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강정마을에 묘한 개가 한마리 있다. 해군기지 반대를 외치는 주민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개다.
만 4살이 된 개는 한때 강정마을 찬·반 갈등을 대변하는 뉴스메이커로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엄연히 개주인은 따로 있다. 농사꾼인 그 개의 주인도 언론에 몇 차례 이름을 올렸다.
잡종견이지만 강정마을 반대측의 애견인 ‘중덕이’와 중덕이의 주인 ‘김종환(55)씨’ 얘기다.
구럼비 해안에 살았던 ‘중덕이’는 어떻게 해서 강정마을에 왔고, 이름은 왜 ‘중덕이’이며, 그의 주인은 왜 해군기지를 반대하게 됐을까?
중덕이와 김씨는 이 중덕삼거리 컨테이너에 산다. 김씨의 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 투쟁 초기에서부터 주방을 담당하고 있어 중덕삼거리에서 주방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중덕이는 강정마을 반대 주민들이 반대운동을 하던 초기인 2008년 2월에 강정마을에 왔다. 예례동에서 태어 난지 얼마 안 된 중덕이를 한번 키워보라며 예래동 농민회가 감귤농사를 짓던 김씨에게 건넨 것이다.
일본에서 돌아와서 부모님 땅에서 감귤농사를 짓던 김씨는 처음에 해군기지를 반대하지 않았다. "중립적이었지만 오히려 마음은 약간 찬성쪽으로 기울어 있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중덕해안(지금의 구럼비 해안)이 없어진다는 것이 아쉬웠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중덕이를 건네받고 함께 구럼비 바위에서 텐트를 치고 반대하는 마을 주민들과 어울려 기거 아닌 기거를 하게 됐다. 개 이름도 해안가 이름인 ‘중덕’을 따서 지었다. 이후 영화평론가 양윤모씨가 오고, 반대활동가들도 왔다. 김씨는 의례회관과 이곳에서 주방 일을 했다. 양씨가 구속되고 난 뒤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가 마을을 찾았다. 그 역시 마을에서 단독으로 반대농성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후 중덕이는 신 전 지사와 줄곧 함께 지냈다.
그러던 중 지난해 9월2일 중덕삼거리에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마지막 펜스가 쳐졌다. 이 과정에서 저항하던 김씨가 연행돼 결국 구속됐다. 이후 중덕이는 활동가와 주민들 손에 키워졌다.
김씨가 없고 한 주민이 중덕이를 데리고 가던 중 사건이 벌어진다. 김씨가 연행되고 3일 뒤, 찬성측의 개를 중덕이가 물어 중상을 입힌 것이다. 경미한 사안이지만 언론에 보도될 만큼 주민간의 갈등 양상을 대변해주는 사건이었다. ‘고소를 한다 만다’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피해를 입은 개는 깁스를 해야만 했다. 지금 그 개는 당시 피해 때문은 아니지만 죽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교도소에서 들은 김씨는 같은 감방 사람들에게 전했고, 감방은 웃음바다가 됐다고 한다. 그는 교도소에서 중덕이와의 슬픈 만남의 얘기도 꺼냈다. 교도소 생활 70일쯤 되던 11월 중순 주민과 활동가들이 중덕이를 데리고 면회를 왔지만, 중덕이가 그를 몰라봤다는 것이다. 이에 김씨는 3일간 음식도 먹지 않을 정도로 슬퍼했다고 한다.
지금은 중덕이와 김씨는 둘도 없는 단짝친구다. 중덕이는 군복만 입은 사람만 봐도 짓는 습성이 생겼다고 한다. 활동가들과 반대주민들은 중덕이도 해군기지를 반대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날 김씨를 만나던 중 오후 2시25분께 첫 번째 발파음이 들렸다. 그에게 구럼비 해안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구럼비 해안에서 사철 목욕을 했다고 한다. 또 가슴이 아플 때는 구럼비 바위에 가슴을 대면 낳았다고 한다. 용천수가 30~50m 간격으로 나와서 친구들과 목욕하고 용천수에서 몸을 씻기도 하고, 구럼비 바위에서 자기도 했다. 무공해 야채들도 자생해 뜯어먹기도 했다. 고교시절에는 구럼비 해안에서 연애도 했다. “그런 추억이 깃든 구럼비 바위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반대측에 설 수 밖에…”
그의 자녀들은 모두 강정을 떠났다. 아들은 결혼해 제주시에 살고, 딸은 서울에서 머물고 있다. 자녀들도 혼란한 고향마을에서 반대운동을 하는 아버지가 걱정이 돼서 자주 전화를 한다. 우선 건강을 묻는 안부가 먼저다. 그리고 '힘내라'고 한다.
2시40분쯤 사이렌이 울린다. 해군제주기지사업단 정문 앞으로 모이라는 신호다.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김씨는 중덕이와 함께 사업단으로 달려갔다.
"언제면 이런 일이 끝날까요? 한가롭고 평화롭던 마을은 이제 해군기지가 공사를 시작하면서 이미 군사기지마을로 전락했습니다." 그의 한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