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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의 프리즘] 1400원 위협하는 원·달러 환율

 

추석이 지나자마자 가격표가 바뀌는 물건이 많아졌다. 15일부터 라면과 과자 값이 줄줄이 올랐다. 농심이 라면 값을 평균 11.3% 인상했다. 한 봉지에 900원이던 신라면 편의점 판매가격이 1000원으로 높아졌다.

새우깡값(6.7%)도 올랐다. 9년 동안 오르지 않았던 초코파이값도 12.5% 인상됐다. 편의점에서 한 개 400원이던 것이 450원으로, 12개들이 한 상자 가격은 4800원에서 5400원이 됐다. 비빔면 등 팔도라면값도 10월부터 평균 9.8% 인상이 예고됐다. 

가공식품 가격이 줄줄이 오르는 배경에는 원·달러 환율 상승이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해져 밀과 팜유 등 원부자재 가격이 올랐다. 게다가 환율이 뛰자 달러로 지급하는 원자재 대금과 물류비용 부담이 더 커졌다.  

수입 곡물 가격이 3분기에 정점을 찍고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식료품 가격 상승도 진정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상황이 달라졌다. 원·달러 환율은 9월 14일 1390원을 넘어섰다. 머지않아 1400원은 물론 1450원, 1500원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달러화가 ‘강强달러’ 넘어 ‘킹(King)달러’로 등극한 뒷배에 미국의 강도 높은 통화긴축이 있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지난 3월부터 기준금리를 올려온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20~21일 금리를 0.75~1.00%포인트 더 올릴 태세다. 현재 2.25~2.5%인 기준금리를 4%까지 올리지 않고선 인플레이션을 관리하기 어렵고, 금리를 천천히 올리기보다 빠르게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자금이 고금리를 좇아 빠져나가는 것을 경계하는 한국으로선 금리인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18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 뇌관을 지닌 우리로선 미국만큼 금리를 올리기 어렵다.

 

어렵게 2.5% 기준금리 상한을 맞춰놨는데, 미국이 자이언트스텝(금리 0.75%포인트 인상) 내지 울트라스텝(1.0%포인트 인상)을 밟으면 한국은행이 예고한 대로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을 두 걸음 떼어도 미국 금리에 못 미친다. 한미 간 금리 역전에 이어 금리 격차가 벌어져 원화의 가치는 더 하락(환율 상승)할 것이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물가가 오르고, 이는 국내 물가 전반을 자극하게 된다. 

환율이 계속 오르고 물가상승을 압박하면 한은의 빅스텝(0.5%포인트 인상)도 배제할 수 없다. 긴축의 강도와 속도가 높아지면 가계와 기업의 빚 부담이 커지고, 경기침체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미 적잖은 기업들이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로 고전하고 있다. 

환율변동제 도입 이후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시기는 외환위기 때인 1997년 12월~1998년 6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1월~2009년 3월 등 두차례다. 전자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후자는 미국 금융회사 리먼 브러더스 파산이란 큰 충격을 받은 뒤였다.

시장을 단번에 뒤집을 만한 결정적 사건 없이 환율이 야금야금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미 간 금리역전과 6개월 연속 무역적자, 8월 경상수지 적자 전환 가능성 등 거시 경제지표에 대한 우려에 멍이 들며 환율이 1400원에 육박했다.  

정부는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와 다르다고 강조해왔다. 실제로 그때처럼 외환보유액이 급감하지도, 달러 가뭄을 빚지도, 원화 가치만 하락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두 차례 위기를 제외하곤 1400원 수준 환율을 경험하지 않은 우리로선 경계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달러 강세는 내년 1분기까지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금리인상 중단, 국제유가 대폭 하락, 중국의 경기 회복,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과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 등 대외변수의 뚜렷한 변화가 있어야 달러 강세가 진정될 텐데 좀처럼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외화자금시장은 괜찮다’며 각별한 경계, 시장상황 예의 주시, 시장안정을 위한 조치 점검 등의 립서비스에 그쳐선 곤란하다. 여러 위기 시나리오에 맞춘 비상 플랜을 세워 금융위기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고, 더욱 높은 외환 방파제를 쌓아야 한다. 

급할 때 달러를 빌려 쓸 수 있는 한미 통화스와프가 긴요하다. 통화스와프 체결 요구를 미루는 미국에 동맹 한국의 경제 안정이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한다는 점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정부 경제팀과 통화 당국의 정교한 정책 공조도 절실하다. 추경호 부총리와 이창용 한은 총재가 더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 금리인상과 환율 상승을 대외상황 전개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실력 있는 정부라면 상황 전개에 맞는 정책과 대안을 제시해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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