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시와 캐서린은 보통사람들에게서 찾기 어려운 서로의 매력에 취하고, 결국 불륜 관계에 빠져든다. 이를 알아차린 캐서린의 남편 클리프턴은 좌절하고 분노한다. 클리프턴은 2인용 프로펠러 비행기에 아내 캐서린을 태우고 알마시를 만나러 사막으로 향한다. 알마시는 사막에서 영문도 모른 채 클리프턴의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때 클리프턴은 가미카제식 자살비행을 감행한다. 알마시를 향해 돌진하는 클리프턴의 눈빛을 보면 아내와 간통한 알마시를 프로펠러로 죽이고 싶은 듯한 분노가 느껴진다. 단순히 알마시와 ‘너 죽고 나 죽고’가 아니라 아내 캐서린까지 다 같이 죽자고 한다. 알마시를 향한 클리프턴의 자살비행 모습은 왠지 낯설지 않다. 미디어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접하는 ‘격분한 A씨가 B씨와 C씨를 죽이고 본인도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딱하고 우울한 소식을 접했기 때문인 듯하다. 관객들에게는 간통한 아내를 프로펠러 비행기에 태우고 아내와 간통한 남자를 향해 자살비행을 감행하는 클리프턴의 행위가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궁금하다. 공감과 지지도, 비난도 있을 듯하다. 어쨌거나 클리프턴의 분노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의 행위는 범죄행위다. 클리프턴이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경찰
경제예측기관들의 전망이 딱 들어맞진 않는다. 그래도 증권시장은 물론 기업과 정부, 가계 등 경제주체들이 이에 주목하는 것은 미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국내외 예측기관들 가운데 신뢰도가 높은 곳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이 꼽힌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급전을 제공했던 IMF가 지난 11일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로 수정했다. 직전 1월말 전망치(1.7%)보다 0.2%포인트 낮췄다. 1년 넘게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글로벌 인플레이션에다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등에 따른 선진국 금융시장 불안이 겹쳐 한국 경제가 더 위축될 것으로 봤다. IMF의 성장률 하향 조정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7월과 10월, 올해 1월에 이어 3개월 주기로 4연속 미끄럼을 탔다. 주요 10개국 중 4연속 하락 전망은 한국뿐이다. 그 결과, 지난해 4월 전망치(2.9%) 대비 거의 반토막 났다. 외국계 투자은행의 전망은 더 어둡다. 8개 투자은행들이 지난 3월 말 제시한 한국 경제성장률 평균 전망치는 1.1%. 6개 투자은행이 1%대로 내다본 반면 0%대 및 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한 곳도 있었기 때문이다.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경기가 급랭하고 중국의 리오프닝
1923년 3월 22일. 어머니의 생신이다. 막내딸 이름을 성춘(成春)이라 지으시면서, 외할아버지는 ‘봄을 이루어라, 봄이 되거라’고 기원하셨을까. 이제 내일 모레면 만 나이로 백 세가 되신다. 이웃들이 묻는다. 어머니의 장수비결이 무엇이냐고. 혹시 집안이 장수하는 가문이냐고..... 아니다. 어머니는 4남2녀의 막내인데, 형제분들 중 가장 오래 사신 경우가 80대 중반이다. 요컨대, 장수혈통은 결코 아니란 얘기다. 그럼, 무엇이 장수의 비결일까? 어머니와 함께 산 지 20년, 같은 방을 쓴 지가 10년 째다. 룸메이트로서 내가 경험하고, 관찰하고, 생각하는 어머니의 장수비결을, 10가지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일, 2) 식사, 3) 병원, 4) 자녀, 5) 기도, 6) 바다, 7) 잠, 8) 딸, 9) 긍지, 10) 감사. 1. 1등은 못해도 2등은 했다 어머니는 자타가 인정하는 제주해녀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가 자리한 중문관광단지 일대를, 대포 사람들은 ‘너배기’라 불렀다. 아마도 넓고 평평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다. 너배기 앞에 있는 바다를, 우리는 지삿개라 불렀다. 지금은 ‘주상절리’라 불리며, 관광지로 유명해진
