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과 제주도정의 중간자로서 내 청춘을 다 바쳤다. 그 누구보다도 제주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이 자리에 섰다.”
허울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제주에 대한 ‘외사랑’이다. 그는 “과연 제주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오랜 고민 끝에 출마를 결심했다고 했다.
진지하되 끊이지 않는 웃음.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하지만 제주도정에 대한 얘기를 꺼낼 때면 목소리가 높아진다. 신랄한 비판도 뒤따른다.
선거풍토에 대한 얘기를 먼저 꺼내든다. 그는 “제주의 특성상 혈연, 지연, 학연에 얽매일 수밖에 없어 돈 있는 사람, 조직이 있는 사람, 세를 과시하려는 사람들이 선거판을 좌지우지한다”면서 “예전에 비해 조금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말하고선 부끄러운 고백을 덧붙인다.
23년 전의 일이다. 그가 처음으로 제주도의원이 되고 첫 해외나들이를 가게 된 1995년의 일을 들려준다. 주인공은 당시 만 34세의 청년 도의원 박희수다.
봄볕 기운이 가득했던 20일 제주시 노형동 <제이누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지난 얘기를 들어봤다. 이날 만난 그는 청년이 아닌, 지난 13일 제주지사 예비 후보자 등록을 마친 박희수(56) 전 도의회 의장이다.
그이 얘기는 다소 충격적이다. “출발날짜가 다가오자 상임위와 관련된 실,국은 물론 도지사나 부지사, 연관이 있는 기관까지 경비에 보태라며 금일봉을 줬다”면서 “결코 적지 않은 돈이었고, 그 일부는 언론사 기자들에게도 나눠 전달됐다”고 그 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이어 “자의든 타의든 관행이란 이유만으로 그 돈을 받았다”며 “그 돈들이 공무원 출장비를 변칙으로 인출하는 등의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을 이후에 알게 됐다. 부끄럽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곤 "많은 사람들이 알면서도 덮어주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 비단 과거만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중인 현재형"이라고 일갈한다.
4선의 의정활동을 했던 그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는 제주도정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다. “어떤 의원들은 낮에 도청 집행부를 비판하는 시늉을 하다가 밤이 되면 도지사와 긴밀한 협상(?)을 했다”며 “도지사의 업무추진비 카드, 혹은 현금을 받거나 또다른 무언가를 제공받아 의정활동이 끝난 뒤에도 먹고 살 만큼을 챙겼다는 얘기가 파다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제왕적 도지사 권력의 썩은 내음이 진동해도 도정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도의원들은 침묵했다”고 술회하며 “지금이라도 부끄러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제주지사 출마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그가 6.13선거 출발선에 선 후보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말하는 전제는 '자신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검증'이다. "그럴 때만이 자치 도정의 지난 과오를 씻어내고, 힘 없고 가난한 도민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참된 도정의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제주도정을 발가벗긴 그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물었다. "30년 가까운 시간을 제주도민과 제주도정 사이의 중간자로 살았고 거기에 청춘을 바쳤다"고 했다.
그의 어릴 적 꿈은 제복을 입은 군인이나 경찰관이었다. 공직에 몸담았던 아버지와 계란장사 등을 했던 어머니 사이의 3남 2녀 중 차남이었던 그가 꿈을 바꾼 건 제주일고 2학년 때. 그때 그는 한신대 출신의 선배를 우연히 만나 격동의 현대사와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을 배웠다. 유신시대의 종언을 고했던 1979년이었다.
그래서 바뀐 꿈은 사회의 부조리를 바꿀 수 있는 기자나 교사였지만 대학진학은 법대 쪽이었다. 이후 그는 평범한 대학생활을 이어가다 광주 31사단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복학 이후 그의 인생이 소용돌이쳤다.
그가 마주한 현실이 5공 군부정권이었기 때문이다. 고2 때부터 품었던 사회의식이 꿈틀댔다. 그는 학생운동에 뛰어들었고 군사정권의 탄압이 가장 극심했던 1986년에 제주대 총학생학생에 당선됐다. 제주 지역 학생운동 1세대의 간판으로 부상했다.
