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병수 원장 우리 병원에 가끔 오시는 장애인 김씨가 있다. 그는 45세 정도의 남자 분으로 전동 휠체어를 타고 진료실로 들어오시는데 전자차트에 이름이 뜨면 나는 자연스럽게 진료실 문을 열고 김씨를 안으로 들어오게 도우면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셨어요? 전에 장염 기운은 좀 좋아지셨나요?” “아, 예...어...으... 좋...으아... 즈...었..어...요...오...” 뇌성마비를 가진 김씨는 내게 대답을 하면서도 숙달된 기계 작동으로 앞, 뒤, 좌, 우 휠체어를 돌리며 좁은 진료실에서 공간을 확보한다. “오늘은 어디가 불편하세요?” “감...기... 여...얼... 마...니...나...아...아...었...” 김씨는 자기 증상 표현을 다하지 않는다. 다 말하려고 하면 힘도 들지만 의사가 알아듣지도 못하기 때문에 중요 포인트만 말해도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나는 대강 그 정도만 듣고 일단 청진기를 들고 진찰을 시작한다. 목이 부었나, 내부 장기는 괜찮은가 살핀 다음 설명을 해준다. “냉방병으로 생긴 몸살 감기 같아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추
사람은 누구나 죽고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생각한 것보다는 언제나 빨리 찾아오지요. 그 날이 내일이 될 지도 모르잖습니까? 그래서 ‘지금 여기’ 삶이 황금보다도 소중하고 아까운 것이라고 말하지요. “살고 싶지 않아요.” 사는 게 괴롭고 힘들다는 정도가 아니라, 자살을 생각한다고 짐작되더라도 당사자가 아닌 가까운 지인이나 친구라면 “야, 죽을 바엔 차라리...”로 시작되는 조언을 하게 됩니다. 실제 자살을 한 경우도 사후에 안타까움을 그렇게 표현합니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다른 모습의 삶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데 왜 죽을 생각을 하냐고요. ‘터널 시야’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울병 환자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터널에서는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볼 수 있는 풍경이 한정되지요. 터널 밖으로 나와야 전체풍경이 다 보이잖아요? 우울병 환자는 터널 안에 있기 때문에 보이는 방향과 풍경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가 보고 생각하는 것도 진실의 한 부분일 겁니다. 문제는 오로지 그 부분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저 사진에서 보이는
“누구라도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누가 봐도 그는 밉상이다. 아주 미운 짓만 골라서 한다.” 그가 모난 성격장애가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이런 부분은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 학교나 직장, 친구 사회에선 그렇지 않은데 부모-자식 간이나 부부 사이 등 사적이고 특별한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 모양이 정신치료 진료실에서 재현되는 경우가 있어요. 역할놀이처럼 말이죠. 실제 현실이 아니라 내담자의 "심리적 현실"을 바탕으로 말하는 겁니다. 가령 피해자-가해자 관계라면 그 가운데 한 역할을 치료자에게 주고 내담자는 상대역을 맡는 겁니다. 마음에 있는 가해자를 내게 투사하고 나는 그 가해자처럼 행동한다? 짜고 치는 고스톱도 아니고 얼핏 생각하면 있을 법하지 않습니다만, 서로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실제로 이뤄집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인 A가 매 진료 회기마다 엄마를 비난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내 생각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 태도와 말로 아동학대를 했다, 지금도 엄마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난 학대받고 있다고 말입니다. 치료자는 A가 억지 쓴다고 느끼고 이상하게 자신이
▲ 인천 초등생 살인범 A양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 재판이 시작됐군요.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살해된 아이의 부모 심정을 헤아려보면 이런 재판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B양은 살인방조인지 살인교사인지 쟁점이 되는 가운데, 살인범 A양은 <아스퍼거 증후군>인지, <사이코패스>인지를 두고 논란이 있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예전에 ‘미네르바 사건’에서도 거론됐던 진단명이지요. 아스퍼거 증후군은 전반적 발달장애(Pervasive Developmental Disorders)에 속하는 하위 진단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말하기에 앞서 우선 상위범주인 전반적 발달장애를 생각해 봅니다. 전반적 발달장애는 예전에 ‘소아자폐증’이라고 불렸던 병이에요. 전반적 발달장애는 크게 사회적 발달장애, 언어와 대화의 발달장애, 행동발달의 장애 세 가지 임상양상을 보입니다. 사회적 발달장애는 대인관계 회피를 의미하는데요. 전혀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는 경우, 수동적이지만 사회적 접근을 받아들이고 구조화된 놀이상황에서는 또래관계도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경우, 자발적인 사회적 접근이 일어나지만 부