헝가리 출신 알마시는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고 구속하는 ‘국가와 민족’이란 집단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더 나아가 적개심까지 느낀다. 그래서인지 알마시의 꿈은 왜소하고 멸시당하는 헝가리 민족을 벗어나 세계인이 되는 거다. 알마시의 조국 헝가리의 역사는 우리와 닮은 구석이 있다. 근대 이후 헝가리는 주변 강대국 오스트리아, 독일, 러시아(옛 소련)의 세력 및 관계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찢겨나간다. 헝가리 역시 살아남으려 이쪽저쪽에 붙어보지만 약소국의 결과는 항상 참담하다. 헝가리 귀족가문 출신이자 엘리트인 알마시는 헝가리란 국적 때문에 이웃 강대국의 귀족가문이나 엘리트로부터도 무시당하는 자신의 처지에 분노하기도 한다. 자신의 ‘민족정체성’이 헝가리란 사실을 부정하려는 듯, 그는 헝가리어를 쓰지 않고 독일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그들과 어울린다. 알마시는 항공기 추락으로 처참한 화상을 입고 아무것도 기억 못하지만 신음 속에 구사하는 그의 영어만은 영국인이 들어도 틀림없는 영국인의 발음이었던 모양이다. 신원을 밝혀줄 아무런 증명서도 없는 상태에서 그렇게 그는 ‘잉글리쉬 페이션트’로 공인받는다. 그 정도면 알마시는 남루한 ‘헝가리인’에서 벗어나 진정한 ‘
4월 5일 실시된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진보당 후보가 당선됐다. 직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함에 따라 치러진 재선거에서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 민주당 소속이던 두 후보가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당의 상징인 파란색 점퍼를 입고 선거운동을 했지만 선택받지 못했다. 국민의힘 후보는 5위로 낙선했다. 사회의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하는 국회의 역할을 방기한 채 사사건건 충돌하는 양당 체제의 폐해에 대한 유권자의 경고로 해석된다. 투표율 26.8%는 사전투표제가 도입된 2014년 이후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중 세번째로 낮은 것이다. 당선인의 득표 수는 전체 유권자의 10.4%에 그친다. 정치 무관심 내지 혐오의 표시이자 투표 포기를 통해 기득권 정당들의 행태에 항의의 메시지를 보낸 것일 수 있다. 양대 정당을 향한 경고는 여론조사 결과로 입증된다. 한국갤럽의 3월 마지막 주 조사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며 33.0%로 같게 나타났다. 반면 무당층은 29.0%로 4%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2030세대 젊은층에서 무당층은 각각 46.0%, 41.0%로 양당 지지율보다 높았다. 이념 성향 중도층에서도 양당 지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오프닝 크리딧 배경화면은 조금 특별하다. 적갈색 물감을 묻힌 붓으로 종이 위에 무언가를 조심조심 그리는 누군가의 손을 계속 보여준다. 그 조심스러운 붓질이 완성한 그림은 팔다리의 관절을 꺾은 듯한 기묘한 사람의 형상이다. 그 그림은 영화 속에도 등장하는 ‘수영하는 사람들의 동굴(Cave of Swimmers)’ 속에 그려져 있는 신석기시대 동굴벽화 그림이다. 종이 위에 그 그림을 모사(模寫)하고 있는 손이 알마시인지 그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 캐서린인지는 불분명하다. ‘오프닝 크리딧’ 배경화면은 대개 영화의 가장 극적인 장면이나 영화 전편을 관통하는 의미를 담은 장면을 사용한다. 앤서니 밍겔라 감독은 아마 ‘수영하는 사람들의 동굴’ 속에 그려진 동굴벽화 한 컷으로 관객들에게 자신이 의도하는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고 싶었던 듯하다. 캐서린은 그 동굴 속에서 알마시에게 편지를 쓰면서 숨을 거두고, 알마시는 그 동굴에서 숨을 거둔 캐서린의 시신을 안고 나오며 통곡한다. ‘수영하는 사람들의 동굴’은 실존인물 알마시가 1933년 이집트와 리비아 국경 사막지대에서 발견한 신석기 시대 동굴벽화다. 대단한 고고학적 발견이다. 불행하게도 1996년