그 시절 학생운동을 함께 했던 아내를 만나게 됐고 졸업 이후 88년에 곧바로 가정을 꾸렸다. 연애 시절의 추억을 묻는 질문에 “학생운동을 했던 시기라 특별한 데이트를 한 기억은 많지 않지만 늦은 밤이면 아내의 집이 있었던 탑동으로 달려가 세레나데를 부르며 구애를 했다”며 수줍게 웃는다. 결혼 후 그는 두 딸의 아빠가 됐다.
졸업과 함께 그가 선택한 삶은 직장생활이었다. LG그룹 계열의 범한화재에 공채로 입사해 4년간 근무했다. 하지만 평범한 직장생활은 거기까지였다. 마치 운명처럼 찾아온 선택의 기로에 삶의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의회에 진보적인 인사를 진출시키겠다는 시민단체들의 바람은 그를 선거판으로 불러냈다. 2명의 추천인사 중 이영길 전 정무부지사와 함께 그가 포함됐다.
그는 당시 예상치 않았던 선택지를 받아들고선 당황했다. 하지만 한 마디 말에 자신의 운명을 선택했다. 선거에 뜻이 없다고 손사래를 치는 그를 설득하러 온 이용중 전 전교조 제주지부장은 “남들은 다 사회운동 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는데 총학생회장까지 지낸 사람이...... 사회적 책임이 있지 않느냐”고 얘기했다. 그 말에 그는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고 오랫 동안 쌓아둔 죄책감 같은 감정이 밀려왔다”고 술회한다.
정치입문은 그렇게 이뤄졌다. 91년 첫 도전에 보기좋게(?) 실패했지만 95년 최연소 의원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채 당당히 도의회에 입성했다. 이후 98년에 재선에 성공하면서 ‘꽃길’을 걷는 듯 했지만 그의 인생 최고의 위기가 찾아왔다. 2001년 제주교육청에서 발생한 일 때문이다.
“단체협약 문제로 전교조 교사들이 제주교육청에서 농성을 했다. 농성을 하는 곳에 단수 조치를 취하고 화장실에도 못 가게 하는 등 심각한 상황이었다. 중재하러 교육청에 방문했는데 부교육감과 말다툼이 생겼는데 그 일로 구속까지 됐다.”
그는 “결코 부교육감을 때린 적이 없다”며 “당시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분명히 기억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공무집행방해죄와 상해죄 혐의를 받아 벌금 100만원 형을 받게 된다.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혹독했다.
그 사건의 영향으로 2002년과 2006년 선거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충격이 너무 커 정치활동을 포기하려고 했다. 낡은 정치에 대한 환멸도 그를 괴롭혔다. 7년 가량의 그 시간들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 때를 떠올리는 그는 “2002년 선거 당시 젊은 박희수가 아버지 같은 사람을 두들겨 팼다”라는 상대후보 등의 공격으로 잡범 취급을 받았을 때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을 딛고 일어섰다. 2008년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이어 2012년에도 무소속으로 당선, 3선의 역량으로 도의회 의장 역을 맡으며 2년간 제주 의회를 이끌었다.
재기하기 어려울 거라는 예측을 보란듯이 뒤집은 그는 “너무 억울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있지만 감당할 부분을 훨씬 뛰어넘어 매도당한 상처는 너무 쓰렸다”면서 “막상 선거운동을 하다 보니 동네 어르신, 주민들이 나의 진심과 열정을 기억해주셔서 너무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이런 기억들이 자신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믿는다. 도의회 의장 시절 한진그룹의 지하수 증산 건이 상임위를 통과했을 때 직권으로 안건 상정을 보류한 일을 두고선 “도민여론을 믿고 합법적으로 처리했다”면서 “그 일을 지금도 잊지 않고 따뜻한 격려를 하시는 분이 많아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제주도정에 대해 속속히 잘 알고 있고, 이 부분은 다른 후보들이 갖지 못한 차별화된 경쟁력”이라 고 자신한다.
