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영화 국제시장이 2월 들어 누적 관객 수 1300만명을 넘어섰다. 영화진흥위원회의 박스오피스 통계에 의하면 이는 역대 휴먼드라마 장르 중 흥행 1위의 기록이란다. 영화평론가들이 10점 만점에 5점을 부여한 ‘보통’ 영화가 요새 말로 대박을 친 셈이다. 그 덕택에 영화 속에서 영자 역을 한 여주인공이 어린이재단에 기부금을 낸단다. 영화 관람객 수에 비례해서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이. 참 가슴 따뜻한 이야기다. 이처럼 국제시장이 관객들로부터 ‘극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관람객들의 반응에 관한 자료를 짚어보면, 전문가들이 ‘신파적 스토리’라고 비평하는 영화의 흐름이 ‘우리들의 이야기’로 소통되기 때문이란다. 6.25의 흥남철수작전으로 비쳐지는 국가의 무능함, 전쟁과 폐허에서 전개되는 가난의 뼈저림, 생존을 위해 독일의 탄광과 베트남 전선에서 사투하는 개인의 몸부림, 이산가족을 찾아서 분단의 비극을 부둥켜안는 범국민적 눈물 등이, 여전히 진행 중인 우리사회의 아픔으로 공감되어서다. 사실, 오늘도 변함없이 국가는 무력하고, 가난한 이들의 삶은
1611년 3월 어느 날 보물선이 제주 바다에 나타났다. 독립왕국이던 유구국(지금의 오키나와)이 일본에 먹힌 후였다. 24개월 전 유구국에는 피바람이 불었다. 왕과 왕자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 가고시마로 끌려갔다. 제주에 나타난 보물선에는 유구국 왕자가 타고 있었다. 기록을 토대로 이야기를 꾸며보면 다음과 같다. ▲ 해상왕국 유구의 무역을 주도했던 아지 계층. 1879년 일본에 완전히 병합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옛날 어느 큰 배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제주의 산지 바닷가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린 사람은 100명이 넘었다. 이들 가운데 제일 높은 이가 관가에 불려 갔을 때 사또가 물었다. “너희는 누구냐” 옷을 잘 차려입은 젊은이가 대답했다. “저는 유구국의 왕자입니다.” 사또는 먼 곳에 있는 왕자가 이곳까지 온 게 궁금했다. 왕자가 말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왕이신 제 아버지를 잡아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슬퍼서 보물을 갖고 일본에 들어가 왕을 풀어 달라고 하려 배를 타고 떠났다가 이 곳으로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사
▲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한 장면 1597년 음력 4월 1일 충무공 이순신은 한 달여 간 심문을 받던 의금부에서 풀려났다. 경남 초계(합천군)에 있던 도원수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하라는 처분이 내려졌다. 8월 2일까지 네달 간 백의종군했다. 백의종군은 군인이 계급 없는 백의(白衣) 신분으로, 군대 일에 종사(從軍)하는 걸 말한다. 권율의 군사자문 역할을 한 걸로 보면 된다. 석방 첫날부터 술을 들고 인사 오는 지인이 많았다. 이순신은 연일 취했다. 난중일기에 “정(情)으로 권하며 위로하기에 사양할 수 없어 몹시 취했다…술병째 가지고 와서 함께 취하며 위로해줬다”고 적었다. 낮술도 했다. “일찍 길을 떠나 오산에 이르니 술을 준비해 장막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취하도록 마시고 길을 떠났다.” 원수 같은 왜적이 다시 쳐들어왔는데 제 역할 하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가 한탄스러웠을 것이다. 백의종군길(路)이 지난달 말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에 의해 고증됐다. 한양을 떠나 충남·전남북·경남에 이르는 640㎞, 긴 여정이다. 경남(161㎞), 전남(123㎞) 구간은 3~6년