중국은 1992년 수교 이후 ‘달러 박스’로 여길 정도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무역흑자국이었다. 그러던 중국이 올해 무역적자 1위국으로 바뀌었다. 1월 대중(對中) 무역적자가 약 40억 달러, 1~2월 누적 적자는 50억 달러를 넘어섰다. 천연가스와 원유를 사오느라 그동안 최대 무역적자국이었던 호주나 사우디아라비아보다 적자가 많아졌다. 중국은 불과 5년 전 2018년만 해도 연간 흑자 규모가 500억 달러를 넘어설 정도로 우리나라의 압도적인 무역흑자국이었다. 이후 2021년까지 200억 달러가 넘는 흑자를 내며 무역흑자국 2~3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흑자액이 12억 달러로 급감했고, 흑자국 순위도 22위로 밀렸다. 그리고 올 들어선 대중 무역수지가 마이너스로 돌아선 데 이어 아예 최대 무역적자국이 된 것이다. 3월에도 대중 무역적자는 이어졌다. 어느새 대중 무역수지 적자가 고착화하는 모습이다. 최대 이익을 내던 무역 상대국이 최대 손실이 나는 교역국으로 바뀐 것이다. 지난해 중국 정부의 제로(0) 코로나 정책과 지역 봉쇄로 중국 경제가 침체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대중 수출 감소가 설명되진 않는다. 코로나 봉쇄 조치로 중국 경제의 성장이 둔화하면서
1923년 3월 22일. 어머니의 생신이다. 막내딸 이름을 성춘(成春)이라 지으시면서, 외할아버지는 ‘봄을 이루어라, 봄이 되거라’고 기원하셨을까. 이제 내일 모레면 만 나이로 백 세가 되신다. 이웃들이 묻는다. 어머니의 장수비결이 무엇이냐고. 혹시 집안이 장수하는 가문이냐고..... 아니다. 어머니는 4남2녀의 막내인데, 형제분들 중 가장 오래 사신 경우가 80대 중반이다. 요컨대, 장수혈통은 결코 아니란 얘기다. 그럼, 무엇이 장수의 비결일까? 어머니와 함께 산 지 20년, 같은 방을 쓴 지가 10년 째다. 룸메이트로서 내가 경험하고, 관찰하고, 생각하는 어머니의 장수비결을, 10가지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일, 2) 식사, 3) 병원, 4) 자녀, 5) 기도, 6) 바다, 7) 잠, 8) 딸, 9) 긍지, 10) 감사. 어머니가 만 백세 생신을 맞았다. 혹여 서울에서 무슨 소식이 오려나? 100세를 맞은 어르신에게 장수 지팡이인 ‘청려장’을 보내준다는데.... 건강과 장수를 상징하는 청려장은 명아주 풀로 만든 지팡이다. 통일신라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는 임금이 장수 노인에게 청려장을 주는 전통이 있었다 한다. 우리 정부는
알마시는 인간 자체로는 꽤나 훌륭한 인물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사막을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막 탐사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SNS에 ‘인생 샷’ 하나 올리지 않는 걸 보면, 사막 탐사가 ‘공명심’인 것도 아니다. 알마시는 누군가에게서 돈을 받고 하기 싫은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위해서 홀로 사막을 떠도는 것도 아니다. 조국 헝가리를 위해서도 아니다. 나라를 위해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만들기에 매달린 김정호 선생과도 결이 다르다. 알마시를 매슬로(Maslow)의 ‘인간의 욕구 5단계설’에 적용하면 승화된 욕망의 마지막 단계인 ‘자아실현(self-realization)’에 도달한 인물이다. 모든 것을 초월해서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한다. 헝가리의 귀족 출신이니 호구지책 걱정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존경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황량한 리비아의 사막을 혼자 떠돌며 자신이 사랑하는 사막을 관찰하고 그 사랑의 대상을 묘사하고 기록할 때 알마시는 완벽하게 자아를 실현하고 충만한 인간으로 보인다.