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5월 초여름 날씨.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의 환한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 들린다. 교실 창문 너머로 비치는 밝은 햇살, 바람에 실려오는 노랫소리와 체육시간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 스승의 은혜를 다시금 되새기는 5월, 그러나 교실 안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제주도내 한 초등학교 교사 고모씨(35)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을 느낄 줄 알았다"면서도 "이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보다 언제 나를 향할지 모를 민원의 공포와 싸워야 하는 게 더 무섭다. 교사라는 이유로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다"고 말하고는 고개를 떨궜다. 제주의 교실 안에서 교사들이 맞서고 있는 것은 단순한 업무가 아니라 '폭력과 민원'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이었다. 결혼을 앞둔 또 다른 초등학교 교사는 "죽이겠다', "결혼식장에 찾아가 깽판을 치겠다"는 협박을 매일같이 들어야 했다. 또 다른 교사는 "창문만 봐도 혹시나 찾아오지 않을까, 집에 가도 그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며 "법적으로 대응하면 더 큰 해코지가 돌아올까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토로했다. 이 학부모는 10명의 교사를 정서학대 혐의로 고소했고, 교육청과 학교에는 100
히틀러가 마지막 14일간 지냈던 소위 ‘퓌러붕커’ 지하방공호는 최후의 저항이나 반격을 위한 요새라기보다는 히틀러의 무덤에 가깝다. 히틀러나 그의 참모, 장군들 모두 말은 안 하지만 자신들이 이미 무덤에 들어온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퓌러붕커’ 지하방공호에서 히틀러는 쉼 없이 대책없는 대책회의를 소집한다. 참모들과 장군들은 회의탁자에 펼쳐놓은 대형 유럽지도에서 막다른 골목과 같은 베를린이라는 작은 점에 시선을 고정한다. 베를린과 지하벙커만이라도 지켜낼 수 있는지가 절박한 관심사다. 그런데 정작 회의의 좌장 히틀러는 ‘베를린 사수’ 이슈에 집중하지 못한다. 히틀러의 시선은 독일 동부 국경 너머 동유럽과 광활한 소련 영토를 몽유병자처럼 헤맨다. 그 광활한 땅이 바로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킨 목표이자 독일인들을 열광시켰던 소위 ‘레벤스라움(Lebensraum)’이다. 레벤스라움이라는 개념은 ‘Leben+raum’이고 영어로 직역하면 ‘리빙룸(living room)’이고 우리말로 하면 ‘안방’쯤 되겠다. 말 그대로 동유럽과 사람이 살 만한 소련 서부지역 땅을 모두 빼앗아 독일의 안방으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이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 영국·프랑스에
요즘 들어 어머니의 잠꼬대가 부쩍 늘었다. ‘허태행씨, 허태행씨....’라면서 아버지를 찾는 소리도 훨씬 잦아졌다. 잠꼬대를 그냥 놔둘 수가 없어서 일기장에 기록해 놓는다. 지난 8일에는 “아고, 우리 어머니 어디 가시니게?”라고 당신의 어머니를 찾으신다. 달력을 보니 어버이날이었다. 어머니의 잠꼬대는 그냥 헛소리가 아닌 게다. 오늘 새벽에는 “논에 물 대라, 제게 제게(빨리 빨리)! 우리 논 차례여, 이!” 하시며 허공에다 두 팔을 휘저으신다. 여간 급하고 간절하신 게 아니다. 혹시나 싶어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아하, 요즘이 모내기 철이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의 잠꼬대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신 거다. 102년을 살아오시면서 오랫동안 몸에 축적된 습관과 예감의 발로다. 우리 논이란 게 남의 논을 병작하는 것이다 보니, 농사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곳이 아니었다. 대포마을 약천사 근처의 선궷내 물을 따라 형성된 논들은 층층이 계단식에다 면적이랄 것도 없는 조각난 땅들이었다. 지금 와서 그곳을 바라보면, 어떻게 저기를 논으로 삼고서 농사지을 생각을 다 했을까 싶다. 