안의 통과를 꼬집었다. [제이누리=고원상 기자]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