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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모옌(莫言)의 단편소설「밤 게잡이」(2)

오동명의 기획연재소설에 이어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옌의 단편소설 <밤게잡이>를 소개합니다. 국내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 소설입니다.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모옌의 작품성을 엿볼 수 있는 소설입니다. 중국문학 전문가인 이권홍 교수가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애독바랍니다/ 편집자 주

 

 

오랫동안 게들이 나타나지 않아 나는 초조해졌다. 삼촌도 낮게 투덜거리며 몸을 일으켜 울짱을 살피면서 혼잣말을 했다. ‘이상하네, 이상해, 정말 이상하네. 오늘 밤은 게들이 지나가는 한사리가 맞는데? 그리고 서풍이 불면 게 다리가 간지러워지는데. 게들이 보이지 않는 게, 괴이하네’.

 

삼촌은 물가의 관목에서 흠치르르한 나뭇잎을 따서 입술에 끼고 풀잎피리 불듯 찍찍 기괴한 소리를 냈다. 나는 한기를 느꼈다. ‘삼촌 부르지 마세요, 어머니가 한밤중에 휘파람을 불면 귀신이 나타난다고 했단 말예요’. 삼촌에게 말을 건넸다. 삼촌은 나뭇잎 피리를 불면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그의 눈빛이 그윽한 녹색을 띠고 있었다. 이상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갑자기 삼촌이 낯설게 느껴졌다. 너무 추워 온몸이 덜덜 떨렸다. 나는 도롱이 속으로 몸을 잔뜩 움츠렸다.

 

삼촌은 나뭇잎 피리를 부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삼촌의 몸은 한층 더 밝고 맑은 달빛에 휩싸였다. 마치 얼음으로 만든 조각상 같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원망했다. 삼촌은 게들이 놀란다고 내게 조용하라고 했으면서 어떻게 풀잎피리를 불러대는가? 그것이 게들을 불러 모으는 신호라도 된다는 말인가?

 

 

나는 목소리를 낮춰 ‘삼촌, 삼촌’ 불렀다. 그러나 내가 부르는 소리에 아무런 대답도 없이 삼촌은 계속 나뭇잎 피리를 불렀다. 찌르륵, 귀뚤귀뚤, 찌르르 찌르르, 소리가 한층 더 괴이해졌다. 나는 황급히 손가락을 깨물었다. 아팠다. 분명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다. 손가락을 펴서 삼촌의 등을 찔렀다. 놀랍게도 삼촌의 몸은 살을 에듯 차가웠다. 그제야 무섬증이 왈칵 일었다. 곰곰이 도망갈 생각을 했다. 그러나 밤길을 걸을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진흙탕이요 수수가 온 들판에 가득 널려 있는데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있겠는가? 나는 삼촌과 같이 게잡이 하러 온 게 후회되었다. 오늘 틀림없이 살아서 돌아갈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모골이 송연해졌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르지만 하늘에는 외로운 황금색 구름이 덩이져 흘러가고 있었다. 달이 마침 그 구름 사이로 파고들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기이하다 생각했다. 이렇게 넓은 하늘에서 달도 넓디넓은 길을 따라 제 갈 길을 가면 될 일인데 하필이면 그 구름사이로 들어간단 말인가?

 

차가운 빛이 가로막혔다. 개울과 들판이 흐릿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램프의 빛살만 더 강렬해졌다. 그때, 나는 갑자기 엷고 은은한 향기를 맡았다. 그 향기는 개울에서 퍼져 나왔다. 향기가 나는 쪽으로 바라봤다. 물위로 곧추서 있는 새하얀 연꽃이 보였다. 램프 불빛 안쪽에 있었다. 신선하면서도 성결聖潔했다. 우리 집 문 앞 연못에도 수많은 연꽃들이 피는데 눈앞에 놓인 그 연꽃과는 비견될 만한 게 없었다.

 

연꽃을 보면서 나는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연꽃은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순수하면서도 청량한 정서 속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나는 무의식중에 일어서서 도롱이를 벗어버리고 연꽃으로 향했다. 내 발이 따뜻한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천천히 흐르는 물이 내 허벅지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원래 연꽃하고 몇 발자국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 한참을 걸어갔다. 나와 연꽃의 거리는 영원히 좁혀지지 않을 듯 보였다. 내가 한 걸음 다가가면 연꽃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 같았다. 내 마음은 행복에 겨워 마취상태가 되었다. 나는 결코 그 연꽃을 따고 싶지 않았다. 연꽃이 멀어지면 내가 다시 다가서는 상태가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랐다. 그런 아름다운 목표를 천천히 뒤쫓는 가운데 따뜻한 냇물은 계속 나를 어루만졌다. 일생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체험이었다.

 

밝은 달빛이 갑자기 강줄기를 가득 비췄다. 일순간, 연꽃이 두어 번 부들부들 떨며 번개보다도 더 눈부신 하얀 빛을 내뿜고, 옥패로 조각한 듯한 꽃잎들이 흩날리는 것이 보였다. 꽃잎은 수면으로 떨어져 작고 둥근 조각으로 부서졌다. 반짝거리는 냇물 속으로 빙빙 돌며 사라졌다. 꽃잎을 지탱했던 줄기는 꽃잎이 시들어 떨어지자 이내 활기를 잃고 무너졌다. 수면 위로 구불텅해 몇 번 흐늘거리다 물결이 되어 사라졌다……

 

무의식중에 나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마음은 달콤한 우상憂傷으로 충만해졌다. 내 마음속에 비통함은 없었다. 단지 근심만 느꼈을 뿐이다. 눈앞에 벌어진 모든 것이 마치 아름다운 꿈속의 광경 같았다. 그러나 벌거벗은 몸으로 물속에 서있었기에 내 심장은 물에 잠겨 있었다. 내 심장이 뛸 때마다 냇물이 가벼이 출렁거리며 수면 위로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 연꽃이 사라졌지만 담백하면서도 그윽한 향기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물위로 이리저리 떠다니며 맑고 찬 달빛과 애잔한 곤충의 울음소리와 하나가 되었다…… <삽화=오동명/ 3편으로 이어집니다>
 

 

모옌(莫言 Mò Yán 1955~)= 중국 소설가. 본명은 관모예(管謨業, Guǎn Móyè). 필명 ‘모옌’은 중국어로 “말을 하지 않는다.” 혹은 “말을 말라.”를 뜻한다. 민담, 역사, 현대 중국의 사회상을 섞어 글을 쓰는 독특한 스타일인 환영적 사실주의(Hallucinatory realism)를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산둥山東 성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문화 대혁명 때 학교를 중퇴하고 정유 공장에서 일했다. 20살 때 인민해방군에 입대했으며 1981년 군인 신분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1986년 중국 인민해방군 예술학과 문학과 졸업, 1991년 베이징 사범 대학을 졸업했으며, 루쉰 문학원 창작 연구생반 졸업과 함께 문예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표 작품으로 『붉은 수수밭』, 『홍까오량 가족』, 『술의 나라』, 『사십일포』, 『탄샹싱』, 『풍유비둔』,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풀 먹는 가족』 등이 있으며 그의 작품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노르웨이어 등 10여 개 언어로 출판되었다. 201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옮긴이 이권홍은?=제주 출생. 한양대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중국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신종문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는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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