특히 우리 식구들이 모두 달려들어서 낑낑 거리면서 논일을 했던 곳은 낭떠러지에 물이 떨어지다 보니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양대 정당이 6·3 조기 대선을 불과 열흘 앞둔 시점에도 공약집을 내놓지 않아 유권자들이 ‘깜깜이 선거’에 내몰렸다. 국민의힘은 25~26일께, 민주당은 27~29일께 공약집을 공개할 예정이다. 결국 재외유권자는 공약집도 없이 투표를 마치게 됐다. 유권자 25만8254명이 20~25일 118개국 223개 투표소에서 투표하는데 공약집을 확인조차 못했다. 지역·주제별로 따로따로 내놓은 ‘쪽공약’만 공개됐다. 세 차례 TV토론 중 경제(18일)·사회(23일) 분야를 주제로 한 두차례 토론은 공약집 없이 진행됐다. 3차 토론이 27일이니 사실상 모든 TV토론이 ‘무無공약집 토론’이 될 판이다. 정책 토론과 상호 검증 기회를 양대 정당 스스로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대선 사전투표는 29~30일 이틀간 진행된다. 지난해 총선의 사전투표 비중(46.7%)을 감안하면 유권자의 절반 가까이가 공약집을 제대로 검토할 시간도 없이 투표를 하게 된다.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대선 공약집 늑장 제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대선에서 당선된 박근혜 후보는 대선 9일 전, 문재인 후보는 10일 전에 각각 공약집을 공개했다.
영화 ‘다운폴’은 히틀러가 마지막 14일간 보낸 지하벙커에서 극한으로 치닫는 그의 ‘광기’를 담담하게 비춘다. 히틀러의 광기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아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걸 알려주려는 것 같다. 지하벙커 속으로 히틀러와 동행한 나치 최고위 간부들과 장군들도 ‘그러려니’ 하고 체념한 듯한 모습들이다. 나치당 당수 시절부터 보여준 히틀러의 광기는 많은 사람의 분노와 반발을 불러일으켜 히틀러가 자살하기 전까지 무려 42회의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 하니 가히 ‘암살 위기 많이 넘긴 사람’ 기네스북에 남을 만한 인물이다. 오죽하면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이 2008년 ‘히틀러를 죽이는 42가지 방법(42 Ways to Kill Hitler)’이라는 제목의 역사재현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을까. 결론은 히틀러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은 43번째 방법인 자살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록이다. 독일인들이 유난히 암살에 서툰 민족인지 히틀러가 하느님이 보우하시는 특별한 인물이어서인지는 알 수 없다. 혹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근검절약한다고 담뱃불로 담뱃불을 붙여주는 정도의 융통성도 없어서 사람이 셋 이상 모
끝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마저 14일 한국 경제에 대한 ‘0%대 성장률 전망’ 행렬에 동참했다. 지난 2월 1.6%로 전망했던 것을 이번에 0.8%로 낮췄다. 3개월 새 성장률 전망치가 반토막 났다. 그동안 0%대 성장률을 전망한 곳은 주로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었다. 골드만삭스 등 주요 IB 8곳의 성장률 평균 전망치는 3월 말 1.4%에서 4월 말 0.8%로 한달 새 0.6%포인트 급락했다. KDI의 수정 전망치는 IB 평균과 비슷하지만 정부기관이나 국책연구원 중 처음으로 0%대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적지 않다.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징후로 해석된다. KDI는 미국발 관세 충격이 성장률을 0.5%포인트, 비상계엄 여파와 건설경기 침체 등에 따른 내수 부진이 0.3%포인트 갉아먹을 것으로 봤다. 수출과 건설투자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민간소비 증가율도 1.1%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수출·투자·내수의 동반 급랭이다. 트럼프발 관세 영향이 커지면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용시장은 벌써 실물경제의 직격탄을 맞았다. 정규직 비중이 높고 처우도 괜찮은 제조업 취업자가 4월에 1
