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괘(賁卦) 비(賁)는 문식하다, 꾸미다 이다. 정치, 경제 제도 등을 포함한 인류의 생활방식은 바로 인류의 문식이다. 그래서 인문(人文)이라 한다. 사람의 복장, 형상, 기질, 수양은 인문에 속한다. 바로 인문이 있기에 인류의 광범위한 교류와 소통이 있다. 몸가짐과 옷차림이 맞지 아니하면 어떻게 할까? 개인 형상은 점포의 외관과 같다. 개인의 형상이 좋고 나쁨은 사람 간 교제의 성패를 직접적으로 결정한다. 개인 형상은 자신이 끊임없이 노력하여 자신의 도덕수양을 충실히 높임으로서 반영된다. 그래서 옛 사람이 말했다. “뿌리가 없으면 제대로 서지 못하고, 무늬가 없으면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다.”(『예기禮記·예기禮器』) 우리는 살면서 어느 지도자는 친화력이 강하고 어떤 사람은 붙임성이 좋아 모두가 그와 교류하기를 원한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이것이 개인형상이 비교적 좋다는 표현이다. 개인형상은 하루사이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좋은 개인형상은 세월이 쌓여서 만들어진다. 좋은 방면을 끊임없이 타인에게 드러내면서 좋지 않은 점은 점차 개선해 나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좋은 개인형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언행을 주의하여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분명한 것은, 충돌은 쌍방 당사가 모두 불리하다는 점이다. 각자의 사업에 악영향을 초래하게 된다. 큰일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불필요한 충돌을 피해야 한다. 여러 가지 갈등을 온힘을 다하여 없애고 자기에게 여유롭고 조화로운 생활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다른 사람과 충돌을 방지할 수 있을까? 첫째,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 멀리 앞을 내다보아야 한다. 모든 일은 대세를 읽어야 하고 풍격이 있어야 하며 단결하여야 한다. 모든 적극적인 요소를 동원해 공동의 목표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둘째, 주의를 기우려 조사하고 연구하여야 한다. 제때에 다른 사람의 사상, 동태를 파악해 여러 가지 모순을 풀려고 노력하면서 우환을 미연에 방지하여야 한다. 그러면서 사람 사이의 틈을 감소시키거나 없애야 한다. 셋째, 이해하려는 입장에서 타인을 대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개성과 특징이 있다. 다른 장점과 단점이 있다. 우리와 똑같은 지향이나 흥취를 가질 수는 없다. 넷째, 타인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누구나 결점은 있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타인이 우리 자신의 과오를 이해해주기를 희망하듯이 타인에게도 잘못을 고칠 기회
◆ 서합괘(噬嗑卦) 서(噬)는, (깨)물다 뜻이다. 합(嗑)은 합하다 이다. 서합은 입 안에 물건을 넣고 씹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씹을 때는 입을 움직여야 한다. 입을 벌려야 교류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으며 서로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한 후에야 오해를 풀 수 있다. 막힌, 두절된 것을 없애야만 일을 처리하는 데에 간단하게 할 수 있으며 큰일을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로, 중대한 문제는 사소한 것으로 하고 사소한 문제는 끝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막힘이 생기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막힘, 두절이 생겨 통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때 더 교류하고 더 소통하면서, 간결하면서도 힘차게 단도직입적인 방법을 채택하여 큰일은 작게 만들고 작은 일은 끝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서합(噬嗑)은 형통하니, 옥(獄)을 쓰는 것이 이롭다.” ‘씹다’는 말은 소통을 진행하는 것이다. 심리하여 막힘, 두절을 없앨 수 있다. 소통은 어디에나 있다. 소통이 있어야만 갈등을 해소시킬 수 있고 단절을 없앨 수 있다. 허베이 어떤 지역에 두 집안이 있었다. 동쪽 집 아기가 놀다가 실수로 손에 들고 있던 자그마한 돌이 담을 넘어 서쪽 집 아주머니의 머리를 때렸다. 서쪽
