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이 불여일견이다. 3차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참여한 경제인들이 평양 옥류관에서 대동강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백두산 정상에 올라선 천지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엄지를 치켜세운 모습으로.
내로라하는 기업인들이 기념사진만 찍었을 리 없다. 평양 거리 등 북한의 현실을 보며 나름 생각하고 사업 구상도 가다듬었으리라. 북한의 경제 실세인 리용남 내각부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밝힌 소회에서 그들의 심사가 읽힌다. “지리적으로 가까운데 심리적 거리가 상당했다” “마음에 벽이 있었는데 와서 직접 보고, 경험하고, 뵈니 (사라졌다)” “11년 만에 오니 많은 발전이 있는 것 같다” 등. 리 부총리는 “평화와 번영을 위한 지점이 같아 구면인 것 같다”고 화답했다.
북한 내각부총리와 남한 경제인의 회동은 의미가 적지 않다. 북핵 문제의 실타래가 풀리면 경협을 주도할 기업인들과 북 수뇌부의 스킨십 자리였기 때문이다. 경제인 사절단은 첫 현장 방문으로 황해북도 송림시 조선인민군 122호 양묘장을 찾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지시로 현대화를 이룬 곳이다. 산림 협력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포함돼 있지 않아 남북경협의 입구로 삼을 만하다. 9ㆍ19 평양공동선언도 “진행 중인 산림 분야 협력의 실천적 성과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고 언급했다.
그다음 찾은 곳은 평양시내 소학교와 평양교원대학. 교육 분야도 대북 제재 대상이 아니다. 남한 기업들의 인재 양성 노하우를 얻고 싶어 하는 북한의 속내가 엿보인다.
9ㆍ19 평양공동선언은 남북경협의 얼개를 담았다. 올해 안에 동ㆍ서해안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는 착공식을 한다. 조건이 마련되는 대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정상화한다. 서해에 경제공동특구, 동해에 관광공동특구를 각각 조성한다.
문재인 정부가 구상한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실현하기 위한 밑그림 성격이 짙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은 한반도 서해안 축과 동해안 축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로 진출하고, 휴전선 부근에서 두축을 연결해 경제발전을 꾀하자는 청사진으로 4ㆍ27 판문점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이 USB에 담아 김정은 위원장에 건넨 것이다.
특히 철도와 도로 연결은 3ㆍ1절 100주년인 내년에 기차를 이용해 중국을 방문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정부가 서두르는 측면이 있다. 2032년 여름올림픽 공동유치 노력도 남북 경제인들이 힘을 합칠 분야로 꼽힌다.
물론 남북경협은 북미간 북핵 문제 타결이라는 고차 방정식이 풀려야 가능하다. 유엔의 대북 제재가 그물망처럼 깔려 있는 상황에서 자칫 북한산 석탄수입 파동과 같은 대북 제재 위반 논란이 재연될 수도 있다. 북한의 비핵화 작업에 진전이 있어야 남북경협도 탄력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 북한 경제에 있어 중국의 영향력은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유통시장에는 중국산이 넘쳐나고, 부동산시장에는 상당 규모의 화교자본이 침투해 있다. 주요 지하자원에 대해서도 중국이 눈독을 들인다. 자칫 공은 우리가 들이고, 재미는 중국이 볼 수도 있음이다.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평화가 경제’라고 강조했듯 한반도 평화는 남북한 경제의 발전과 도약의 소중한 자양분이다. 또한 남북경협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할 것이다. 이는 과거 남북관계가 냉각될 때마다 개성공단이 완충지대 역할을 한 것으로 입증된다. ‘핵 없는 평화 속 남북경협’이냐 ‘남북경협 확대 속 평화 정착’이냐의 순서를 따지기보다 병행하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과거 두차례 정상회담과 비교할 때 비핵화 작업이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공동선언에서 직접 구두로 비핵화를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또 “빨리 비핵화해 경제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문 대통령이 귀국해 국민보고대회에서 전했다.
비핵화가 진전돼 대북 제재가 풀리면 북한의 개혁ㆍ개방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이때 대북투자 사업을 중국이나 일본에 밀리지 않고 우리가 주도할 수 있도록 정부와 경제계가 공조해 차분하고 치밀한 전략 아래 준비해야 할 것이다.
남북의 경제인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며 경제활동을 하면, 나아가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이루면 남북은 공동 번영의 길로 성큼 다가설 수 있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