윤석열 전 대통령을 두곤 60분 회의하면 59분 동안 마이크를 독점한다는 수군거림이 있었다. 헌법재판소에 탄핵 피청구인으로 서서도 80분간 마이크를 놓지 않는 모습을 모두가 보기도 했다. 영화 ‘다운폴’ 속 히틀러도 그에 못지않다. 지하벙커 속에서 절망적인 마지막 14일 동안 히틀러는 모든 발언을 독점하고 끝없이 ‘한탄’과 ‘샤우팅’을 반복한다. 히틀러는 유언장도 1부와 2부로 장황하게 작성해 놓고도 나치의 합참의장이었던 빌헬름 카이텔(Wilhelm Keitel) 장군에게 보내는 또 다른 유언장을 작성한다. 히틀러 본인 서명이 들어간 ‘이번에는 진짜 마지막’ 문서다. 참으로 할 말이 많았던 인물이다. 그 유언장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민족과 독일군은 이 길고도 힘든 싸움에서 모든 것을 마지막까지 바쳤다. 그 희생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나의 신뢰를 악용했다. 전쟁을 치르는 도처에서 불충과 배신이 투쟁의 힘을 훼손했다… 이 전쟁에서 독일 민족의 노력과 희생은 너무나도 커서 나는 그러한 노력과 희생이 허사가 됐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히틀러는 마지막 순간까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당연히 자책도 하지 않았다. 히틀러 자신
우리나라 헌법 제7조 제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독일 바이에른 주 헌법 96조는 '공무원은 개별 정당이 아니라 전체 국민에 대한 봉사자이다'라고 규정하여 우리나라 헌법과 유사하다. 다만 여기에 더하여 '공무원은 그 의무 수행 과정은 물론 수행 범위 밖에서도 항상 민주적 헌법 국가에 종사할 것을 선언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부분은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Civil servants shall be the servants of the entire people rather than of an individual party. The civil servants must declare his/her support of the democratic constitutional state at all times and must be loyal to it in the course as well as outside of the performance of his/her duties. # 민주적 헌법질서에 종사하는 공무원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민주적 헌법질서이다. 역사상 최초의 헌법 공
“어머니, 어디 가십디강?” 이른 아침 어머니 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문을 열고 보니, 어머니가 주무시면서 잠꼬대를 하신다. 꿈을 꾸셨나 보다. 103세 어머니가 꿈속에서 당신의 어머니를 만나시다니.... 어머니 임하용님은 1880년 명치 13년에 출생, 43세에 막둥이 딸을 낳으셨다. ‘성춘(成春)’이라 부르실 적에 ‘네 인생에 봄을 이루어라’ 기원하셨을 할머니를 생각해 본다. 살아 계시다면 146세가 넘으셨을 터. 그래도 꿈속에서 만난 어머니는, 생생한 땀 냄새에서 달콤한 살 내음이 느껴지는 제주 여인이 아니었을까? 초등학교 때 일이다. 어머니가 클방(정미소)에서 쌀을 한 짐 지고 오셨다. 아, 그 껍질을 갓 벗겨낸 쌀(곤쌀)에서 풍기는 달콤한 향기라니.... 우리는 그때 쌀을 일컬어 ‘고운 쌀’이라고, ‘곤쌀’이라 불렀다. 그 투명하게 기름기가 흐르는 쌀 한 줌을 입에 털어 넣고서 씹고 또 씹으면 흘러나오던 달짝지근한 맛, 그 비몽사몽의 감미로움이여! 어머니가 쌀 구덕을 난간에 부려놓자마자, 나는 얼른 팔을 뻗어서 쌀 한 줌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혹시나 꾸중이 날아 올까 봐 얼른 달아날 태세를 취하였다. 그러자 막 머릿수건을 벗어서