▲ 강민수 논설위원 사흘에 걸친 탐라국입춘굿놀이가 끝나니 제주목관아 일대가 다시 조용해졌다. 장수 수(帥)라고 적힌 사령관의 황색 깃발이 저 홀로 찬바람에 펄럭일 뿐이다. “과거 제주의 중심이던 제주목관아가 복원됐지만 운영방향을 잃으면서 외국인 관광객 투어코스에서도 외면 받는 ‘죽은 문화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11월초 제주의 어느 신문은 이곳이 도정감사에 오른 일을 이렇게 보도했다. 행사도 프로그램도 마땅한 게 없고, 있다고 해도 몇 년째 똑 같다는 지적이 나왔다. 운영 적자폭은 매년 늘었다. 제주목관아는 조선시대 목사가 행정사무를 보던, 지금의 도청과 같은 곳으로 1993년 복원되면서 국가사적에 지정됐다. 탐라시대부터 주요 관아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될 만큼 유서 깊은 원도심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이나 발길은 뜸하다. 그렇다면 관광객들은 왜 이곳을 외면할까? 복원된 유적지가 대개 그렇듯이 박제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입구에 설치된 안내문부터 읽어보기가 벅차다. 저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보다 전문가들이나 아는 고고학과 서지학을 동원하며 이 '장대한' 복원공사를 어떻게 성사시켰는지에 대한
▲ 병자호란이 시대적 배경인 영화 <최종별기 활>의 한 장면 내몽골을 통일한 후금(後金)의 태종은 나라 이름을 ‘청(淸)’으로 바꾸면서 자신을 황제로 칭한다. 그는 1636년 사신 용골대(龍骨大)를 조선에 보내 군신관계를 맺고 명나라와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했다. 국제정세에 무지하고 명에 대한 사대사상에 사로잡힌 조선의 왕 인조는 용골대를 상대조차 하지 않았다. 용골대는 서울을 떠나면서 객사의 벽 위에 ‘청(靑)’자 한 글자를 써놓고 갔다. 어떤 사람들은 청(靑)자는 십(十)+이월(二月)이 되며 이것은 12월 압록강에 얼음이 얼 때 조선을 쳐들어올 것이라는 예고한 것이며 전쟁 시기를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날씨조건에 맞춘 것이라고 말한다. 내몽골을 통일한 후금의 병력은 아시아에서 가장 추위에 적응이 잘 된 군사들이었기에 이런 해석이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조선의 왕이 사신을 만나주지도 않았다는 보고를 받고 격노한 청 태종 홍타이지는 1637년 1월 직접 20만 대군을 이끌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넜다. 본래 이들은 만주 북부와 몽골 지방에 살던 기마 민족으로 겨울에는 -40℃까지 떨어지는 혹한과 살을 에는
제주성은 내성-탱자성-해자-외성의 철벽 구조였다 유배인 조정철은 제주 여인 홍윤애와 애달픈 사랑만 한 것이 아니라 1811년 목사로 부임해 와서는 제주성의 정비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특히 그는 성 밖의 이중성, 즉 외성(外城)을 새로 둘렀다. 이런 엄청난 사실은 '비변사등록'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음에도 그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의아한 일이다. 조정철은 왕에게 "탐라의 내성(內城)과 바깥 지성(枳城 : 탱자성)은 예로부터 없었던 성의 체제이며 천험(天險)의 요지"였다며 상당히 훼손된 사실을 안타까워하는 글을 올린다. 본성을 내성이라고 부른 이유는 그가 성 밖에 성을 한 바퀴 더 둘렀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에 착수하기 전에 왕의 허락을 구한다. "성첩(城堞)은 예전과 같이 그대로 두고 바깥에 성을 쌓아 그 사이에 12개의 과실 정원을 설치하여 모두 귤과 유자를 심고 다시 성과 정원을 주관할 사람을 두어 수리 보호하고 감수하는 일을 맡기게 하소서." ▲ 100여 년 전의 지적도에서 확인되는 내성, 탱자성, 해자, 외성 성첩이란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여기에 몸을 숨기고 적병을 쏘거나 방어하는 곳이다. 기존
