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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룡의 '담담(談談)클리닉'(31)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뤄지기도 하는 재현

 

“누구라도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누가 봐도 그는 밉상이다. 아주 미운 짓만 골라서 한다.” 그가 모난 성격장애가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이런 부분은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 학교나 직장, 친구 사회에선 그렇지 않은데 부모-자식 간이나 부부 사이 등 사적이고 특별한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 모양이 정신치료 진료실에서 재현되는 경우가 있어요. 역할놀이처럼 말이죠.

 

실제 현실이 아니라 내담자의 "심리적 현실"을 바탕으로 말하는 겁니다. 가령 피해자-가해자 관계라면 그 가운데 한 역할을 치료자에게 주고 내담자는 상대역을 맡는 겁니다. 마음에 있는 가해자를 내게 투사하고 나는 그 가해자처럼 행동한다? 짜고 치는 고스톱도 아니고 얼핏 생각하면 있을 법하지 않습니다만, 서로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실제로 이뤄집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인 A가 매 진료 회기마다 엄마를 비난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내 생각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 태도와 말로 아동학대를 했다, 지금도 엄마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난 학대받고 있다고 말입니다. 치료자는 A가 억지 쓴다고 느끼고 이상하게 자신이 비난받는 느낌도 들어서 A를 야단치는 겁니다.

 

목소리 높이며 일방적으로요. 꼰대처럼. 이상하죠? 어쩌면 치료자는 A에게서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비슷한 또래의 제 아이를 연상했는지 모릅니다. 가능성 있죠. 치료자는 이제 A를 '학대하는' 엄마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와 A의 엄마 관계가 진료실에서 그대로 재현된 겁니다.

 

대인관계에서 일어나는 이런 정신기제를 두고 내담자 쪽에서 보면 투사적 동일시, 치료자 쪽에서 말한다면 투사적 역동일시라고 합니다. 치료자의 무의식 갈등에 때문에 생기는 협의의 역전이는 무시하고 내담자가 투사한 측면만 강조하는 건 아닙니다. 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은 투사적 동일시(역동일시)에 아주 잘 어울려요. 투사적 역동일시도 광의의 역전이입니다.

 

프로이트 시절엔 역전이를 환자에 대한 분석가의 무의식적이고 유아적인 반응으로만 규정했다고 해요. 제거해야 할 어떤 걸로 간주했다는 말이죠. 하지만 지금은 역전이를 유용한 치료도구로 여긴다고 배웠습니다. 투사적 역동일시 현상이 밝혀지면서요. 중요한 건 치료자의 자각이겠죠. 지금 진료실에서 내담자와 나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말이에요.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는 클라인 학파에서 다루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멜라니 클라인은 프로이트 시절에 프로이트 제자들에게 분석 받고 공부했지만 나중에는 클라인 학파라는 독자적 학파를 형성한 걸출한 분석가에요. 대상관계 이론의 시조로 평가받기도 하고요. 천재 여성이죠.

 

『정신분석에로의 초대』(이무석, 출판사 이유)에 따르면, 프로이트는 역전이가 단지 분석가의 갈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만 봤지만 클라인 학파는 여기에 추가해서 환자가 분석가에게 어떤 감정을 부여하고 그 역할을 부여해서 생기는 역전이가 있다고 했어요. 이 역전이를 잘 분석하면 비로소 환자의 내적 욕구를 이해할 수 있다고요. 바로 투사적 동일시(역동일시)를 말하는 거지요.

 

이범룡은?
=제주 출생.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신경정신과 병원의 문을 열었다. 면담이 어떤 사람과의 소통이라면,  글쓰기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 또한 치유의 힌트가 된다고 믿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 <밝은정신과>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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