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좁다’는 건 매스컴의 세계에 더 적합한 말이 아닐까. 적어도 이 글을 게재해 온 <제이누리>에 관한 한은,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어머니의 백세 일기를 여기에다 기록해 온 건, 순전히 어머니를 요양보호하면서 함께 버텨내는 삶이 버거운 탓이었다. 기실은, 어머니가 요양원의 주간보호(아침 9시~오후 5시)에 다니는 동안 몇 차례의 긴급 호출이 있었다. 내용은 ‘아무래도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것인데, 정황은 돌봄에 대한 애로와 곤란의 우회적 표현이었다. 주간보호는 활동력과 인지력이 단체 생활에 가능한 정도라서 사회복지사 한 사람이 여러 어르신을 돌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머니처럼 손이 많이 가는 경우는 요양원에 입소해서 생활 전반을 전적으로 기관에 의존하는 게 적절하다. 다만 비용도 많이 요구되고, 집을 떠나야 하는 문제가 걸림돌이다. 더욱이 어머니는 ‘요양원에 보내지 않기’를 약속하고 한국으로 모셔 왔다. 보통 미국에서는 노인이 아프다 해서 병원으로 갔는데, ‘요양원으로 옮겼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얼마 없어 장례식장의 부고장이 날아든다. 바로 이 ‘병원-요양원-장례식장’의 루트가 어머니에게는 가장 견디기 힘든
정부가 3일 역동경제 로드맵 및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단기 대응은 경제정책방향(14쪽)에, 구조적 문제 해결 등 중장기 과제는 역동경제 로드맵(69쪽)에 담았다. 100쪽 가까운 자료에 수많은 정책을 열거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경제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제기되는 질문, ‘어떻게 재원을 마련하고 거대 야당을 설득하느냐’를 풀어줄 만한 답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은 자영업자ㆍ소상공인 지원 대책에 맞췄다. 위기 상황의 소상공인ㆍ자영업자의 재기를 지원하는 채무조정 지원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 규모를 30조원에서 40조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배달료와 임대료, 전기료 등 고정비용 부담도 덜어주기로 했다. 총 25조원 규모의 종합 지원 대책이다. 정책자금 상환기간 연장 등 금융지원에 14조원, 기금 확대에 10조원, 점포철거비ㆍ취업 등에 1조원이 소요된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지원 액수는) 가용 재원 내에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5월까지 국세 징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조1000억원 적다. 세수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펑크 날 판이다. 확실한 세입 확보 방안이 없는 지원 대책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든다. 소상공인과
박찬욱 감독은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서 2가지 종류의 ‘무정부주의자’들을 보여준다. 하나는 ‘혁명적 무정부주의자 동맹’을 부르짖는 영미(배두나 역)다. 그는 재벌해체와 미군철수를 외친다. 또다른 무정부주의자는 자본가 동진(송강호 역)이다. 역설적이지만, 영미가 싫어하는 자본가가 영미처럼 ‘정부의 힘’을 믿지 않는다. 영화 속 첫번째 무정부주의자는 영미다. 영미가 도로 한복판에 서서 운전자들에게 나눠주는 붉은색 전단에는 ‘혁명적 무정부주의자 동맹’의 2가지 지향점이 담겨 있다. ‘재벌해체’와 ‘미군 철수’다. 똑같은 주장을 펼치는 단 2명의 무정부주의자들을 찾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정부주의자들의 주장은 다양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무정부주의는 힘 없는 개인을 향한 자본가의 착취와 억압, 정부가 제멋대로 일으켜 개인들을 ‘선택의 자유’ 없이 죽음으로 내모는 전쟁을 반대한다. 공장에서 자본가들로부터 부당하게 해고당해 꼼짝없이 일가족이 쥐약 먹고 동반자살할 수밖에 없는 팽기사(기주봉 역)나, 공장에서 이유 없이 해고당하고 누나를 살리기 위해 장기밀매업자에게 자기 신장을 팔러 갈 수밖에 없게 되는 류(신하균 역
