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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태풍 '산바' 초토화 구좌읍, "우리 농민들은 이제 죽은 목숨"

 

 

“추석을 쇠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망가진 농작물을 보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18일 오후 침수 피해를 입은 감자밭에 살균제를 뿌리던 김상철(42)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15년전 제주시에서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고향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서 땅을 일구겠다는 일념으로 귀농했다.

 

포부는 컸다. 작은 밭으로는 가족들이 먹고살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그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땅 1만평에 더해 남의 땅 7만평을 임대해 농사를 지었다. 그 땅에다가 당근과 무, 감자를 심었다. 수확하는 재미와 돈 버는 낙으로 그는 열심히 살았다.

 

아내와 어머니와 함께 밭에 가서 일했다.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아침저녁으로 밭을 일궜다. 그는 전국으로 농산물을 파는 산지유통 ‘대흥농산’이라는 간판까지 내걸었다.

 

 

 

그런데 2007년 불어닥친 태풍 ‘나리’는 그에게서 ‘부농의 꿈’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당근과 감자, 무 등 파종한 농작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모두 쓸려가거나 물에 잠겨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이를 더 악물었다. 그리고 서서히 재기하는 듯 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고작  5년이 지난 올해. 지난달 27일부터 연이어 닥친 제15호 태풍 ‘볼라벤’과 제14호 태풍 ‘덴빈’은 그가 애지중지했던 농작물을 다시 한 번 무참히 짓이겼다.

 

그는 올해 당근 3만5000평, 감자 1만평, 무 4만평을 갈았다. 태풍 ‘볼라벤’과 ‘덴빈’은 막 파종한 당근과 무 모종을 통째로 삼켜버렸다. 모종이 꺾이고, '물폭탄'처럼 내린 비로 밭은 아예 물에 잠겼다.

 

그래도 포기할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재 파종한 모종이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17일 제16호 태풍 ‘산바’가 내습했다. 물론 그 밭은 이제 언제 파종을 한 밭이었는지 알 수도 없는 꼴이 됐다.

 

 

 

 

맥이 풀렸다. 가슴을 치며 소리쳐도 이제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한 달 만에 연이은 3번의 태풍은 이제 그의 넋을 빼 놓았다.

 

 

당근은 얼마를 건질지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무도 마찬가지다. 감자는 침수로 인해 알뿌리와 줄기에 무름병이 도질 게 뻔하다. 열심히 살균제를 뿌려보지만 10개 중 3~4개를 건질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파종할 수도 없다. 이미 철이 지났다. 남은 것 만이라도 건지는 게 최선이다.

 

“감자를 살려보려고 농약을 뿌려보지만 얼마나 살지 모르겠다. 당근 농사는 올해 끝이다. 얼마 남지 않은 것이나 잘 가꾸는 수밖에…”

 

타들어가는 속을 달랠 길은 담배뿐이다. 하지만 연기는 한숨과 뒤섞여 희뿌옇기만 하다.

 

“지금쯤 이 일대(평대리) 농경지가 새파래야 되는데 농사 짓는 밭으로 볼 수 있겠나? 밭 전체가 빈 밭 같다. 그 놈의 세차례 태풍에 다 망했다. 4~5년 주기로 태풍이 닥쳐 다 쓸어버린다. 추석은 남의 나라 얘기다.” 한탄 섞인 그의 말이다.

 

보상받을 길도 막막하다. 농작물 보험은 콩, 감자 외에는 되지 않는다. 무와 당근은 보험대상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감자는 보상을 받을 길이 없다. 감자는 오는 20일부터 접수를 받는데 병든 감자를 누가 보험에 가입시켜 주겠냐는 것이다. 농작물 보험은 어느 정도 농작물이 자란 뒤 가입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피해로 어깨에 빚더미가 더 얹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토지 임대료와 비료·농약대금, 인건비 등 들어간 돈이 눈덩이다. 남은 것을 수확한다고 해도 다섯식구와 어머니 생계까지 책임지려면 앞길이 막막하다. 

 

“올해 같으면 누가 농사를 한다고 하겠습니까?  농민들은 다 죽는 것이죠.”

 

 

 

 

사정은 김씨만이 아니다. 감자와 무, 당근 농사를 짓는 영농조합법인 동우농산의 정동우(50) 대표의 표정은 꿈길을 헤매고 있는 모습이다.

 

 

그의 무 공장은 연이은 태풍에 아수라장이 됐다. 불과 엊그제 복구한 육묘장의 지붕은 날아가 버렸다. 지난 태풍 ‘볼라벤’으로 인해 절반만 남은 세척·작업장의 지붕도 이번 태풍으로 아예 싹 날아가 버렸다. 그나마 저온저장고는 피해를 덜 입었지만, 다시 복구해야 한다.

 

그게 다가 아니다. 김 대표는 올해 무 10만평을 갈았다. 그런데 앞선 태풍으로 인해 최근에 다시 모종을 파종했다. 이번에는 15만평을 갈았다. 그런데 이번 태풍으로 아예 뭉개졌다.

 

 

 

 

“뿌리라도 박혀있으면 약이라도 쳐서 살려보겠지만 강풍과 폭우로 끝났다. 40만종의 배추 육묘장 지붕은 최근 수리했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도리도 없다. 5000만원을 들여 수리했는데, 또 그정도 들게 됐다. 농작물 피해만 4억5000만원 정도 될 것 같다. 시설 피해액은 10억원을 웃돌 것 같다.”

 

 

“아마 스스로 목숨을 끊는 농민이 나타날지 모른다.” 그의 심경이다.

 

구좌읍에서는 연이은 태풍으로 인해 농작물의 약 60~70%가 피해를 봤다.

 

당근 재배면적은 1235ha인데 약 70~80%가 피해를 봤다. 무 피해면적은 790ha 재배면적 중 대부분이다. 감자의 경우는 그보다 덜했다. 하지만 감자도 850ha에 40~50%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 메밀도 재배면적 100ha의 70% 이상 피해가 예상된다.

 

구좌읍 김상호 산업계장은 “구좌읍 2500 농가 대부분이 피해를 입었다. 재파종 시기도 지났다. 종자도 거의 없다. 땅을 놀리거나 유채나 맥주보리를 파종하는 수밖에 없다”며 “유채나 맥주보리는 소득이 낮아 농민들이 꺼려하는 작물로 어떻게 소득을 보전할 지 대부분 농민들이 막막한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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