그는 최근 여론조사 등에서 후보적합도, 민주당내 지지율 등에서 열세라는 지적에 단호하게 “반등을 이뤄내 이길 것”이라고 장담했다.
근거가 있느냐는 질문에 “힘 없고 가난한 평범한 일상의 이웃들을 위해 뛰고 있는 사람들이 내 진심을 알아주고 있다”면서 “돈 안 드는 선거를 통해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박희수 방식의 운동을 펼쳐나가겠다”는 결기를 드러냈다.
1시간 20여분간 그와 나눈 대화록, 인터뷰 내용을 싣는다.
▲ 출마 결심을 어떻게 하게 됐나?
"지난해부터 고민했다. 내 청춘을 바친 제주도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도덕적이지 못하다. 제주도개발특별법이 제정된 지 30년 가까이 되지만 도민들의 삶은 어떤가? 도민 일부의 이익이 있긴 하지만 가장 덕을 보는 건 자본과 투자자다. 내 청춘을 바친 만큼 누구보다도 제주의 실상을 잘 알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제주도정의 도덕성과 능력을 냉정하게 검증해야 한다. 그동안 많은 도지사들이 있었지만 힘없고 가난한 제주도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제주는 100년을 내다보는 혁신과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제주에 쏟아부은 28년의 경험과 열정을 바탕으로 깨끗하고 능력 있는 제주를 만들고 싶다. 상생하는 제주로 변화시키기 위해 출마를 하게 됐다.“
▲ 원희룡 지사에 대한 비판이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 한 마디로 제주의 정서와 실정을 전혀 모르는 도정을 해왔다. 그 결과 숱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제주시장 임명부터 인사문제 실패했다. 쓰레기문제, 교통문제, 난개발문제, 분뇨악취, 환경파괴 등 수많은 현안들을 대처하는 데 있어서 제주도정은 대단히 무능하다. 최근 도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제2공항에 대한 대응 역시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도민들의 실망이 너무 크다.“
▲ 지난해 도내의 ‘뜨거운 감자’였던 제2공항 건설에 반대 입장을 보인다. 이유가 무엇이며 대안은 있는가?
“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제주에 두 개의 공항은 필요없다. 헛된 세금이 낭비되는 게 너무 안타깝다. 공항 건설을 찬성하는 도민들에게 욕을 먹더라도 설득할 용의도 있다. 제주지사가 되면 제2공항 입지가 선정되기 2년 전 상황부터 전수조사를 해서라도 의혹들을 살펴보겠다. 특정세력의 부당한 개입이나 이권 개입, 투기 의혹 등과 타당성 검토의 적절성 여부를 세밀하게 검토할 것이다. 수요가 늘었다고 해서 제2공항을 건설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현 공항을 확충하는 쪽으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공항 건설공법이 워낙 발달했다. 바다로 향하는 다리 형태(브리지)의 활주로를 새롭게 만들면 된다. 굳이 인위적인 상권을 만들어 제주를 혼란스럽게 할 이유가 없다. 상생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존 항공을 확충하는 방안은 환경파괴도 최소화할 수 있다. 토지수용 비용도 안 들어가기 때문에 그 예산으로 산남을 비롯한 읍면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투입할 수도 있다.”