2024년 6월 19일은 기상관측 이래 6월 중 가장 더운 날로 기록됐다. 경북 경주는 기온이 한때 37.7도까지 치솟았다. 이틀 뒤 21일 서울에서 밤 기온이 섭씨 25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올여름 첫 열대야가 나타났다. 열대야는 지난해보다 일주일 이르고, 1907년 근대적인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빨랐다. 6월 중 열대야는 2022년부터 3년 연속 나타났다. 더위는 잠을 설치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때 이른 폭염 탓에 농산물 가격이 요동치고 있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시금치 도매가격이 한달 새 86% 올랐다. 고온에 취약한 상추류 가격이 180% 급등했다. 대파 값도 50% 상승했다. 올여름 역대 최강의 폭염이 예고되면서 농식품발(發) 물가불안이 고개를 들고 있다. 폭염으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이로 인한 충격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히트플레이션(heat·열+inflation)’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히트플레이션이 만연하면 정부가 목표로 잡은 2%대 물가안정은 물 건너간다. 폭염이 몰고 올 피해의 전조는 날씨 통계로 가늠된다. 기상청에 따르면 6월 들어 20일까지 폭염 일수(2.4일)는 평년 6월 한 달 폭염 일수(0.6일)의 4
영미(배두나 역)는 ‘혁명적 무정부주의자 동맹’이라는 단체에 가입한 스스로를 열렬한 무정부주의자로 자처하는 당돌한 아가씨다. 막연한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라 나름 활동도 한다. 그런데 영미의 ‘무정부주의’ 활동은 그다지 혁명적이지 않고 조금 김빠진다. 영미에게 무정부주의 활동은 교통체증 도로에 나가 담배 하나 꼬나물고 운전자들에게 ‘무정부주의 지라시’를 들이미는 게 고작이다. 황당한 건 영미가 나눠주는 붉은색 전단지에 인쇄된 내용이다. “재벌해체, 미군철수.” 아마도 무정부주의자들의 단골메뉴인 ‘자본주의 타도’를 ‘재벌해체’로, ‘전쟁 반대’를 ‘미군철수’로 단순화한 구호인 듯하다. 그러나 이 장면이 ‘블랙 코미디’처럼 느껴지는 건 정부를 없애버리자는 영미의 ‘혁명적 무정부주의자 동맹’이 정부를 향해 자신들의 꿈을 이뤄달라고 호소하는 역설적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재벌을 해체하고 미군을 철수시킬 권능을 가진 곳은 정부밖에 없다. 정부가 없으면 이 무정부주의자들의 꿈도 이뤄질 수 없다는 기묘한 논리가 된다. 유치원생 외동딸을 영미에게 유괴당한 중소기업 사장 동진(송강호 역)은 또 다른 모습의 무정부주의자다. 정부와 경찰을 믿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해결하려
정부가 19일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2030년 합계출산율 1.0명을 목표로 윤석열 정부 임기 내 2027년까지 저출생 추세를 반전할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늦었지만 정부가 그간 저출생 대책의 한계를 인정하고, 저출생 대책 컨트롤타워(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해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겠다는 각오를 다진 것은 진전이다. 하지만 상당수가 그동안 해온 대책의 요건과 혜택 범위를 확대하는 식의 재탕이다. ‘돌봄 지원을 위해 육아휴직 급여 상한을 최대 250만원으로 높이고, 육아ㆍ출산 휴직 기간과 횟수도 늘린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유보통합)해 최대 12시간까지 교육ㆍ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거 지원을 위해 신생아 특례대출 소득기준을 완화하고, 결혼 특별세액공제도 확대한다 등등…’ 이같은 하던 대로식 대책으로 저출생 추세 반전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저출생 대책 대부분이 일자리가 안정적인 대기업 정규직들이나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는 점도 문제다. 영세기업과 자영업자,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 출산ㆍ육아 휴직 사각지대가 넓다. 급증하는 플랫폼ㆍ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육아휴직 도입 방안은 이번 대책에서도 빠졌다. 뜬