기와 한 장이 나를 조각 맞추기 게임으로 몰아넣었다. 원도심 답사가 심각한 취미로 자리 잡은 지난 가을 어느 날이었다. 대개 혼자 발품을 팔다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만 같이 다녔는데, 그 날의 동행은 한옥 전문 대목장인 친구 성문순이었다. 조선시대 유사시 총사령관의 작전본부였던 터에 축대는 물론 기왓장이 무더기로 널려 있었다. 잘 만들어진 초석과 기둥도 방치되어 있었다. 그날의 수확은 수성소임신이월(守城所壬申二月)이라 새겨진 기와를 찾아낸 것이다. 제주성을 지키는 어떤 건축물이 임신년 이월에 지어졌다는 이야기다. ▲ 수성소임신이월이라고 새겨진 기와 사진을 본 윤봉택 선생이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정말 좋은 자료를 발굴했다"며 "제주성에 수성소가 있었다니 흥분된다. 대부분 수성소는 큰 성에만 있는데, 이 자료로 인하여 제주성에도 수성소가 있었음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 말했다. 매장문화재 발굴 신고를 하라는 권고를 잠시 미루고 추가답사와 관련 자료 조사에 들어갔다. 이와 비슷한 발굴은 이미 두 번 있었지만 조각이 나서 연결고리를 찾기 힘들었다. 제주목관아 터 발굴 현장에서 성소임신이월(城所壬申二月)이라는
▲ 일본 아베 신조 총리 ‘일본헌법 9조 노벨평화상 추천 한국위원회’가 ‘9조회’와 다카노스 나오미(鷹單直美·38)씨를 2015년도 노벨평화상 공동후보로 추천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씨를 포함한 일본 원로 지식인 9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9조회’는 일본 우익의 헌법 개정을 막기 위하여 노력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지성인 모임이다. 다카노스 나오미는 2013년 8월 ‘헌법 9조 노벨평화상 실행위원회’를 설립하여 ‘일본헌법 9조’를 지켜온 일본국민들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해달라는 서명운동을 벌여온 두 아이의 어머니다. 다카노스 나오미씨는 2013년 1월 노벨위원회에 ‘일본헌법 9조’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하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노벨위원회에서 '노벨평화상 수상 대상은 개인이나 단체로 한정돼 있고 헌법과 같이 추상적인 것은 후보가 될 수 없다'는 답신을 받았다. 그러자 그는 ‘일본헌법 9조’를 지켜온 일본 국민을 후보로 추천하였다. 다카노스 나오미씨는 ‘일본헌법 9조&rsqu
제주에는 새해가 세 번 있다. 올해는 1월 1일 신정, 2월 4일 입춘, 2월 19일 설날이다. 일년을 15일 단위로 나누어 표시한 24절기의 첫날인 입춘을 제주사람들은 새해가 아니라 새철 드는 날이라 부른다. 봄 춘(春)이라고 쓰나 이 날의 날씨는 대개 춥다. 칼바람에 폭설까지 동반해 일년 중 가장 추운 날도 있다. 입춘이 중국의 화북 지방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탐라국 입춘굿 놀이. [제이누리 DB] 우리나라에서 지금의 입춘은 입춘대길(立春大吉)이나 건양다경(建陽多慶) 같은 축원의 글을 써 대문에 붙이는 정도로 가볍게 지난다.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합니다'라는 인삿말이다. 입춘의 기원문(입춘첩)은 꼭 입춘대길 뿐만 아니라 각자 맘에 드는 구절을 써 내걸면 된다. 그러나 제주사람들에게 입춘맞이는 아직도 각별하다. 입춘 사흘전 까지 약 일주일 동안 섬 전체가 들썩인다. 열에 한두 집이 이사를 하는, 세계 어디를 가도 보기 힘든 진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사 뿐만 아니라 헌 데 고치고 묵은 것은 버린다. 또 새 것을 만들거나 들이는 이 시기를 신구간(新舊間)이라 하는데 묵은 해와 새해의 교체기라는 뜻이다
