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병은 자기경과가 있습니다. 한번 오면 평생 계속 우울병 상태로 가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르락내리락 몇 개월 지속되다가 ‘저절로’ 좋아집니다. 극단적으론 한번 수개월 앓고 다신 재발하지 않고 사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울병은 재발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저절로 호전되어 잘 지내다 재발하면 병의 기간이 더 오래고 정도도 심할 수 있습니다. 드문 경우겠지만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수많은 재발과 호전을 겪으면서도 운이 좋아 아무런 ‘사고’ 없이 평생을 살았다고 칩시다. 우울병으로 점철된 삶이죠. 삶의 본질 자체가 고통이라는 말이 있지만 다른 사람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고해(苦海)의 인생입니다. 하물며 결국 자살로 매듭 짖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울병이 ‘질병’으로 규명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이라고 밝혀지기 전에는 ‘누구나 인생은 어차피 고독해’ 테마에 묻혀갔을 겁니다. 세간에선 뭉뚱그려 말하지만 진단분류학에선 우울병도 여러 가지로 나뉩니다. 임상에선 이런 분류도 중요합니다. 치료 접근에 있어서 미묘하지만 분명히 다른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에서는 성격 형성을 유년기 양육 환경과 관련해서 설명한다. 인과 관계처럼 설명하는 것이다. 정신분석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사회 통념이기도 하다. “잔정이라고는 요만큼도 없고 매우 엄격하기만 했던 어머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쟤가 부모 사랑을 못 받아서 성격이...” “반장님. 사이코패스로 추정되는 범인의 어린 시절 환경을 조사해 봤는데요. 아버지가...” 유년기에 경험한 부모, 자식 간의 상호작용이 그의 인성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보는 것이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해 보자. 신경증이나 특히 성격 장애에 대한 관점은 흔히 크게 ‘갈등모형’과 ‘결핍모형’으로 나뉜다. 대표적 갈등모형은 <프로이트 학파>다. 인간의 무의식은 갈등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자아의 방어기제를 통해 갈등을 타협한다는 것이다. 그 타협이 어떤 증상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을 신경증이라고 부른다. 타협을 위한 방어기제가 비교적 적응적이라서 일상으로 정착되었다면 그것을 성격이라고 부르는데, 원시적인 방어기제가 주로 나타나는 경우를 성격 장애라고 한다.
기억과 망각에 대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한 책을 본 적이 있다. 통상적으로 기억(나중에 설명하겠지만 특히 삽화적 기억)은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동일인이라고 믿게 하는 근거로 알려졌다. 그러다 보니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어떤 철학이든지 ‘존재’나 ‘변화’에 관해 말할 때 ‘기억’이 주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관심은 많지만 그런 부분은 어쭙잖게 거론할 능력은 없고 나는 기억에 관한 너무나 유명한 과학사(科學史) 하나와 짧은 설명을 붙여 보려고 한다. 읽는 동안에 재미나 있었으면 좋겠다. 1953년. 약물 치료뿐만 아니라 어떤 민간요법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을 전혀 할 수 없을 정도의 난치성 간질을 앓던 헨리에게 외과의사 스코빌은 실험적 치료를 제안한다. 그것은 헨리의 간질 근원지로 추정되는 해마(hippocampus)를 제거하는 수술이었다(실제로는 해마와 편도체(Amygdala)를 포함하는 양측 측두엽의 안쪽 부위였다고 한다. 최근 편도체는 어떤 기억에 감정을 채색하는 것과 관련된 모종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렌 슬레이터는 문학적 표현, 여성의 감성에다
성격의 분류도 선명하게 떨어지지 않지만, 분류된 각 성격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것과 비정상(非正常)에 ‘장애’라는 진단을 붙이는 것 모두 쉽지 않습니다. 당장 ‘정상’이란 도대체 뭘 정상이라고 하는 걸까요? 통계적 정상, 주관적 고통을 기준으로 한 정상, 사회적.문화적 기준의 정상, 이상적 관점에 따른 정상, 임상적 관점에 따른 정상.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부교수 김병수는 월간「인물과 사상」2월호에서 정상성의 5가지 관점을 이렇게 소개했었지요. 이 부분 소개 및 논평은 나중에 따로 포스팅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성격의 분류 성격을 분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여기선 미국정신의학회 분류기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우선 사람은 모든 성격 요소를 조금씩 다 가지고 있다는 것과 이런 분류는 장애(질병)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입니다. 대략 다른 사람에 비해 특별히 두드러지고 또 그것으로 인해 대인관계에 문제가 되는 정도를 말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무리 진단기준을 마련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진단에는 정신과 의사의 직관이나 인상(impression)이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격장애는 크
