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영평동 18평 남짓한 50여년 된 낡은 집에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청년들이 들이 닥쳤다. 20여명의 이 청년들은 돌연 창문을 뜯어내고 가구와 집기를 밖으로 꺼냈다.
이윽고 이들 청년들은 벽지와 장판을 걷어냈고, 모래에 시멘트를 섞기 시작했다.
이들 청년들은 제주영남도민회 청년회 회원들. 27일 오전부터 벌어진 상황이다.
영남도민회 청년들이 송년회 모임을 지역사회 봉사활동으로 이어가고 있다. 흥청망청 술판으로 이어지던 여느 송년회완 딴판이다.
이들은 송년회를 독거노인 집수리 봉사활동으로 벌이기로 하고 이날 영평동을 찾았다.
제주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있는 청년들이 손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청년회는 아라동주민센터의 추천을 받아 백임숙 할머니(89)의 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백 할머니는 약간의 재산이 있는 탓에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는 신세. 하지만 벌이가 없어 사실상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동주민센터에서도 마땅한 지원방안이 없어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2004년에 만들어진 청년회는 그 동안 연간 송년회 비용으로 400만~500만원을 써 왔다.
하지만 올해 송년회를 준비하던 청년회는 그냥 허비하는 비용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뭔가 뜻 깊은 일에 사용하기로 하고, 이번에 집수리 봉사에 나선 것이다.
청년회는 섀시와 도배지, 장판, 시멘트 등을 구입하고 직접 재단까지 했다. 또 도로보다 낮은 집이어서 비가 오면 물이 새는 터라 물막이 공사도 하고, 지붕에 우수 배관을 설치해 물을 도로로 빠지도록 했다. 지붕 방수공사도 했다.
청년회 회원 중에는 건축업과 가구업을 하는 프로들이 있어 그나마 큰 어려움은 없었다.
갖고 있는 재능을 발휘한 회원들은 오후 4시께가 돼서야 일을 마무리 했다. 청년회는 다음 달에 집 곳곳에 페인트칠을 해 집수리 봉사활동을 마무리 할 예정이다.
그는 또 “앞으로 매년 1~2차례 이러한 봉사활동은 물론, 틈틈이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는 일에 수시로 나설 것”이라고 향후 계획도 설명했다.
16년 전에 제주에 정착해 가구업을 하는 회원 박창수(44)씨는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도 났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거주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는데, 하나 둘 제 모습을 갖추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하다”며 “제주도민의 일원으로서 사회에 기여하고 싶었는데 오늘 하게 돼 기쁘다. 앞으로도 힘 닿는 대로 봉사에 자주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회원들과 친분이 있어 참가하게 됐다는 제주출신 김성덕씨(42)는 “울산공대를 나오고, 경상도에서 직장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 영남지역 출신들과 친분이 있었다”며 “뜻 깊은 일을 한다기에 바로 이곳으로 와서 일손을 보탰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도민이라는 생각에 지역사회에 봉사하겠다는 마음가짐에 제주가 고향인 한 사람으로서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보기도 아주 좋다”고 기뻐했다.
백 할머니는 “기분이 너무 좋다. 정말 고맙다”며 “비가 오면 집안에 물이 차 고생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걱정을 덜게 됐다. 깨끗해진 집을 보니 몇 십 년은 더 살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