▲ 「안젤리카를 구출하는 로저」 앵그르, 1819년. 로저의 창과 괴물의 입은 남녀의 성적 결합을 시각적으로 암시한다. 괴물의 이빨이 창 끝에 단단히 걸린다. 화면 중앙을 가로지르는 안젤리카의 몸을 통과하여, 괴물이 넓게 벌린 입에 꽂힌다. 순간 안젤리나는 완전히 목을 뒤로 젖히고 허연 눈자위를 드러낸다. 오르가슴에 도달한 상태다. ---『성의 미학』(미와교코/진중권, 세종서적) 중에서.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저 사슬은 억압이다. 성의 억압이다. 억압된만큼 환상은 커진다. 환상에는 오르가슴과 색이 다른 쾌락이 있다. S씨는 자기 환상을 깡그리 산산조각 낸 연적(戀敵)을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것일까? 6개월 전이다. 30대 중반 여성 S씨는 화가 난 표정으로 진료실에 들어왔다. 미혼이다. 좋아하는 외국 배우가 있다. 애도 있는 유부남이다. 2달 전에 20살 가까이 어린 여성(그 나라 연예인?)이 그를 유혹했으며 이제 그 여성과 가깝게 지낸다는 인터넷 뉴스를 봤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화가 난다. 울기까지 했다. 더 절망스러운 일은 팬 카페에 들어가 댓글들을 사전 찾아 번역하며 다 읽어보았는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희희낙락 좋은 댓글만 있다. 어쩌면
아동이 눈을 자주 깜박거리거나, 머리를 흔들거나, 어깨를 씰룩거리거나, 코를 벌름거리기도 하고, 턱을 아래로 내미는듯한 행동을 하는 등 뚜렷한 목적이나 이유 없이 특정 근육을 갑자기 연속적으로 꿈틀거리는 버릇이 생기는 것을 운동 틱 이라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마른기침을 계속하거나 가래를 뱉는 소리, 침을 뱉는 소리를 하거나 심하면 주변 상황에 상관없이 욕이나 외설적인 말이 튀어나오는 형태의 음성 틱 증상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틱 장애가 생기는 원인은 아직 뚜렷하게 밝혀진 것은 없으며, 친척 중에 다른 사람도 틱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있어 체질적인 요소가 주로 관여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는 등의 긴장 상태나 흥분 상태에서 틱 증상이 심해지고, 긴장과 스트레스를 받는 등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틱 증상이 유발되거나 심해질 수 있습니다. 특히 학업 성적에 대한 무리한 기대나, 부모의 불화 등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틱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는 부모가 매우 허용적인대도 아동에게 틱 증세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아동이 외동이거나 장남이거나 하여 아동에게 거는 기대가 많고, 이러한 기대 수준을 아동 스스로 내
어떤 남자 알코올 중독자(나도 알코올 ‘중독’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오해 소지가 많은 용어다. 알코올 ‘의존’이 더 적합하다)가 술을 끊겠다며 병원에 온다. 알코올 치료하는 병원에 다니지 않으면 이혼하겠다는 통보를 받는 등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온 거라면 앞으로 단주 가능성 희박하다. 그는 정기적으로 병원 방문도 하지 않을 것이고 얼마 없어 아무런 고민 없이 술 중독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제 발로 찾아온 거라면 희망이 있다. “끊으려면 얼마든지 끊지“ 그 분은 병원에 오기 전에 스스로 단주를 결심하고 시도했을 것이다. 단주가 두어 달 꽤 오래 간 적도 없진 않지만 어느 순간 다시 술 중독세계로 돌아가고 가정에서 직장에서 문제를 일으켰을 것이다. ”아, 사람의 의지로는 안 되는 거구나“ 그걸 깨달은 단계에서 제 발로 병원을 찾았다면 훌륭한 환자다. 술 생각이 안 나게 하는 약은 없을까요. 술을 못 마시게 하는 약은 없을까요. 생물학 이론에 따라 알코올 갈망을 ‘줄이는’ 약은 나와 있지만, 약이 술 생각
“노름이 뭐 나쁜 건가?” 나쁜 게 아니지요. 노름의 어원은 ‘놀음’일 겁니다. 놀이. 놀다. 뉘앙스에서 ‘게임’과는 차원이 다른 호모루덴스 인간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말 아니겠습니까. 명절에 가족끼리, 상가(喪家)에서 문상객끼리, 친구들끼리 오랜만에 친목활동으로 화투 많이들 치잖아요. 화투(花鬪). 꽃들의 싸움. 영화 「타짜」에서 정마담도 말했지만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입니까? 노름도 술처럼 중독(의존)되니 그게 문제지요. 정신과에서 병적도박(Pathologic gambling)이란 진단명이 있습니다. 상위 범주는 충동조절장애에 속해요. 도박 중독자가 ‘내 언젠가...’ 일확천금에 눈이 멀어, 혹은 잃은 돈을 기어이 만회하기 위해서 영혼을 노름에 저당 잡힌 거라고요? 처음엔 그랬을지 몰라요. 나중엔 도박 그 자체, 가령 도박판에 딱 앉았을 때 느끼는 편안함, 화투나 트럼프를 쪼이는 그 느낌, 오르가즘과 유사한 그 쾌감을 잊지 못해서 결국 도박판을 찾게 된다고 합니다. 웬 노름 이야기냐고요? 노름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아니고요. ‘행위 중독’의