우리 사회의 답답하고 우울한 현실에 지친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국민 노릇 하기 힘들다’고 푸념한다. 그렇지 않아도 먹고살기 팍팍한데 지난해 겨울,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난데없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계엄 선포 및 대통령 탄핵 요건, 내란죄 등을 규정한 헌법과 법률 공부를 해야 했다. 올봄, 5월 1일 대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항소심 무죄를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자 다른 숙제가 등장했다. 파기환송심과 재상고심뿐만 아니라 “대통령은 내란죄나 외환죄를 제외하곤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 헌법 84조의 소추에 이 후보를 둘러싼 다른 재판들도 포함되는지 여부다. 게다가 5월 첫날, 거대 양당이 시시각각 벌인 공방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오후 3시 대법원이 이재명 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오후 4시 한덕수 대통령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사퇴하며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오후 5시 민주당이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비공개 의총에서 한덕수 대행이 사퇴함에 따라 그 자리를 이어받을 최상목 경제부총리의 탄핵안 처리를 거론했다. 밤 9시 최 부총리 탄핵안이 민주당 주도로
영화 ‘다운폴’은 역사 고증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하는데, 감독이 유독 다큐멘터리처럼 역사자료 사진과 똑같이 만든 장면이 있다. 히틀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하방공호에서 나와 ‘히틀러 유겐트(Hitlerjugend)’를 접견하면서 일일이 손을 잡아주는 모습이다. 우리말로 하면 ‛히틀러의 아이들’쯤 되겠다. 영화 내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변비환자처럼 찌푸린 히틀러의 얼굴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나마 옅은 미소가 번진다. 특히 소련군과 교전 중에 부상당한 독일군 10여명을 손수레를 이용해 구조한 페터 크란츠(Peter Krantz)라는 13살 소년에게 2급 철십자훈장을 달아주고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소년의 볼을 꼬집어준다. 히틀러의 기(氣)를 제대로 받았는지 13살 소년 페터는 이후 대전차 로켓포로 소련군 탱크를 날려버리는 괴력을 발휘한다. 볼 한번 꼬집어 줄 만하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실명을 사용하는데 이 소년만은 실존인물이었던 알프레드 체크(Alfred Zech)란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마도 ‘촉법소년’ 나이라는 것을 배려한 모양이다. 사실 히틀러 유겐트 출신 중에는 얼마 전 선종(善終)한 프란치스코 교황 전임자였던 교황 베네딕토 16
이달 6일 서귀포 제주월드컵경기장. 어린이날 홈경기를 맞아 많은 가족 단위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그러나 제주SK FC는 강원FC에 0-3으로 완패하며 경기장엔 싸늘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경기 종료와 동시에 일부 서포터즈들이 선수단 통로와 버스 앞을 가로막았다. 단순한 패배에 대한 반응이 아니었다. 무기력한 경기력, 그에 대한 해명도, 표정도 없이 경기장을 떠나는 팀의 태도에 팬들의 쌓인 감정이 터졌다. K리그에서 '버막(버스 막기)'은 낯설지 않다. 성적 부진이나 프런트에 대한 불만이 고조될 때 전국 각지의 경기장 주차장에서 종종 벌어지는 풍경이다. 2023년 수원삼성이 강등이 확정된 뒤 팬들은 2시간 넘게 선수단 버스를 막고 단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번 제주 사태는 방식과 반응, 그리고 이후 전개까지 모두 달랐다. 논란의 중심에는 박동진 선수가 있었다. 팬들과 마주한 그는 언성을 높였고, 일부 팬은 그가 욕설을 내뱉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현장을 촬영한 영상에서는 박 선수가 팬과 언쟁을 벌이는 장면과 이를 말리는 구단 관계자의 모습이 담겼다. 여기까지는 다소 거친 상황일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전개는 K리그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렵다. 박 선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