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래 어느날 인류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핵전쟁이 터지고야 만다. 용케 핵전쟁의 재앙을 피해간 영국은 아수라장이 된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극단적인 통제사회를 택한다. 과거의 망령으로 봉인했던 히틀러의 파시즘이 부활한다. 일당 독재 체제는 모든 민주적 가치를 폐기처분하거나 창고 속에 처박는다. 권력을 독점한 일당은 국민들의 총화단결을 외치고, 이를 해치는 모든 개인적인 소망과 욕구는 철저하게 매도한다. 개인적 욕구를 버리지 못하는 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곳은 살벌한 강제수용소뿐이다. TV를 켜기만 하면 ‘위대한 지도자’ 슈틀러와 그의 나팔수들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단결과 질서를 울부짖는다. ‘국가와 전체’는 선(善)이고, 개인과 다양성은 악(惡)이다. ‘브이 포 벤데타’는 분명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데, 영화 속 모습이 왠지 미래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는 낯설어야 마땅한데, 그 모습들이 익숙하기만 하다. 분명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상황과 장면일 텐데, 언젠가 어디에선가 경험했던 것 같은 기시감(旣視感)이 든다. 꿈속에서 봤나 싶은 ‘데자뷔()’의 느낌이다. 기시감이 느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첫 공식 기자회견을 했다. 54분 동안의 기자회견 중 20분을 모두발언에 할애했다. 통상 모두발언은 5분 안팎으로 짧게 하고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했던 것과 비교하면 윤 대통령의 모두발언은 이례적으로 길었다. 모두발언에서 윤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 정책 폐기, 누리호 발사 성공, 민정수석실 폐지, 한미 정상회담을 통한 한미동맹 재건 등 집권 100일간의 성과를 강조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20%대 후반~30%대 초반에 머물렀다. 한국갤럽의 8월 둘째주 여론조사 결과로는 25%다. 부정 평가가 66%로 긍정 평가의 2.6배에 이른다. 한국갤럽 조사 기준 지지율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졌던 시기(2016년 10월 하순)와 같다. 역대 대통령의 취임 100일 무렵 지지율과 비교하면 집권 초기 소고기 광우병 논란을 겪은 이명박 전 대통령(21%·2008년 5월 31일) 다음으로 낮다. 취임 100일 무렵 지지율은 김영삼 전 대통령(83%·1993년 6월), 문재인 전 대통령(78%·2017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62%·1998년 6월) 순서로 높았다. 윤 대통령도 낮은 지지율을
내가 얼마 안 남았다. 올해 들어 어머니가 자주 내뱉으시는 혼잣말이다. 하기야 100세의 육신, 그 무거운 장막을 지고 사시니..., 얼마나 힘이 드실까. 걷는 것, 아니 움직임 자체가 고역이지 않겠는가. 더욱이 ‘홀로 나이가 가장 많다’는 사실은 참으로 쓸쓸하고 외로울 것이다. 고향마을 대포(큰개)에 조카 제이가 있을 때는, ‘대포’라는 소리만 나와도 어머니의 얼굴에 햇살같은 웃음꽃이 번졌다. 가끔은 제이가 참기름이나 소라꼬지, 자리젖 같은 것을 가지고 어머니를 찾아 왔는데, 마당으로 들어서면서 외치는 첫 마디가 언제나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고모님, 그동안 잘 이십디강? 대포 부택이 어멍은 백두살이라도 온 동네 돌아댕기멍 정광허게 살암수다. 경 허난, 고모님도 꼭 백두살꼬지만 아프지 말곡, 효도 받으멍, 재미나게 사십서, 예!”라고. 조카의 말이 사실대로인지, 그냥 고모가 들으라고 한 말인지 모르겠으나,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어머니의 응답이 메아리쳐 울린다. “니가 이추룩 놀래만 와준댄 허민, 무사 백 두살꼬지만 사느니? 백 세살꼬지라도 오래오래 살아사주!” 