◆ 관괘(觀卦) 보다, 관찰하다, 시찰하다, 쳐다보다, 우러러보다, 의식에 참관하다 등이 모두 관(觀)이다. 본 후에야, 확실해질 수 있고 명확해질 수 있다. 인생을 꿰뚫어 볼 수 있고 삶을 느껴 깨달을 수 있다. 자아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고 타인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하여 경험을 총결하고 자아를 완벽해지게 할 수 있다. 자신을 알지 못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람의 최대의 적은 타인이 아니다. 자신이다. 자신을 이해할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자아를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늘 자신을 반성하여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자기의 부족과 잘못을 인지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자신을 고치고 자아를 높일 수 있다. 『주역』은 말한다. “내가 내는 행동을 보되(니) 군자다우면 허물이 없으리라.” 자신의 행위를 관찰하니 군자는 잘못도 없고 재앙도 없다는 말이다. 자신만이 자기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사실 어떨 때에는 자기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기만하고 남을 속이기도 한다. 앞쪽에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곧장 부딪쳐 들어가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성공하지 못하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손
◆ 림괘(臨卦) 임(臨)은 위쪽에서 고개를 숙여 아래쪽을 보다, 즉 감시하다 뜻이다. 특히 상급자가 하급자를 감시하는 것을 가리킨다. 뜻이 다스리다, 통치하다, 관리하다 의미로 파생되었다. 세상은 안정되기를 바란다. 안정되어야 평화, 행복, 광명이 있다. 안정되려면 정돈되고 다스려져야 한다. 다스림에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지혜로써 감화하여야 하며 덕행으로써 사람을 만들어야한다. 잘못 관리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람을 교육하거나 관리하려면 이치에 맞게 설복하여야 하고 지혜로써 해야 한다. 중용의 도를 견지하여야 한다. 정세에 따라 유리하게 이끄는 방법으로 교육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신뢰나 존중을 받아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모두(감동하여) 임하니 바르게 하여 길하다.” 무슨 말인가? 감화의 방식으로 다스리니(처리하니) 길하고 이롭다. 이롭지 않는 게 없다. “사람이 태어났을 때는 인성이 본래 선량하다.”(『삼자경三字經』) 사람은 본래 무지 무욕이다. 모든 것은 자연을 따랐다. 무지는 기교를 부릴 줄 모른다. 무욕은 추구하는 바가 없다. 욕심 없고 추구하는 바가 없는 것은 탐욕과 죄악이 없다는 말이다. 역으로 하면 청정(清静)을 지키고 사적인 욕망이
◆ 고괘(蠱卦) 고(蠱)는 그릇에 많은 독충을 넣고 서로 잡아먹게 만든 후 남은 최후의 독충이다. 음식물 속에 넣어 사람을 해치는 데에 쓴다. 고는 해독을 끼치다, 미혹시키다, 문제, 잘못, 변고가 생기다, 귀찮게 하다 뜻이다. 잘못은 모든 사람이 저지른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면 재빠르게 정정한다. 어떤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몰라 갈팡질팡한다. 큰 잘못을 저지르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인생의 길에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잘못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주역』은 말한다. “고(蠱)는 크게 형통하다. 큰 시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우니, 갑(甲)보다 삼일 앞서서 하고, 갑보다 삼일 뒤에서 한다.” 이는 폐해를 고치고 혼란을 정리한다,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아 정상을 회복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시작부터 바로 형통이다. 뒤쪽의 고생과 어려움을 넘어서는 데에 이롭다. 그런데 큰일하기 전에 현재 상황을 고찰하고 사태를 분석하여야 한다. 이전의 과오를 뒷날의 경계로 삼고 병을 치료하여 사람을 구해야(사람의 잘못을 지적하여 고치도록 하여야) 한다. 즉 과거의 잘못을 후일의 거울로 삼고 병을 고쳐 사람을 구해야1
