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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룡의 '담담(談談)클리닉'(22) “강력한 감정은 외상이 되돌아온다는 위협”

 

통상 마비라고 하면 신체마비를 의미한다. “저 분은 뇌경색으로 왼쪽 팔, 다리가 마비되어 잘 움직이지 못해.” “얼굴이 마비가 되었는지 만지는데 느낌이 어둔해요.” 사회 일반에서는 운동과 감각 구분은 물론 정도나 질적 특성을 나누지 않고 <마비>라고 통칭하지만 의학용어로는 마비 정도와 부위, 질적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해서 기술한다. 그 부분은 이 글에서 다룰 게 아니다.

 

이런 여러 형태의 신체마비처럼 ‘감정이 마비되었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자면 만성 조현병(스키조프레니아, Schizophrenia) 환자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감정 둔화다. 감정 수용과 표현 모두에서 뚜렷하게 둔화된다. 무척 슬플 것 같은 상황에서 슬퍼하지 않는다, 그리 슬프지 않다고 말한다, 혹은 슬프다고 말은 하지만 부적절하다.

 

이 글은 그런 감정둔화보다는 감정표현 불능증(Alexithymia)에 대한 것이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이 용어는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감정을 제대로 분화시켜 느끼지 못한다거나 어떤 감정과 신체 감각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거나 규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분노인지 공포인지 또 다른 어떤 감정인지 분화되지 않은 감정이라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서술하거나 규정할 수가 없다.

 

 

'몸'은 신체감각을 기억하고 있으나 감정은 기억하지 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혹은 신체감각과 감정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하고 따로 나눠진 경우도 있겠다. 이것에 대해서 명쾌한 생물학 설명은 아직 부족하다. “강력한 감정으로부터 도망쳐라!” 정신분석에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위험 신호(불안)를 받았을 때 무의식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해리'라는 방어기제를 작동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강력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힌트가 오면 즉시 해리 방어기제가 발동하는 것이다. 생리적 신체감각은 저장되었지만 감정은 제대로 저장되지 않는다.

 

감정표현 불능증은 대게 정신적 고통(공포, 치욕, 상실감 등)을 받는 상황일 때 단지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감당할 수 없는 감정보다는 신체증상이 낫다."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신체화 방어기제다. 이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감정표현 불능증을 신체언어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상황으로 본다. 감정표현 불능증은 어떤 외부 사건이나 대상 혹은 극히 사적이고 내면적 삶에 집착한 경우가 많았다.

 

술에 취한 남자가 밤늦게 K씨(여) 식당으로 들어왔다. 식구들끼리 알던 사람이었다. 그는 K씨가 있는 주방으로 들어와 다짜고짜 욕설을 하며 K씨를 폭행했다. 옆에 있던 술병을 깨고 던지며 머리채를 잡고 끌고 주먹과 발로 무차별 폭행한 것이다. 피가 튀겼다. 순식간이었다. 방에서 소리를 들은 딸이 주방으로 나오며 그 광경을 목격했다. 딸은 얼어붙어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남자는 딸을 힐끗 쳐다보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위 사건으로 엄마와 딸은 결국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이하 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가 생겨 내원했다. 감정표현 불능증은 정신신체장애, 우울병 등 여러 질환에서 볼 수 있겠지만 가장 심각하고 관심 있게 이야기되는 건 PTSD에서 보이는 감정표현 불능증이다.

 

과거엔 PTSD를 전쟁, 강간, 폭행처럼 누가 봐도 일상을 벗어나는 엄청난 사건과 연관 지어 말했지만 현재는 객관적으로 스트레스 요인이 얼마나 심했느냐보다는 주관적 요인을 강조하는 추세다. 가정 파탄, 경제적 파산, 직장 퇴출, 사랑하는 사람의 급작스런 사망 등 일상에서 나타나는 상실 스트레스도 어떤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PTSD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PTSD에선 감정표현 불능증이 흔하다. “강력한 감정은 원래 외상이 되돌아온다는 위협이다”

 

PTSD 환자는 감정인식과 표현 장애 외에 '사실(Fact) 기억'에도 장애가 생긴다. 그 사건(외상) 이후부터 뚜렷한 기억력 저하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감정 장애와 달리 생물학적 설명이 잘되어 있다. PTSD 환자들은 해마 부피가 감소되어 있었다. 졸문 <과학사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H.M.>에서 언급했듯 해마(Hippocampus)는 장기 기억 유도에 없어서는 안 되는 뇌구조물이다.

 

조금 더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스트레스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말초샘(이하 HPA 시스템)을 활성화시킨다. HPA 시스템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우리 몸을 보호하는 호르몬 방출 시스템으로 생존을 위한 진화 산물이다. HPA 시스템을 통해 최종적으로 ‘당질 코르티코이드’란 호르몬을 방출한다.

 

당질 코르티코이드가 전신에 미치는 영향을 다 열거할 수는 없다. 요지는 모든 약이 적당한 용법, 용량에 따라 쓰였을 때 약이지 부적절하게 남용되면 독(毒)이 되듯, 이 당질 코르티코이드란 호르몬도 지나치게 혹은 만성적으로 ‘부적절하게’ 방출되면 독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PTSD 환자에선 ‘부적절하게’ 방출된 이 당질 코르티코이드가 해마를 직접 공격하여 부피를 감소시켰다.

 

이범룡은?
=제주 출생.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신경정신과 병원의 문을 열었다. 면담이 어떤 사람과의 소통이라면,  글쓰기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 또한 치유의 힌트가 된다고 믿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 <밝은정신과>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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