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성철/ 제이누리 발행.편집인 민선 5기 지방선거를 앞둔 2010년 3월13일 오후 3시. 제주시청 인근 하나은행 3층 사무소에 인파가 모여들었다. 6년이란 야인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정치전선에 나선 우근민 제주도지사의 예비후보 사무실 개소식 현장이었다. 우 지사는 그 자리에서 힘주어 말했다. 그가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 무효화 된 2002년 6·13선거를 회상하며 그는 말을 이어갔다. “온갖 정치적 음해와 테러가 난무했고 ··· 성추행범으로 몰아붙이기까지 했지만 ··· (도민들은) 뜨거운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셨다”며 그는 감사의 뜻을 전했다. (현장에서 그는 자신이 당선된 2002년 6·13선거를 5·31선거라고 반복해 말했다. 취재하던 기자들이나 일부 유권자들은 그 기억까지 수정해줘야 했다) 그는 한술 더 떠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그 시절 논란이 된 성추행 전력과 관련해 “저는 성범죄 전력을 갖고 있지 않고, 더더욱 성추행범은 결코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여성부가 &l
그곳에 오르면 멀리 국토최남단 마라도가 보인다. 산방산이 마치 손에 잡힐 듯 곁에 있고, 우애 좋게 나란히 선 형제섬은 바로 코 앞이다. 마라도행 유람선의 선착장도 그 산 아래 포구에 있다. 산 아래 바닷가에선 낚시꾼들이 감성돔·벵애돔을 기다리고 있다. 김수현 작가의 작품으로 과거 인기리에 방영됐던 TV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촬영무대도 이 산 자락이다. 한 마디로 비경(秘境)이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송악산에서 볼 수 있는 풍광이다. 해발 104m에 불과하지만 송악산은 지질학적으로도 이름 난 산이다. 120만년이란 형성사를 간직한 제주도에서 이 산은 고작 4000~5000년 전에 분출해 만들어졌다. 그것도 바닷속에서 화산폭발이 이뤄져 제주 본 섬과 몸을 합치더니 중심부의 2차 화산활동으로 ‘분화구 안에 분화구’를 갖춘 이중분화구 구조가 됐다.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경우이자 ‘한반도 최근세 화산’이란 별칭까지 붙었다. 지질학자들은 화산활동의 특징을 보여주는 ‘화산지질학 교과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산은 역사의 생채기마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해안절벽지대엔 15개의 인공동굴이 뻥뻥 뚫려 있고, 곳곳마다 참호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 양성철/ 발행.편집인 갑오년-. 역사의 교훈이 옷깃을 여미며 다가오는 새해다. 갑오경장과 갑오년에 벌어진 동학농민혁명이 떠오른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지만 그 교훈은 서로 다르게 다가온다. 음미할 이유가 있다. 먼저 갑오년에 벌어진 동학농민혁명. 1894년 여름의 일이다. 정부와 전주화약을 맺은 동학 농민군이 삼남 지방 각처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개혁을 추진하던 무렵, 농민들 사이에 “갑오세(甲午歲) 갑오세 을미적(乙未賊) 을미적거리면 병신(丙申)되어 못 가리”라는 노래가 떠돌았다. 문자대로 풀 수 없는 비문(非文)의 노래다. 그러나 누구나 그 뜻을 알았다. “갑오년에는 성공했으나 을미년(1895년)에 왜적이 공격할 것이니 병신년(1896년) 이전에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예언적 의미와 “이왕 난리를 일으켰으니 서울까지 가보자, 미적 미적대다가는 병신 되어 못 간다”는 선동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었다. 동학 농민운동은 병신년이 되기 전에 진압됐다. 임오군란을 진압한다고 청나라 군대를 끌어온 그 대가로 이번엔 동학농민군이 일본군들의 총부리에 스러졌다. 당시 1500만 조선 인구 중 100만명
▲ 양성철/ 발행.편집인 우선 진실추구의 ‘정론’을 펼치고 있는 <제주의 소리>에 경의를 표한다. 팍팍한 지역사회 현실에서 꾸준히 할 말을 다하고자 애쓰는 노력이 가상하기도 하거니와 구성원들의 열정이 돋보여 솔직히 부럽기도 하다. 그저 공치사나 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언론으로서 제 몫을 다하는 <제주의 소리>에 대해 경쟁언론으로서가 아니라 동료언론으로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박수를 치고 싶어서다. 사실 힘든 일을 하고 있다. 그것도 제주에서 언론이 ‘제왕적 권력’과 ‘제왕의 시장’을 상대로 맞서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스라이 잊혀질 뻔 했던 10여년 전 일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6개월 전 칼럼에서 살짝 언급했던 내용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런지라 이 참에 아예 소상히 밝히고자 한다. 과거 중앙언론사에 재직하며 제주도청을 출입하던 기자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13년 전인 2000년 초 사건이 있었다. 그 때 역시 지금의 도지사가 지사로 재임하던 시절이다. 엉터리 환경영향평가를 기초로 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산 하나를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개발사업이 승인된 것이다