송영길 의원은 지난 8일 한 인터넷 방송에서 “인천시장 시절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간담회를 하는데 ‘대통령이 쉬어야 하니 시장실을 빌려달라’는 말에 기꺼이 시장실을 비웠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박 대통령이 변기를 쓰기 전에 청와대 비서실이 시장실 화장실 변기를 뜯어냈다”며 “깜짝 놀라 왜 변기를 뜯어가느냐 했더니, (박 대통령이) 내가 쓰던 변기를 못 쓴다는 말이었다. 소독하고 닦든지 깔개를 깔면 될 텐데 변기까지 뜯어갈 사안인가 신기했다”고 과거 일화를 소개했다. [2016. 12. 16. 인터넷 신문 이데일리] 기사를 읽으며 조금 유별나다 싶었지요. 최근 여러 언론에 화장실에 관련한 박대통령 기사가 쏟아집니다. 지난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제4차 핵 안보정상회의가 있었어요. 각국 정상과 국제기구 대표들의 단체 사진을 찍었는데 박 대통령이 빠진 겁니다. 외교 문제, 한국정상 예우 문제, 의전 문제 등 여러 의혹이 난무했지만 나중에 밝혀진 것은 박대통령이 정상회담 장소에 있는 화장실에 가지 않고 현지 숙소의 화장실까지 가느라 사진촬영을 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 [구글]
흔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혼란, 복잡한 감정을 두고 패닉(Panic) 상태라고 말한다. “그 소식 듣고 나 지금 완전 패닉이야.” 패닉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서 나왔다. 판(Pan)은 숲의 신이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와 산양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외모는 산양을 닮아 무섭게 생겼고 판이 소리치면 알 수 없는 공포에 빠졌다. 올림포스 신들과 티탄 신들 사이에 일어났던 전쟁에서 판의 소리에 티탄 신들은 공포에 빠졌다. “티탄 족이 패닉(Panic) 상태에 빠졌다.” “꼭 죽을 것 같았어요” H씨는 2주일 전 갑자기 숨이 잘 안 쉬어지고 어지러워 119를 통해 응급실에 갔다. 링거액과 함께 안정제 주사를 맞고 좋아졌다. 여러 내과 검사에서 아무 이상이 없었다. ‘과호흡 증후군’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후 응급실에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유사한 증상이 한 두 차례 있었다. 어제는 버스를 타고 가다 또 증상이 발생하려는 것 같아 바로 내렸다. 근처 벤치에서 숨을 천천히 쉬며 안정을 찾았다. ▲ 불안(Die Angst, Life Anxiety) -뭉크, 1894년. 이런 병을
블러그 이웃인 ‘마혼’님은 위대한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 건 ‘광기의 이성’이라며 이를 부족하나마 ‘예술이성’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라고 한다. 마혼님 글을 읽으며 <창조는 좋은 기분에서 시작된다>(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부교수 김병수, 월간 인물과 사상 2015년 3월호)라는 글이 생각났다. 김병수는 창조적 인물들과 조울병(양극성 감정장애, bipolar disorder)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소개했다. 결론을 말한다면 창조적인 작품을 남긴 예술가들은 조울병 환자가 많았고, 현재 활동하는 작가들도 일반인에 비해 조울병 환자가 뚜렷하게 많다는 것이다. 이건 너무 심하다 싶지만 어떤 연구에선 시인들의 경우 거의 50퍼센트가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데 대게 조울병이었다.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은 우울 시기에는 거의 할 수 없었고 조증manic(혹은 경조증hypomanic) 시기에 맹렬하게 이루어졌다. 우울기의 경험을 에너지가 상승하는 조증 시기에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더 진행해서 생각해 본다면, 과거엔 위대한 인물들은 조울병을 앓았음에도 병을 이겨내고 특출한 성취
“대사, 우리끼린데 너무 딱딱하게 하지 말고, 오늘은 농이나 한번 합시다.” “좋지요.” “누구부터 할까요.” “전하부터 하시지요.” “그러지요. 그럼 나부터 시작합니다. 대사의 상판은 꼭 돼지처럼 생겼소이다.” “그런가요. 전하의 용안은 부처님 같으십니다.” 농담을 하자는데, 무학이 정색으로 자신을 찬양하자, 이성계는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어허. 대사. 농담하는 시간이라니깐.” “전하.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법이옵니다.” 이성계는 이 한 방에 껄껄 웃고 말았습니다. ㅡㅡ 『붓다의 치명적 농담』(한형조, 문학동네)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방어기제는 무의식에서 일어납니다. ‘방어기제’라는 말은 너무 엄격한 정신분석 용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정신기제’라고 하는 게 좋겠습니다. 오늘은 투사(投射,Projection) 정신기제를 말해볼까 합니다. 투사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학파마다 조금씩 다른 관점으로 설명합니
