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언론사에 재직하며 제주도청에 출입하던 시절이 있었다. 민선 2기 우근민 도정이 출범하고 나서 1년여가 지난 1999년 시점이었다.
어느 자리에서 얘기를 나누다보니 도청 출입기자를 놓고 일부 공무원들이 ‘파벌’을 분류하더란 말이 나왔다. 선거에서 경쟁한 후보를 기준으로 'A기자는 B후보 편, C기자는 D후보 편‘이란 식이다. 공무원들의 입에서만이 아니라 기자들의 입에서조차 아무렇지 않다는 듯 ’편‘으로 기자들을 나누고 있었다.
그 ‘편 가르기’에서 내가 ‘B후보 편’이란 사실을 처음 알았다. B후보는 전임 지사였고 1998년 6·4선거에서 우근민 후보와 경쟁하다 낙선한 이다. 그 편에 가담해 아무런 것도 한 적이 없고, 그 편과 ‘동지그룹’이란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지만 그리 분류돼 있었다. 이유를 알아보니 기가 차기도 하고 가관이기도 했다. B후보와 고교 동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 민선 2기 시절 우근민 도정의 ‘막가파식’ 개발드라이브가 못 마땅했고, 심지어 세계적 이중화산체 구조인 송악산을 송두리째 갈아 엎는 개발계획을 승인한 걸 보고 비판기사를 쏟아냈다. 전국의 환경단체가 일어서고 대한지질학회까지 문제를 제기한 사안이었다. 그런데 그 즈음 제주도청 인터넷 게시판엔 익명의 비난·비방이 쏟아졌다. 어김없이 ‘전임 B지사의 하수인’이란 매도가 등장했다. 하도 어이가 없어 경찰에 수사의뢰, 비방게시물의 주인공을 찾아냈다.
어리둥절하다 못해 황당했다. 범인은 다름 아닌 제주도청의 간부공무원이었다. 지난해 말 공식석상에서 자신의 고교동문을 향해 ‘우 지사를 도와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한 이가 바로 그다.
12일 민선 6기 원희룡 도정이 첫 정기인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사명단을 접하고 잠시 머뭇거린 게 사실이다. 인사평을 별도의 해설기사로 써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지만 그냥 펜을 내려놨다. 실망스러웠다. ‘일하는 조직’·‘발탁과 혁신’ 등의 인사방침을 들었지만 그 인사방침대로였는지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그 아쉬움만으로 인사결과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몇 시간이 흐르자 여러 언론에서 원 도정의 정기인사에 대한 해설·분석기사가 줄줄이 나왔다. ‘김태환 사단의 복귀, 우근민 세력의 몰락’ 또는 ‘김태환 사람들 재기, 우근민 사람들 배려 흔적’ 등의 테마였다.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청 공무원은 모두 민선 1~5기를 통틀어 전임 신구범·김태환·우근민 도정에서 일했던 이들이다. 간부들은 세 명의 지사가 각기 재임하던 시절 승진·발탁이 된 인물들이다. 하지만 발탁 등의 이유는 모두 사라지고 ‘◯◯◯의 사람들’이 돼야 하는가? 물론 누가봐도 이해할 수 없는 인사로, 아무런 합리적 이유도 없이 단지 어느 지사의 측근 역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승진가도를 달렸던 인물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 반대로 능력과 실력을 인정받아 요직에 발탁돼 열심히 일했던 공무원 역시 많다. 그런데 그런 이유를 가리지 않고 모두 싸잡아 공무원을 편으로 나눠야 할까? 그렇다면 원희룡 도정의 인사해법은 해야 할 일과 미래가 화두이기보단 언제나 ‘편의 안배와 고려·배려’가 기준이어야 하는가? 그래야 대탕평 인사가 되는 것이고, 그게 제주도정 책임자의 덕목이란 말인가?
이제 꼬리표를 붙이는 습관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억울할 수도 있는 덧씌우기를 이제 그만 버리자는 소리다. 일방적인 매도와 낙인찍기, 편가르기의 굴레를 벗었으면 한다는 말이다.
소수가 ‘줄’에 서고자 하는데 묵묵히 일하는 다수의 공무원 마저 우리가 ‘줄 세우기’하는 건 아닌지 물어야 할 시점이다. 편협한 시각으로 ‘편 가르기’를 부추겨 오히려 ‘편의 전쟁’을 유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짚어 봐야 할 시점이다.
그러다보니 이러다 이젠 내가 ‘원희룡의 기자’로 찍히는 건 아닌지 몹시 걱정스럽다.
편가르기와 낙인찍기·매도는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남들이 오해할 걸 걱정하다 결국 해야할 말도 못하고, 할 일도 그르치게 만드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편의 굴레’를 즐기던 어떤 도정은 그걸로 선거판에서 짭짤한 재미는 봤지만 민선 제주도정사에 기록할 업적은 남긴 게 없다. [양성철/ 발행·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