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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룡의 '담담(談談)클리닉'(28) 술이나 도박 같은 '행위 중독'

 

“노름이 뭐 나쁜 건가?” 나쁜 게 아니지요. 노름의 어원은 ‘놀음’일 겁니다. 놀이. 놀다. 뉘앙스에서 ‘게임’과는 차원이 다른 호모루덴스 인간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말 아니겠습니까. 명절에 가족끼리, 상가(喪家)에서 문상객끼리, 친구들끼리 오랜만에 친목활동으로 화투 많이들 치잖아요.

 

화투(花鬪). 꽃들의 싸움. 영화 「타짜」에서 정마담도 말했지만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입니까? 노름도 술처럼 중독(의존)되니 그게 문제지요. 정신과에서 병적도박(Pathologic gambling)이란 진단명이 있습니다. 상위 범주는 충동조절장애에 속해요.

 

도박 중독자가 ‘내 언젠가...’ 일확천금에 눈이 멀어, 혹은 잃은 돈을 기어이 만회하기 위해서 영혼을 노름에 저당 잡힌 거라고요? 처음엔 그랬을지 몰라요. 나중엔 도박 그 자체, 가령 도박판에 딱 앉았을 때 느끼는 편안함, 화투나 트럼프를 쪼이는 그 느낌, 오르가즘과 유사한 그 쾌감을 잊지 못해서 결국 도박판을 찾게 된다고 합니다.

 

 

 

웬 노름 이야기냐고요? 노름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아니고요. ‘행위 중독’의 다른 형태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꺼냈습니다. A는 고등학생입니다. 공부도 괜찮게 하는 편이고요. 엄마와 둘이 삽니다. 부모님은 이혼했고 엄마는 남자친구가 있지요. 최근에는 엄마 남자친구도 못 마땅하지만, A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 갈등이 많았다고 합니다.

 

A는 어릴 적부터 물리적이지는 않지만 언어, 태도 등 엄마에게 심리적 아동학대를 당해왔고 지금도 당한다고 느껴요. A의 ‘심리적 현실’입니다. 고통스럽지요. 때때로 학교에서 그 생각에 압도되면 이빨로 제 손가락을 물어뜯습니다. 피가 흐를 정도로. 매번 후회를 하지만 또 반복하게 된다는 겁니다.

 

혹자는 이런 형태의 신체적 자해는 불안, 죄책감, 우울 등 고통스런 감정을 통제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합니다. 자기심리학에선 중요한 관계(자기대상)에서 ‘넌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확고한 반응을 얻지 못할 때 자기는 조각조각 깨진다고 합니다. 자기가 파편화된다는 말이죠. 파편화를 떨쳐내고 완전함(wholeness) 감각을 얻기 위해 자해를 한다고 설명합니다.

 

정신분석가 위니캇이라면 일차적 모성관계를 되찾으려는 아이의 바램이요, 엄마에게 사랑과 진실한 지지를 애타게 찾는 행위라고 말할 겁니다. 정말 따뜻한 할아버지 분석가에요.

 

 

 

A는 언제부턴가 손가락을 깨무는 순간 시원함, 그래요 어떤 쾌감을 느낀다고 고백했습니다. “순간적 쾌감을 준다.” 관심, 걱정 같은 이차이득(secondary gain)이 아니라, 자해 그 자체의 일차이득이 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쾌감이죠. 이걸 높아진 내적 긴장감을 순간적으로 우회하며 생기는 편안함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쾌감이라고 말했어요.

 

A는 통증이 뇌의 보상회로(reward circuit)를 자극하는 민감한 경로가 생긴 걸까. 술이나 도박 중독자처럼 말이에요. 음. 이렇게 말하고 보니 저보고 너무 냉정하다고 비난할지 모르겠네요. “뭐? 듣자 듣자하니까. 그러니까 A가 쾌감을 얻기 위해 반복적으로 자해를 한다는 게냐? 정신과 의사가 어떻게 그런.” 인간에 대한 생물학적 추론은 이렇게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설령 명백히 ‘쾌감을 얻기 위한 의도’로 피가 날만큼 손가락을 깨문다고 해서 A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놔둬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A는 어떤 의도도 의식하지 못한 채 손가락을 깨물고 있습니다. 피가 날 정도로. 어떤 행동을 하려는 의식에 앞서는 “뇌의 신호”가 작동한 겁니다.

 

결과를 숙고할 틈도 없이요. ‘A’가 거부할 수 있는 게 아니겠죠.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있는가하는 철학적 논쟁이 생겨난 이유기도 하고요. 가령 자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 물리적 해를 가한 경우는 어떨까요?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역시 충동조절장애 범주에 속하는데 공식 진단명은 ‘간헐적 폭발장애’에요. 순간적으로 폭발하고 “왜 그랬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몹시 자책하며 후회를 하지요. 간헐적 폭발장애로 정신과 치료 중이었다고 하더라도 모든 행위의 책임은 그가 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듯 타인에게 상해를 입혔으면 똑같이 법적 처벌을 받는다는 거지요.

 

타인보다 특정 회로가 민감한 혹은 조절이 잘 안 되는 그의 뇌가 책임지는 게 아니고요. 최신 생물학, 뇌과학 결과에 상관없이 인간에겐 모든 걸 통제하고 실행하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는 겁니다. 믿기로 합의한 겁니다.

 

약물치료는 물론 정신치료는 뇌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과는 별개로, A의 반복되는 자해를 '중독' 측면에서 말해보려다 이야기가 조금 샜습니다. 어째 글이 밭을 갈다 만 느낌이네요. 혜량하시길.

 

이범룡은?
=제주 출생.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신경정신과 병원의 문을 열었다. 면담이 어떤 사람과의 소통이라면,  글쓰기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 또한 치유의 힌트가 된다고 믿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 <밝은정신과>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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