▲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 검증이다. 검증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제주도정이 맑아지고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첫째는 도덕성 검증이고 둘째는 능력에 대한 검증이다. 28년의 정치경험으로 느낀 제주도정의 가장 큰 문제는 도덕성이다. 도의회 의원이 마음만 먹는다면 몇 억씩 챙길 수 있을 만큼 적폐들이 많이 생길 수 있는 게 지금의 제주 환경이다. 법적으로 처리된 사안도 있지만 그 비리는 빙산의 일각이다.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비리들을 척결하지 않고서는 제주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할 것이다. 과거 도지사들이 청렴성, 도덕성은 낙제점이다. 이는 도민들이 다 알고 있는 사항이다. 능력 또한 중요하다. 원희룡 지사는 과거 지사보다는 열심히 뛰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제주 실정과 특성을 제대로 알지 못해 실제 성과는 거의 없었다. 한마디로 실력 발휘를 전혀 못했다. 이로 인해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들 몫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나는 가장 경쟁력있는 인물이다. 누구보다도 제주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최연소 의원, 최다선, 도의회 의장 역임 등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다만 중앙정치의 경험은 전혀 없다. 게다가 여론조사 등에서 지지도도 낮다. 당내 경선에서 승리할 자신이 있는가?
“수많은 성공과 좌절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소신을 갖게 됐는데 청렴과 도민들을 위한 진정성이 돈선거, 조직선거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것이다. 지금까지 돈으로 선거를 해본 적이 없다. 법정선거비용을 항상 넘지 않았다. 돈 안 쓰는 선거운동을 통해서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박희수만의 방식으로 도민들에게 접근할 것이다. 지금의 지지율 등은 사실 인지도 결과일 뿐이다. 아직 도민들은 후보자들의 정책, 공약, 철학, 능력 등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조직력이나 돈이 없는 상황에서 나타난 결과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정책으로 도덕성으로 도민들에게 다가간다면 반드시 반전이 있을 것이다. 이기려고 나왔다. 중앙정치 경험이 부족한 건 사실이고 약점일 수 있다. 그래서 도전인 것이다.”
▲ 자신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 앞서 말한 것처럼 중앙정치 경험이 없다. 그리고 소위 스펙이 약하다. 대선을 3번 치르면서 열심히 뛰었지만 청와대를 한번도 간 적이 없다. 정치적 후광을 기대할 수도 없을 만큼 ‘빽’도 없고 정치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그만큼 원칙적이고 청렴하다는 것 아닌가. 게다가 제주에서만큼은 스펙이 최고다. 모두 발로 뛰면서 얻은 영광과 눈물의 결실이다. 최고의 스펙을 가진 원 지사가 나보다 제주의 정서와 특수성을 이해한다고 볼 수 없다. 무엇보다 제주를 사랑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뛰고 있는 나를 따뜻하게 격려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은 솔직히 인정하고 보완해 나갈 것이다.“
▲ 페이스북에서 선거운동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화제다. 돈이나 미래의 이익을 완전히 포기한 사람, 말 그대로 순수 자원봉사자를 뽑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돈 안 드는 선거운동이 나의 소신이다. 예전부터 그렇게 해오고 있다. 한분 한분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서로가 감동하는 함께 울고 땀흘리는 선거를 하고 싶다. 그래서 제주를 제대로 후손들에게 물려줄 그런 사람들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여러 분들이 생업을 하면서도 남는 시간을 활용해 돕겠다고 연락이 오고 있다. 캠프 구성이 끝나는 대로 이분들을 모시고 어떤 역할을 나눌지 협의할 생각이다.”
▲ 제주지사 공약 혹은 정책들을 얘기할 수 있나?
“ 큰 그림은 다 그린 상태다. 세부적인 것까지 확정해서 곧 발표할 예정이다. 우선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난개발 해결이다. 그동안 제주는 30년 이상 개발자본에 의해 중산간까지 파헤쳐졌다. 심각한 내상을 입고 신음중이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제주특별법을 대대적으로 손질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민들의 삶을 보호하고 지속 가능한 제주의 미래를 준비하는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사람과 자연중심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두 번째 현안으론 제2공항 문제다. 앞서 말한 바대로다. 마지막으로는 세계평화의섬 제주는 실체가 없다는 주장이다. '남한과 북한이 공존하는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 노비자 허용, 이산가족상봉센터 등 세계의 이목을 끌 수 있는 혁신적인 계획이다. 구체적인 청사진은 선거운동 과정에 '깜짝 발표'를 할 예정이다.” [제이누리=권무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