바로 이 때부터 어머니의 목소리에 활기가 스며들고, 얼굴에도 천진스런 웃음기가 번지기 시작한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가 보여주는 가까운 미래의 영국은 ‘노스파이어(Norsefire)’라는 이름의 당이 일당독재하는 지독한 파시스트 독재국가로 변해 있다. ‘Strength through Unity Unity through Faith(단결을 통한 힘 충성을 통한 단결)’이란 노스파이어당의 구호가 런던 시내의 모든 곳을 점령하고 있다. ‘히틀러’의 이름을 닮은 아담 슈틀러라는 ‘총통’이 유일정당인 노스파이어당과 국가를 동시에 장악한다. 슈틀러는 연설 스타일도 히틀러의 오마주다. 영국의 왕정도 끝났는지 왕조차 보이지 않는다. 히틀러의 재림 격인 슈틀러는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 가치인 ‘안전’ ‘질서’를 위해 ‘자유’ ‘인권’과 같은 다른 가치들은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린다. 안전과 질서 외 다양한 가치는 혐오의 대상이 된다. 다른 가치의 중요성을 말하는 정치적 반대자들은 수용소에 격리된다. 히틀러와 슈틀러는 ‘진시황제의 아이들’이기도 하다. 진시황제는 법가사상서와 농사, 점복占卜에 필요한 책을 제외한 모든 ‘쓰잘데기 없는’ 책들을 불태워버리고, 그 ‘쓰잘데기 없는’ 이론들을 콩이야 팥이야 따져대는 선비들을 파묻어버렸다. 가히 파시즘의 태두라 부를 만하다. 파시스
외신들이 한국의 폭우 피해를 전하면서 ‘반지하’ 주거 형태에 주목했다. 영어로 ‘semi -basement(준 지하실·절반 지하층)’ ‘under ground apartment(지하의 아파트)’라고 설명하면서 우리말 발음을 알파벳으로 옮긴 ‘banjiha’ 표현을 쓰기도 했다. 반지하가 영화 ‘기생충’의 배경이었고, 윤석열 대통령이 반지하 침수사고 현장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또한 가수 싸이의 히트곡 ‘강남 스타일’에 등장하는 부촌 강남구에서 큰 피해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강남이 경제의 중심이고 개발이 잘된 곳이라는데 자연재해에 취약하다니 아이러니”라고. 통계청의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반지하 주택은 32만7320가구. 이중 20만849가구(61.4%)가 집값이 비싼 서울, 서울에서도 침수 피해가 잦은 관악·동작구 등지에 몰려 있다. 저소득층이 폭우 피해를 피하기 어려운 열악한 주거환경에 내몰리고 있다는 거다. 서울시가 반지하를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기존 반지하는 10~20년 유예기간을 두어 순차적으로 없애거나 창고·주차장으로 전환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만큼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 확보 등 주거안정 대책이 시급하다
1604년 영국 의사당을 폭파하려다 체포돼 끔찍한 처형을 당했던 인물인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화끈한 테러’를 저지르는 영화 속 의문의 사나이는 ‘V’라는 이니셜로만 통한다. 그렇다면 V가 의미하는 건 뭘까. victory(승리), vision(미래의 제시), victim(희생자), vestige(과거의 흔적ㆍ상처) 중 하나일까.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주인공 V의 행적을 보노라면 그의 이니셜 V는 victory, vision, victim, vestige 모두가 될 수 있을 듯하다. V의 투쟁은 자유의 승리(victory)를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억압된 체제에 의해 상처받은(ves tige) 희생자(victim)의 분노일 수도 있다. 다른 면에선 억압적인 체제를 부수고 진정한 자유를 향하는 비전(vision)으로 읽을 수도 있을 듯하다. 모두 V의 과격한 테러행위를 정당화할 만한 명분들이다. 그런데 작가는 독자와 관객들의 다양한 해석과 상상을 원천봉쇄하기라도 하듯 V는 victory나 vision, victim이 아니라 ‘vendetta(복수)’를 의미한다고 제목에서부터 밝히고 들어간다(V for Vendetta).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추리소설에
