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위태롭다. 수출이 10월, 11월 두달 연속 감소했다. 수출과 달리 수입은 계속 증가하며 무역수지가 8개월 연속 적자를 냈다.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 이후 두번째로 긴 적자 행진이다.
그래도 올해 연간 수출은 지난해보다 5% 많은 68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연간 수출규모 순위도 지난해 세계 7위에서 6위로 한 계단 올라선다. 반도체·자동차·석유제품 등 주력 세 품목과 아세안·미국·유럽연합(EU)·인도 네 시장에서 최대 수출액을 달성한 덕분이다.
대미 수출은 사상 처음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아세안 수출도 2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12월 5일은 제59회 ‘무역의 날’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자축하기 쑥스러웠다. 사상 최대 수출에도 11월까지 무역적자(426억 달러)가 역대 최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원유·가스·석탄 등 3대 에너지 수입이 워낙 큰 폭으로 불어났다. 제품을 수출해 벌어들인 흑자를 에너지 수입에 다 쓰고도 부족했다.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주요국의 긴축에 따른 세계경기 둔화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사실 수출이 줄고 에너지 수입이 늘어난 것은 독일·일본 등 제조업 강국의 공통 현상이지만, 에너지를 과소비하는 한국이 유독 심했다.
게다가 전체 수출의 23%를 차지하는 대중국 수출이 코로나19 봉쇄 조치로 타격을 입었다.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의 글로벌 경기가 하강했다. 중국 시장과 반도체 한 품목의 의존도가 너무 큰 한국 경제의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내년 수출 전망도 어둡다. 한국무역협회는 수출은 4% 감소한 6624억 달러, 국내 경기 둔화와 국제유가 하락으로 수입은 8% 줄어든 6762억 달러로 예상한다. 무역적자도 이어진다. 그나마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적자 규모가 올해(450억 달러 예상)보다 적은 138억 달러에 머물 것으로 전망됐다.
주력 엔진인 수출이 꺾이면 경제 전반이 침체에 빠져들 것이다. 한국은행과 국제기구들은 내년 한국 경제가 1%대 저성장에 머물 것으로 본다. 일부 외국계 투자은행은 마이너스 성장까지 예고했다.
영국 콜린스 영어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퍼머크라이시스(perma-crisis)’를 선정했다. ‘permanent(영구적인)’와 ‘crisis(위기)’의 합성어로 경제위기가 오래 지속된다는 뜻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2023년 전망에서 이 단어가 내년 세계경제를 정확히 표현했다고 전했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도 이를 모르는 것 같지는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정상외교가 철저히 우리 기업의 수출 촉진과 해외 진출에 초점을 맞춰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며 “무역인 여러분과 함께 수출 최일선에서 뛰겠다”고 했다. 앞서 10월 말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선 모든 부처가 수출과 경제활력 제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전 부처의 산업부화’를 주문했다.
관건은 구체적 대책과 실행이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이후 현대차·기아의 미국 내 전기차 판매가 급감했다. IRA 하위 규정에 ‘보조금 지급 3년 유예’ 등 우리 기업의 입장이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 1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후 IRA 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IRA 시행에 불만인 EU 등과 연계해 현대차의 미국 내 전기차 생산 시점(2025년 상반기)까지 보조금 지급 유예를 관철시키도록 진력해야 할 것이다.
자유무역주의에 입각한 세계 무역의 틀이 흔들리는 판에 기존과 다른 수출 전략이 요구된다. 패권 다툼을 벌이는 미국·중국은 물론 EU도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신냉전, 블록화, 경제안보 및 기술안보가 국가안보와 동일시되는 지경학(Geo-economics·地經學) 시대에 맞춰 통상외교 전략도 재정비해야 한다. 수출시장 다변화와 원자재 수입선 다원화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보호무역주의가 득세하고 경제안보가 중시되는 상황을 보면 미국·중국·유럽 등 큰 시장 일변도 교역은 위험하다. 코로나19 충격이 남아 있고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지금이 우리에겐 남방 시장 진출의 호기일 수 있다. 베트남 등 아세안과 인도·태평양 지역과의 협력 및 공조에 더 주력할 필요가 있다.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업의 활력 회복이다. 하지만 경쟁국보다 불리한 규제가 개선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여야 정당들은 정쟁을 일삼으며 반도체 지원 특별법안까지 넉달째 국회에서 공전시켰다. 정부와 정치권은 구호만 외치지 말고, 우선순위를 정해 일 좀 하자.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