유비(劉備)가 조조(曹操)에게 얹혀 살아가고 있을 때, 조조의 의심을 살까 염려해 때를 기다리는 ‘도광양회’ 계책을 실행한다. 자기의 거처 뒤쪽 뜰에 채소를 심기 시작하였다. 조조가 청매를 내놓고 술을 데워서 그와 함께 영웅을 논하는 술자리를 만들었다. 조조가 갑자기 ‘유비는 진정한 영웅’이라는 말로 정통으로 찔러왔다. 유비는 당황했다. 어쩔 줄 몰라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바로 그때 하늘이 도왔는지 공교롭게도 천둥 치면서 큰소리가 울렸다. 유비는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하였다. 천둥소리에 겁을 먹은 척 귀를 막고 엎드렸다. 소심한 척 가장하여서 조조의 의심을 피했다. 임기응변 능력으로 자신을 구했다. 칼을 빼서 동탁(董卓)을 암살하려다 발각된 순간 조조는 기지를 발휘해 칼을 바치러왔다고 거짓을 꾸며 위기를 모면하였다. 조조가 탄 말이 놀라 농지를 밟자 재치를 발휘해 ‘머리를 대신하여 머리카락을 잘라’ 자기 말에 권위를 달았다. 이 모두 임기응변이란 지혜의 빛이 발한 이야기이다. 임기응변은 재능, 기지, 담력과 지모의 빛이 반짝이는 뛰어난 예술이다. 조조의 ‘머리를 대신하여 머리카락을 자른’ 것이 좋은 예이다. 아무리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아도 이런 결론밖에 내리
◆ 수괘(隨卦) 수(隨), 사이좋게 지내다, 유순하다, 뜻대로 하다, 생각대로 하다, 감각에 따라 가다, 임기응변하다 뜻이다. 일할 때 융통성 있게 하고 너무 고집 부리거나 너무 보수적이지 말라고 교도한다. 너무 고집부리면 자기 길을 막게 되고 스스로 돌로 자기 발을 찍게 된다. 독선적이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달의 흐리고 맑음과 차고 이지러짐에 따라 바닷물은 만조, 간조가 된다. 철새는 계절 변화에 따라 이동하고 번식한다. 국가 정치는 민의에 따라야 하고 과학을 따라야 하고 진리를 따라야 한다. 옛 사람은 천시, 지리, 인화를 중히 여겼다. 어떤 일이든 하늘의 이치, 자연의 법칙을 따라야 했다. 지리에 순응하고 사람을 따라야 했다. 그러면 쉬이 성공하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와는 상반되게 행했다. 흑백, 시비곡직도 묻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자기 의견만을 고집하였다. 끝내 여지없이 참패당했다. 우회하면서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였다. 실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았다. 특히 지금 청소년 세대는 예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곳곳에서 기존의 규칙에 도전한다. 왜 그럴까? 마음이 들썽하고 공허하고 삶의 목표가 없어서다. 자신을 지탱할 균형점을 찾지 못해
◆ 예괘(豫卦) 예(豫)는 즐거움, 화기애애하다, 화락하다 뜻이다. 우리는 즐겁게 살아야 한다. 곤란에 처했더라도 쓰러져서는 안 된다. 곤경이 우리에게 고개 숙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적극적, 열성적으로 즐거움, 낙관을 추구하는 인생관을 향락주의와 동등하게 봐서는 절대 안 된다. 진정한 즐거움은 완강하게 필사적으로 싸우는 데에서 온다. 타인을 돕는 데에서 온다. 쾌락을 추구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고생을 낙으로 삼는 사람이 있다. 만족할 줄 알고 항상 즐겁게 살며 고생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고생을 낙으로 여긴다. 스스로 기쁨을 느끼며 자기 혼자서 즐기는 사람도 있다. 미소로 참담한 인생을 대면하는 사람도 있다. 묵묵히 희생하는 것을 긍지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부지런히 농사짓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일을 특별히 좋아하여서 거기에 몰두하거나 탐닉하여, 낙이 있으면 고생도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즐거움, 기쁨, 행복은 본래 좋은 것이다. 그런데 과도하게 기쁨을 추구하면 나쁜 것으로 변한다. 즐긴다는 것, 즉 즐거움은 양날의 칼이다. 즐기면 즐길수록 유쾌해지는 사람은 성공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즐거움이 슬픔으로 변하는 사
