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에 부동산 관련 규제가 대거 해제됐다. 서울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이 규제지역에서 풀렸다. 은행 대출이 쉬워지고 부동산 세금이 줄어든다. 전매제한이 완화되고, 분양가상한제 주택의 실거주 의무도 폐지된다. 모든 분양주택에서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있고, 대출 한도도 사라진다. 중앙정부의 그린벨트 해제 권한도 일부 지방자치단체에 넘긴다.
서울 전역과 과천·분당 등 경기 4개 지역만 남겨두고 규제지역을 푼 지 54일 만에 나온 추가 조치다. 지난해 6·9·11월에 이어 윤석열 정부 들어 4번째 부동산 대책이다. 이로써 규제지역, 중도금 대출, 분양가상한제, 전매제한 등 문재인 정부에서 강화한 부동산 규제가 대부분 풀렸다.
정부는 부동산시장의 경착륙을 막기 위한 조치임을 강조한다. 부동산시장이 급격하게 위축되며 실수요자의 주택거래까지 어려워졌다. 미분양이 속출하는 등 주택 분양시장 침체는 건설업과 금융업계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1·3 대책 발표된 뒤 서울의 대표적 재건축 단지인 둔촌동 주공아파트 견본주택에 계약과 상담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12억원을 웃도는 분양가로 불가능했던 중도금 대출이 가능해지고, 전매제한이 기존 8년에서 1년으로 줄고, 실거주 2년 의무도 폐지돼 입주하지 않고도 전세를 놓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거래가 실종되다시피 한 주택시장에 숨통을 틔울 필요는 있다. 급격한 집값 하락의 부작용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1·3 대책처럼 일거에 대부분 규제를 해제하는 것은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투기도 용인하겠다’는 식의 신호로 비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8%를 넘어선 판에 대출 규제가 풀린다고 빚을 내 주택 매수에 나설 서민층은 별로 없을 것이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자칫 현금 고소득자와 다주택자들에게 투기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지방의 100만㎡ 미만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지자체에 넘기는 것이라지만, 이는 무분별한 난개발을 빚을 수 있다.
전매제한이 대폭 완화되는 것도 부작용이 우려된다. 수도권은 현행 최대 10년에서 3년으로, 비수도권은 최대 4년에서 1년으로 전매제한이 완화된다. 분양에서 입주까지 통상 3년 정도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입주 전 분양권 전매가 횡행하는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
다주택자 규제가 대거 풀리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번 대책에 따라 청약에 당첨된 1주택자의 기존 주택 처분 의무가 폐지된다. 하지만 이는 투자 목적의 다주택 보유를 쉽게 하는 일이다.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기 위해 유주택자에게도 무순위 청약이 허용된다. 이 또한 계약취소 등으로 인한 이른바 ‘줍줍’ 청약을 다주택자들도 할 수 있게 만드는 조치가 될 수 있다.
국민의 주거권 확보와 직결되는 부동산 정책은 민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시장 상황에 맞춰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고 세금을 낮추더라도 투기 수요는 차단하면서 서민과 청년, 신혼부부와 무주택자 등이 집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설계하는 원칙은 지켜야 할 것이다. 다주택자에게 면죄부나 자산증식 기회를 주고, 미분양주택 해소를 위해 다주택자들에게까지 청약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최근 집값 하락은 문재인 정부 시절 과도하게 형성된 부동산 거품이 빠지는 정상화 측면도 있다. 어느 분야든 정부 정책이 냉탕온탕을 급속하게 오가선 곤란하다. 다주택자들에게 불로소득을 안기거나 망국적 투기를 불러올 소지가 있는 정책 변화는 더욱 그렇다. 거래절벽 등 주택시장이 처한 상황의 심각성과 불가피성을 인정해도 규제완화 속도나 방향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이유다.
주택시장 동향을 좌우할 주요 변수 중 하나는 금리다. 현재 국내 기준금리는 연 3.25%. 미국 기준금리(4.25~4.5%)와의 차이가 1.25%포인트에 이른다. 금리격차를 줄이기 위해 한국은행이 오는 13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금리인상이 이어지면 불어나는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에 2030 영끌족들이 어렵게 장만한 집을 매물로 내놓아 주택시장 침체를 가속화할 수 있다. 이들이 하우스 푸어로 전락하지 않도록 낮은 금리로 바꿔 타는 안심전환대출 요건을 완화하고, 기한 연장 효과가 있는 대환대출도 확충해야 할 것이다.
주택시장발 실물경제 위기는 경계해야 하지만, 투기를 조장할 수 있는 조치까지 용인해선 곤란하다. 1·3 대책이 향후 집값 상승과 투기 수요를 부추기는 부작용을 초래하지 않도록 시장 흐름과 추세를 면밀히 살피면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