인류에게 끊임없이 괴로움을 준 질병을 말하라면 ‘관절염’을 들 수 있다. 개나 말, 소와 같은 반려동물이나 가축은 물론 들짐승들까지도 사지를 가진 동물이라면 누구나 겪는 병이기도 하다. 관절은 인체가 움직일 수 있도록 뼈와 뼈 사이를 연결하는 곳으로 여러 질환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무리하게 사용하다 보니 닳아서 생기는 ‘퇴행성관절염’과 서서히 염증이 심해지면서 관절이 망가지는 자가면역질환인 ‘류마티스 관절염’이 대표 선수들이다. ‘내 사랑(Maudie, 2016)’ 영화는 태어날 때부터 성장에 문제를 가진데다가 어린 나이에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게 되면서 걷기도 힘들고 손으로 물건을 쥐기조차 힘든 상태로 오빠와 고모로부터 박대를 받다가 나이브 화가로 이름을 알리게 된 모드 루이스(Maud Kathleen Lewis, 1903~1970)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이브(Naive) 화가란, 단어 뜻처럼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고, 특정 미술 사조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자신이 본 자연이나 실물들을 솔직하게 그리는 화가들을 말한다. 일을 하고 싶지만 아무도 일거리를 맡기지 않아서 고민하던 모드(샐리 호킨스)는 입주해서 일할 가정부를 구한다는 전단지를 보고 마을에서 떨어
날씨도 무덥지만, 정치권과 정부의 국민 무시 행태는 사람들을 더 지치게 한다. 외환위기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로 급등한 물가가 서민 생활을 위협한다. 물가를 잡기 위해 한국은행이 잇따라 기준금리를 올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음)해 생애 첫 주택을 구입한 젊은이들이 늘어난 이자 부담에 한숨을 쉰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무역수지가 4~7월 넉달 연속 적자를 냈다. 불어나는 무역적자는 원화가치 하락 압력 요인으로 작용한다. 당국이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나서자 외환보유액이 감소했다. 미국이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면서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낮아졌다. 외국인 자금 이탈을 막으려면 우리도 금리를 더 높여야 한다. 경제상황이 악화일로인데 경제팀은 보이지 않는다. 추석을 앞두고 물가는 더 오를 텐데 정부 대책은 유류세 인하 및 수입 농축산물에 대한 관세인하 외에 뾰족한 게 없다. 여당과 대통령실, 정부가 지혜를 모아 대응해도 모자랄 판에 정치권은 이전투구에 날을 새고 정부는 헛발질 정책으로 국민 신뢰를 갉아먹는다. 교육부가 취학연령을 만 5세로 앞당기겠다고 발표했다가 나흘 만에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폐기하겠다”고 물러섰다. 초·중등 교육을 책임지는 시도 교
부모를 간병하는 일은 ‘우리들 대부분이 건너야 할 어둠의 긴 터널’이다. 게다가 때로는 10년 이상 이어질 수도 있으므로 혼자서 그 짐을 짊어지려고 해서는 안된다. 가급적 다른 가족들의 관심과 도움을 최대한 이끌어 내서 독박돌봄의 무거운 짐을 나눠 져야 한다. 더불어 주간보호, 방문요양, 요양병원, 요양원, 간병인 등 가능한 사회적 지원도 모두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간병은 무겁고 힘겨운 여정이다. 오죽하면 노인의 경우는 ‘죽어야 끝나는 전쟁’이라고 하겠는가. 어머니를 모셔온 지 20년이다. 아니, 처음 10년은 어머니가 우리를 돌봐주셨다. ‘아이들을 돌봐주면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아들을 위해, 나이 65세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신 지 17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나를 붙좇아 고향으로 돌아오셨다. 당시 81세의 어머니가 지금은 100세가 되셨다.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보통 자식의 의무로 이해되지만, 나의 경우는 어머니의 권리라 해야 맞다. 