박찬욱 감독은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서 2개의 해고 장면을 보여주고 국가의 역할을 묻는다. 둘 모두 사회적 약자가 쫓겨나는 상황인데, 공교롭게도 영화 속 국가는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여기서 생각해볼 점은 이게 비현실적인 영화 이야기냐는 거다. # 해고➊= 동진(송강호 역)의 회사에서 자신의 젊음을 몽땅 용접기에 녹여냈던 팽기사(기주봉 역)는 해고통지를 받는다. 사장인 동진의 집에 찾아와 동진의 출근차량을 막고 절박함을 호소하지만 어림없다. 팽기사는 셔츠를 올리고 커터칼로 배를 긋는 최후의 호소까지 한다. 그런데도 동진은 그를 병원으로 데려다줄지언정 해고를 취소하진 않는다. 결국 팽기사는 가족들과 쥐약 뿌린 피자로 최후의 만찬을 하고 생을 마감한다. 나락으로 떨어진 팽기사 가족의 목숨을 건져줄 국가의 ‘안전망(safety net)’은 없다. # 해고➋= 류(신하균 역)의 누나는 신부전증으로 사경을 헤맨다. 유일한 희망은 신장 이식이다. 신장 기증자를 기다리지만 기약이 없다. 누나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다. 류는 장기 밀매업자를 찾아가지만 그들은 류의 전 재산 1000만원을 강탈하고 류의 신장까지 적출해간다. 그러나 류
한국 경제의 취약한 고리인 자영업자들이 한계 상황에 봉착한 모습이다. 3월 말 국내 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0.54%. 2015년 3월 말(0.59%)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다. 은행권이 이렇지 전체 금융권으로 보면 더 심각하다. 3월 말 자영업자 대출은 1112조원으로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말 대비 51% 증가했다. 게다가 그중 석달 이상 연체한 대출액은 31조원으로 1년 새 53% 급증했다. 금융회사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려 추가 대출이나 돌려막기가 어려운 다중채무자도 절반을 넘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빚으로 연명해온 자영업자들이 장기화한 고금리ㆍ고물가와 내수 침체 여파로 고전하고 있다. 그동안 네 차례 대출만기 연장과 원리금 상환 유예로 버텨왔지만, 지난해 9월 원리금 상환 유예가 끝나면서 벼랑 끝에 몰렸다. 매출 감소와 인건비ㆍ원자재 가격 급등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하는 자영업자도 늘었다. 지난해 자영업자 폐업률(폐업 점포수/전체 점포수)은 9.5%로 2022년 대비 0.8%포인트 상승했다. 올해 1분기 서울에서 폐업한 외식업체가 5922개로 4년 만에 최대다. ‘자영업자의 퇴직금’으로 불리는 노란우산 폐업 공제금 지급도 올해
류(신하균 역)는 신부전증으로 사경을 헤매는 유일한 혈육인 누나에게 자신의 신장을 이식해 살리고 싶지만 혈액형이 맞지 않는다. 장기 밀매업자를 찾아가 자신의 신장을 주고 대신 누나에게 맞는 신장을 얻으려 했지만, 그들은 류의 전 재산 1000만원을 챙기고 류의 신장만 빼어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류는 ‘목숨줄’과 다름없던 공장에서 해고까지 당한다. 그야말로 한계상황에 봉착한다. 류의 유일한 친구인 영미(배두나 역)는 절망적인 류에게 위기 극복의 해법을 제시한다. 부잣집 아이를 유괴하는 거다. 가장 악질적인 해법이다. 사회적 규범과 양심의 저항으로 망설이는 류에게 영미가 유괴의 당위성을 일타강사의 그것처럼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한다. “잘 봐. 세상에는 두가지 유괴가 있어. 나쁜 유괴와 좋은 유괴.” 영미는 그렇게 ‘유괴’를 제멋대로 두가지로 분류해놓고 ‘좋은 유괴’란 무엇인지 설명을 이어간다. 첫째, 돈만 받고 아이를 무사히 돌려보내면 좋은 유괴가 된다. 둘째, 1000만원이라는 돈은 우리에겐 절실한 것이지만, 부자들에게는 있으나 없으나 아무 상관없는 돈이다. 1000만원만 받고 아이를 무사히 돌려보내면 결국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좋