▲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 78호 우리나라 국보(國寶) 및 보물 등의 일련번호가 폐지될 전망이다. 문화재청은 국보를 ‘문화재 중 인류문화의 견지에서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총 317개의 국보가 있다. 1호가 숭례문이다. 국보 번호 폐지 논의는 국보 1호에 숭례문이 적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에서 비롯됐다. 일제는 1934년 8월 우리나라 보물(국보) 153건을 지정할 때 숭례문을 1호로 했다. 당시부터 임진왜란 때 왜군이 서울 입성에 사용한 문을 기념하기 위한 속셈이 라는 얘기가 돌았다. 이 때문에 1996년 이후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 국보 1호 교체가 논의됐지만 “혼란을 부른다”는 문화재위원회 반대로 무산됐다. 2008년 숭례문이 불타자 다시 1호 교체 주장이 대두했다. 지난해 숭례문 부실 복구 사태까지 겹치면서 번호 교체나 폐지 등 개선 작업은 미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 83호 “일제가 자신들의 승리를 기념해 1호로 정했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나라에선 이에 맞서 ‘1호 숭례문’을 지킬 논리도 명분도 없
▲ 일터인 바다작업장으로 가는 해녀행렬. [제이누리DB] 아버지는 동네에서 힘이 세기로 소문난 장정이었다. 사람들이 일을 하다가 힘에 부치면 아버지를 찾아서 ‘힘을 보태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단다. 게다가 만능 일꾼이라서 집을 짓는 건축이나 밭담을 다는 석수일, 밭을 가는 쟁기질은 물론 갈치나 자리를 잡는 어부 일도 능숙하였다. 우리가 사는 집도 아버지가 지으셨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던 아버지는 동트는 새벽에 밭갈이를 시작하면 해가 기우는 어스름까지 ‘이랴 이럇’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일이 끝나면 소를 어루만지면서 친구에게 하듯이 ‘속았다(수고했다)’며 다독였다. 남이 이틀 걸려 하는 일을 아버지는 하루 만에 해치웠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을 할 때 별로 말이 없었다. 그저 일이 돌아가는 상황에 눈을 맞추면 손발이 척척 돌아가는 커플이었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서도 산남에서 1등 가는 보리, 유채, 고구마를 거둬냈다. 그처럼 아버지가 차별적으로 농사일의 경쟁력이 높았던 데는 남다른 비결이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밥에만 식구들 몰래 참기름을 듬뿍 뿌려놓는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고래(古來
‘재의냐 추경이냐 (... 이것이 문제로다)’ 기자가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면 십중팔구는 품질이 나쁜 기사일 가능성이 높다. ‘소유냐 존재냐’의 구도 위에 현재의 사안(事案)을 덧씌워서 핵심 쟁점이 마치 존엄의 우열을 따지기 어려운 두 개의 지향인 것처럼 대중을 혼란스럽게 만들거나, 어느 편의 오류도 정공할 배짱은 없으니까 대중의 명확한 판단을 흐리게 해서라도 미디어의 영향력은 유지하고 싶은 경우일 것이다. 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말이라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같으면 그건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이런 대중의 급소를 노린다. 제주자치도가 의회의 예산 삭감으로 파행을 겪고 있다. 국비보조사업의 도비 부담금은 물론, 필수경비인 공공운영비를 망라한 무차별 삭감으로 도정이 생명력을 잃고 말았다. 원희룡 도지사는 재의를 요구하겠다고 하고, 구성지 의장은 추경안을 제출하라고 공을 미루는데, 애꿎은 도민은 맞받아칠 상대가 누군지를 모르겠다. 도내에 십 수개가 넘는 언론은 공을 치고받는 정선아리랑만 제주판으로 표절하여 중계할 뿐, 둘 중 어느 한쪽의 반칙은 지적을 못한다. 무섭거나 재미있거나 모르거나 성가시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