사람은, 재능이 있는 사람은, 재능이나 포부를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모든 일에 요란하게 떠벌이거나 기세등등해서는 안 된다. 효과적으로 자신을 보호할 바에야, 충분하게 자기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바에야, 맹목적으로 교만하고 우쭐대는 이상심리를 배제하고 이겨내고 더더욱 겸허하고 양보하는 미덕을 길러야 한다. “꽃은 반쯤 피었을 때, 술은 반 정도 취했을 때가 좋다.” 그렇지 않은가. 모든 꽃이 활짝 피어 아름다울 때면 사람들에게 꺾이거나 시들기 시작한다. 술에 만취하면 좋은 꼴을 보이기 어렵지 않던가. 인생도 이와 같다. 뜻이 이루어져 득의만만할 때 의기양양해 거드름을 피우거나 안하무인이 되어서 저밖에 없다고 뽐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에게 과녁이 되기 쉽다. 어떤 출중한 재능과 지혜를 가지고 있던지 간에 명심하여야 한다 : 자신을 굉장히 뛰어나다거나 지극히 빼어나다고 여기지 말라. 구국제민의 성인군자인 것처럼 오만방자해서는 안 된다. 칼끝을 거두어들이고 꼬리를 오므리라. 겸허하게 사람을 대하라. 옛날에, 칼끝을 너무 드러내 화를 입은 전형이 있다. 공로가 혁혁해 군주의 위세를 압도한 신하다. 강산의 주인이 되려고 다툴 때 각지의 영웅들은 한 장군
◆ 겸괘(謙卦) 『설문』은 풀이한다. “겸(謙)은 경(敬)이다.” 겸허해야만 다른 사람의 경모하는 마음을 얻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환영과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겸허는 사람을 진보하게 한다. 겸허는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자신의 결점을 고칠 수 있게 한다. 자만하여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람들은 자주 ‘득의망형(得意忘形)’을 이야기한다. 득의양양할 때 자신의 본모습을 잊고 자아를 잃어버려 바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원래 ‘득의망형得意忘形’이란, 뜻을 얻어 자신의 형체마저 잊어버리다 뜻이다) ‘득의망형’의 전고는 이렇다. 동진(東晉)시대 완적(阮籍)은 걷잡을 수 없이 방탕하였다. 시와 문장에 능했다. 어떤 때에는 집에서 공부하면서 수개월을 은거하며 밖에 나오지 않기도 했다. 어떤 때에는 산수 간에 놀며 즐기면서 열흘이나 보름을 집에 돌아오지 않기도 했다. 즐거울 때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행동하였다. 너무 흥분하여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심지어 자기 자신이 어떻게 된지도 모를 정도였다. 까마귀가 득의망형 할 때는 자기 입에 물고 있는 고기를 떨어뜨려버려 늑대가 대신 먹어버릴 정도다. 모기가 득
화교 제일 부자 이가성(李嘉誠)은 처음에 합성수지 사업에 투신하였다. 자신의 합성수지 공장을 장강(長江)이라 명명하였다. 나중에 합성수지 공장을 팔고 부동산업에 뛰어들었다. 회사이름도 장강부동산회사라 지었다. 나중에 사업이 확대되자 이름을 장강실업이라 했다. 사업 영역이 어떻게 변하였든지 간에 이가성은 ‘장강’이라는 명칭에 깊은 애정을 가졌다. 이가성은 말했다. “장강이라 이름을 지은 까닭은 개울물도 마다하지 않는 이치1)를 장강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강처럼 활달한 흉금을 가지고 난 다음에야 개울물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작은 개울물이 없다면 어찌 장강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런 드넓은 가슴을 가지고 있어야만 스스로 교만하지 않게 되고 자신이 ‘최고’라고 여기지 않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인정하게도 되고 타인의 도움을 얻을 수 있게도 됩니다. 이것이 옛사람이 말했던 ‘포용할 줄 알면 크게 된다’는 도리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많은 사람이 나를 대신하여 일하지 않는다면 내가 삼두육비(세 개의 머리와 여섯 개의 팔을 가짐, 신통력 있는 사람)라 할지라도 그렇게 많은 일에 대응할 방법이 없게 됩니다. 그렇기에 사업을 성취하는 데에 가장 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