5월 물가상승률이 정부의 관리목표 범위(2%대)에 들어왔지만, 체감물가는 이보다 훨씬 높다. 특히 과일 등 농산물 가격이 비싸다. 석유류도 석달 연속 오르는 등 물가상승 압력을 높이고 있다. 4일 발표된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7%. 2~3월 두달 연속 3%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수치상 오름세는 주춤해졌다. 하지만 실제 피부로 느끼는 물가는 여전히 높다. 소비자들이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인 생활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3.1% 올랐다. 특히 식품 물가상승률은 3.9%로 평균 상승률을 크게 웃돌았다. 관건은 농산물이다. 5월 농산물 물가는 19.0% 올랐다. 소비자물가지수를 0.69%포인트 끌어올렸다. 사과 값은 80.4% 올랐다. 3월(88.2%), 4월(80.8%)에 이어 3개월 연속 80%대 상승률이다. 배 가격 상승률은 사과보다 높은 126.3%로 사상 최고다. 대형마트에서 사과 한개에 3000원이 넘고, 배 하나에 거의 1만원꼴이다. ‘금배’로 불린다. 귤(67.4%)과 복숭아(63.5%), 감(55.9%) 토마토(37.8%) 등의 가격 상승률도 높다. 과일 판매대를 쳐다만 보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적잖다. 신선과일 값이 고공행진하자 정부는 바나나ㆍ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을 끌어가는 주인공들 중 하나인 류(신하균 역)는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인 누나와 단둘이서 살아간다. 그 누나마저 신부전증으로 사경을 헤맨다. 류는 햇빛 한줄기 안 드는 주물공장에서 고된 노동으로 자신과 누나의 생계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가뜩이나 고달픈 삶인데 설상가상 류는 청각장애인이다. 감독이 굳이 청각장애인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 장면➊ = 류의 누나는 신장 이식밖에는 도리가 없다. 막연히 신장이식자를 기다린다는 것은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다. 류는 자신의 신장을 누나에게 주려고 하나 안타깝게도 혈액형이 맞지 않는다. 의사는 누나에게 류의 신장이식이 불가능하다는 검사결과를 기계적으로 ‘통보’한다. 의사는 류가 청각장애인인 줄 알면서도 일말의 배려도 없다. 상대가 알아듣든 말든 자기 할 말만 하면 그만이다. 우리도 병원에 가면 1~2시간쯤 기다리다 겨우 만난 의사 앞에 가장 공손한 모습으로 두손 모으고 앉아 한두번쯤 당해 본 장면이다. 류는 왜 자신의 신장을 누나에게 줄 수 없는지 알 수가 없다. 의사는 자기 말을 못 알아듣고 멀뚱멀뚱한 류가 마뜩지 않다. 청각장애인이게 맞춰주기 위
22대 국회가 5월 30일 개원했다. 의안 번호 ‘2200001’, 제1호 법안으로 보좌진과 함께 3박4일간 국회 본청 의안과 앞을 지킨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을 위한 법률안’을 제출했다. 이어 북한 이탈주민이자 공학도 출신인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이 ‘이공계지원 특별법 개정안 및 기업부설연구소법 제정안’을, 박은정ㆍ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당론 1호 법안인 ‘한동훈 특검법’을 제출했다. 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 ‘채상병 특검법’과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법안’을 당론 1호 법안으로 채택한 뒤 제출했다. 1호 법안 타이틀을 위한 밤샘 대기는 18대 국회에서 시작돼 4년 주기로 반복됐다. 1호 타이틀이 법안 처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상징성 때문에 경쟁한다. 4년 전에도 밤샘 등 경쟁을 벌였지만, 21대 국회는 ‘역대 최악’ 평가를 남겼다. 절대 과반 민주당의 입법 독주와 여권이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저지하는 대치는 마지막 본회의까지 이어졌다. 극한 정쟁 속에 여야가 의견을 접근한 법안도 국회 임기가 종료되며 줄줄이 폐기됐다. 원전폐기물 저장시설을 짓지 못하면 2030년 원전이 셧다운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옴에도 부지 확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