눈에 보이는 현실 자체가 뇌의 해석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는 현실이란 우리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그림자를 가지고 뇌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우리가 서로를 ‘완벽히’ 알아보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각자 다른 뇌를 가졌기 때문이라고도 하고요. 저 옛날 플라톤부터 데카르트, 칸트, 사르트르 등등 수많은 철학자들은 이런 사실을 한없이 확장해서 철학의 불을 품어왔지 않습니까. 가소성(plasticity)이란 물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는 ‘외력에 의해 형태가 변한 물체가 외력이 없어져도 원래의 형태로 돌아오지 않는 물질의 성질이며 탄력성 한계를 넘는 힘이 작용할 때 나타난다.’고 설명하는군요. ‘물기가 있는 찰흙에 외부의 힘을 가하여 여러 형태로 변형시킨 뒤, 더 이상 외부에서 힘을 가하지 않아도 점토는 변형된 그대로의 모양을 유지한다. 추가로 힘을 가하지 않는 이상 변형된 형태가 영구적으로 유지된다. 이러한 찰흙의 특성과 같은 성질을 가소성이라고 한다.’고요. 정리하면 가소성은 탄력성 한계를 넘는 외부 자극에 의해 구조 변화를 일으키고 변화된 모
▲ 잠은 넌렘수면부터 시작된다. 사이클을 그리며 간간히 렘수면이 나타난다. 영아의 경우 렘수면은 잠의 80%를 차지한다. 성장하며 점차 줄어들고 성인이 되면 전체 잠에서 20-25%를 차지한다. 잠에서 깨기 직전 마지막 렘수면이 길다. 아침에 일어나 기억하는 꿈은 이때 꾼 것으로 생각한다. 어떤 이는 밤새 꿈만 꿨다고 하지만 마지막 렘시기에 꾼 꿈을 기억하는 셈이다.[구글] 잠은 넌렘(Non-REM)수면과 렘(REM, rapid eye movement)수면이 교대로 나타납니다. 아이가 곤히 자고 있을 때 조용히 그 녀석 눈꺼풀을 들고 눈동자 움직임을 관찰해 보세요. 엽기적인가요? 시기가 맞으면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그 때가 렘수면이죠. 아이는 어른보다 훨씬 많은 렘수면을 보이기 때문에 쉽게 관찰할 수가 있죠. 꿈이 곧 렘수면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꿈은 거의 대부분 렘수면(REM sleep) 때 일어납니다. 꿈을 먼저 이야기해 보죠. 프로이트는 꿈을 ‘소망성취’라고 했습니다. 꿈은 소망을 성취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에요. 하지만 대게 소망은 거창한 게 아닐뿐더러 소망의 성취도 위장된 만족에 불
5.우울증의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1) 외적 요인이 있는 경한 우울증의 경우 어떤 상실이나 좌절이 있고 나서 우울감과 자책감이 심해지고 자신의 삶이 보람이 없고 살 가치가 없는 것 같은 생각에 빠진 경우라면, 이때가 바로 자신을 한 번 점검해 볼 때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 스스로 생각하듯이 정말로 자신의 삶이 무가치하고 아무 능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일이 충격이 되어 자신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이지, 그것이 결코 객관적인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관점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혼자서만 고민하고 혼자서 해결하려고만 해서는 어렵습니다. 평소 자신을 이해해 주었던 친구나 선배와 이러한 점에 대해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어 보거나, 신경정신과를 찾아가 상담을 해봄으로서 다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음에 상처를 받아 자신감을 잃고 있을 때는 혼자서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어렵고,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점점 깊은 우울과 열등감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중증 우울증의 일반적 치료 및 관리 우울증의 치료에서 명심해야 할 점
K씨는 50대 부인이다. 대인관계 공포가 있다고 한다. 작은 호텔 프론트 업무를 보고 있는데 내부 전화벨이 울리면 받기가 불안해진다. “네, ooo입니다.”라는 말도 제대로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덜덜 떨며 우는 둣한 목소리에 상대방이 의아하게 생각할 게 틀림없다. 최근 교회에서 작은 직책을 맡겼는데 걱정이 많다. 여러 사람 앞에서 성경을 읽는다거나 발표를 해야 할 때 보나마나 목소리도 그렇고 온 몸을 떨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번에도 말은 안했지만 사람들이 너무 이상하게 봤을 거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평소 친한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아무 걱정이 없다. 잘 모르는 사람이거나 서로 얼굴만 아는 사이 정도에선 목소리가 달라지고 심지어 몸을 떨기도 한다. 무섭다. 구체적으로 누구라고 말하기 싫지만 요즘은 특별히 힘든 사람이 두 명 있다. 만날 때마다 불안하고 두렵다. 실제로 몸도 떤다. 둘 다 굉장히 억세고 냉랭한 사람이다. 친하고 싶어 다가가는데 번번이 거절당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도 나를 친하게 대해주었으면 하고 다가선다. 불안하고 두렵고 떨면서. 어떻게 보면 어이없는 일이다. 그 사람들에게 K씨가 잘못한 것도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