어머니는 일찌감치 10년 동안 나로부터 ‘돌봄 받을 권리’를 저금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늘 ‘고맙다, 미안하다’를 입에 달고 사신다. 96세에 대퇴부골절로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주인공은 V라는 신비로운 인물이다. 주인공이지만 ‘얼굴’이 없다. 첫 등장에서 마지막 죽음까지 마스크 속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영화 주인공의 캐릭터를 V가 쓰고 있는 마스크의 상징성으로 유추하는 수밖에 없다. V의 마스크는 가이 포크스(Guy Fawkes)의 얼굴을 형상화하고 있다. 하얀 얼굴에 볼은 분홍빛이다. 콧수염은 양쪽으로 치켜 올라가 있고, 턱수염 역시 아래로 날카로운 칼처럼 내리꽂혀 있다. 웃는 얼굴 같기는 한데, 어쩐지 웃고 있는 것 같지 않은 기묘한 느낌이다. 영화의 ‘얼굴’ 역할을 하는 가이 포크스라는 인물은 1605년 영국 제임스 1세의 가톨릭 탄압 정책에 항거해 그를 암살하기 위해 영국 국회의사당 상원 건물을 국회 개원 날 폭약으로 ‘날려 버리려 했던’ 무척이나 과격했던 인물이다. 감히 국왕과 영국 귀족들을 일거에 날려버리려 어마어마한 양의 폭약을 의사당 건물 지하에 쌓아놓았다가 적발됐으니 그 처벌 수위가 어떠했을지는 짐작이 간다. 그에겐 ‘Hanged, Draws, Quartered(목매달고, 끄집어내고, 토막내기)’라는 설명하기조차 끔찍한 왕정 시대 영국법이 정한 최악의 형벌에 처해진다. 일단 교수형에 처
이전에 소개한 에린 브로코비치 외에 환경오염을 다룬 또 다른 영화를 올려본다. 2019년에 제작되어 화학물질을 다루는 거대 회사와의 오랜 법정 소송을 다룬 ‘다크 워터스(Dark Waters)’는 화학계 기업들의 법률을 담당하는 대형 로펌의 변호사인 롭 빌럿(마크 러팔로), 그의 아내 사라(앤 해서웨이), 로펌의 대표 톰(팀 로빈스) 등의 화려한 배역들이 등장한다. 영화는 거대 글로벌 기업인 미국의 듀폰(Du Pont)사를 상대로 20년의 세월을 싸우는 롭이라는 변호사의 이야기이다. 화학물질을 생산해서 전 세계에 공급하는 듀폰사는 최근까지도 각종 코팅제로 사용되는 ‘테플론’이라는 유기화합물을 이용해 엄청난 수입을 올렸다. 테플론은 과불화옥탄산(PFOA)이라고 지칭되는 합성물질에서 나온 건데, 처음 개발될 때는 너무 단단하고 분해되기 어려운 화합물이라 2차 세계대전 때 탱크에 방수처리용으로 사용하다가 듀폰사에서 가전제품이나 장난감 등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탄소 8개가 연결된 화합물이라서 다른 말로는 ‘C8’이라고도 불리고, 프라이팬에서부터 장난감, 의류, 자동차, 콘텍트 렌즈, 종이컵 등 온갖 제품의 코팅 등에 이용되었다. 이 물질은 영화에서처럼 오랜 시간이
치매는 알기 쉽게 표현해서, 정신이 나가는 병이다. 영어로는 디멘시아(dementia)라 한다. 라틴어 de(~로부터 나간)+mens(정신)+ia(상태)의 합성어다. 다소 점잖게 표현하자면 ‘정신이 없어진 상태’라고나 할까. 신이 내린 가장 가혹한 형벌이 ‘기억의 유실’이라는 말 그대로, 정신이 나가면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우선 자신의 인생 목적을 알지 못하므로 잠시도 인생길을 제대로 운전할 수가 없어진다. 삶에 대한 결정권도 없으므로 주변 사람들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의 삶도 피폐하게 만든다. 결국은 집을 떠나 요양원으로 보내지고 만다. 요양원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요, 인생행로의 종착지가 된다. 우리나라가 고령 사회로 접어들면서 치매환자 또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이 실시한 치매극복 연구개발사업(2019)에 의하면 국민은 치매를 가장 우선적으로 극복해야 할 질병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인구고령화에 따른 치매환자 및 사회적 비용 급증으로 국가 재정부담 또한 심화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치매를 의료비 지출(34.3%), 환자·가족의 고통(54.8%), 발병원인과 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