▲ 양성철/ 발행.편집인 아내와 아들은 하염 없이 울었다. 황망히 아버지를 여의고, 어이없게 남편을 잃은 그들은 그저 그렇게 눈물만 흘렸다. 3대 독자였던 그 아버지가 세상을 하직하는 바람에 그 집안에 남자라곤 졸지에 4대 독자인 아들뿐이다. 청년회장과 애월리장을 지낸 그 아버지이자 남편 박도천(64)씨는 언제나 열성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난 8일 오전 9시10분쯤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자운당 입구 사거리에서 변을 당했다. “제주도에 소나무 재선충병이 창궐, 이러다 온 섬이 초토화될 판”이라는 소식이 지속됐고, 급기야 도지사가 “지금은 온 도민이 나서야 할 때”란 도민호소까지 한 마당이기에 그는 청년회 회원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비록 민간인 신분이지만 “공무원들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다. 우리 제주도를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향토애가 발동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고사목 제거 작업을 하다 쓰러지는 나무에 머리를 다쳐 병원으로 실려갔다. 목이 부러지고 뇌손상 증세가 나타나 사경을 헤매던 그는 결국 사고 5일만에 숨지고 말았다. 민간인이 관 주도 재선충 방제 현장을 찾아 돕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1
▲ 양성철/<제이누리> 발행.편집인 가관(可觀)이다. 참으로 볼만하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눈을 뜨고 볼 수가 없다. 선거판이 이렇게 간다면, 이게 민주주의라면 솔직히 부정하고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민의(民意)를 왜곡하는 것이고, 민주적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것이다. 제주도 인구는 60만이다. 성인이자 유권자 수로 보면 40만 쯤 된다. 그런데 최근 집계된 새누리당·민주당 두당의 당원수를 합치면 10만명이나 된다. 새누리가 6만5000명, 민주가 3만3000여명이다. 도민 4명 중 한 명이 두 당의 당원이라는 소리다. 이 정도로 우리 제주가 정치의식이 높은 지 몰랐다. 우리나라 인구 5000만을 놓고 대비해 보면 1250만명이 정당원이란 비례가 나온다. 전국 통계가 그 수준이 아닌데 제주도가 유독 이러니 한 마디로 대단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니 어안이 벙벙해진다. 두 당의 당원은 최근 3만여명이 불었다. 그것도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경우는 2만여명에 이른다. 그 가운데서도 현직 우근민 도지사를 지원하는 측으로 분류된 경우가 1만7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관측된다. 새누리당 도당 관계자
득표율 80%가 넘으면 몰표라고 한다. 한국정치사에서 그런 일이 왕왕 있었다. 1950~60년대가 그렇고 70~80년대 초반만 해도 지금은 생소한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 선거나 일부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구에서 그런 몰표현상이 나왔다. 각종 부정, 불법선거가 판을 치고 공무원을 동원한 '관제선거'에서 벌어졌던 양상이다. 현대사회에서도 몰표 현상은 나온다. 지역감정이 극에 달한 지역에서 그렇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호남이다. 특정 정당에 주어지는 민심(?)이다. 워낙에 지역감정이 심하고, 정권에 따라 소외감에 시달리다 보니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지 올해로 7년째다. 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행정체제도 기존의 4개 시·군에서 2개 행정시로 바뀌었다. 하지만 기초자치단체가 없어지면서 일각의 우려가 나타났다. 예산은 줄고, 민원은 정책에 반영되기 힘들었다. 많은 중앙 권한이 위임됐지만 도민들은 나아졌다고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퇴보한다고 호소했다. 행정시의 권한이 강화되거나 기초자치단체를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불거진 건 그 이유였다. 관권 선거하듯, 2006년 주민투표 연상케 한 관제 여론몰이 결과는 &lsq
인간은 망각(忘却)의 동물이라고 하니 그럴 수 있다. 세상일이 워낙 변화무쌍하니 범인(凡人)들이 그 세세한 변화의 계기와 시작점을 기억한다는 건 사실 무리다. 하지만 모두가 다 잊더라도 잊어서는 안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도 한 나라, 한 지역을 이끈 지도자가 자신이 내놓은 정책으로 인해 해당 국가와 지역에 엄청난 변화가 나타났다면 아마 그의 뇌리에 그 정책에 대한 기억은 꽂히고도 남는다. 한때 ‘업적’이라고 자부하던 그 정책이 비록 ‘졸작’으로 후일 판명났다손 치더라도 그가 그걸 잊을 리는 만무다. 1998년 민선 2기 지사로 선출됐던 이는 2002년 6월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자 의욕적인 정책을 내놓았다. 2002년 1월 제주국제자유도시가 출범했지만 아마도 그에게 당시의 제주 행정체제는 곳곳에서 암초와 같은 걸림돌이었고, 효율성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였던 것 같다. 마침 각종 비리로 얼룩진 사건들이 터지면서 '시·군의회 무용론'이 일던 때였다. 더욱이 도지사였던 그는 그 시절 기초단체장인 제주시장과 각종 정책추진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다. 11년 전이다. 2002년 9월17일 도지사였던 그는 제주발전연구원에서 작성한 ‘제주도 행정계층구조 개편을 위한 기본계획
