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오래도록 외길을 걸어왔다. 일차의료 분야에서 그는 독보적인 길을 걸었다.
일차의료와 주치의제도에 대한 개념이 의료계 내부에서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다. 그래도 그는 20년 넘게 의료 현장에서 일차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기자님,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죄송하지만 일차 의료기관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거침없이 질문을 던졌다.
"대다수의 사람들, 심지어 의사들조차도 모든 동네의원이 일차의료기관이라고 생각하는 흔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고병수(60) 탑동365일의원 원장.
그는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넘어 의료 정책 연구와 장애인 주치의 제도 도입에도 앞장서왔다. 정의당 제주도당 위원장을 역임하며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했고, 이제는 제주형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의 공동위원장으로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의료 정책 분야에서 오랜 경험과 전문성은 그의 경력에서 드러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 '주치의제도 바로알기' 등 관련 저서를 출간하며 주치의 제도의 필요성과 방향성을 제시했다. 또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학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일차의료와 장애인 건강권 향상에 기여했다.
그런 그가 이제 제주에서 건강주치의 제도를 도입하며 도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자 한다. 제주형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의 공동위원장을 맡은 고병수 원장을 만나 그가 꿈꾸는 제주 의료의 미래를 들어봤다.
지난 29일 탑동365일의원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요약이다.
▶ 제주형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의 공동위원장이 되신 것을 축하드린다. 이 사업의 첫 시작에 대해 설명해달라.
"축하해줘서 감사하지만 사실 책임감과 걱정이 앞선다. 도민들의 일상적인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자 하는 사명감이 막중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도 일차 의료의 중요성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많은 나라에서 주치의 제도를 통해 국민의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이번 의료대란은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의료 시스템이 변화하고 개편되는 이 시기에 그동안 시도하지 못했던 일차 의료 강화와 주치의 제도 도입을 해보자는 것이 나와 오영훈 제주지사의 공통된 생각이다. 지사가 의회에서 이 제도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나에게 준비와 추진을 부탁했다."
▶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의 추진 배경과 공동위원장을 맡은 계기는 무엇인가?
"사실 주치의 제도는 오래전부터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도민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일차 의료 제도의 중요성에 대해 오 지사와 여러 차례 논의한 적이 있다. 그동안 정치권의 의지 부족과 제도적 한계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지사의 강력한 의지와 지원으로 추진하게 됐다. 나는 20년 넘게 의료정책 연구와 일차 의료 현장에서 활동해왔다. 장애인 주치의 제도를 도입할 때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관련 저서도 출간하며 주치의 제도의 필요성과 방향성을 제시했다. 제주에서는 나만큼 이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의사가 드물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제주형 건강주치의 제도를 성공적으로 도입하고자 공동위원장을 맡게 됐다."
▶ 의료 정책과 일차 의료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의 경력이 이번 공동위원장 역할에 어떻게 도움이 되고 있나?
"2000년대 중반부터 의료 정책 연구에 매진해온 이유는 일차 의료와 주치의 제도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장애인 주치의 제도를 만들 때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그 과정에서 제도 설계와 시행의 어려움, 그리고 필요한 조건들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됐다. 또 '온국민 주치의제도', '주치의제도 바로알기' 등의 저서를 통해 주치의 제도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이러한 연구와 실천 경험은 제주형 건강주치의 제도를 설계하고 추진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도민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 어떤 어려움이 예상되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 건강주치의 제도가 도민들의 건강 증진에 어떤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나?
"우선, 당장의 큰 변화는 없지만 장기적으로 도민들이 보다 편안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주치의 제도를 통해 한 의사가 지속적으로 환자의 건강을 관리함으로써 환자의 건강 이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필요한 진료와 예방 조치를 적시에 제공할 수 있다. 또 병을 치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예방과 건강 증진에 중점을 둘 수 있다. 예를 들어 만성 질환인 고혈압, 당뇨 등의 조기 발견과 관리, 그리고 비만이나 흡연 같은 건강 위험 요인에 대한 상담과 교육이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도민들의 전반적인 건강 수준이 향상되고, 의료 비용도 장기적으로 절감될 것으로 기대한다."
▶ 이 제도가 기존의 의료 시스템과 비교해 가지는 가장 큰 차별점은 무엇인가?
"가장 큰 차별점은 '지속성'과 '포괄성'이다. 현재의 의료 시스템은 환자들이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진료를 받는 '의료 쇼핑' 형태다. 하지만 주치의 제도에서는 한 의사가 환자를 지속적으로 관리해 환자의 모든 건강 상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주치의는 환자의 가족력, 생활 습관, 사회적 환경까지 고려해 포괄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환자는 자신의 건강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고, 의료 자원의 낭비도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지속성과 포괄성은 기존의 의료 시스템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다."
▶ 시범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부분은 무엇인가?
"시범사업의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한 재정 지원과 인력 확보다. 주치의 제도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의사들이 안정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 또 의사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의사들이 주치의 제도의 필요성과 장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 도민들에게도 주치의 제도의 혜택을 알리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 지역 의료진과 주민들의 참여와 협력이 중요할 것 같다. 이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이나 계획은 무엇인가?
"의사들과 도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과 홍보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먼저, 의사들을 대상으로 주치의 제도의 필요성과 운영 방안에 대한 세미나와 워크숍을 열어 제도에 대한 이해를 높일 것이다. 의사회와 긴밀히 협력해 의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제도 개선에 반영할 예정이다. 도민들을 대상으로는 주치의 제도의 장점과 필요성을 알리는 홍보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도민들이 자신의 건강을 주치의에게 맡기고, 지속적인 관리와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독려할 것이다."
▶ 건강주치의 제도의 앞으로의 계획과 진행 일정은 어떻게 되나?
"우선, 다음 달 8일에 국회 토론회가 예정돼 있다. 그 자리에서 건강주치의 제도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발제할 예정이며 제주 지역 국회의원들과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이후에는 내년 7월 1일부터 시범사업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그 전에 대상 지역과 대상자 선정, 예산 확보와 구체적인 운영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 시범사업의 대상 지역과 대상자는 어떻게 선정될 예정인가?
"아직 최종 결정된 사항은 아니지만 위원회에서 다양한 방안을 논의 중이다. 초기에는 읍·면 지역을 중심으로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서 시작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대상자로는 12세 미만의 소아와 만성질환을 가진 어르신 등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어린이들의 성장과 발달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어르신들의 만성 질환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시범사업의 결과를 분석해 장기적으로는 전 도민과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 제주도의 미래 의료 환경을 어떻게 그려보고 있나? 또 장기적인 비전이나 목표가 있다면 공유해달라.
"제주도는 고혈압, 당뇨, 비만 등 만성 질환의 비율이 높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주치의 제도를 통해 이러한 만성 질환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예방할 수 있다. 또 도민들이 자신의 건강에 대한 교육과 상담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도민 모두가 자신의 주치의를 갖고, 일생 동안 지속적인 건강 관리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통해 도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제주도를 대한민국에서 일차 의료의 모범 지역으로 만들고자 한다."
▶ 마지막으로 제주도민들과 의료 관계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당부가 있다면 부탁드린다.
"건강주치의 제도는 도민들의 건강을 지키고, 의사들도 보람 있는 진료를 할 수 있는 제도다. 도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이 필요하다. 또 의료진 여러분께서도 주치의 제도의 취지와 장점을 이해하시고 함께해 주신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가 책임지고 이끌어 나가겠다. 모두가 함께한다면 제주도의 의료 환경은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