친구 C가 9월 학회지에 실린 논문 <정신의학 문헌에서 살펴본 조현(attunement)의 의미: 현상학적-인류학적 시각에서 바라본 조현병>을 한 장 한 장 스캔 떠서 보내주었다. 논문만 보면, 학회에서 정신분열병(Schizophrenia)을 조현병(調鉉病)이란 신조어로 대체한 것은 정신분열병이 가진 어둡고 부정적 이미지 개선을 위한 목적은 맞지만, 더불어 병의 생물학이나 물리주의 측면을 강조하는 의지로 짐작한 건 나의 완벽한 오해였다. 이 논문은 현상학으로 불리는 후설, 하이데거 철학이 밝힌 존재(주체, 자기)와 세계관계를 토대로 ‘조현’(attunement) 개념을 설명하고, 그 개념으로 학회가 정신분열병을 '조현병'(조현이 안되는 병)이라 개명한 근거를 뒷받침했다. 이런 것도 일종의 학문간 '통섭'인지, 일부 유럽에서 유행했다던 실존주의 정신분석에서 쓰이는 개념응용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미 오래 전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읽었고 최근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등 유명 철학 고전을 읽었다는 친구 C가 왜 이 논문을 칭찬했는지, 덧붙여 이번 겨울에 읽으려고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샀다
20대 후반 B씨와 Y씨가 들어왔다. 여성들이다. 두 사람은 원룸에서 같이 살고 있다. 6개월 정도 됐다. 두 사람은 그 전에 후배의 친구 등 인연으로 몇 차례 술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B씨가 세 살 위다. 우여곡절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동성애 관계는 아니라고 했다. 동성애 관계여도 상관없다. 심리척도 검사를 실시했다. 모두 우울척도와 불안척도 점수가 꽤 높았다. 특히 Y씨는 병력에서 공황장애도 의심되었다. 따로 한 사람씩 면담했다. 둘 다 도피성으로 집을 나왔다고 한다. 어떤 공황장애 환자들은 혼자 밖으로 나다니지 못한다. 혼자 있을 때 공황발작이 일어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공황장애에서 흔히 동반될 수 있는 광장공포증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서 보이는 분리불안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Y씨가 그랬다. 현재 두 사람은 각각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B씨는 밤 12시까지 근무를 하고 Y씨는 9시에 끝난다. 9시에 끝난 Y씨는 B씨가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3시간가량 있다가 같이 집에 들어간다. B씨는 이해할 수 없다. Y씨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해도 혼자 있으면 불안하다는 거다. Y씨는 B씨 손을 잡고 자지 않으면
▲ 권력의 어두운 그림자, '사이코패스' [제이누리 그래픽] 사이코패스는 타인의 정서를 추론하지 못한다. 언감생심 공감이 다 무슨 말인가. 기본적으로 지금 이 사람이 어떤 감정이겠구나 하는 추론이 되어야 추론한 감정에 공감을 하든 말든 할 게 아닌가. 사이코패스는 전두엽(frontal lobe), 그 중에서도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 기능에 문제가 있다. 호르몬 차이는 없을까. 정상인에 비해 사이코패스는 테스토스테론 수준은 높고 코르티솔 수준은 낮다. 애초부터 뇌(신경)와 호르몬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1920년 러셀(철학자. 논리학자. 1872-1970)은 모스크바에서 레닌을 만났다고 한다. 농업 부문의 사회주의에 관해 질문했다. 레닌은 즐거운 목소리로 어떻게 빈농이 부농을 적대시할 수 있게 했는지 설명하며 말했다. “그리고는 얼마 안 있어 (빈농들이) 부농들을 근처의 나무로 끌고 가 목을 매달아 버리더군요. 하! 하! 하!” 레닌은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다고? 김병수(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부교수)가 쓴 <권력이 사이코패스를 만든다> (「인물과 사상」5월호)를 읽었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정신과 전문의 이범룡 원장이 전하는 ‘담담(談談)클리닉’입니다. 도시와 산업화, 혼돈과 무질서, 사회 곳곳에 불거지는 병리현상과 난맥상을 화두로 이 원장이 세상과 소통합니다. 그의 ‘담담클리닉’을 통해 삶의 치유의 줄기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애독 바랍니다. / 편집자 주 60대 부인이다. 며칠 전부터 ‘목이 걸어졌다’고 할까 목에 무언가 걸려있는 것처럼 답답하다고 한다. 음식을 삼킬 때 특히 불편하다. 침 삼킬 때도 자꾸 걸린다. 이따가 이비인후과 검사를 해 볼 생각이라고 한다. 신경정신과를 찾은 이유는 요새 잠을 못자서다. 슬쩍 넘어가는 말처럼 아무래도 요즘 ‘신경 쓸 일’이 있어서 잠을 못자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슬쩍 넘어가는 말이 중요하다.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이 분은 ‘신경 쓸 일’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진료실에 왔다고 봐야 한다. 당연히 불면증은 부차적이다. 돗자리 깔듯 앞서 이야기한 목 문제도 아마 검사에서 이상 없을 가능성이 높다. 지나친 단정일까. '신경 쓸 일'이 뭔지 말할 수 있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