‘분열’(分裂)의 국어사전적 의미는 “찢어져 나뉘는 것”이다. ‘갈라짐’을 말한다. ‘조장’(助長)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더 심해지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결국 "분열을 조장한다"는 건 “찢어져 나뉘는 걸, 갈라지는 일이 더 심해지도록 부추기는 일”을 의미한다. 제주도는 지난달 31일 공식 해명(보도)자료를 통해 본 <제이누리>를 “공연히 도민사회의 분열을 조장한” 매체로 지목, “강력한 법적 대응을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주일 가까이 인내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사과의 움직임이 없는 것은 물론 어이 없는 방법으로 여론의 반전을 꾀하는 움직임이 포착돼 이제 화답한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제주도 공직사회에 숱하게 회자됐다. “조/ 배/ 죽!” 우근민 도지사와 실·국장이 참석하는 회식 자리 건배구호다. 주변을 지켜보던 하급 공무원으로부터 전해들은 그 건배구호는 너무도 기가 찬 내용을 함축하고 있었다. “(조)직을 (배)신하면 (죽)음이다.” 도지사가 잔을 들고 그 구호를 외치면 나머지 실·국장들은 “네! 형님”으로 화답해야 한다. 그들은 마치 조폭무리라도 되듯 ‘조직’이고, ‘배신’하면 ‘죽음’이 놓여 있는 살벌함의 세계
아내와 함께 영화관으로 갔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동창들이 “부부동반으로 영화나 보자”고 해서 간 자리다. 그저 일에만 치여 사는 것 같아 좀 쉬고 싶었다. 게다가 영화를 보고 나면 친교의 자리도 있다니 그저 우정이나 돈독히 다질 요량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33년의 역사, 방송횟수 1650회, 본선출연자는 3만명, 예선참가자는 100만명, 방청(관람)객수는 1천만명. 딩동댕 실로폰 소리와 낯익은 배경음악(BGM), “전국~” 하면 꼭 따라 하게 되는 “노래자랑”이라는 단어. 33년 동안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어루만져준 최장수 TV 프로그램-. 대한민국의 원조 버라이어티라는 <전국노래자랑>을 스크린으로 만났다. TV프로그램으로선 진기한 기록을 양산했지만 도무지 마음에 끌리지도, 그렇게 기발해 보이지도 않았던 그 프로그램은 그렇듯 내게 흥미롭지 않았다. 그러나 난 영화를 보고 감동의 의미를 되새겼다. 삶의 존재이유를 조금이나마 깨달았다. 가슴이 벅차오른다는 게 무엇인지를 알 것 같았다.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생활력 강한 아내 ‘미애’의 미용실 셔터맨 ‘봉남’은 비록
▲ 양성철/<제이누리> 발행·편집인 “지금 말하지만 난 그 ‘폭도의 수괴’로 불렸던 이덕구의 아들과 초등학교 동창이다. 코흘리개이던 신촌초등학교 1학년 동급생이자 한 책상에 나란히 앉았던 벗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 역시 지금 세상에 없다. 4·3사건이 종반전으로 치달을 무렵 어느 날 경찰의 손에 붙들려 갔고, 후일 들은 얘기지만 경찰관도 차마 그냥 총을 겨눌 수 없어 놓아주고 도망치게 한 뒤 총부리를 겨눴다고 한다. 너무도 아픈 우리네 역사다. 그 어린 영혼이 무슨 죄가 있다고 숨져가야 했는지 그 참담했던 제주의 시련이 아직도 마음을 후빈다.” “삼양지서가 습격 당했을 땐 새벽에 군경 토벌대가 한 달 된 갓난애까지 포함해 전 주민을 신촌초등학교에 불러세웠다. 기관총이 내걸리고 전원이 몰살 당할 위기였다. 그런데 삼양출신인 한 경찰관이 ‘무고한 백성을 죽이려면 나를 쏘고 죽여라’고 맞섰다.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 사람 덕에 마을 사람 다수가 살았다. 하지만 군경 토벌대는 시도 때도 없이 마을 주민들을 신촌초등학교 운동장에 불러 세워 연령대 별로 마
▲ 양성철/<제이누리> 발행·편집인 유엔(UN)은 1965년부터 국제수문 10개년 사업을 벌여 세계 수(水)자원의 관리를 위한 종합적인 해결방안을 조사했다. 많은 국가에서 물 부족 현상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1967년 세계물평화회의, 1972년 국제연합 인간환경회의, 1977년 국제연합 수자원회의 등을 연 이유다. 물 부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한 것이다. 1981년에는 '국제 식수공급과 위생에 대한 10년 계획(International Drinking Water Supply and Sanitation Decade)'을 수립하는 등 물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고민은 깊었다. 결국 1992년 6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UN 환경 개발회의(UNCED : United Nations Conference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에서 국제사회는 지구의 환경 보전을 위한 ‘리우선언’과 그 실천계획인 ‘아젠다(Agenda) 21’을 채택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제 47차 UN 총회에서 매년 3월 22일을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