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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곤 교사의 우리말 톺아보기(44)] 사람에 따라 다른 해석

 

善化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卯(夘)乙抱遣去如 (“삼국유사" 권 제2 '서동요')

 

서동요, 다들 생각나시지요?
굳이 국문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국어 과목이나 문학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하더라도 삼국유사에 실려 전하는 서동요(薯童謠)는 알고 있으실 겁니다. 백제 무왕이 젊은 시절에 진평왕의 예쁜 셋째 딸 선화공주를 꾀어내려고 지었다는 동화 같은 설화 덕분이겠지요.

 

서동요는 보통 다음과 같이 풀이합니다.

 

“선화공주님은 / 남몰래 시집가 두고 / 맛둥 서방을 / 밤에 몰래 안고 가다.”

 

삼국유사와 거기 실린 향가는 우리보다 일본에서 먼저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라가 기울어가면서 우리가 미처 눈길 줄 겨를조차 없을 때 삼국유사를 영인하여 발행(그것도 여러 차례)한 것도 일본이었고, 학문으로서 연구하기 시작한 것도 일본이 먼저였지요.(이 과정에서 단군신화를 변조하여 우리 역사를 설화 수준으로 깎아내리려는 음모가 있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에 자극받은 젊은 우리 학자들도 향가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양주동 선생입니다.

 

선생은 특히 해방 전에 펴낸 옛 노래 연구서 ‘고가연구’와 ‘여요전주’ 두 권으로 국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됩니다. (별다른 업적 없이 이 두 권만으로 수십 년을 우려먹었다는 욕도 말년에는 들었지요.) 위의 풀이는 바로 선생의 풀이를 바탕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후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 더해지지만, 이 ‘서동요’는 짧으면서도 오히려 풀이가 까다롭습니다. 단순한 동요가 아니라 어떤 은밀한 목적을 띠고 있기 때문이지요. 아울러 실제로 무왕이 지었는지, 무왕이 정말 서동이었는지, 그리고 진평왕에게 선화라는 딸이 있었는지 등 이 짧은 노래를 둘러싼 의문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제가 무엇보다도 못마땅했던 부분은 바로 마지막 구절의 ‘卯(夘)乙’입니다. 예전에 배울 때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몰래’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인데, 그렇다면 두 번째 구절의 ‘他密只(=남몰래)’와 뜻이 겹칩니다. 향가 중에서도 가장 짧아 몇 글자 되지도 않는 4구체 노래 속에 똑같은 뜻을 가진 말이 두 번이나 나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비효율적입니다. 게다가 토씨가 아닌데도 향찰, 이두 표기의 일반 형식인 ‘뜻+소리’의 꼴이 아니라 소리만으로 적혀 있다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렸지요.

 

해서 원문을 찾아보니 하필 그 글자가 살짝 깨져서 ‘토끼 묘(卯)’ 자인지, ‘누워 뒹굴 원(夘, 夗)’ 자인지 불분명하네요.(두 번째 줄 중간쯤에 있습니다.)

 

 

이를 ‘묘(卯)’ 자로 보고 양주동 선생처럼 소리만을 따서 ‘묘을=몰래’로 풀이하기도 하지만, '무엇+을'로 보기도 하고, 좀 억지스럽게 ‘토끼(처럼 귀여운 존재)+를’이라고 푸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夘, 夗)’ 자로 본다면 ‘원+을=누워 뒹굴’이 됩니다. 이때 ‘을(乙)’ 자는 관형형 어미 ‘~을/를/ㄹ’ 노릇을 하므로 아주 자연스럽지요. 이를 바탕으로 그 부분을 풀면 ‘누워 뒹굴(며) 안고 가다’가 되어 뜻이 더욱 그럴듯해집니다.

 

그런데 이 글자를 또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게 ‘알 란(卵)’자의 다른 모습이라는 거지요. 특히 만주어 전문가인 최범영 선생(저의 페이스북 친구입니다)은 조선 영조 때 나온 만주어 교본 ‘동문유해(同文類解)’에 실린 글자 하나를 최근에 찾아냄으로써 이 주장에 힘을 실어줍니다. ‘夘’ 자에 점 하나 찍힌 이 글자는 바로 ‘알 란(卵)’ 자의 변형(이체자)이라는 거지요.
 

 

<선화공주가 만진 것은? 기사 바로보기> 

 

 

 

한자를 쓸 때 점 하나쯤 더 찍거나 생략하는 일이 드물지 않기에 이 둘을 얼마든지 같은 글자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의도적인 헷갈리게 하기'일 수도 있겠지요. 이렇게 본다면 ‘卯乙’, 아니 ‘卵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듯합니다.

 

더욱이 동문유해에서는 이 글자를 특히 '남성의 것(=불)'으로 풀이하고 있네요. 따라서 이 부분을 '불을'로 보는 것은 매우 설득력이 있는 풀이입니다.

 

이런 여러 의견들을 보면서 생각해 봅니다. 애초에 서동은 이 노래를 서라벌 아이들에게 널리 부르게 했습니다. 그러자니 대놓고 요즘말로 ‘19금’에 해당하는 단어를 쓰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아이들이야 뜻도 모르고 따라 부르지만 어른들은 그 은밀한 뜻을 넌지시 알아챌 수 있게 하려고 한 게 아닐까요? 그래서 이렇게 다른 글자로도 볼 수 있고 다른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묘한 글자를 찾아 쓴 것이 아닐까요?

 

서동에게 그런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큰 상관은 없습니다. 나아가 삼국유사에 실린 이 노래도 서동이 지은 그대로는 아닐 겁니다. 서동은 글이 아닌 말로 노래를 불러 애들한테 가르쳤고, 일연은 그 수백 년 뒤까지 입으로 전해온 그 노래를 향찰이라는, 오직 향가에만 남아 있는 표기법을 써서 비로소 글로 옮겨 적습니다. 우리는 서동의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수백년 뒤 일연의 기록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그 사이에 어떤 사람들의 어떤 생각이 끼어들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긴 시란 시인의 당초 의도와는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시는 세상에 나온 순간 시인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들의 것이 됩니다. [김효곤/ 서울 둔촌고등학교 교사]

 

☞김효곤은?
=연세대 국문과를 나와 35년여 고교 국어교사를 하고 있다. 청년기 교사시절엔 전교조신문(현 교육희망)의 기자생활도 했다. 월간 <우리교육> 기자와 출판부장, <교육희망> 교열부장도 맡았었다. 1989년 이후 민주언론운동협의회가 주최하는 대학언론 강좌를 비롯해 전국 여러 대학 학보사와 교지 편집위원회, 한겨레문화센터, 여러 신문사 등에서 대학생·기자·일반인을 상대로 우리말과 글쓰기를 강의했다. <전교조신문>, <우리교육>, <독서평설>, <빨간펜> 등 정기간행물에 우리말 바로쓰기, 글쓰기, 논술 강좌 등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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