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에 구조된 학생들과 탑승객들은 무사히 병원에서 치료 받거나 안정을 취하고 있다. 첫날, 배가 넘어가는 몇 시간을 제외하고 구조되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의료진이 그다지 필요없다고 생각돼 방송을 통해 구조요원들의 활동 소식만 접하면서 안타까워 할 뿐이었다.
"지금 진도의 팽목항 현장과 학부모와 탑승객들 가족이 대기하고 있는 진도 체육관에 의료진이 필요하오니 참여하실 분들은 급히 연락바랍니다."
나는 내가 있는 병원의 의사들과 의논을 하고 진도로 떠나기로 했다.
진도 팽목항까지
제주항 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서 3시간 좀 안 돼 진도 북쪽 벽파진항에 내렸다. 거기서 버스를 타고 진도 읍내에 위치한 진도체육관에 도착해서 보건복지부에서 파견온 사무관으로부터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듣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가족들은 처음에 격앙된 상태에서 많이 나아지고 침잠해 졌다고 한다. 안정된 게 아니라 지치고 자포자기 상태라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진도 체육관에 배치됐다. 하지만 구조선이나 시신 인양선들이 오는 팽목항 상황을 알아보러 다시 3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봤다. 많은 봉사자들이 제각기 팀을 이뤄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의료팀들도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진료를 보고 있었다.
오고가는 사람들 중에 실종자 가족들을 구분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축 늘어진 어깨, 초췌한 얼굴, 생기 잃은 눈..... 그 분들은 제대로 끼니를 잇고 있지 않다고 한다. 하긴 진료소에서도 아파도 진료를 거부한다고 했으니.
고요 속의 긴장감
진료 형태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리를 잡아나갔다. 처음에는 각 지역, 각 병원에서 지원 온 의료진들이 있고, 나처럼 가정의학회에서 꾸려져서 온 의사들 등으로 혼잡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에서 파견 나온 사무관이 필요한 의료 물품들을 조달할 뿐 아니라 각 의료팀들의 역할을 조정하고 할당을 하게 되니 중심이 잡혔다.
오랜만에 보건복지부의 발빠른 활동을 보니 기쁘다. 국가재난대책도 이렇게 중심을 잡고 매뉴얼에 따라 착착 자리를 잡고 역할을 하게 했으면 이번 세월호 참사의 가족들이 지금처럼 원통해 하지는 않을 텐데.....
내가 일하는 진도군 실내체육관 안은 넓은데도 어느 누구의 기침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조용하다. 입구에는 가족들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지 말라고 공고문이 붙어 있을 정도로 모두들 조심에 조심을 하다보니 조용한 것이다. 간혹 커다란 모니터에 학생의 인상착의가 팽목항에서 전해오면 갑자기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소란스러워지는 것 말고는 내내 평온한 분위기다.
그럴 때마다 의료진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몸부림치는 가족들만 아니라 자원봉사자들도, 주위에 있던 기자들도 모두 눈을 감는다.
'힘내세요'라고 말도 못 건네는 분위기
지진이나 태풍, 건물 붕괴 등과 같은 재난 상황이 아니어서 응급환자나 심한 부상자들은 없다. 가벼운 증상들이거나 경황이 없어서 고혈압, 당뇨약을 못 가지고 온 분들의 진료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그분들의 심리적 안정이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
대부분의 가족들은 아파도 본인이 스스로 오지 않는다. 곁을 지키는 친지나 지인들이 억지로 데리고 와야 대면하게 된다. 자식을 죽였는데 내가 아픈 거 고쳐서 뭐하냐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최대한 잠깐 침묵을 유지하며 동조하는 마음을 전해준다. 의료진들은 흔히 진료하듯 서두르지 않는다. 우선 주변분에게서 불편해 보이는 상황을 듣고 아픈 내용을 짐작해내고, 필요한 처치를 해드린다.
내 기억으로 이렇게 힘든 재난은 없었던 것 같다. 삼풍백화점 사고 때도, 성수대교 참사에도 이렇게 울거나 절망적이지 않았다. 슬픈 것보다도 절망적이라는 게 너무 힘들었다. 절망....
매일 밤 소주와 눈물로 버티다 못참고, 나는 그래서 연락을 받자마자 부리나케 여기 왔던 것 같다. 얼마 후 돌아가지만 저 아이들을 다 건지려면 얼마나 더 시간이 걸려야 하나.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들 가슴은 얼마나 오래 타들어가야 하나..... 우리 모두에게 너무 힘든 시간들이다.
☞고병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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