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고, 갈등하지도 않고, 고통스럽지도 않아 보인다. 그랬던 ‘자유인’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2005)’ 영화는 1963년 북미 대륙의 록키산맥 동쪽에 붙어있는 미국의 와이오밍주 ‘브로크백 마운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다. 카우보이 에니스 델마(Ennis Del Mar, 히스 레저)와 잭 트위스트(Jack Twist, 제이크 질렌할)는 목장 주들의 조합에 고용된다. 그들의 역할은 양떼를 몰고 록키산맥 초원지대를 다니며 풀을 먹이다 겨울이 되기 전에 돌아오는 것이었다. 양들이 늑대에게 잡혀가든지 도둑 맞을까봐 그들은 늘 양떼 옆에서 자야하고 짐을 최소화하기 위해 텐트도 자그마한 거 하나다. 같이 일을 하다 보니 서먹하던 것도 없어지고 어느 날 좁은 텐트 안에서 자다가 우발적으로 섹스를 하게 된다. 잭은 우연이고 일회성 관계였다고 말하지만 이후 양떼를 몰고 다니면서 둘의 관계는 아무래도 수상하다. 양떼 몰이를 마치고 산을 내려오면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심하게 싸움을 하기도 한다. 이런 게 애증관계라고 하는 걸까? 서로를 기다리는 사이 그 후 에니스는 약혼자와 결혼해서 딸 둘을 낳고, 잭은 텍사스에서 로데오 경기 일을 하다가 부잣집 딸 로린을 만나 결혼을 한다. 헤어지고 나서 4년 정도 지난 시점에
3월 기온이 기상관측 이후 가장 높고 벚꽃도 일찍 피었지만 취업전선에는 찬바람이 쌩쌩 분다. 지난 2월 우리나라 취업자 수 증가는 31만2000명으로 2년 만에 가장 적었다. 특히 15~ 29세 청년층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2만5000명 감소했다. 반면 60세 이상 취업자는 577만명으로 역대 최대였다. 60세 이상 고령 근로자는 최근 10년 새 두배로 늘었다. 이처럼 고령 취업자는 해마다 수십만명씩 늘어나는 데 청년층 취업자는 줄고 있다. 반도체 등 제조업이 부진한 데다 취업을 유예하면서라도 괜찮은 일자리를 찾으려는 청년들이 많아진 결과다. 더 큰 문제는 구직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쉰다’는 청년이 50만명에 육박한다는 점이다.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자신의 상태를 ‘쉬었음’이라고 응답한 취업 포기 청년층이 49만7000명이다. 사상 최대 규모다. 취업·진학 준비나 군 입대 등 특별한 사유 없이 일할 능력이 있는데도 일하지 않는 청년이 이 정도라는 것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국가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이 알바나 임시직 등 원하지 않는 일자리에 내몰리다 이마저 끊기면서 구직 의욕를 잃은 것이다. 이는 젊은 층의 결혼·출산 기피로
캐서린은 알마시와의 불륜관계가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튀니지의 허름한 천막 극장에서 알마시와 만나 이별을 통보한다. 도덕적 죄책감도 아니고 알마시에게 정이 떨어져서도 아니다. 결국은 남편이 눈치를 챌 것이란 두려움 때문이다. 알마시는 캐서린의 일방적인 이별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캐서린은 도망치듯 극장을 빠져나온다. ‘어둠’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광명’의 세계로 빠져나간다. 어둠 속에 홀로 남은 알마시의 표정이 참담하다. 알마시가 캐서린으로부터 이별통보를 받은 날 저녁 호텔에서 ‘국제 사막클럽’의 연회가 열린다. 클리프턴을 비롯한 사막 탐사가들이 모두 멋진 연회복장으로 참석해 우아한 유럽식 파티를 즐기고 있다. 알마시는 극장에서 캐서린과 ‘접선’하느라 지각 참석한다. 캐서린에게 이별통보를 받고 어디서 ‘홧술’을 몇잔 했는지 이미 취한 듯하다. 알마시는 대뜸 자신도 속해 있는 ‘국제 사막클럽’이란 단체 명칭에서 ‘국제(international)’란 단어에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우아하게 차려입은 ‘국제 사막클럽’ 회원들을 향해 “세상에 국제라는 말처럼 더럽고 추악한 것은 없다”고 이죽거린다. 개별 국가는 자유롭지만 국가끼리 엮이고 관계를 맺으면 자신의 뜻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