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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교육 현장 주체인 학생·교사는 반대 ... 외면하는 교육청과 동문회

 

지난달 29일 오후 제주여자상업고등학교(이하 제주여상) 정문.

 

약속을 하고 만난 한 교사의 표정은 어두웠다. "특성화고로서의 역할을 잃는다면 학생들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교사는 최근 불거진 일반고 전환 논란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지금껏 제주여상이란 자부심이 학생과 교사 모두의 어깨에 드리웠지만 일반고 전환이란 운명은 무언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란 것이다.

 

"72년 역사가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동문과 교육청이 막무가내로 일반고 전환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오랜 특성화고 역사를 지닌 제주여상이 일반고로 전환될 운명에 처했다.

 

1952년 개교한 제주여상은 제주도 유일의 공립 상업계 고등학교로 70여 년간 지역 산업을 이끌어 갈 맞춤형 인재를 양성해왔다.

 

제주여상은 지금까지 약 2만50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제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뛰어난 성과를 남긴 학교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제주여상 출신 졸업생들은 금융기관, 공기업, 그리고 대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제주여상은 한국은행, NH투자증권, NH농협은행 등 금융권에 29명, 공무원연금공단과 한국전력공사 등 공기업에 18명, 삼성화재와 한화리조트 등 대기업에 16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공직사회 진출도 남다르다. 현재 제주도내 40대 중·후반 이상 여성 공무원 중 상당수가 제주여상 출신이라는 점은 학교의 교육적 성과와 높은 위상을 잘 보여준다.

 

제주여상은 지역 밀착형 교육을 통해 공기업 및 금융권 진출이라는 실질적인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제주도교육청은 고교학점제 도입과 과밀학급 해소, 지역 간 교육 균형을 이유로 일반고 전환의 걸음을 계속 걷는 중이다.

 

제주도교육청 관계자는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학습 선택권을 제공하고, 과밀학급 문제를 해결하며 지역 간 교육 균형을 이루기 위한 필수적 변화"라며 "학생 수 감소와 산업 구조 변화 속에서 상업계 고등학교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도교육청은 특히 졸업생 취업률 하락과 대학 진학률 증가를 주요 근거로 들었다.

 

최근 10년간의 취업률 변화를 살펴보면 2014년 졸업생의 취업률은 26%였다. 그러나 2019년 24%, 2020년 21%, 2021년 23%, 2022년에는 12%로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였다. 반면, 같은 기간 대학 진학률은 2019년 62%, 2020년 66%, 2021년 63%, 2022년 78%로 상승했다. 

 

제주여상 총동창회 또한 이러한 변화를 반영해 전환을 지지하고 있다.

 

강민숙 제주여상 총동창회장도 교육청의 입장을 지지하며 "학생 수 감소와 산업 구조의 변화 속에서 상업계 고등학교의 필요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학교가 지속 가능한 교육 환경을 제공하려면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교육 현장의 반발은 뜨겁다.

 

제주도상업정보교육연구회가 진행한 제주여상 특성화고 유지 서명운동 결과 학생 551명 중 401명(72.8%), 교사 55명 중 51명(92.7%)이 일반고 전환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한 재학생은 "특성화된 상업 교육을 받기 위해 이 학교를 선택했는데 일반고 전환은 우리의 꿈을 막는 결정"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교사들 또한 특성화고 전환이 지역 산업과 교육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 우려했다.

 

한 교사는 "제주여상은 제주도내 공기업과 1금융권 등 여러기업과 협력하며 맞춤형 인재를 양성해왔다"며 "일반고로 전환하면 지역 산업을 지원하는 핵심 교육이 약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통 부족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지난달 4일 열린 제162회 학교운영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나 토론이 진행되지 않았다. 도교육청은 지난해 진행된 연구 용역 결과를 정책의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제주여상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개별 설문조사나 토론은 없었다.

 

회의에서는 도교육청이 앞으로의 절차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보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는 정책 결정의 초기 단계에서 이미 반영되었어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학교 측은 도교육청이 지난해 실시한 연구 용역 결과를 근거로 일반고 전환을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결과는 제주여상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불완전한 자료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일부 운영위원들은 "정책의 결정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외부 연구 결과에 의존한 것은 정책 신뢰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직접적인 설문조사나 토론 없이 이렇게 막가는게 맞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제주여상은 지난해 공기업과 제1금융권 공채 전형에서 5명의 합격생을 배출했다. 올해도 제주개발공사와 하나은행에 3명의 학생이 합격했다.

 

제주여상 특성화교육 담당자는 "특성화고 학생들이 반드시 취업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취업률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양질의 교육 환경과 여건을 고려하고, 학생의 전공과 꿈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주여상은 제주도개발공사, 하나은행 등 공기업 뿐만 아니라 여러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우수한 인재를 배출해 왔고, 이런 성과들을 무시한 채 단순한 취업률만으로 교육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교사는 "취업률과 대학 진학률의 변화는 산업 구조와 학생들의 진로 선호도가 달라진 결과"라며 "교육청이 단순한 통계 수치만으로 결정을 내린 것은 학생들의 의견을 외면한 심각한 오류"라고 지적했다. 

 

제주 교육의 방향성과 철학을 놓고 다시 의문이 떠오르고 있다.

 

졸업생 최모씨(22·여)는 "일반고 전환은 학생과 교사의 신뢰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도교육청과 총동창회가 학생과 교사의 의견을 외면한 채 학교의 정체성과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일반고 전환이든 남·녀공학 전환이든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반드시 학생과 교사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의 교육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교육은 학생의 삶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여상의 미래는 단순히 통계와 수치로 결정될 수 없다. 게다가 그 통계와 수치가 교육 현장의 주체의 의견을 도외시한 결과라면 합리적 결정의 기준이 될 수도 없다. 일방적으로 결정을 강행한다면 그 결과가 과연 학생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지 되짚어봐야 한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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